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행복의 경제학》

《행복의 경제학》
중앙 books, 2012년 11월,
320쪽, 15,000원

히말라야 서부에 한 마을이 있다. 지구 상의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곳 중 한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크고 넓은 집에 살며, 넉넉한 여가를 보낸다.

실업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굶주리는 사람도 없다. 서구 사회와 같은 편의시설이나 사치품은 없지만, 이들은 모두 즐겁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이곳이 바로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다.

자신들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여유로운 삶을 살던 이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다. 군인들에 의해 마을에 도로가 생기고, 1975년에 외부 여행객들에게 개방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해에 스웨덴 언어학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방문한다. 이후 그녀는 35년간 라다크 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언어를 기록하고 삶을 관찰했다.

불과 10년여 만에 이들은 자신들이 너무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와 여행객들을 통해 서구의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받아들이면서, ‘라다크의 삶은 원시적이고, 추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들이 수 세기 동안 간직했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은 문화적 열등감으로 변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이러한 라다크의 환경 파괴와 삶의 변화 과정을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서 생생하게 기록했다. 라다크에서 목격된 것처럼, 서구식 개발이 진행되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붕괴되는 사례는 개발도상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언어학자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2010년에 6개 대륙의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세계화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지역화를 주장하며 다큐멘터리 〈행복의 경제학(The Economy of Happiness)〉을 제작하였다. 이때 참여한 운동가들은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 삼동 린포체, 인도의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 ‘350 캠페인’을 이끄는 미국의 환경운동가 빌 맥키번, 일본 슬로라이프 운동의 선두주자 츠지 신이치 등이다.

2012년 11월에 국내에 출간된 《행복의 경제학》(김영욱·홍승아 옮김, 중앙북스)은 이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시놉시스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하 저자라 한다)가 쓴 원고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행복의 경제학》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행복의 경제학’이다. 세계화와 지역화를 각각 독립된 장으로 나누어 40쪽 분량으로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250쪽 분량으로 기술된 2부 ‘회복의 경제학’은 총 10장에 걸쳐 1부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 근거와 사례를 제시하고, 새로운 경제시스템인 지역화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하였다.

세계화와 지역화

1부 ‘행복의 경제학’은 1장 세계화, 2장 지역화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1부 1장 첫 문단에서 “세계화란 오늘날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변화 동력”이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많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자 현재 진행 중인 위협”이라고 단언한다. 세계화의 주체인 거대 은행과 기업들이 ‘사람이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15쪽). 곧바로 이에 대한 근거로서 세계화에 대한 8가지 불편한 진실을 제시한다. 이 진실은 우리 삶의 문제, 환경의 문제, 잘못된 신념의 문제로 재분류할 수 있다.

첫째, 세계화는 우리를 불행하고 불안하게 하며, 생계를 파괴하고 갈등을 고조시킨다. 국가 경제력과 국민의 행복지수가 일치하지 않는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화는 공동체를 망가뜨리고 인간의 자긍심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글로벌 경제가 성장할수록 고용안정성이 악화되어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개인ㆍ공동체ㆍ민족ㆍ국가 간 갈등이 고조된다.

둘째, 세계화는 천연자원을 낭비하고, 기후변화를 가속시킨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똑같은 옷, 음식, 에너지원을 소비함으로써 초국적 기업의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자원 낭비와 이에 따른 환경 파괴라는 재앙이 가속된다.

셋째, 세계화는 대기업에 주는 지원금과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것임에도 의도적인 왜곡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신념으로 인식되어 있다. 세계화에 대한 오해는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대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반면, 토착 중소기업은 외면함으로써 불공정 경쟁을 묵인한다. 또한 GDP를 국가 경제를 평가하는 기준점으로 삼음으로써, 개발도상국들이 돈을 적게 쓰고도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급자족 경제를 무너뜨린다.

저자는 세계 각국이 금융시스템 붕괴, 기후변화 등을 경고로 인식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모색하였지만, 이것은 “오히려 문제를 본질적으로 초래한 기존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할 뿐”(34쪽)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지구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단계들은 우리 스스로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단계와 동일하며, 세계화 모델을 지역화 모델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35쪽)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저자는 2장 지역화에서 요약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지역화는 “세계화된 기업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폭넓은 대안”이며, 그 핵심은 경제활동의 규모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과격하게 국제무역 철폐나 자급자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화는 보다 책임 있고 보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들을 집 가까이에서 생산하자는 것이다(36쪽).

저자는 지역화를 지역 기업과 은행, 지역 식량, 지역 에너지, 지역 정체성과 지식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지역과 공동체의 상호 의존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제적인 지역 식량 운동을 소개하면서 소규모의 다양화된 농가가 대규모 단일 작물 재배시스템보다도 토지면적당 산출량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42쪽). 또한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지역에서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분산된 에너지 정책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더 많이 재생산하게끔 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44쪽).

1부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지역화란 근본적으로 ‘관계’에 관한 것임을 밝힌다. 지역화는 “사람과 자연계와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이며, 이런 관계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이므로 경제활동의 규모를 줄여야만 행복을 증대시킬 수 있다”(49쪽)고 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드러내었다.

식민주의와 노예제에 뿌리를 둔 글로벌 경제

2부 ‘회복의 경제학’은 현대의 세계적 위기가 신자유주의 경제 이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반복하여 설명하면서, 새로운 경제를 향한 탈출 전략으로서 지역화의 세부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지금의 글로벌 경제는 극소수의 부자한테만 유리한 시스템”이며,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환경과 사회 구조,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52쪽)는 자신의 주장을 7장에 걸쳐 입증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삶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자원고갈, 환경오염, 사회부패, 테러와 공포 등은 개별적인 질환이 아니라 공통의 근본적인 질환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는 유한한 자원을 가진 한정된 행성에서 살아가는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분리하여 생각하고, 자연과 인간사회의 약자를 착취하는 사회로 진화되었다는 점을 근본 원인으로 삼는다. 나아가 글로벌 경제는 식민주의와 노예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조작한 이념과 환상,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심리적·구조적 압박감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지금의 경제시스템에서는 ‘발전’하면 할수록 정신적·생태적·사회적 빈곤화가 급속히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저자는 경제의 세계화, 단일작물 재배에 대한 비판, 화석에너지의 고갈과 대체에너지의 부재, 유전자 변형식품의 위협, 거대 자본의 금융투기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17~18세기 무렵부터 유럽은 본격적으로 식민지를 자국 산업의 원재료 공급지로 전락시킨 이래, 현재는 자유무역이라는 구호 아래 점점 더 깊이 경제적으로 예속시켜 놓았다. 더불어 단일 문화를 주입시키는 글로벌 미디어, 경쟁적인 글로벌 시장경제에 필요한 인력 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의 교육 역시 이러한 경제 예속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2장 ‘진보라고 불리는 환경적 비용’). 더 나아가 저자는 “산업화된 문명은 도둑질과 약탈에 기반”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경제는 개발도상국의 자원을 바탕으로 더욱 더욱 살쪘다”고 한다(78쪽).

신자유주의는 경제 근본주의자들의 신흥종교

이 책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비판하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는 경제학을 “위장된 정치학”(112쪽)이라 부른다. 성장에 초점을 맞춘 현대의 경제 시스템은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자들이 세계화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하는 주장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141쪽). 이들의 기만적 언어는 미디어와 정치를 앞세워 급속한 세계화를 이루어 내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표면적으로 자유시장의 토대 위에 완전한 공정경쟁을 내세운다. 그들은 재화·노동·자본의 제약 없는 이동과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을 마치 공정한 경쟁의 토대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시장은 “발전한 나라들이 덜 발전한 나라들로 하여금 뒤따라오지 못하도록, 그래서 경쟁자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불순한 전략”(128쪽)에 불과하다. 저자는 묻는다. “과연 영국이 인도에서 한 식민정책을 미국에도 적용했다면, 미국은 지금처럼 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영국과 미국이 자국의 핵심산업을 보호하면서도 개발도상국의 보호주의는 해체하도록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IMF(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WTO(국제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 등 국제기구들은 강대국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에 불평등한 영향력을 자행하고 있으며, 산업과 무역에 관한 다양한 국제 협정들은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결국 자유시장 지지자들의 확실한 의도는 “약한 경쟁자, 특히 개발도상국에만 의도적으로 적용해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231쪽)이다.

새로운 경제는 가능한가

이에 반해 저자가 생각하는 진짜 발전은 “안정된 일자리, 적정한 음식과 주거지, 건강한 자연환경과 같은 의미 있는 양식”이다(123쪽). 저자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3장에 걸쳐 새로운 경제를 향한 대안경제학의 흐름을 소개하고 조직 차원과 개인 차원의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대안경제학자들은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진정한 욕구에 부합하는 경제학 접근법을 발전시키고 있는데(246쪽), 특히 성장에 초점을 맞춘 GDP 대신 이들이 제시한 GPI(참진보지수, Genuine Progress Indicator)를 통해 지난 30년간 미국이 경제성장을 해왔지만 미국 국민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걸 입증했다(82쪽, 247쪽).

저자는 우리가 세계 규모의 ‘공유지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생태적 한계 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기존의 경제제도는 상호의존의 세계관과 모순되고, 사람과 정부 간의 분열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즉 새로운 무역기구의 창설을 제안한다. 가칭 WEO(국제환경기구, World Environment Organization)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강력하게 다국적 기업을 규제하는 이 기구의 역할 중에서 주목할 점은 개발도상국들의 “끔찍한 부채”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동의 없이 부패한 지도자와 외국 투자자 간의 음모에 의해 생성된 부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WEO를 탈출 연합, 탈출 이니셔티브라 명명하고 있다(9장 ‘탈출 전략’).

마지막 10장에서는 탈출 국가들이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원칙에 따라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는 전략으로 지역화를 설명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편익과 공동체, 자연환경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경제 규모를 축소하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그 지역에 적합하고 지속가능하며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저자가 제안한 지역화는 본질적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 손에 경제활동을 맡겨 생산과 소비 간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다. 이러한 새로운 경제는 지역의 요구에 의한 균형 있는 생산, 지역 에너지, 식량경제의 지역화, 문화적 다양성을 표현하는 미디어, 인간과 자연 공동체에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역화된 교육, 지역 금융시스템 등을 포함한다. 결국 진정한 부를 얻는 길은 천연자원과 공동체, 지역 경제를 보호하는 것에 있다(10장 ‘지역화’).

《행복의 경제학》에서 저자가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극소수의 이익에 의해 세계 경제시스템이 인위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강탈당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단절된 세계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해결책은 ‘관계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지역화’는 이런 대전제 하에서 찾아낸 대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너무나 이질적인 두 단어, ‘행복’과 ‘경제’를 엮어낼 수 있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실현된 미래의 세상을 묘사하며 《행복의 경제학》을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가 경제시스템의 방향을 전환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지역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저자의 주장에 동참하려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사람들이 자부심을 되찾으며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진정 희망차게, 그리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304쪽)” ■

 

 

정헌열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재학. 상명대 국어교육학과,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문화경영 MBA, 동 불교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방송작가,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홍보마케팅 프로듀서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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