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으로 들어선다. 여기다. 비로소 당도했다.

사하라, 아프리카 대륙 4분의 1을 점거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이다. 건기, 그것도 비수기인 12월은 텅 비어있는 땅. 오랜 시간 내 영혼이 먼저 와서 어슬렁거렸을 곳이다.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오래전 떠난 옛집의 안마당으로 들어온 듯이 편안하다. 무량하다. 마음이 날아오른다.

이런 설렘은 세상이 흔히 말하는 낯선 사람 낯선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공포의 요소를 불식시킨다. 하물며 꿈꾸던 사하라가 아닌가. 제일 먼저 바람이 혼령처럼 내 옷깃을 스치듯 지나간다. 구름 한 점 없다. 간간이 야생 당나귀의 누런 똥무더기처럼 띄엄띄엄 있는 마른 풀들 쓸리는 소리도 지나간다. 태양은 모래밭을 따갑게 달구고 있지만 곧 뼈를 에는 밤의 추위가 닥치리라.

길은 없다. 랜드로버 바퀴 자국의 엇갈림들이 간간 보일 뿐이라 그 궤적들이 ‘사하라엔 길이 없어요’ 알려주는 듯하다. 무슨 대수랴. 내 발 닿는 곳이 길 아니던가. 여기로 떠나기 얼마 전 안동 근방 포교당 골목이었을 것인데 불자인 듯한 젊은 여인이 남모를 나에게 말을 걸어왔었다. “보살님 어데로 가시니껴?” “예 쩌어기―” 구름을 가리켰던가. 그렇다. 가끔 동행도 없이 목적지나 향방도 정한 바 없이 길을 나섰고 길이 그런 나를 인도하는 듯 보였다. 아니었다. 내가 신발만 꿰면 어디로든 길이 나고 있던 거였다.

사방 둘러보아도 허허벌판, 걸어도 걸어도 사람 하나 집 한 채는 커녕 나무 한 그루 새끼염소 한 마리 안 보이는 빈 땅이다. 동쪽으로 돌아선다. 얼마만큼의 허공이 있는가? 저 허공을 잴 수는 있는가? 남쪽으로 돌아선다. 서쪽으로 돌아선다. 북쪽으로 돌아선다. 360도가 광대무변, 무량하다. 얼마만큼의 허공이 있는가? 무량함이란 말 외에 무슨 말이 합당할까 싶다. 문득 수부티와 세존의 대화를 엿듣는다.

“수부티여, 허공의 양을 헤아리는 일은 쉬운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아무런 집착 없이 보시를 행한다면 그 공덕의 양 역시 저 허공의 질량처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라.”

이 길이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길 떠남이었음에 ‘보시’라는 말이 자꾸 의식의 바닥에서 나를 걸고 넘어졌다. 경계가 지워진 사방을 품고 있는 허공, 하오 네 시쯤의 허공이 둥글게 부풀어 있다. 부드럽다. 허공은 허공이 아니었다. 우주의 근원이 허공 아니던가. 집이 따뜻하다. 옛집 속에 후줄근하게 서 있는 내가 보인다. 비로소 나를 모신 법당에 백천 부처님이 기웃거리신다. 허공에 가득하신 부처님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연암 박지원은 중국 동북부 열하를 가는 중 가도 가도 끝없는 요동 벌판 그 넓은 대지 앞에서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외쳤다고 한다.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 크게 울어볼 만하도다.”

울음이 함의하는 상징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 남자의 아니 세상의 사내를 생각한다. 남자로 길러지는 조선에서 어디 한 번 눈물이란 걸 보일 수 있겠던가. 결코 울어선 안 되는 사내들! 울고픈 때가 한두 번이었을까. 그 바람 찬 벌판에 서서 불혹을 넘긴 사내, 연암은 자신을 위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일 한 번의 통곡을 했던 것일까.

나는 통곡 대신 반야심경을 크게 소리 내어 읊조려본다. 내가 욀 수 있는 유일한 경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이를 대학에 철컥 붙여 달라고 도솔암 내원궁에서 난생처음 천 배를 올리며 외우게 된 경이 아니던가. 자식이 무엇인지 그때를 떠올리면 좁은 내원궁 안에서 많은 보살들과 몇 처사들이 낮밤 없이 염주를 돌리고 앞사람 엉덩이 밑에 간곡히 절을 올리며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있었던 겨울은 입시철이었음에 절로 고소를 금치 못한다. 그래 여기 역시 참 좋은 울음터임이 분명한데 내 울음은 어디로 숨었는가. 쏟아지는 비에 기대어 울던 나. 수돗물을 틀어놓고 숨어 울던 나. 모두 나였다. 작은 일에 상처받고 또 상처 주었을 나, 자존심에 목숨을 걸던 철없던 때의 나도 선연하다. 수많은 내가 사방에 서 있다. 작고 볼품없는 여자.

고독이 없다면 자기 응시의 시간도 없을 것이다. 나를 모신 법당이 고독해야 비로소 나를 직시할 수 있고 내 안에 마음을 모실 수가 있는 것이다. 휘―익. 모래바람이 오고 눈에 티가 들어갔는지 비벼도 비벼도 찌른다. 보이는 모든 상(相)은 상이 아니고 티끌은 티끌이 아니라 했는데, 어찌 이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를 괴롭히는가. 눈물 찔끔거리며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노을이 번지고 있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그곳에 가야 하는데 3억 년의 시간이 묶여 있는 곳 아니, 고생대 바닷속 물고기 화석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곳, 그러니까 이 아프리카 북서부 사하라가 바다였다고?!

어디서 나타났을까? 작은 발자국 소리에 의식이 들어 뒤돌아본다. 대여섯 살 또래의 베두인 아이들 두엇이 다가와 알루알루(헬로우) 하며 옷을 잡아당긴다. 무엇을 달라는 거다 싶자 또 분별심이 발동하여 저 아이들에게 푼돈을 쥐여주면 저들은 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하며 옷 붙든 손들을 떼쳐낸다. 《금강경》의 보살행에 마음을 닦는 일이란 시자(施者)와 수자(受者)와 시물(施物)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마음을 차단하는 일이라 했거늘……. 그러나 그중 한 여아가 안고 있는, 갓 돌을 지났을 법한 아이의 모래바람에 튼 뺨과 말라붙은 콧물 줄기에 눈이 멎었을 때 흑백영화 한 장면, 달리는 지프차 꽁무니를 따라 달리며 “할로 껌 껌 쪼고레또!” 소리쳤을 전후의 한국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그들의 자식들이 지금 한국을 끌어가고 있지 않은가, 무슨 기우란 말인가, 하는 결론에 이르기도 전에 분별심도 측은지심도 아닌 채 발은 아기에게로 다가가 5랜드(모르코돈 1랜드는 우리 돈 150원)와 홍삼캔디 한 줌을 쥐여준다. 역시 아이들인지라 캔디를 더 달라고 조른다. 큰 아이가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무초스 그라시아스(무지 고맙습니다)” 한다. 이들은 모로코어와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를 필요에 따라 쓰는 듯했다.

아마도 멀지 않은 곳에 베두인 작은 마을이 있을 듯하다. 저녁에는 붉은 아프리카식 흙집 대신 베두인 캠프에서 하룻밤을 묵을 요량이다. 뒷간도 없다는데 세수간도 없다는데……. 자다 일어나 쏟아지는 별을 보며 오줌을 눌 것이다. 목마른 모래밭이 솨아―솨 오줌 마시는 소리 들릴 것이다. 모래 몇 알이 떠도는 혼령처럼 내 따귀를 긁고 지나갈 것이다. 천 년쯤 전에 죽은 내 영혼이 베두인의 푸른 터번을 두르고 찾아와 내 잠 곁에서 오래도록 부스럭거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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