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연
시조시인
절에 갑니다. 그냥 절에 가던 오랜 습관처럼 지상의 삶에 목마를 때 한 번씩은 절에 다녀와야 합니다.

숨결마저 따스하게 스민 소박하고 단정한 돌담을 보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 드디어 마주한 무량수전. 그 무량수전의 단아한 품위에 한 번 놀라고 무량수전을 등 뒤로 하고 안양루에 올라 바라본 해 질 무렵의 소백 연봉들, 아득히 가없는 봉우리의 파도에 두 번 놀랍니다. 마구 물결쳐 오던 그들. 거듭거듭 밀려오는 파도 같기도 하고 겹겹 피어나는 연꽃잎 같기도 하던, 여기 지상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황홀한 세상을 보여주던 부석사가 있네요.

그리고 유학길에 오르는 딸아이와 템플스테이를 함께한 내소사가 생각납니다. 깊푸른 우물 속을 휘저어가듯 이슬 먹은 어두운 대지를 걸어 법당에 앉으면 범종이 서른세 번 우렁우렁 너울 치고요. 우렁우렁 너울 친 그 소리는 허공에 푸른 멍을 들이며 한없이 넓고 깊어진 가슴 한복판으로 퍼져갑니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새벽 예불을 드리고 돌아오던 그 마당에서 맡았던 늙은 매화의 향기는 또 얼마나 새삼스러웠는지요. 현기증이 핑 돌 만큼 화사하고 맵고 진한 매향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향기 코끝에 맴돌고 있군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오던 때도 있었습니다. 터덜터덜 송광사 경내에 막 들어온 시각에, 어스름이 가라앉는 그 티끌 하나 없이 고즈넉하고 끼끗한 마당에 무대에 오르듯 한 분 스님이 나타나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내소사의 범종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면 송광사의 법고 소리는 땅의 뿌리를 파고드는 소리였습니다. 지축을 울리며 나아가는 소리에 맞춰 어느새 스님들이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자연의 무대에 등장하는 스님들은 붉은 가사를 갖춰 입고 목탁을 두드리시며 고요히 한 줄로 줄지어 걸어 들어오십니다. 땅거미가 깔리는 저녁 무렵의 그 신비하고 경건한 광경에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범종 소리 북 소리에 이어 아, 마곡사에서 듣던 풍경 소리가 있군요. 극락교를 넘어 대광보전으로 들기 전, 물소리에 실려 오던 풍경 소리. 꽃샘바람에 날리고 구르며 사방팔방으로 돌아치고 있던 풍경 소리입니다. 그 야단법석의 소리에 밀려 극락교를 넘어서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넘어서야만 대광보전에 들 수 있습니다.
그렇듯 풍경 소리 넘치는 이곳이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대광보전을 향하여 가는 길. 그 길목 어디쯤에 우리의 모든 번뇌를 대신해 울어주고 있을 풍경 소리의 고마움을 마곡사에서 느껴보았습니다.
한여름에 찾아갔던 건봉사에서 본 누렁이도 생각납니다. 대한민국 최북단의 사찰이라는 금강산 건봉사입니다. 저의 금강산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에나 있었는데 그 금강산 자락이나마 밟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심정이 되어 갔었습니다. 아마도 복날 이쪽저쪽, 가로막힌 휴전선만큼이나 꽉 막힌 찌는 날씨였습니다만 경내를 돌아보다가 문득 딱 한 곳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곳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곳은 운판, 목어, 범종, 법고, 사물이 있는 범종각 계단 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누렁이 한 마리가 네 다리를 쭈욱 늘어뜨린 채 쿨쿨 낮잠 삼매경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잡풀 속에 묻힌 길은 끊긴 지 60여 년, 사람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건마는 그 모든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낮잠이 든 금강산 누렁이 한 마리가 주는 은유적인 느낌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이 통하는 딱 그 자리를 찾아 잠든 개의 본성도 불성이라 할 수 있다면 최고의 불성을 가진 개를 저는 그날 건봉사에서 만난 것입니다.    

가끔 인사동에 나오는 날이면 인근에 있는 조계사에 들러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포근한 봄눈이 내렸고 기온이 오른 오후부터는 이슬비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큰 회화나무가 한 그루 있고요. 그때에는 《반야심경》 한 구절이 새겨져 있는 목판도 마당의 동쪽 귀퉁이에 서 있었습니다. 처마 끝으로 눈이 녹은 낙숫물이 흐르고 있었고 은은한 촛불을 켠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시고 사람 서넛이 조용히 불공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산을 들고 회화나무 아래에 서 있다가 벅차오르는 희열로 고요히 거닐어 보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한 현세와 극락왕생의 부처님과 함께하는 내세와 그 현세와 내세의 세상 안에 함께 있는 약사여래 부처님과 사람. 그리고 얼어붙은 것들이 녹아 흐르고 있는 지붕의 봄물이 보여주고 있던 것은 삶과 죽음의 시공을 아울러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이 통하는 놀라운 명상적인 한순간이었습니다. 조계사에 대한 제 기억은 거기서 오래도록 멈춰 있습니다.

너무 사랑하여 아플 때, 너무 그리워서 가슴이 찢길 때, 정녕 운명이 원망스러울 때 절에 갑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저를 보고 모든 번뇌와 연을 끊으라 하시겠지마는 저는 그냥 그런 저를 끌어안고 툇마루에 앉아 절 마당이나 바라봅니다. 고운 그늘이 내리고 고요한 어둠이 구석부터 깔리는 절 마당이 그지없이 순하여 눈물 납니다.
지상의 시간이 아닌 곳, 지상의 공간이 아닌 곳이 거기 있습니다. 눈 오던 불국사에서 보던 신라의 풍경들처럼 시간을 초월한 시간, 공간을 초월한 공간이 거기 있습니다. 있음은 드러나 있고 없음은 감추어져 있으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있음이라 했습니다.
무한 안에 유한이 있고 유한 안에 무한이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절은 저에게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있음이며 유한 안에서 무한을 보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영적 순간을 선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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