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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관련 중국어 고유명사 한글 표기의 문제점 / 소열녕
[55호] 2013년 09월 01일 (일) 소열녕 yeolnyeong@naver.com

1. 들어가며

현재 중국어 인명, 지명을 원칙적으로 ‘현지 발음‘대로 적어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불교 관련 중국어 고유명사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 표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ㄱ) 포광산에서 권한이 있는 사람은 돈을 관리할 수 없고 돈을 관리하는 사람은 권한이 없다.
  (ㄴ) 불광산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에는 형제가 함께 출가한 경우도 있고, 자매가 같이 출가한 경우도 있습니다.
2.(ㄱ) 지금도 파구산에서 불교를 연구하는 학승들은 일본어를 필수로 해야 한다.
  (ㄴ) 우리의 노력으로 법고산은 대만의 4대 불교 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3.(ㄱ) 츠지기금회(慈濟基金會)의 전신은 츠지공덕회(慈濟功德會)로서, 1966년 정옌(證嚴, 1937~ )이 타이완의 동부 지역인 화롄(花蓮)에서 창립한 자선 단체이다.
  (ㄴ) 대만에서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일컬어지며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받고 있는 스님은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를 설립한 증엄 스님이다.

위 여섯 문장이 모두 대만 불교와 관련된 내용들인데 (ㄱ)의 예들은 이른바 현지음대로 표기된 것이고 (ㄴ)의 것들은 모두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된 예들이다. 한자를 병기(倂記)하지 않거나 대만 불교를 잘 모르면 (ㄱ)과 (ㄴ)의 밑줄 친 한글 표기들이 동일한 단체나 인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기 어렵다. 이처럼 같은 명사에 서로 다른 원칙을 적용해 표기하는 것은 중국어를 모르는 대중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혼란상을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인 표기를 모색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중국어 고유명사를 어떻게 표기해야 바람직한지 살펴보고자 함인데 《불교평론》에 투고한 글이니 일단 불교 관련 용어에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 방식 및 문제점
 
1)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에 대한 두 가지 태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어 고유명사를 한글로 표기하는 데에는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과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 이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여왔는데 양측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엄익상(2008)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장호득(2003), 최금단(2004), 엄익상(2002, 2009, 2012), 도혜숙·배은한·장호득(2007), 강혜근(2008), 신아사(2008) 등은 1986년에 문교부 교시 제85-11호로 공포된 ‘외래어 표기법‘을 보완하여 중국어 발음에 보다 가까운 표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이숭녕(1974), 유만근(1980, 1994, 1995, 1996, 2007), 진태하(2007a, b), 김창진(2008, 2009), 전광진(2008), 지해범(2011) 등은 중국 현지음대로 적는 것을 비판하고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맹주억(2009)과 김태익(2012)은 현행 외래어표기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반드시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양세욱(2009)에서는 두 가지 주장의 장단점을 모두 살펴본 후에 특정한 표기법을 강요하기보다는 언중들에게 차분한 선택의 시간을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중국어 표기법 도출의 빠른 길이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경봉(2012)에서는 역시 현행 표기법으로 인해 빚어진 혼란상을 지적하고 원음 표기와 한국 한자음 표기를 모두 허용하는 보완책을 내놓았다. 이것은 규범의 문제라기보다 문체 선택의 문제이기에 해당 분야의 관례나 해당 글의 독자층을 고려하여 내리는 판단과 선택이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원음 표기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외래어 표기법의 일관성을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언어의 고유명사를 그 언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데 유독 중국어만 예외로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유럽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반박하고 있다. 이숭녕(1974)과 유만근(1995)에서 언급된 대표적인 예는 ‘Paris’와 ‘London’이다. ‘Paris’는 불어로는 ‘빠리’, 영어로는 ‘패리스’로 발음한다는 것과 ‘London’은 영어에서 ‘런던’이지만 불어에서는 ‘롱드르(Londres)’로 읽는 예이다. 즉, 현지음대로 표기하는 것을 마치 보편적 관례처럼 간주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삼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한자음 표기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주로 ‘전통’과 ‘주체성’을 강조한다. 유만근(1980)과 김창진(2009)에서 지적하듯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한자로 된 한국의 인명과 지명을 자국 한자음으로 읽는 반면, 한국에서는 전통 한자음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한자음을 한글로 표기하고 발음한다. 이것은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고 한국어에 대한 주체성을 잃은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유만근(1996)에서는 이런 원음 표기의 근원을 조선총독부가 1940년대에 경성방송국 조선어방송으로 하여금 일본 고유명사를 조선 한자음으로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 한자음으로 읽으라는 정책과 연관 짓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김태성(2008)과 엄익상(2008)에서는 중국어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는 한국인을 위한 표기법이지 중국인들이 한국의 한자어 고유명사를 어떻게 발음하는지와 무관하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원음으로 표기하면 중국인들이 오히려 발음이 이상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관련해서 맹주억(2009)을 비롯한 연구에서 원음 표기는 중국인과의 소통을 위한 것도 아니고 중국어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 이외에 진태하(2007)에서는 ‘周恩來’를 ‘주은래’로 표기하면 3음절인데 ‘저우언라이’로 표기하면 5음절로 늘어난다는 문제점을 지적했고, 전광진(2008)에서는 현지음대로 표기하면 한국어 음운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볜’ ‘몐’ ‘뎬’과 같은 기형 음절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다른 외국어의 한글 표기에도 긴 음절과 한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음절이 존재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2) 표기에 대한 태도의 문제점
중국어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는 본질적으로 언어와 문자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한국 한자음 표기를 주장하는 측에서 ‘언어 주권’이나 ‘민족 정체성’을 내세워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라고 하기 어렵다. 또한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하지 못해서 원음 표기를 택했다는 지적도 언어학 관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북경’은 물론이고 ‘베이징’ ‘뻬이징’ ‘뻬이찡’ 등도 역시 ‘외국어’가 아닌 ‘외래어’이다. 아무리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다 해도 그것이 중국인들이 발음하는 “Běijīng”과 똑같지 않으므로, 이들은 엄연히 한국어에 들어와 있는 외래어이다.
그렇다면 현지음대로 표기하자는 주장에는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언어에서 외국어 고유명사를 받아들일 때 현지음대로 표기하거나 발음하지 않고 자기 언어의 음운구조에 맞춰 수용한다. 한국 한자음으로 중국어 고유명사를 표기하고 발음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그리하여 원음 표기를 일종의 보편적 가치인 양 주장하거나 엄익상(2008)처럼 한자음 표기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지적한 것도 옳다고 할 수 없다.
원음 표기를 주장하는 대부분 학자는 이 표기가 중국인과의 소통이나 중국어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보완하려고 한다. 이것은 모순적인 태도이다. 어차피 한국어와 중국어의 음운이 1:1의 관계가 아니며 원음 표기도 단순히 한국인을 위한 것이니 현행 표기법이 원음과 거리가 멀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가 다양한 수정 방안을 내놓음으로써 표기의 혼란을 일으켰을 뿐이다.
또한 1911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을 두고 과거인과 현대인을 나눠서 전자는 한국 한자음, 후자는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도 적당한 이유로 설명하기 힘들다. 김태익(2012)에서 지적하듯이 맹자(孟子)는 과거인이므로 ‘맹자’로 표기하고 그의 후손은 현대인이기 때문에 그 성을 ‘멍’으로 표기함으로써 조상과 후손의 성씨가 달라진, 상식에 맞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음 표기를 지지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모두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 한자음 표기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외래어 표기법 제1장 제5항은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로 되어 있다. 또한 제4장 제2절 제4항에서는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며 ‘上海(상하이, 상해)’ ‘臺灣(타이완, 대만)’과 ‘黃河(황허, 황하)’가 예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굳어진 외래어’나 ‘관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사실상 해석하기 나름이다. 이 부분에 대해 국립국어원에서는 심지어 관용 표기를 우선시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개방적인 태도까지 보여준 바가 있다. 이렇게 봤을 때 이 외래어 표기법을 한국 한자음을 완전히 배척하는 것처럼 매도할 필요도 없고 이것으로써 중국어 고유명사를 반드시 현지음대로 표기해야 한다고 억지스레 주장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3. 불교 관련 중국어 고유명사의 표기 방법

1) 현행 표기 방식의 문제점
한국 불교계에서 그동안 한자음으로 된 표기를 주로 사용해 왔다. 이는 조선시대의 불경 언해(諺解) 문헌과 근·현대 스님들의 한글 법어집이나 저서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제시된 여섯 개의 예문처럼 현재의 불교 관련 서적이나 기사에서는 원음 표기가 조금씩 대두되고 있다.

4. (ㄱ) 대만계 미국인인 방장스님은 중국 상해 꾸롱화사(古龍華寺) 삼단대계 전계화상을 겸하고 있으며, 북미불교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ㄴ) 미국 만불성성(萬佛聖城) 방장 헝리(恒律) 스님과 스님 18명이 방한해 3대 총림 등 주요 사찰 순례에 들어갔다.
   (ㄷ) 방장스님은 ‘하루 한 끼만 먹고 가사가 몸을 떠나지 않게 한다(日中一食, 袈裟不離身)’라는 초대 방장이며 스승인 ‘선화 상인(宣化 上人, 1918~1995)’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지키며 수행 가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위의 (ㄱ)~(ㄷ)은 모두 같은 기사에서 나온 문장들인데도 불구하고 두 가지 표기 방식이 혼용되고 있다. 똑같은 사찰 이름인데 ‘古龍華寺’의 ‘古龍華’는 원음 표기인 ‘꾸롱화’로 했고 ‘萬佛聖城’은 한국 한자음인 ‘만불성성’으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스승인 ‘宣化 上人’은 한자음 ‘선화 상인’으로, 제자인 ‘恒律’은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한 것 같은데 중국어에서 “lǜ”로 발음되는 ‘律’ 자를 정확한 표기인 ‘뤼’가 아닌 ‘리’로 잘못 표기하였다. 매우 단편적인 예이지만 표기에서 원칙이 없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교계 신문도 상황이 비슷하다.

5. (ㄱ) 셩옌 스님은 생전 불광산사의 싱윈(성운) 스님, 자재공덕회 정옌(증엄) 스님,중대선사 웨이주에(유각) 스님 등과 함께 대만 불교계를 이끄는 4대 큰스님으로 불렸다.
   (ㄴ) 대만불교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인순(印順), 대만 불광산사 회주 성운(星雲), 대만을 대표하는 선사 성엄(聖嚴) 스님을 비롯한 대표적인 비구스님들은 역사 적으로 비구니를 비구에게 종속시키고 열등한 위치에 두었던 팔경법(八敬法) 을 드러내지 않으며 오히려 비구와 비구니의 평등한 관계를 역설했다.
 
위의 (ㄱ)과 (ㄴ)은 같은 신문사의 다른 기사에서 뽑아낸 문장들이다. (ㄱ)은 종단들의 이름을 한국 한자음으로, 스님들의 법명을 원음대로 표기하여 이중적인 기준이 적용된 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한국 한자음을 넣었다. 한자음 표기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서 그리한 것 같은데 다소 경제적이지 못한 표기 방식이다. 이와 달리 (ㄴ)은 스님들의 법명을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한 뒤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였다.
위와 같은 표기의 혼란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표기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다. 불교 관련 콘텐츠를 접하는 불자들은 모두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찰 이름, 스님 법명 등 중국어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를 더더욱 통일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원음 표기와 한국 한자음 표기, 어느 쪽을 택해야 하겠는가?
원음 표기를 택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런 선택은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우선 과거인과 현대인을 나눠서 고대 중국의 조사 스님들은 관습에 따라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현대 중화권의 고승 대덕들은 중국어 발음대로 적으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립국어원에서 말하는 ‘관용’의 문제가 걸려 있다. 예를 들면 외래어 표기법이 나오기 전인 1982년에 이미 통도사와 자매결연을 맺은 대만 불광산사는 그동안 한국 한자음으로 본산 및 각 포교원, 그리고 스님들의 법명을 표기하여 왔는데 이제 와서 일부 한국 학자와 교계 언론에 의해 ‘싱윈(星雲)’과 같은 원음 표기로 ‘강요’당한 것이 과연 국립국어원에서 말한 ‘관용 표기가 우선시되고 있음’과 일치하는가?
지명의 표기도 마찬가지이다. 외래어 표기법 제4장 제2절 제2항에 따르면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한국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선사 어록이나 다른 불교 관련 고문헌에서 나온 지명이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경우 역시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해야 한다. 즉, 스님들이 선사 어록을 강의할 때도 현재와 동일한 지명을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발음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대 중국어를 배우지 않고 한문(고대 중국어)만 공부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강요할 이유가 없다.
또한 지명을 고유명사로 봤을 때 그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佛光山’ ‘法鼓山’ 등을 ‘포광산’ ‘파구산’으로 표기한 것을 보면 사찰 이름도 고유명사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사찰 내의 전각이 고유명사가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大雄寶殿’을 ‘다슝바오뎬’으로, ‘地藏殿’을 ‘디장뎬’으로 표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지 발음대로 외래어를 표기해야 한다는 ‘원칙’과 ‘일관성’을 어떻게 지킬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고유명사를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한다면 그것이 독자들에게 매우 큰 부담을 줄 것이다. 한자를 전혀 몰라도 사찰에서 기본교육을 받은 불자라면 ‘대웅보전’이 무엇이고 ‘지장전’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광산’을 보면 한국의 ‘불광사’가 떠올라 ‘부처님의 빛’이라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고, ‘법고산’을 보면 이 ‘법고’가 불전사물(佛前四物) 중의 ‘법고’와 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한자를 몰라도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된 중국어 고유명사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한자 형태소가 한국어에서 단어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학적 사실을 무시한 채 원음 표기만 고집한다면 과연 이 표기법이 한국인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2) 한국 한자음 표기의 장점
현재의 혼란상을 해결하고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이 글에서는 한국 한자음으로 모든 불교 관련 중국어 고유명사를 표기할 것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한자음 표기는 그동안 사용해온 전통 표기 방식을 계승하는 것이므로 글쓴이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글쓴이들은 한자를 잘 몰라도 옥편만 찾으면 누구나 모든 중국어 고유명사를 표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문 4(ㄴ)처럼 ‘뤼’를 ‘리’로 잘못 표기한 실수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음 표기를 사용하면 현대 중국어 사전에서 중국어 발음을 찾은 다음, 다시 외래어 표기법을 확인해야 할 번거로움이 있다. 독자들은 한국 한자음 표기를 보고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어느 정도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서 역시 부담이 덜 될 것이다.
둘째,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할 때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할 필요가 없고 굳어진 관용 표기냐 아니냐를 따져서 두 가지 표기를 동시 사용할 필요도 없다. 또한 한국 한자음은 원음 표기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다. 현재 외래어 표기법에서 중국어 표기가 명시되어 있지만 완전히 따르고 지키는 데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한다’는 원칙은 곧 ‘원음에 가깝게 표기해야 한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중국어와 한국어의 음운관계가 1:1이 아니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 원음 표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외래어 표기법에서 사용하지 않는 된소리를 쓰는 경우도 많고 중국어 음절을 표기하는 데에도 이견이 있다. 결국 같은 ‘원음 표기’임에도 글쓴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표기하게 되어서 일관성이 결여되고 독자에게 혼란만 준다. 그리고 ‘원음’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현지 발음대로 표기한다’는 큰 원칙을 지켜 다른 언어의 고유명사 표기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중국어 표기법 내부에는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하면 이런 문제를 당장 바로잡을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첫째는 ‘편리성’이요 둘째는 ‘일관성’이다. 외래어의 표기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한국 한자음이 원음 표기보다 낫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렇다고 원음 표기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중국어에서 다른 언어의 고유명사를 번역할 때 ‘명종주인(名從主人)’이라는 원칙을 많이 적용한다. 이름의 주인이 사용해온 중국어 이름이 있거나 선호하는 중국어 번역 명칭이 있으면 마땅히 그 주인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대만 불광산사에서 온 여우(如佑)라는 스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한글 자모를 배운 뒤에 스님이 ‘如佑’ 두 글자를 한글로 어떻게 적어야 하며 어떻게 발음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하면 ‘여우’가 되고 사람들이 ‘여우’가 무슨 뜻이냐고 물을 때 ‘같을 여, 도울 우’라고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의 ‘여우’는 중국어의 ‘호리(狐狸)’라는 동물을 뜻하기도 해서 다소 좋지 않은 어감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여우’가 마음에 안 들면 중국어 발음대로 ‘루유’로 표기하는 방법도 있다고 스님에게 알려주었다. 스님은 개의치 않고 ‘여우’라는 표기를 사용하기로 했으나 이처럼 어감상으로 좋지 않을 때 원음 표기를 허용할 필요도 없지 않다.


4. 나오며

지금까지 중국어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에 대한 두 가지 태도와 그 문제점을 살펴보고 불교 관련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상의 혼란상을 논의하며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하는 것이 제일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서 언급했던 국립국어원의 해명 보도자료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다.

앞으로도 국립국어원은 언어생활의 혼란을 방지하고자 이미 제정된 어문규범을 보급하는 데 힘쓰는 한편, 규범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임.

현행 외래어 표기법 중 중국어 표기 관련 부분에 많은 미비점과 불합리한 부분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어서 한 해명으로 보인다. 어문 규범을 제정하는 기관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고 관용 표기가 우선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표기를 사용하는 우리가 편리성과 일관성을 무시하고 원음 표기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불교는 지혜의 종교라고 흔히들 말한다. 중국어 고유명사를 표기하는 데에서도 불교계와 불교학계에서 문제의 본질을 여실히 인식하고 실사구시의 지혜로 접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소열녕(蕭悅寧)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국립말라야대학교(University of Malaya) 중문과,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석사),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수료. 서울 불광산사와 조계사에서 중국어를 가르쳤으며 현재 EBS 라디오 〈초급 중국어〉의 공동 진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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