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한국은 축제문화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 흐름은 1995년에 자치단체장을 민선으로 선출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그 이후 우후죽순처럼 축제가 양산되었다. 여기에는 지역 공동체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축제에 대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점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는 제한적인 지역문화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무형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보지 못하고 기존에 개발된 특정한 자원이나 손쉬운 것들로만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고유성과 전통성, 창의성이 담긴 요소들은 활용조차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문화상품의 획일성이다. 지역의 문화적 전통이나 역사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다른 지역의 축제를 모방하다 보니 새로운 문화상품 개발은 뒤로 미루어지거나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문성의 부족과 전문가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전문가와 축제를 기획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지혜를 발휘하고 축제문화 상품이나 축제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발굴하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축제 브랜드의 부재이다. 축제의 고유성을 살린 캐릭터에서 BI에 이르기까지 브랜드 이미지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전후에 펼쳐지는 연등회 역시 불자들의 축제이다. 연등회는 ‘축제의 규모나 참여하는 인원수에 비해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전국의 불교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등을 직접 만들어 행렬에 참여하는 등 축제적인 기본 요소에 충실한 축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연등회는 출연 인원이 우리나라 최대인 축제이다. 각 마당에 참여하는 인원, 특히 연등 행렬에 참가하는 인원은 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동원되거나 강제하지 않은 자발적인 참여 인원이다. 또 참여자들은 스스로 사찰이나 단체별로 연등 행렬에 필요한 등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연등회보존위원회에서 밝히고 있듯이 ‘참여자가 곧 기획자이자 주인공이 되는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또한 축제 예산의 상당 부분도 자발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등회는 지자체나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불교계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축제이다.
연등회는 지난 2012년 4월에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면서 불자들의 잔치를 넘어서 대중적인 축제문화로 거듭나게 되었다. 연등회의 문화적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기대치도 한층 높아졌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2012년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밝혔던 장엄등을 올해부터는 광화문광장 북쪽, 즉 광화문 앞에서 밝히게 되었다.
이렇듯 연등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축제로 성장하기 위한 외적 요소는 일단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다 더 대중적이고 세계적인 축제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언급한 지역축제의 문제점을 하나씩 대별해서 돌이켜보자.
첫째는 제한적인 문화개발 계획 속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매년 기존에 개발된 특정한 자원이나 손쉬운 행사들로만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아닌지, 1,600여 년의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연등회의 고유성과 전통성, 창의성이 담긴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연등회는 해마다 전통등의 복원과 새로운 등의 창조는 물론 2012년부터 오늘날에 맞게 설행하는 호기놀이를 복원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 등 시대별 전통의 복원에 대해서는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4월 초파일이 《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려 의종 20년(1166) 백선연이 등불을 밝혔던 것을 재현한다거나, 고려시대의 대회일이나 소회일에 궁중에서 봉은사로 진영을 배알하러 오갈 때의 어가 행렬인 노부(鹵簿) 시 주변에 마련된 등산이나 채붕 등의 복원도 시도된 적이 없다. 또한 궁중에서 펼쳐졌던 궁중무용과 궁중음악은 아직 현대 연등회에서 설행된 적이 없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종단과 정부가 서로 협력하여 전통의 복원과 현대적 전승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연등회 하면 떠오르는 문화상품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연등회는 비상업성을 추구하는 축제인 만큼 상품으로 판매해서 수익을 올리는 차원은 아니라 하더라도, 연등회를 찾은 이들이 기념할 수 있는 문화적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연등회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이 등(燈)이고, 지금도 다양한 연꽃등 만들기가 인기가 있는데 굳이 다른 상품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 지금의 연등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해마다 몇 가지 등을 그 해의 등으로 선정하여 다양한 형태로 문화상품화해서, 누구든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올해의 연등’을 문화상품화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또한 연등 행렬을 마치고 행렬에 사용되었던 등을 공식적으로 나눠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세 번째로는 연등회의 고유성을 살린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연등회의 상징인 연등을 하나의 고유한 브랜드로 하고 해마다 선정되는 표어에 맞는 이미지를 창출해서 그 해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마다 선정되는 표어는 사회에 부응하는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문구가 사용되어야 하며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등회가 다른 축제와 구별되는 큰 특징은 서원(誓願)의 축제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서원보다는 가난한 여인의 등 공양 정신에 대한 강조가 중심을 이루었다. 곧 연등회에서의 중심적인 표제어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로 대변되는 ‘가난’과 ‘여인’이었다. 이 두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난’과 ‘여인’이라는 단어로 인해 자칫 ‘사회적 약자인 그들은 빌어서라도 등을 공양하는데 하물며 그렇지 않은 사람이랴’라는 기의로 비칠 수 있다. 즉 사찰에 등달기를 유도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우경》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陁品)〉이나 증일아함의 〈마혈천자문팔정품(馬血天子問八政品)〉에서는 등을 공양하는 것보다 “마음이 청정하고 발원이 견고[心意清淨, 發願牢固]”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연등회는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자리와 이타의 발원을 세우고 견고하게 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한다. 불자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특정한 이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축제 공간은 열린 공간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공공공간 같으면서도 닫힌 역공간(逆空間)일 수밖에 없다. 연등회는 이러한 역공간이 아니라 대중적인 축제로서 공공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통적인 요소를 더 많이 복원해야 하고 연등회를 기념할 수 있는 문화상품이나 브랜드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자리와 사회적 이타를 발원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종로 거리에는 지혜의 등, 화합의 등, 평화의 등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남과 북 불자들의 지혜로 우리나라의 수도였던 개경과 한양을 넘어 전국 곳곳에서 공동으로 연등회가 설행되어 전쟁의 포화소리가 아닌 화합과 축제의 음악이 넘쳐나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발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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