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찾아낸 윤리도덕의 광맥

박병기 지음
《의미의 시대와 불교 윤리》

필자는 붓다의 말씀과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삶의 지혜뿐만 아니라 나의 학문 길에 참고할 수 있는 많은 내용과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영감을 많이 얻고 있다.

특히 필자가 전공하는 윤리학과 사회사상에 대한 중요 내용들이 붓다의 말씀과 경전에 모래알같이 많이 깔려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불교는 마치 인간의 행복을 위한 윤리 교리이고, 붓다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여러 특징은 바로 오늘날의 도덕교육 방법론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날 서양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환경윤리, 생명윤리, 타자윤리, 배려윤리니 하는 것들이 바로 붓다의 말씀과 경전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데 마치 새로운 것처럼 서구에서 수입하여 어쩌고저쩌고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하긴 서양 불교학자들이 쓴 불교 입문 서적이 읽기 쉽고 설득력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어쩌랴. 대학원 시절 광덕 스님께서 불교를 공부하면 학문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새삼스럽게 기억난다.

이번에 교원대학교의 박병기 교수가 《의미의 시대와 불교 윤리》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그동안 불교 윤리에 대한 연구는 거의 불교를 전공한 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고, 그 연구 영역도 제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저서는 윤리학 및 도덕교육 전공자가 불교 윤리를 탐구한 것이다. 박병기 교수와는 30년 이상을 윤리학, 도덕교육을 함께 공부한 도반의 관계였다. 1990년대 중반쯤이던가. 박 교수가 지관 스님이 운영하는 불교원전 전문학림인 삼학원(三學院)에 다닌다고 하면서 산스크리트어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속으로 매우 놀랐다. 더구나 산스크리트어는 저 피안의 언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을 배운다니. 긴 만남의 과정 속에서도 필자는 박 교수로부터 불교적 체취를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쩌랴. 지금 그가 산스크리트어까지 배운다니 놀랄 수밖에.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 불교 윤리를 내놓았다. 서문을 보니 〈스승의 그림자〉라는 시를 지어 가산지관 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새기고 있다. 스승이 내려 주신 법연이라는 법명으로. 이제 박 교수에게 불교적 체취가 흠뻑 난다. 박 교수는 불교에 무진장하게 매장되어 있는 윤리도덕적 광맥을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논의 방향은 제1장의 제목이 반영하듯 ‘무상한 삶의 과정에서 의미 찾기’이다. 저자는 ‘의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보면서 불교와 불교인의 역할을 탐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권의 저서를 쓰기 위해 기승전결을 가지고 수미일관하게 내용을 전개한 것이 아니다. 박 교수가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불교에서 찾으려는 고뇌가 하나하나의 논문 형태로 쓰인 것들을 3부로 나누어 편집한 것이다.

제1부 ‘의미의 시대와 실존’은 세 개의 주제, 즉 ‘무상한 삶의 과정에서 의미 찾기’ ‘디지털 문명의 매트릭스적 실존과 불교적 대응’ 그리고 ‘한국불교와 인권, 그리고 삶의 의미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삶의 무상을 직시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을 불교에서 모색하고 있다. 또한 현대문명의 특징인 디지털 상황 속에서 인간 실존의 문제에 불교가 어떤 해석과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인권과 삶의 의미의 관계를 불교적 관점에서 원효와 지눌의 깨달음의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 1장은 저자의 사유에 대한 체취가 한껏 묻어나는 내용이고, 나머지 두 장은 논문으로서 읽기에 녹록지 않은 글이다.

제2부 ‘불교 계율정신에 근거한 새로운 윤리의 모색’은 다섯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한국불교 계율론의 관점에서 본 자유의지의 문제’ ‘한국불교 계율정신에 근거한 생태윤리의 모색’ ‘상좌불교 공동체 계율의 현재적 의미와 한계’ 그리고 ‘보편윤리로서 계율의 확산 가능성’ ‘한국불교 수행론의 쟁점과 확산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계율의 문제를 윤리학적 틀과 현대적 시각으로 다양한 주제를 대상으로 논의하고 있다. 서양철학과 윤리학의 핵심주제의 하나인 자유의지와 계율 실천의 관계와 계율정신과 생태윤리의 만남의 길을 찾고 있다. 또 남방불교권에서 유지되고 있는 상좌불교 계율의 유효성과 적용의 문제, 그리고 보편윤리로서 계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청담스님과의 대화를 수행론을 중심으로 계율을 다루고 있다. 참으로 중요한 주제들이다.

불교 신자로서 필자는 박 교수가 계율을 중요 주제로 놓고 연구하는 것에 깊은 감사를 하고 싶다. 지금 한국불교가 지니고 있는 여러 병폐는 계율 정신의 타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불교적 요소가 왜곡되어 계율을 경시하는 어떤 전통(?)과도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도 된다. 지금 한국불교에는 ‘사이비 원효’가 적지 않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돌아보건대 필자도 ‘사이비 원효’의 흉내를 낸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 겨우 철이 든 것인가.

불교의 근본 목적은 중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실천에 있다. 깨달음은 이러한 실천을 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상구보리(上求菩提)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해 있는 것이지, 결코 상구보리가 하화중생의 형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계율은 바로 불교의 목적을 실천하는 제일 큰 기둥이다. 그런데 불교가 존재론의 어두운 방에서 논쟁만 한다면 그것은 붓다를 죽이는 행위이다. 대승의 자비 실천은 계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로 보살계다. 한국불교 앞날은 바로 이 보살계의 실천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러할진대 어찌 저자 박병기 교수에게 감사하지 않겠는가?

제3부 ‘불교 생명윤리와 사회윤리’는 여섯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현대 윤리학과 불교 윤리의 만남 가능성’ ‘현대 한국사회의 불교 윤리’ ‘불교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본 자살’ ‘한국사회의 새로운 이념으로서의 연기적 독존주의’ ‘한국사회 정의문제와 불교의 자비실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 국가지도자의 요건: 사명을 중심으로’를 다루고 있다. 위의 주제들은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불교 계율 정신에 기초하여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박 교수는 연기적 독존주의(緣起的 獨尊主義)라는 용어로 불교의 정치 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의 현재적 의미와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연기적 독존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스스로의 존귀함을 인식하고 그 존귀함을 연기성 속에서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불교의 자유 개념이라는 것이다. 불교와 정치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제3부의 내용은 결국 불교의 사회윤리적 특징을 도출하여 현대 사회에 적용하려는 응용윤리적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의 윤리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수레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바퀴는 ‘개인 윤리적 차원’이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 즉 개인 의지와 결단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여기서는 개인의 가치관 정립과 그 실천 방향에 중점을 둔다. 또 하나의 바퀴는 사회윤리적 차원이다. 여기서는 사회구조와 제도의 도덕성에 관심을 가진다. 여기서 사회정의가 문제가 제기된다. 이와 함께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며 어떻게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사회윤리적 과제가 등장한다. 붓다의 자비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에는 사회윤리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불교는 개인 윤리적 접근에 치중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의 시도는 매우 값진 것이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볼 것이 응용윤리학으로서 불교 윤리의 활성화 방향이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이와 함께 다양한 논쟁을 하면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룰지 모르는 데 있다. 즉,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기준이나 신념을 적용하는 기준이나 신념을 적용하는 방식에 서툴기 때문이다. 응용윤리학은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구체적 실천 방향을 모색함에 있다.

즉, 가정생활, 경제 및 노동 분야, 생명의료 및 환경 분야, 과학 및 정보통신 분야, 예술과 문화 분야 등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 각기 적절한 윤리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에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불교 윤리를 우리의 구체적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응용윤리의 틀로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불교의 침체에 대한 여러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제 산중불교, 깨달음의 불교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붓다가 제시한 지혜의 목적은 모든 존재에게 행복을 주고 바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자비는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 사회를 바르게 만드는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저자는 이 역저에서 한국불교의 미래는 붓다의 자비 정신의 구현에 있다고 보고, 자비 실천을 위한 계율의 중요성을 윤리적 틀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국불교가 현대사회와 인간 삶의 현장에서 생동감 있고 효율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비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박 교수가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논제들은 많은 논쟁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 논쟁점을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고, 그 실천 방향을 어떻게 탐색하느냐에 있다. 박 교수가 논한 각기의 주제들 내용과 주장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부분도 꽤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박 교수의 글을 논문으로 평가한다면 많은 지면을 할애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박 교수의 글을 논문이라기보다도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로 생각해 보고 싶다. 그리고 책에 실린 거의 모든 내용은 박 교수의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투사하는 시론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의 서평이 너무 무디다고 비판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동안 발표한 논문을 편집한 것이기에 일부 중복되는 느낌도 있고, 독해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불교 사상에 무진장하게 매장되어 있는 윤리의 광맥을 발견하여 아름답게 제련하여 큰 보석으로 내놓길 계속 기대해 본다. 또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논문 형태가 아닌 재미나는 대하소설 같은 내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도 함께. ■

 
 방영준 
성신여자대학교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서울대 대학원 졸업(윤리 및 사회사상 전공). 성신여대 사범대학장, 자유공동체 연구회 회장 등 역임. 우관상 수상. 주요저서로 《아나키즘−저항과 희망》 《공동체, 생명, 가치》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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