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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경허 논의에 관한 비판적 검토 / 김광식
―윤창화의 논고를 중심으로
[53호] 2013년 03월 21일 (목) 김광식 jiher77@hanmail.net

1. 서언

경허는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고승이다. 경허의 이 같은 성격 및 위상은 널리 알려졌다. 더욱이 선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조계종의 경허에 대한 숭모는 대단하다. 그런데 이 같은 경허에 대한 이해는 주로 신비적인 소문, 소설, 평전 등에 의지하고 있다. 지금껏 나온 경허에 대한 많은 글은 수필, 일화,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결과, 경허의 위상에 맞는 연구가 부진하였다. 경허에 대한 학술적인 논문이 20여 편 정도에 불과한 것이 그를 예증한다. 이런 경허 연구의 척박함으로 인해 경허의 위상, 사상, 한국불교와 조계종단에 끼친 영향, 수행론, 계율론, 법맥 및 계승, 결사, 《경허집》 분석, 경허 문학 등등이 황무지의 상태로 놓여 있었다. 경허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은 재론을 요구치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수덕사가 경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학술세미나를 준비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또 이에 앞서 윤창화가 《불교평론》에 발표한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도 주목할 만한 글이었다. 하지만 윤창화의 원고가 발표된 이후 벌어진 《불교평론》 회수와 폐간, 복간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는 경허의 행적을 둘러싼 진지한 연구를 촉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필자는 근현대 불교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경허 연구의 새로운 논의를 위해 문제가 된 윤창화 논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이를 반박하는 논지에 대한 검토를 시도하고자 한다. 근현대 고승 연구는 이러한 토론을 통해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2. 윤창화의 글, 다시 읽기

윤창화는 경허 연구의 지평을 확대시킬 수 있는 자료를 발굴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경허 행적을 도전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았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문제점은 세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경허에 대한 이해, 분석, 서술에서 단정적인 내용이 많았다. 어느 측면에서는 감성적 접근도 있었다. 인간의 고뇌, 판단, 행보 등은 한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성격은 역사적 사건, 운동에서도 동일하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나 사건을 서술할 때에는 다양한 내용과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적 글쓰기에서는 깊은 사유를 거쳐서 서술하고, 단정적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 더욱이 감정적인 서술은 위험하다. 둘째는 경허 자료의 분석, 활용에서 편향적인 측면이 제기되었다. 윤창화는 자신이 발견한 자료에 약간 도취되었기에 기존의 자료를 간과한 점이 있었다. 즉 발굴 자료와 기존 사료에 대한 비교,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료는 다양하거니와 역사가(필자)는 사료(문건, 증언 등)를 갖고 해석하기 이전에 사료의 분석 및 비판을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사료 활용의 우선순위와 내용을 판단하고, 종합적인 검토하에 서술에 임해야 한다. 윤창화는 이런 역사 서술 상식에서 소홀하였다. 셋째는 경허에 대한 이해를 통시적으로 시도함으로써 경허 이해의 시대성, 역사적 맥락에 소홀하였다. 즉 경허에 대한 120년 전(이능화), 80년 전(방한암, 김태흡), 40년 전(1970~80년대), 현재 등의 관점과 이해를 혼용했다. 각 시대별의 자료와 이해는 그 당대의 역사성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경허의 이해를 혼란케 하였다. 윤창화 논지의 문제점을 좀 더 대별하여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 경허의 주색(酒色) 문제
윤창화는 경허의 주색 문제를 이 논고에서 단호하게 서술했다. 그러나 이런 단호함은 학술적인 글쓰기에서는 지나침을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 경허의 행위를 주색으로 단정함으로써 본인의 글쓰기에서 제약을 유발하였고, 경허 문중으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제목에서는 경허의 ‘무애행(無碍行)’ 정도로 서술하는 것이 온당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주색 문제에서 논란이 된 것은 김태흡의 글 〈인간 경허〉를 발굴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여 경허 주색을 단정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로써 그간 논란이 많았던 경허의 주색이 분명하고, 확실하다고 인식했다. 이런 인식은 윤창화의 학문적 자유이다. 그러나 그 대상자가 경허일진대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온당치 않았을까 한다. 그러면 여기에서 윤창화의 단정적 글을 예시해 본다.

대중 앞에서 대놓고 음주식육(飮酒食肉)을 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여색(女色)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서 악(惡)이란 바로 여색과 음주식육을 즐겼던 점을 가리킨다.

평소 경허가 주색(酒色)을 서슴없이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이와 같은 서술이 경허=주색(酒色)이라는 등식으로 귀결시켰다. 이런 서술은 경허의 여타 성격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나아가서 윤창화는 현대불교 공간에서 승려들의 막행막식(莫行莫食)이 널리 퍼져 나간 근원의 당사자가 경허라고 단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근래 1970~80년대에도 너도나도 경허를 흉내 내어 주색을 일삼는 납자들이 적지 않았다.

경허의 초계율적인 삶은 긍정적으로 보면 선승의 무애행이라고 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보면 승가의 뿌리를 뒤흔드는 계율파괴 행위이다. 오늘날 한국 승가의 계율 의식 부재는 그의 영향이 크다. 공(功)도 크지만 과(過)도 크다. 즉 경허의 행위(즉, 酒色)는 승가적(僧加的)으로는 물론이고, 사회규범이나 도덕적으로도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다. 율장에 의거해 논해 본다면 사바라이죄(四波羅夷罪)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불교가 주색과 도박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도 경허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계율을 어느 정도는 지켜야 할 고승으로서 드러내 놓고 음주식육과 여색, 끽연(喫煙) 등 막행막식으로 계율 의식을 무너뜨리고 후대 수행자들로 하여금 주색을 답습하게 한 것은 일대 과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선(禪)은 다시 일으켰지만 불교는 깊은 병에 들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윤창화는 근현대 불교 승려들의 막행막식의 연원을 경허로 비정했다. 이는 경허가 막행막식을 하였다는 단정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윤창화가 이 같이 단정한 것은 지금껏 경허 행적을 비판적으로 전한 이능화와 방한암의 서술을 대폭 수용하고, 자신이 발굴한 김태흡의 기술을 덧붙여서 확정적인 이해를 한 소산이다.
그런데 이능화의 기록은 경허의 주색, 막행막식의 구체적인 사실을 전한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소문, 전언에 의거한 인식 및 서술이다. 즉 일부 측면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승가에서 풍미하고 있는 경허의 행적을 요약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다만 주색의 가능성은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방한암의 기록도 경허의 행리보다는 법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능화, 방한암의 서술이 경허의 행동에서 계율 파괴(주색, 막행막식 등)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체성이 없기에 단정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조심스럽고, 육하원칙이라는 관점에서도 애매하다.
한편 김태흡이 전하는 강백 진진응과 천은사 대화에 나온 경허의 고백 발언은 구체성이 강하다. 그렇지만 윤창화는 천은사에서 경허의 발언은 인용하면서도 김태흡이 요약한 해인사, 범어사에서의 경허 행적은 소개하지 않았다. 즉 경허는 해인사에서 선법(禪法)을 가르치면서도 주육(酒肉)을 기호(嗜好)하고, 색(色)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어 아무 데서든지 가리지 않고 행음(行淫)을 하였다고 했다. 또 범어사 금강암에서도 “종심소욕(從心所欲)을 무소부지(無所不至)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해인사와 범어사의 대중들이 경허를 제재하려는 시도까지 야기되었다. 그런데 김태흡은 악마(惡魔), 마종(魔種)이라고 불린 경허 행적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도, 끝내는 경허에게는 아무 탈이 없었고 승가로부터 벌을 받은 일이 없는 것에 대해 당시 승단 구성원들도 이상하게 여겼다는 의미 있는 단서를 남겼다. 김태흡은 경허의 실상에 대한 평전을 쓰기 위해 ‘수년 동안’ 행적을 조사하였기에, 김태흡의 기술은 신뢰할 수 있다.
윤창화는 이 점을 주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글은 김태흡이 소개한 경허 행적의 활용에서 불균형을 노정하였다. 천은사의 발언은 활용하면서도 해인사, 범어사의 사례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승가 구성원들이 경허 행적을 심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고 김태흡은 서술했지만 이 역시 소개하지 않았다.
윤창화는 경허가 계율 수호를 강조한 자료를 찾거나, 끌어내서 비교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윤창화의 자료의 일방적 선택, 불균형이 노정되고 있다. 요컨대 《경허집》에 나오는 경허의 계율 강조 내용과 비교를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경허집》의 〈중노릇 하는 법〉에는 다음과 같이 계율 수호를 강조한 내용이 전한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흐리니 먹지 아니할 것이요, 음행은 정신이 산만해지고 애착이 되니 상관하지 말 것이요. 살생은 마음에 진심을 도우니 행하지 아니할 것이요. 고기를 먹으면 정신이 흐리니 먹지 아니할 것이요.

이처럼 경허는 승려에게 음주와 행음을 금하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경허가 쓴 〈범어사 계명암 수선사 방함 청규〉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전한다.

술을 마시거나 음행하는 일은 부처님께서 깊이 경계하심이니, 마땅히 엄단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할 것이며, 또 6일이 아니면 의복을 세탁하지 말라.

그러면 경허는 왜 이처럼 중노릇의 기본과 결사의 청규에서는 음주, 고기 먹기, 행음을 금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을 하였는가? 그러면서도 자신은 음주식육, 행음을 실행하였다. 이런 연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경허집》에 나오는 경허 기술과 경허의 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 불일치, 간격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윤창화는 이런 간격, 모순을 취급하지 않았다. 김경집은 경허의 계율관은 대승적 계율관이라고 지적하였거니와, 그렇다면 윤창화는 경허의 계율관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윤창화는 문건 및 구전에 등장하는 경허의 주색, 계율 파괴는 명백한 사실로 지적하였지만, 경허의 발언과 행적의 불일치에 대한 인식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그리고 윤창화는 근현대 불교사에서 노정된 승려들의 막행막식의 근원을 경허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근현대 불교의 공간에서 승려의 대처식육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불교정화에 나섰던 백용성과 이청담도 그 원인의 당사자로 경허를 지목하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백용성과 이청담의 견해를 살펴본다.

또 마구니 말은 흔히 음욕도 상관없다, 술과 오신채도 상관없다, 음주식욕이 무방반야이다 이런 소리를 함에 신도들은 참 가려 잡을 수 없다. 근일에는 각 법이 더욱 쇠퇴하여 마구니가 대단히 왕성하였소. 신도들은 참 알 수 없었소. 중의 마구니가 많습니다. 선지식이라 명칭을 얻은 가운데에는 외도 마구니가 많습니다. 또는 도인이라야 서로 알지라. 근일 신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무단히 된 중이나 아니 된 중이나 자기의 친소를 따라 도인이니 선지식이니 하니 참 애석할 일이올시다. 여간 도에 눈이 밝어가지고도 도인을 알기 어렵거늘 어찌 눈이 밝지 못하고 남의 도를 알 것이요. 부디 신도들은 음주식욕 무방반야라는 중들이 비록 선지식일지라도 좇아 배우지 마세요.(백용성)

막행막식은 바라밀이 아니다. 이런 걸 모르는 무식한 선지식은 음주식육(飮酒食肉) 무방반야(無妨般若)라고 막 놀아납니다. 그래 가지고 중생까지 버려 놓고 나중에 공부하는 중들 다 버리고, 그렇게 떠들던 분들이 해방이 돼서 이제 불교정화(佛敎淨化)가 됐지만 그렇게 우리 비구들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수십명이 있습니다. 무식하기는 해도 발언이 세고 주먹질 잘하고 그렇게 불량하게 사는데, 소견이 비뚤어져서 불법이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무식하니까 마구잡이로 그런 사람들을 그런 패대로 젊은 수좌들이 해제(解制)하여 다니다가 만나면 마구잡이로 가르칩니다. (중략) 대처승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사오십 년 동안에 몇 번씩 공적으로 사적으로 웃으면서도 싸우고, 찡그리면서도 싸우고 한정없이 싸웠습니다. 이래 가지고 수좌들이 그만 마구잡이로 행동했음이 불애보리요(行盜行淫不碍菩提), 도둑질하고 음행하는 게 보리에 무슨 거리낄 게 있으며, 음주식육무방반야(飮酒食肉無妨般若), 술 먹고 고기 먹는 것이 반야세계에 무슨 장애가 될 게 있느냐, 반야바라밀이 그게 뭔데 그게 어디가 걸리고 막히는 거냐, 이래 가지고 막행막식(莫行莫食)을 했는데 듣고 보면 그 말이 어려운 법담(法談)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정법에 턱도 안 닿는 말입니다.(이청담)

이렇듯이 백용성과 이청담은 ‘음주식육(飮酒食肉)이 무방반야(無妨般若)’라고 조장한 당사자들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 관련자로 경허를 지목하지는 않았다. 경허 영향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전적으로 경허 때문이었다고 지적하지는 않은 것이어서 경허 이외에 다른 요인도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승려의 파계, 막행막식에 대한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이를 거시적으로 보면 승가의 세속화 흐름과 일제 식민지 불교 상황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특히 일본불교 영향과 불교 근대화의 일환으로 승려결혼이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일제하 불교에서 비구승의 95%가 결혼을 하였다. 막행막식 조장의 배경으로 일제, 일본불교를 거론치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일본불교 영향, 세속화 심화, 막행막식이 반야에 무방하다는 수행론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것으로 본다. 1980년대 초반 승풍을 비판한 법성과 휴암이 이 문제를 간략하게 개진하였지만 이는 예민한 소재였다. 이를 여기에서 재론할 생각은 없지만, 윤창화의 원고가 막행막식을 조장한 당사자로 경허만을 지목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2) 경허 삼수갑산행의 새로운 해석
윤창화는 경허가 삼수갑산으로 간 근본 원인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경허 자신이 행한 주색, 막행막식에 대한 불교계 인사들의 원성과 비난 등을 피하기 위한 은둔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경허의 삼수갑산행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존 설에서는 보살행 및 중생구제, 그리고 환속 등을 거론해왔다.
그러나 윤창화는 기존 해석을 유의하지 않고, 단지 “스스로 속인이 되어 삼수갑산에 입몰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경허가 기술한 중생구제와 유관한 글(〈심우송〉)을 읽은 소감을 “승려라면 누구나 갖는 정도 이상은 별로 없다. 삼수갑산이 오지, 유배지이므로 그렇게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평가하면서 경허의 중생구제 가능성을 가볍게 보았다. 윤창화는 삼수갑산행의 결정적 요인을 경허가 1899년부터 1903년까지 5~6년 동안 범어사,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등에 머물면서 선을 중흥시킬 때에 극에 달한 비난에서 찾았다. 그 이전부터 음주식육과 여색으로 무성한 경허의 이름이 이때에 더욱 알려졌는데, 그래서 찬사(깨달은 경지)와 비난(즉, 酒色)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윤창화는 자신의 이 가설을 방증하기 위해 경허 시(詩) 80여 편을 분석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서 은둔, 비분강개, 고독, 술, 무상, 주색, 우국, 탄식, 선 전등단절 우려 등의 주제를 끄집어냈다. 그중에서 은둔, 비분강개, 무상, 주색, 술 등을 자신의 입론에 활용하였다. 이런 분석은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복잡성이 개재되어 있다. 윤창화는 기존 경허 시 해석의 문제점을 “지나친 의미 부여와 과잉 해석은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고 비평하였는데, 이는 그 자신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윤창화의 해석과 활용은 대체로 무난한 편이다. 그 정도면 불교 학술논문에서 지나친 작위, 오류는 희소하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경허집》에 수록된 시는 그 시점, 장소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시를 쓴 시공간을 추정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하다. 그래서 경허의 시에 대해 논할 때에는 이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 이를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활용할 때에는 의외의 실수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경허 시에는 불교, 유교, 도교(노자, 장자) 등 다양한 사상이 흐르고 있으며 역설적인 표현이 많아 단정적인 해석은 어렵다. 현재 간행된 《경허집》의 번역이 산만하고, 일부 시는 경허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현실에서 경허 시를 소재로 한 경허의 해석은 유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윤창화는 경허 시의 분석을 주되게 활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논지 출발 선상에 경허가 “자신의 삶을 변명하거나 후회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는 김태흡의 글에 나온, 화엄사 강백인 진진응과 경허의 대화를 적극 활용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경허의 발언을 세밀하게 살피면, 경허 자신의 행리에 대한 수긍은 찾을 수 있지만 변명과 후회의 추출은 주저된다. 윤창화는 경허의 〈취은화상행장〉에서도 경허가 “자신의 행위가 불교에 폐해가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고 있다”고 하였지만 필자는 그 전후 맥락에서 겸양의 뜻도 찾을 수 있었다. 윤창화는 경허의 발언, 기술을 삼수갑산행의 출발 근거로 삼고,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경허의 삼수갑산행은 그 돌연성 때문에 신비화, 미화하고 있다. 이는 아마 고승의 행적을 미화하려는 후대의 영향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자세히 보면 그의 삼수갑산행은 염세(厭世), 은둔 등 다분히 도피적 성격이 짙다. (중략) 경허의 삼수갑산행의 진의는 매우 복합적이다. 경허는 음주식육과 여색(女色) 등 비도덕적, 계율 파괴적인 행위를 일삼았는데, 이로 인하여 승가의 구성원들과 세인들로부터 ‘악마(惡魔)’ ‘마종(魔種)’이라는 원색적인 비판과 비난을 사게 되었고, 그 결과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은둔을 선택했다고 생각된다. 즉 자신에 대한 훼찬(毁讚) 등 시비(是非)를 피하여 상면인(相面人)이 없는 곳으로 영영 종적을 감추고자 한 것인데, 이것은 그가 은둔 지역을 남한이 아닌 서북단(西北端)의 오지인 갑산을 택했고, 이름을 박난주로 바꾸었고 유생 차림으로 입적한 점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또 그의 삼수갑산행은 평소 그가 깊은 허무, 고독, 늙음, 무상 등에 젖어 있었던 점도 요인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윤창화는 경허 삼수갑산행의 배경과 원인을 불교계에서 제기된 비판, 비난,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은둔으로 단정했다.
필자는 경허의 삼수갑산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허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배경, 요인도 검토해야 하겠지만, 삼수갑산에서의 행보도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또한 경허의 당대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의 역사에서 공적인 측면을 배제하기 어렵다. 즉 당시 불교계 동향, 일제 침투라는 시대상도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배경 및 원인, 시대적 상황을 삼수갑산에서의 활동 내용과 함께 조망하고, 나아가서는 경허 일생의 지향 및 고뇌와도 조응해서 살펴야 한다.
그런데 윤창화 글에는 이런 것이 시도되지 않았다. 즉 시대적 상황과 삼수갑산 활동에 대한 설명이 누락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삼수갑산행은 경허 정체성을 다루는 주요 소재인데, 이에 대한 해석을 하려면 그에 대한 선학의 이해도 참고,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한다. 경허의 삼수갑산행에 대해서는 그간 중생구제, 보살행, 대승선 등으로 보는 시각과 환속으로 보는 시각으로 대별되었다. 전자는 그를 입전수수(入廛垂手), 이류중행(異類中行), 화광동진(和光同塵) 등으로 표현하였고 후자는 환속으로 서술했다. 전자의 입론을 대표하는 학자는 민영규, 김지견이고후자는 최병헌이다. 최근 다양한 시각이 개진되고 있거니와 고영섭은 ‘거사 선생의 입세간적 삶의 실현’이라고, 이덕진은 장자적 사유에서 나온 ‘만년의 환속과 북방으로의 은둔’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윤창화는 자신이 생각한 삼수갑산행의 원인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여타의 주장을 배려할 여건은 희소했다. 그간의 연구 성과와 논리를 참고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3. 윤창화 글에 대한 비판 논리 분석

윤창화의 글이 《불교평론》에 기고되자, 그 주요 내용은 언론매체를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이에 대한 이의를 수덕사와 경허기념사업회 측에서 제기했다. 이의 제기는 ‘비공식적인 항의’로 나타났는데, 수덕사 측은 그 항의를 ‘문도로서 표현할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할 의사표시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창화 글에 대한 비판 및 문제점 제기는 즉각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문도인 허정과 옹산이 불교 언론에 단편적인 글을 기고했다. 또 우여곡절 끝에 열린 경허 열반 백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5개의 주제가 발표되었다. 세미나에서 주목받은 글은 박재현의 논고였다. 그래서 필자는 수덕사 측에서 제기된 두 편의 글과 박재현의 글을 분석하고자 한다. 윤창화의 논고를 비판한 그 글의 함의는 무엇이고, 그 글에서 생각할 점은 없는가 등을 따져 보고자 하는 것이다.

1) 허정, 옹산의 글
허정은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의 소임을 보던 경허 문도이다. 그는 인터넷신문 〈불교포커스〉(2012. 9. 10) 에 〈다시 경허를 생각한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이능화의 경허 기술은 ‘소문을 적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보면서, 이능화 글은 신뢰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김태흡의 글도 ‘이능화 따라 하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윤창화 글은 이능화, 김태흡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윤창화의 주장에서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윤창화의 표현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경허를 ‘불교 폐단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허관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지나온 100년 동안, 경허의 일은 세간에 회자되며 승속을 넘어서서 경계를 바라보는 한계와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호불호(好不好)를 넘어왔다. 경허가 깨달음에 안주함을 버리고 비도(非道)의 보살행에 들어서 진흙탕에 빠지고 얼굴에 진흙을 바름으로써 경허는 다른 어떤 선사보다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우뚝 서게 되었다. 자기를 더럽혀서 더러운 때를 닦아주는 걸레처럼. 스스로 걸레가 되어 동사섭 하는 스승, 세간에 물들까 봐 겁내지도 않고 물들지 않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도 않는 자! 그가 경허다.

그는 경허를 최후까지 자신을 밀고 간 사나이, 중생을 구제한 보살, 위대한 선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즉 경허 행위를 입전수수, 이류중행으로 보았다.
허정의 논리는 천장암 회주인 옹산의 글에서 지속되었다. 옹산은 〈법보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경허를 한국불교 중흥조로 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인 윤창화가 깨달은 사람인 경허의 세계를 헤아려 시시비비를 가릴 안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보았다. 그는 윤창화를 향해 “비평이라는 이름하에 시정잡배에게나 쓰는 언사로 주색에 빠져 있던 파계승처럼 언급하는 불경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경허관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경허 큰스님은 처절한 구도정신으로 일관하여 깨달으신 분이다. 깨달은 분의 행동은 무애행(無碍行)이다. 깨닫지 못한 범인이 무애행에다 계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오도(誤導)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깨닫지 못한 이가 깨달은 이의 무애행을 흉내 내는 것은 응당 경계해야 할 과오지만 그 책임을 선각자에게 전가시킬 수는 없다. 과오는 그것을 행한 개인의 문제다. 부처님께서 불음주계를 정하신 것은 알코올이 깨달을 수 있는 지혜종자를 말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처절한 정진삼매를 통해 이미 깨달음의 경지를 증득한 후의 도인들은 그 계율에 걸릴 까닭이 없다. 원효나 진묵대사 같은 성현들이 곡차를 즐겼다고 파계 운운하는 것은 계율을 지킬 필요가 있는 중생의 편에서 보는 시각일 뿐이다. 오도한 경허 선사의 일체 행동은 모두가 무애행이다. 경계가 경허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따라 하는 폐단까지 경허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옹산은 경허를 처절한 구도정신으로 깨달은 큰스님이라고 전제했다. 그러고 나서 깨달은 자의 행동은 무애행(無碍行)이기에, 거기에 계율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경허의 일체 행동은 모두가 무애행이라고 주장했다.
허정과 옹산의 논리는 경허는 깨달은 큰스님이고, 경허는 입전수수 및 이류중행의 보살행을 하였으며, 깨달은 경허의 행동은 무애행이기에 계율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런 논리가 불교 교리, 수행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가능한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깨닫기 이전에는 계율을 유의해야 하지만, 깨닫고 나서는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필자는 계율 전공이 아니기에 이를 거론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이 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우선 적시한다.
그런데 이 논리는 그간 일부 불교학자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컨대 변희욱은 〈경허의 선사상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글에서 혜능과 경허의 경우, “지계는 설정된 계율에 대한 준수가 아니라 본디 청정한 성품 지키기”로 본다고 서술하였다. 그러면서 그 논리를 다음과 같이 확장했다.

돈오의 경지 즉 “일 마친 이후”에는 계율은 무의미하다. 경허의 행적을 계율의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일이다. 계율은 돈오 이전의 기준이며, 오후행은 상식의 눈으로 따질 수 없다.

깨달은 이후에는 계율의 잣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주장이 한국불교계 및 불교학계가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교리, 논리, 계율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대승불교권, 선불교권에서는 이런 논리가 그간 어떻게 수용 혹은 비판되었는가의 문제도 분석되어야 한다.
윤창화는 그의 글을 기고할 당시에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는 경허의 “일탈과 술, 그리고 여색은 일회적이나 단발성이 아니다. 반복적 연속적인 것으로 20대부터 시작하여 입적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논리를 이끌어갔다.

깨달았다고 하여 막행막식을 해도 좋다는 것은 율장 그 어디에도 없다. 부처님도 그러신 적이 없고 마조, 조주, 대혜종고, 그리고 보조국사, 청허휴정 등 역대 고승들도 음주와 여색을 한 적은 없다. 심지어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불음주, 불사음계를 범하면 추방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경허 스님의 반복적 지속적인 술과 여색은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승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경허 스님은 선은 크게 일으켰지만 동시에 한국불교를 깊은 수령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들이 ‘깨달은 선승의 무애행’이고 ‘깨달은 분상에서 대자유인의 경지’라고 왜곡돼선 안 된다. 무애자재란 번뇌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며, 욕망으로 인해 본분사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차법(開遮法, 허용과 제한)이란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이다. 막행막식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즉 윤창화는 막행막식은 율장, 고승들의 행적, 청규 등에서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복적 일탈행위가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경허를 솔직하고, 깨달음 경지도 훌륭하였지만 습기(習氣)를 다 제거하지는 못하였다고 보았다. 이 문제는 옛날에도 논란이 되었다. 이광수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에 鏡虛 같은 중도 육체의 욕망을 떠날 수가 없어서 퍽 괴로워했다니까요. 어느 때는 길가에서 예쁜 색시를 보고 달려가서 입을 맞추었다나요. 그래서 그 제자가 여기에 질문하여 스님같이 道가 높으신 이가 그것이 어쩐 일입니까 하고 말한즉 鏡虛의 말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생각한 것을 시행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냐고 했다는 말도 있고 또 어느 때는 어느 大師를 찾아가서 술을 가져오라 해서 술을 먹고 술을 먹은 후엔 또 갈보를 데려오라고 했다드라구요. 그러니깐 그 술을 사다 대접한 대사가 술까지는 사다 대접했지만 갈보만은 하는 수 없었든 까닭에 역시 스님같이 道가 높으신 이가 이래서 쓰겠습니까 하고 질문한즉 鏡虛가 얼굴이 붉어지며 ‘頓情難同佛多生習氣深’이라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를 쓰고 나서 마음으로 부처님 되기를 원하고 바라지만 오래가졌든 習生은 참 끊어 버리기가 어려운 것인 줄 알아요.

그렇다면 깨달은 후의 계율을 수지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간의 불교계에서는 어떤 입장이었을까? 경허 논리를 비판한 글도 있었지만, 우호적인 글도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경허의 법화와 행리를 분리하여 봤다. 이처럼 경허 평가는 다양하였다. 추후에는 대승불교, 계율을 연구하는 유관 학자들의 냉정한 참여가 요청된다.이 문제는 깨달음과 수행이라는 범주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2) 박재현의 글
박재현은 수덕사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현대 한국사회의 당면문제와 경허의 사상〉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논고에서 윤창화가 제기한 경허의 북행은 은둔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창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세 가지 주장을 피력하였는데 첫째, 경허의 부정적인 인물평에 식민통치 이념이 작동할 가능성, 둘째, 주색과 관련된 행적 때문에 경허를 한국불교의 사표로 삼기 어렵다는 평가에 독재적, 식민지적 허구성이 작동할 가능성, 셋째 경허가 자신의 주색 행적에 반성의 태도를 취했는지 의문이라는 점 등이다. 이런 박재현 주장은 이채롭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경허에 대해 평가를 내린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친일성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은 이러한 추측의 근거가 된다. 대표적으로 권상로와 김태흡은 후에 새마을 운동의 방향이 된 일제강점기의 심전(心田) 개발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이다. (중략) 사상개조에 목멘 사람들의 눈에 경허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주색과 관련된 경허의 일화들은 이들에 의해 부정적으로 확대 재해석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경허에 대해 평가를 내린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친일 성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지적에서 의아심이 제기된다. 박재현은 경허에 대한 부정적 인물평을 한 대상자만 거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근대불교 공간에서 경허 평가는 이능화, 방한암, 김태흡, 한용운이 수행했는데 방한암과 한용운은 친일과는 무관하다. 박재현은 한암과 만해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의 주장의 문제점이 노출된다. 권상로는 일제 말기의 친일 행적은 있지만, 일제하에서 경허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해방 이후 경허 평가를 긍정적으로 한 당사자이다. 이능화는 1920년대 중반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것이 ‘친일’이라는 말을 듣지만, 1910년대 후반에는 민족불교적인 입장에서 《조선불교통사》를 발간했다. 친일 행적을 보였다고 비판받는 인물이 행한 서술도 학문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분석, 활용하는 것이 온당하다. 고승의 문헌기록이 희박한 현실에서 이념을 내세워 문전박대함은 적절치 않다.
다음 두 번째로 경허가 사표(師表)로 내세워지지 않은 것에 독재, 식민지적 허구성이 작동하였다는 것은 박재현 개인의 주장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보편적 설득력이 부재하다. 특히 선(禪)의 사표와는 거리가 멀다는 표현은 더욱 그렇다. 오히려 사표로 강력하게 설정되었다고 보인다. 셋째로 경허가 자신의 행적을 반성한 것이 아니라, 심리학의 자아수용 태도를 가졌다고 보았다. 필자가 보건대 반성이나, 자아수용은 동일한 상황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면서 그는 경허의 북행을 ‘의도적 자리 비워주기’라고 새롭게 주장했다.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태도는, 그의 북행이 은둔성 도피가 아니라 의도적 자리비워주기로 평가할 수 있다.

박재현은 자신이 주장한 ‘자리 비워주기’는 부질없는 권력지향에 대한 비판의식과 권력의 내면화에 대한 경계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주장했다. 이 주장은 윤창화가 간과한 당시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보충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익하다. 그러나 박재현이 자신의 입론을 주장하려면 그것을 입증하는 당시 불교계 내외의 상황을 제시해야 하지만 추상적 관점 서술에 머무르고 말았다. 의도적 자리 비워주기였고, 승가윤리를 마련하는 데에 필요한 좌표와 기준을 보여주었다면 그런 산물도 거론해야 한다. 또한 삼수갑산에서의 경허 삶에 대하여 보살행인지, 환속인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상과 같이 박재현 글에서 참고할 만한 새로운 시각도 발견할 수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윤창화의 입론을 비판함에만 신경을 쓴 느낌을 받았다. 


4. 결어

이상으로 윤창화의 경허 관련 글과 그에 대응적인 입장에서 나온 글을 함께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 논의는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수행과 깨달음의 문제는 불교 수행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 주제는 특정한 사람에 의해 독점될 수 없는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다. 윤창화의 논문이 여러 가지 문제를 내장하고 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 그 자리가 우리나라 불교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고양하고 고도한 불교적 정신문화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김광식 / 동국대 연구교수. 건국대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원, 부천대 초빙교수, 대각사상연구원 연구부장, 조계종 불교사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 근대불교사연구》 《한국 현대불교사연구》 《민족불교의 이상과 현실》 등 근현대 불교 관련 저서 20여 권. 유심작품상 학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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