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공부하고 싶으랴!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다. 바꿔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안다는 뜻이다. 초중고 아이들과의 관계라고 해서 다를까. 내가 아이들 입장이 돼 보면 답이 나온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여기저기 학원에도 다녀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를 하기 싫어도 억지로 책상에 앉아 책에 얼굴을 박고 공부해야 한다. 지겹고 따분한 일이다.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하루 몇 시간씩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니 그 맘 다 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들
그런 아이들이니 일요일만큼은 쉬고 싶을 것이다. 체온으로 더워진 따스한 침대에 뒹굴면서 아무런 시름없이, 달콤한 잠에 푹 빠지고 싶을 것이다. 질릴 만큼 잠을 자고 나서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으면 일어나 컴퓨터게임을 하고 싶을 것이다. 일주일 내내 부모님의 눈치 보면서 몰래몰래 해야만 했던 게임을 보란 듯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하고 싶을 것이다.
따스한 침대와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난 아이들은 또 다른 유혹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번엔 교회다. 개신교 교회든, 천주교 교회든 아무튼 교회다. 아니다. 어쩌면 교회가 아니라 교회 선생님일 수도 있다. 학교와 학원의 권태롭고 짜증 섞인 표정이 아닌,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진 그 상냥하고 예쁜 선생님 말이다.
그다음 단계는 친구다. 재잘재잘 떠들며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친구, 함께 욕하며 장난칠 수 있는 친구, 그들이라면 어디서 뭘 하든 즐겁다. 고학년이 될수록 이 유혹은 강력하다. 오죽하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그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아이들은 우리 절로 온다. 나는 이 아이들이 대견한 걸 넘어 고맙기까지 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마라의 유혹을 받던 상황과 비슷할 거니까.

솔직히 말해 보자
솔직히 말해 보자. 여기서는 한국의 사찰이, 우리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환경인지 아닌지는 일단 젖혀 놓자. 어떤 불자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신심(信心)이란 걸 심어주는가? 어떤 불자가 자신의 아이들을 의무적으로 어린이·청소년 법회에 보내는가? 어떤 불자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불자로서 자긍심을 심어주는가? 불자 부모들은 ‘종교는 자유’라고 외친다, 무책임하게도! 그런데도 우리 절에는 일요일마다 50~60명의 아이들이 절에 온다. 그 이유가 뭘까?

한비자의 가르침
한비자(韓非子)는 말한다.
“수레를 만드는 장인은 사람이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만드는 장인은 사람이 일찍 죽기만을 기다린다. 이는 수레 만드는 사람이 더 선하고 관을 만드는 이가 더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부귀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안 팔리고 이와 반대로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려 나가지 않는다. 정녕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는 데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지향하는 존재라고 본다. 아이들도 인간이다. 따라서 이익을 지향한다. 어리고 늙고를 떠나서 이건 인간의 속성이다. 아이들은 영악하다.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어떤 게 자신에게 이익인지 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혹
나는 일찌감치 그런 점을 간파하고 법회에 적용했다. 아이들이 침대와 게임과 교회와 친구의 유혹을 뿌리치고 절에 올 만큼 강력한 것을 아이들에게 제시했다.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인간의 오욕이다. 아이들에게는 이 중에 먹는 문제가 가장 으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절에서는 최대한 좋은 음식을 해준다. 지난주에는 주먹밥을 해주었다. 새벽기도에 오시는 불자님들이 갖가지 양념을 넣어 만든 볶음밥을 뭉쳐 주먹밥을 만들었다.
어떤 날은 다진 쇠고기와 신선한 채소로 만든 볶음밥을 노란 달걀로 둘러싸고 토마토케첩으로 맛을 낸 오므라이스를 해 주고, 어떤 날은 두툼한 돼지고기로 돈가스를 만들어 주고, 어떤 날은 신선한 한우로 불고기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오늘은 무슨 요리예요?”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맛있는 거 먹는 재미로 온다”며 너스레를 떠는 아이들이 생길 정도가 됐다. 아이들에게 주는 음식이 좋아야 부모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요즘 부모들, 까칠하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 만들기
먹는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썼다. 물론 변치 않는 게 있다면 설법이다. 한자교육, 또는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아무튼 내용은 설법이다. 설법을 제외하면 형편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을 한다.
2주 전에는 선물용 도자기를 만들었다. 찰흙을 한 덩어리씩 받은 아이들은 그걸로 모양을 만들고 예쁜 색깔의 물감으로 색칠한 다음에 갖가지 문양을 새겨 넣었다. 접시와 컵,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모양까지 아이들은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원래 천재로 태어난다고 했던가. 그 기묘한 모양까지 ‘예술’로 인정한다면 그 말은 맞다. 아무튼 마지막에는 선물 받을 사람에게 글을 써서 마무리했다. 그걸 가마에서 구워 주었더니 아이들은 부모나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그 그릇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 절의 프로그램
이런 전체 프로그램이 없는 날은 아이들이 저마다 원하는 걸 선택한다. 요리, 기타, 가야금, 네일아트, 리본 공예, 풍선 공예, 민화 그리기, 배드민턴, 농구, 축구 등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씩 자신의 흥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재미있게 논다.
아이들의 꾸준한 참여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특별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벤트는 한 달간 결석 없는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데, 경주 남산이나 놀이동산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 래프팅, 4륜바이크, 미술관 등 주요시설을 견학하거나 피자집에 데리고 가기도 한다.
최근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올 여름방학 특별 프로그램인 제주도 여행이다. 25주 연속으로 나온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지난여름부터 공지했는데 현재 40여 명이 해당된다.
제주시의 ‘우리절’이라는 자그마한 절에 사는 인성 스님은 1989년부터 ‘오직’ 어린이법회만 하여 도량을 일군 스님인데 프로그램이 아주 탁월하다. 2박 3일 수련회 전후 2~3일 더 머물면서 동쪽의 표선부터 남쪽의 중문, 서쪽의 협재, 북쪽의 김녕까지 해수욕장의 물맛을 골고루 보여주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제주도에 다녀온 후에는 또 다른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철없는 어른
바로 어제 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간다고 했더니 거사 한 분이 “수고를 많이 하는 어른들을 여행시켜 줘야지 아이들만 데리고 가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신심 있는 불자라면 마땅히 “아이들 법회를 하면 얼마나 힘드냐”면서 후원을 하기는터녕 단 한 푼도 돕지 않으면서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남들은 우리 절이 부자라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쏟아붓는 줄 안다. 그게 아니다. 나는 불자 길러 내는 데 가장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이다. 현재 불자들의 연령 구성비를 보라! 어린 불자를 길러 내지 않으면 불교는 곧 망한다.

변치 않는 것들
절마다 어린이·청소년법회가 잘 안된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16년 전 제주도 서귀포 법화사에 살 때 매주 300명 이상 참석했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지금은 당시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감귤농사가 중심인 농촌 지역에 위치한 법화사와 인구 밀집 지역인 보성선원, 16년의 세월이 더께처럼 쌓였고 공간도 달라졌다. 아이들의 출생률은 더 낮아졌고 컴퓨터의 보급률은 더 높아졌다. 그렇지만 변치 않는 게 있다면 어린이·청소년 포교의 당위성과 운 좋게 만난 능력 있는 지도교사, 그리고 나의 저돌적인 열정이다. 아, 또 있다. 이익을 좇는 아이들의 영악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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