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노동위원회가 2012년 8월에 정식으로 출범했다. 불교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해 많은 불자들이 널리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단 50년 역사에 노동위원회가 종령 기구로 발족한 것은 실로 역사적인 일이다. 천주교, 기독교가 1960년대부터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온 것에 비하면 50년 세월의 간극이 있다 할지라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실 지금의 천주교, 기독교의 성장이 다른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들의 사회적 역할 때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70, 80년대의 민주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가난하고 핍박받는 노동자, 농민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한 기독교의 역할은 종교적 신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천주교는 다른 종교들보다 헌신적으로 노동자 농민을 품에 안아, 비약적으로 교인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증가하였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여전히 사회문제 그중에서도 노동자, 농민, 빈민 등의 아픔에는 거의 눈감고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소수의 스님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개인적인 활동이었다.
그런데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했으니 어느 교수의 말씀처럼 하늘과 땅이 요동칠 일이다. 그것도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종단의 예산과 지원이 따르니 대단한 일이다. 나 자신 학교에서 불교 공부를 잠시 하고 26년 내내 노동운동(한국통신)에 몸바쳐 오면서 다른 종교의 노동 지원 활동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불교도 언젠가 노동위원회가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소원하면서 지내왔다.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에게 부처님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스님을 보고 싶었던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천만 노동자의 여망이었다. 노동 활동을 하는 동료들이 “양한웅! 불교는 뭐해? 이렇게 어려울 때 오실 스님 없어?” 할 때는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신부, 목사님들이 수십 명씩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지만 불교의 역할은 보이지 않을 때, 노동자들의 불교에 대한 믿음과 기대도 함께 사라져 갔다.
수십, 수백 노동자들의 아픔은 천만 노동자, 사천만 서민들이 함께하고 있기에 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중대하다. 투쟁을 대신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이해만 해주더라도 노동자, 농민들은 감동한다. 그럴 때 그들은 불교를 신뢰하고 이해하려 할 것이고 절을 찾고 부처님 말씀에 귀 기울일 것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노동위원회가 만들어졌으니 그 책임과 사명 또한 막중하다. 출발이 감동적이지만 어깨가 너무 무거워 많은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비판도 감당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노동위원회의 활동 방향을 몇 가지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자들로부터 사랑받는 노동위원회가 되고 싶다. 노동자들이 찾지 않는 노동위원회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둘째 부처님 말씀에 맞는 노동위원회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평등, 평화가 함께하고 모두가 공존하며, 서로 존중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
셋째 불교계 내부에 노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활동을 하고자 한다. 외부 활동도 중요하지만 종단 내부의 구성원들이 노동문제에 관심과 이해를 높이도록 하는 것도 대단히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넷째 조급하게 일을 진행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노동위원회 활동을 구상하고 실천하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종교에 비하여 늦게 출발하였지만 당장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 그동안의 아쉬움을 채워나가겠다는 생각이다.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지 5개월째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시작이나 다름없다. 미처 잔뿌리도 내리지 못한 상태이니 말이다.
출범 이후, 노동위원회는 노동자 초청 무차대회, 노동자 초청 템플스테이, 대한문 앞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매일 1,000배, 100일 십만 배 기도봉행, 대한문 앞 철야 3,000배 기도, 노동현장 방문, 내부 공청회 등의 활동을 펼쳐왔다. 2013년에는 대한문 앞 격주 목요일 동사섭 법회, 돌아가신 노동자 천도재, 노동자 심리치유센터 발족 등 여러 활동이 예고되어 있다.
연초부터 다수 노동자가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속출하고 있고, 쌍용차 문제, 현대 비정규직, 한진중공업 문제 등 산적한 노동 현안들이 기업들, 정부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앞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아픔을 함께하면서 활동해 나갈 것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하며 비판의 쓴소리에도 겸허하게 귀를 기울일 생각임을 천명한다. 불자 여러분께 기탄없는 충고의 말씀을 부탁드린다.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