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쪽에 갔다가 태백엘 들렀다. 뉴스로만 들었던 탄광 지역의 변모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것이 내 나라라니, 가슴속까지 뿌듯했다.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호텔 건물과 카지노 건물이 첨단의 위용을 뽐내고, 얼마 전에는 이곳에서 세계적인 스키어들이 천몇백 명이나 모이는 국제대회도 개최되었다고 한다.
묵직한 산세답게 수목이 가득 들어찬, 산과 산 사이를 한가롭게 건너다니는 곤돌라를 바라보면서 바야흐로 태평성대의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바쁠 것은 조금도 없다는 듯 산 정상을 향해 천천히 올랐다가 느릿느릿 내려오는 몇 대의 곤돌라는 영판 배부른 거미 팔자 같았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오래전 태백의 남루했던 검은 눈물, 검은 얼굴들이 저녁나절의 애수 같은 감정으로 스쳐 지나갔다. 들르길 잘했구나 싶었다. 여태 녹지 못하고 산죽 밑에 납작 엎드려 있는 5월의 눈을, 눈감지 못한 막장의 고혼들이라고 삐딱하게 생각할 뻔했으니 말이다. 몰랐던 사실을 바로 안다는 것도 치유임을 새삼 깨달았다.
몇 발짝 나가면 서울 주변에 그렇게 아름다운 카페가 많고, 그 카페에서 날이면 날마다 문화행사가 줄을 잇는다는 걸 몰랐다는 친구 얘기가 바로 이런 경우였겠다. 눈 귀 열어놓고 날마다 듣고 보고 배워도 따라잡기 어렵게 세상이 멋지게 변하더라고 그 친구는 푸념처럼 말했다.
딸과 세일을 하고 있는 백화점엘 갔다. 주말이라선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화장품 코너 앞에 웬 긴 줄이 있었다. 딸아이 성화로 그 긴 줄 끝에 영문도 모른 채 늘어섰다가 크림을 하나 샀다. 저들은 촉감과 결이 좋다는 그 크림의 정보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아냈을까. 젊고 영민한 애들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안다는 것은 반짝 윤기가 난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모임에서는 “이북에서 왔느냐, 간첩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인기 있는 드라마 촌평에서 한마디도 입을 열지 못한 내게 보낸 지인들의 비아냥이다. 게을리 살았다 할까, 동참하지 않았다 할까. 아침저녁 뉴스를 챙겨보는 일, 신문을 두루 훑어야 하는 일도 만만하지 않은 터에, 소문 자자한 드라마까지 미처 챙기지 못한 답례이다.
그런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매일 어울리며 무엇을 새로 깨우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잘 산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정세를 알아차리고 적응하는 것일지도. 그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 해도 대꾸할 말이 모자란다. 요즘같이 다양하고 누릴 것 많은 세상에 좀 게으르거나 관심이 못 미처, 물정에 어두워져 세상살이에 밀리는 것은 우울한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꽉꽉 쟁여 있었던 듯, 오감을 자극하는 정보와 지식과 재미를 공급하는 프로그램들이 TV 채널에서 끝도 없이 술술 풀려나오는 세상을 산다. 백화점, 복지센터, 문화원의 서예, 요가, 요리, 댄스, 노래교실, 거리는 온통 백화점, 편의점, 슈퍼, 음식점, 옷가게, 극장, 커피점, 노래방…….  
조승우가 출연하는 뮤지컬도 보아야 하고, 관객 천만 명이 넘었다는 국산영화도 보아야 하고. 스포츠댄스를 배우며 건강도 챙겨야 하고,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도 풀어야 한다. 북촌에도 가봐야 하고, 정동진에 있는 아트월드에도 가봐야 하고, 오라는 초대장은 이 모임 저 모임에서 매일 도착하고, 무료로 배달된 자서전, 시집, 수필집, 정보집이 수북이 쌓여간다.
손만 뻗으면 먹을거리. 입을거리, 볼거리, 수확이 풍년인 세상이다. 크게 사용할 일이 없어도 애나 어른이나 스마트폰 하나씩은 들고 다니는 시대.
한 시간을 하루같이, 하루를 한 달같이, 한 달을 일 년같이 아껴 써도 모자란다. 애들도 할아버지를 만날 시간이 없다. 할아버지가 ‘친절했던 아버지의 아버지’로만 기억되는 날이 올까 두렵다.
며칠 전에 읽은 2010년 유엔개발기구에서 조사 발표한 기록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180여 개국 중 소위 국내총생산이라고 하는 GDP가 세계 12등이고, 흔히 ‘삶의 질’로 불리는 인간개발지수는 12등이었다. 참으로 놀랄 만한 수치였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행복도는 뜻밖에도 102등으로 되어 있어 한참이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4천 원짜리 라면을 먹으면서 커피는 7천 원, 만 원짜리를 마시는 시대. 잘 먹어 찐 살을 빼느라 야단법석이 나며, 정부도 도리없이 유사 이래 처음인 비만세를 통과시키며, 산골짜기에까지 말쑥한 아파트와 마트 문화시설이 들어서고 풍악이 울리는 나라. 버스와 전철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 최신 감각으로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잔칫집처럼 북적이는 시대. 행복도 102등이 화두처럼 머릿속에서 맴돈다.
일요일이면 교회가, 초파일이면 절마다 초만원이어도 행복과는 직결되지 않는 것일까. 배부른 거미 팔자 같은 곤돌라가 봉우리마다 줄을 매놓고 한가하게 오락가락하는 호시절. 102라는 숫자의 비밀은 어떤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걸까. 참 궁금한 일이다.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