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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과 명상 치료 / 이혜숙
[55호] 2013년 09월 01일 (일) 이혜숙 본지 편집위원
   

이혜숙
(본지 편집위원)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선 수행’이란 용어가 익숙하겠지만, 이를 현실에서 활용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명상 치료’라는 용어가 더 친숙하게 쓰이고 있다. 참선 혹은 명상이 종교적으로 수행(修行)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어떤 병리적 문제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소개되는 경우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미 1995년도에 미국의 ‘영성과 사회복지학회(The Society for Spirituality and Social Work)’가 주최한 워크숍에서도 명상 치료의 성공적 사례를 보고한 바 있다. 당시 여러 세션(session) 가운데 하나로, 어느 병원의 정신과 종사자가 참석자들을 상대로 간단한 ‘명상 맛보기’와 같은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명상법을 통해서 우울증 및 스트레스를 앓는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였다는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서구의 사회복지 문헌에 의하면, 그 이전부터도 참선이 사회사업가 자신을 위한 전문적 훈련기법의 하나로 소개되었고, 사회복지에서 역시 중요한 심리치료 분야의 클라이언트(client)를 위한 문제 해결 기법으로도 소개되고 있었다. 예컨대, 1975년에 키이프(Keefe)가 〈개별 사회사업에 관한 선의 관점(A Zen perspective on social casework)〉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브랜든(Brandon)은 《돕는 기술로서의 선(Zen in the art of helping)》(1976)이라는 책과 논문 〈사회사업에서의 선 수행(Zen practice in social work)〉(1979) 등을 발표하였다. 그들이 소개하는 참선 기법은, 굳이 불교라는 종교적 신념을 갖지 않더라도, 사회사업가에게 직무상으로 필수적인 자비심(compassion)·감정이입(empathy)·긴장완화·집중력 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참선이나 명상이 사회사업가 자신의 직무 역량을 향상시키는 훈련기법으로 제시된 연구물보다는, 서비스가 필요한 내담자(client)에게 명상을 가르쳐서 삶을 변화시키고 심리적 치료에 효과를 얻었다는 사례연구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서구에서는 불교명상센터가 늘어나고, 학계에서도 불교와 서양심리학을 접목하려는 노력들이 확산되었다. 대표적으로, 티베트 승려 트룽파(Trungpa)는 1973년에 북미 각지에 있던 63개소의 불교명상센터를 통합하여 ‘바즈라다투(Vajradhatu)’를 설립하였고, 1974년에는 미국의 콜로라도 주 볼더에 ‘나로파연구소(Naropa Institute)’를 세워서 동서양의 지적인 전통을 상호교류하고 확장하는 나로파대학교로 발전시켰다. 거기에서 불교심리이론과 치료기법들을 다루는 학과목이 개설되었다.

더 일찍이 1957년도에는 멕시코의 한 의과대학 정신분석학과에서 약 50명의 정신분석가,정신치료사, 심리학자들이 모여 일본인 스즈키(鈴木大拙)의 선불교 강좌와 함께 워크숍을 열었다. 그때의 발표 중에서 스즈키, 프롬(Fromm), 마르티노(Martino) 세 사람의 원고를 모아 출판한 것이 《선불교와 정신분석(Zen Buddhism and Psychoanalysis)》(1960)이었다. 귄터(Guenther)와 가와무라(Kawamura)에 의해서 번역된 《불교심리학에서 마음(Mind in buddhist psychology)》(1975)이나, 아자야(Ajaya)가 편찬한 《심리학: 동양과 서양(Psychology: East and west)》(1976) 등을 포함해서 수많은 불교심리학 관련 문헌의 출현이 참선과 명상을 치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 나타난 불교적 심리치료 기법들을 살펴보자면, 우선 펄스(Perls)의 ‘게슈탈트(Gestalt) 접근법’이 불교명상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카밧진(Kabat-Zinn)은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의료원 안에 스트레스 경감 클리닉을 개원하여 ‘마음챙김(Mindfulness)’을 가르쳤다. 그 결과 2년 동안 8주의 치료 과정을 거친 총 1,115명의 환자 가운데서 25%가 여러 가지 의학적 증상들이 감소하였고, 분노·우울·불안·신체화 등 심리적 증상은 32%가 경감되었다. 그의 환자들은 평균 8년 정도를 그런 고통에 시달려왔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었다. 통증이 경감되는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 중에서도 ‘마음챙김’ 수련을 계속하기도 했는데, 이유인즉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명상에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인지치료학회의 창립회원인 티스데일(Teasdale)·시갈(Seg-al)·윌리엄스(Williams) 등은 우울증을 치료받고 어느 정도 회복된 환자들의 재발률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MBCT(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마음챙김에 기반한 인지치료)의 8단계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치료에 적용하였다. 그 결과, 계속해서 일반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60주의 연구기간 동안 66%의 재발률을 보인 반면에, MBCT를 받은 환자들은 37%의 재발률을 보임으로써 효과를 입증하였다. 이것은 카밧진이 개발한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경감법)과도 유사하다.

굿맨(Goodman)의 논문 〈마음챙김과 정신치료(Mindfulness and Psychotherapy)〉에서는 마음챙김이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할 때 유용하다고 말한다. 대개 아동은 성인에 비해서 현재 경험에 충실하고 비언어적 소통에 의존하며 소위 ‘초심자 마음(beginner’s mind)’을 가진다는 점에서 마음챙김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어스타인(Boorstein)의 편저서인 《개인초월 정신치료(Transpersonal psychotherapy)》(1996)에는 서양의 정신치료와 동양의 전통이라는 주제로 〈게슈탈트 치료와 불교〉 〈마음챙김 명상과 심리치료〉 〈명상과 정신건강〉 〈변화와 깨달음〉 등의 논문을 싣고 있다. 각 연구자들은 직접 명상수련을 오랫동안 해온 명상 전문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수행의 노하우를 직업적으로 치료에 적용한 것이다.

한편 서구에서는 마음챙김과 명상 치료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평가 도구로서 그동안 여러 가지 척도들이 개발되었다. 즉, MBCT 외에 MBSR, FFMQ(Five Facet Mindfulness Questionnaire), MAAS(Mindful Attention Awareness Scale), FMI(Freiburg Mindfulness Inventory), KIMS(Kentucky Inventory of Mindfulness Skills), CAMS(Cognitive and Affective Mindfulness Scale), MQ(Mindfulness Questionnaire) 등이 그것이다. 서구에서 마음챙김의 수준을 측정하려는 이 같은 시도들을 보면서, 과연 불교신자의 참선 수행을 척도화해서 진전된 정도를 측정한다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앞서 말한 ‘영성과 사회복지학회’의 워크숍을 다시 돌아보면,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서구식 전문가들이 불교의 참선이나 명상기법을 응용해서 환자를 치료하였다는 사례 발표는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신기했던 것은, 워크숍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참석자들이 명상을 따라 배우고 나서, 각자가 체험한 바를 곧장 입증하는 서구인들의 태도였다. 한국의 불교신자들은 자신의 참선 수행 과정을 말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체로 설명하기를 꺼리는 것이 역력하다. 왜 그런가. 불교를 믿지도 않는 서구인들이 그 짧은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경험하는 것인가. 우리가 ‘참선’이라고 하며 경험하는 것과 그들이 ‘명상’이라고 하며 경험하는 것이 서로 같은가, 다른가. 불교신자의 ‘참선 수행’이 일반인의 ‘명상 치료’와 같은가, 다른가.

서구사회의 그 같은 변화를 목격하면서 불교문화의 전통이 오래되고 상대적으로 불교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참선과 명상이, 수행 목적이든 치료 목적이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9년에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제공하는 자료 가운데서 ‘명상 치료’와 ‘마음챙김’을 주제어로 한 연구물을 분석한 바 있다. 총 258편의 명상 치료에 관한 문헌 중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전체의 7.4%에 불과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 조금씩 늘다가 2005년 이후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참선과 명상이라는 불교문화를 한국의 불교계는 밖에서 역수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근년에는 불교신자의 수행법으로서 참선과 위빠사나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명상 치료니 치유니 하는 활동들이 중구난방으로 너무나 많아졌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 누가 새로이 탄생하는 명상 치료사들의 역할 전문성을 보증할 것인가? 참선 수행을 하는 불교신자들이 일반적인 명상 치료 기법에 물들어버려도 괜찮을까?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선 중심 불교종단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도록 나서야 하리라고 본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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