“인상이 참 좋습니다.”

“행복해 보이십니다.”

불교를 만나고 부처님 그늘에 살면서부터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어느 날 남편의 절친 후배가 “형수님, 얼굴이 너무 좋아 보이는 것 아니에요?”라고 농담조로 말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정말 꿋꿋하고 잘 지내는 것 같아 약간 민망스럽기도 했다. 남편과의 사별 후 시름시름 앓거나 우울증에 걸려 몇 년 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는 이도 많다는데, 나는 정말 멀쩡하게 잘 살았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물론 지병은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꿈같은 세상에서 그냥 또 다른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불교 공부, 마음공부가 그저 이론에 불과했나 보다. 몸이 먼저 알았다. 머리가 백지장처럼 변해 누군가 인사를 하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충격으로 인한 기억력 급감……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다. 마침내 그해 연말에는 근종이 커져서 수술까지 했다.

지금까지 공염불만 해 왔음을 절감했다. 반성하면서 괴로움의 원인을 살폈다. 젊은 날 갑작스럽게 이생을 떠난 그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지만, 그에 앞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에 대한 괴로움이었다. 결국은 ‘나’였다. ‘에고’ 때문에 더 크게 괴로운 것이었다.

‘헛살았다.’

그동안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 덕분에 ‘나’를 내려놓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해졌다.”고 떠벌이며 다녔다. 실제로 불교와 만남은 환골탈태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주었다. 어렸을 적에 왜 그렇게 세상사를 예민하게 느끼면서 괴로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불교를 만나면서 괴로움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괴로움을 처절하게 느끼지 못했다면 불교의 가르침이 내게 그토록 가슴 깊이 새겨지지 않았을 터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봄날 만난 부처님께 받은 선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나는 그때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데 집안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다고 원망하고, 그것을 게으름의 핑계로 삼으면서 더 괴로워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달라졌다. 부처님은 그때까지 내 괴로움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신 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처님이 존경스러웠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이 바로 생로병사다.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인간의 근본적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신 것이다.

한때 문학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위인전도 많이 읽었다. 하지만 부처님처럼 멋진 분은 처음이었다. 부처님에게 반했으니 불교가 얼마나 좋았겠는가? 좋아하는 것만큼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는 것만큼 알게 된다.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인과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감동하였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과법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그분의 삶을 닮고 싶어졌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법,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므로 이것이 사라진다.”는 것으로 주로 표현되는 연기법은 다름 아닌 우주의 이치였다. 살아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식물은 물론이고, 바위, 햇살, 바람 등 세상 모든 만물이 연기의 이치대로 굴러간다. 연기법, 인연법을 이해하면서 가족, 친구는 물론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피어났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불교 교리는 삼법인이었다. 일체개고, 제법무아, 제행무상의 삼법인 중에서도 제법무아로 인해 나는 ‘사법사’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무아(無我), 내가 없다는 것이다. 멀쩡히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왜 내가 없다는 것인가? 그땐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부처님의 말씀이니 믿었다. 아니 무아를 받아들이니 숨을 쉬고 살 것 같았다. 나를 내세웠을 때는 괴로웠는데, 나를 놓아버리니 정말 편해졌던 것이다.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안심입명, 행복해졌다. 무아에 대해 자각하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도 커졌다.

불교를 만나기 전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데 대한 불평불만으로 인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런데 ‘무아, 내가 없는데, 무슨 일인들 못 하랴. 야간학교에 가서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 학교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을 대학에 꼭 보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권에 힘입어 여상도 아닌 일반고에 진학했지만, 나는 이렇든 저렇든 언제 어디서든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처님에게 반한 여자, 무아(無我)는 어느 결에 끝도 모를 아상(我相)으로 굳어버렸다. 남편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결혼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를 만나는 순간 마음에 들어왔고, 봉정암 삼층석탑을 돌면서 “이 남자가 부처님 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라고 기원했다. 결혼해서도 우린 각자 열심히 일했다. 그는 조금 일찍 이생의 숙제를 마치고 돌아갔다.

그래도 부처님 그늘에서 마냥 헛살지는 않았나 보다. 몸이 먼저 알았던 괴로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그조차도 즐긴다. 긁고 싶을 때 가려운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싶을 정도는 된다. 부처님 그늘에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마음의 근육이 단련되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무아(無我)는 나라는 것, 에고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에고를 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운명의 장난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미망인이 완싱(완전한 싱글, 내가 만든 신조어)으로 새롭게 태어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비결을, 그것도 남편과 인연 있는 불교평론에 누설하고 나니 낯이 뜨겁지만 그래도 괜찮다. 무아. 무아. 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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