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바이샬리에서 비하르 주의 주도인 파트나로 가는 길. 끝 모를 평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장마가 끝날 무렵인 10월인데도 홍수가 범람하고 있었다. 갠지스 강물이 온 평원 위에 조용히 넘쳐흐르고 있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좀 안타까운 광경이겠다. 하지만 이방인인 나로선 대지가 아름다운 축복을 받는 모습으로만 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넋을 놓고 그 풍성한 고요를 음미하듯 바라보고 있으려니 고단한 여정에서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듯하다.

인도의 동북부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불교 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곳곳에서 느껴지는바 인도는 갠지스 강의 덕으로 발달해온 나라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저 웅대하며, 지고한 자태의 설산인 히말라야에서 발원된 강물은 다른 곳에서 시작된 야무나 강과 만나 갠지스 강 본류가 시작된다.

이곳 합수머리 지역의 이름은 쿰브멜이다. 이곳 강물에 목욕하러 인도 각지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든다. 두 곳의 물이 합쳐지는 곳이니 축복의 의미도 더 크다고 여겨서일 것이다. 이곳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이다. 인도 최대의 ‘물 축제’도 이곳에서 벌어진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수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수행을 감행한다고 한다. 평생 지은 죄업을 씻고 내세에 지금보다 나은 생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몸을 강물에 온전히 담그기도 하고 강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오직 신과 만나는 ‘나’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침잠한다. 이 참여 축제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브라만이든, 천민이든 상관없다.

이곳 말고 갠지스 강의 지류들이 만나는 다른 합수머리 지역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물은 생명의 근원. 그러니 유구한 세월 이 물을 내려 주시는 신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인도 최대의 곡창 지역인 이곳 비하르 주에 와, 그 드넓은 땅에서 자라나는 곡식들을 보면 물은 곧 신이 내린 것이란 믿음이 절로 들게 된다. 정녕 사시사철 넘쳐흐르는 갠지스 강물은 인간에게 축복을 내려주거니와 아픔도 씻겨주고 인간의 영혼도 더불어 정화시켜 주리라.

갠지스 강 근처에는 힌두 사원만 있는 게 아니다. 커다란 이슬람 사원도 있고, 시크교 사원도 산재해 있다. 비하르 주는 굽타 왕조 같은 인도의 고대 문화가 발흥했던 곳이기도 하다. 기원전 3세기 불교 이념으로 통일 국가를 건설한 아소카 왕 시대의 수도도 바로 이곳이다. 불교 성지인 보드가야, 라즈기르, 나란다, 바이샬리도 비하르 주에 속해 있다. 자이나교도 이곳에 시원을 두고 있다.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잘만디르 마하비르가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벌거벗은 수도승을 떠올리는 자이나교도 알고 보니 대단히 고매한 취지를 지닌 것 같다. 나체로 생활하는 이유는 옷이 모든 욕심의 근원이기도 해서다.

이들은 무소유와 불살생의 정신이 투철하다. 수도승들이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는데 그건 행여 보행  시 작은 벌레라도 죽거나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어 제 앞을 쓸려는 의도에서 그런 것이란다. 얼마나 뜻깊은 삶인가. 말로만 신을 믿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이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의 반영인 듯싶다. 간디의 비폭력 운동도 이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고 한다.

인도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신들이 사는 나라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을 신격화시키는 일이 일상화가 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인상도 받았다. 모든 종교의 특성이 그렇듯 ‘숭배 의식’은 인간에게 주어진 필연의 심리일 것이다. 인간 존재가 겪는 생로병사 과정의 근저에는 죽음이나 고통에 대한 불안 심리가 내포돼 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인간 누구나가 갖고 있는 보편적 심리다. 또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통상 여러 정신적 방어 기제가 동원되었을 것이다. 어느 생명체든 그 존재를 지속시켜보려는 욕망, 곧 존재애(存在愛)라고 불릴 수 있는 기전이 본능적으로 작동됨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본성상 영원한 삶이나 영혼의 윤회 같은 개념이 상정되는 일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종교, 특히 원시 종교는 이런 심리가 그대로 또는 적절한 상징적 행동이나 의례를 통해 어렵지 않게 곧잘 드러난다. 종교는 결국 그런 인간 심리의 반영인바, 인간 내면세계의 갈등을 해소시켜주기 위한 의도로 외재화(externalization)된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삶에 대한 향수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이를 구현시킬 구체적인 외적 대상이 가정되어야 접근이나 그 방법이 용이해질 수가 있겠다.

그런 소원의 실현을 위해 작동되는 정신기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투사, 합리화, 정당화, 전치, 이상화 등이 신을 형상화시키는, 마음의 무의식의 작업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하니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신은 인간의 마음에 의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욕구의 수요에 의해 만들어진 꼴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사고 과정에서 형성된 공통의 믿음들, 다시 말해 그 사회의 다수 인간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된, 이러한 마음의 표상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정착이 되면 그 믿음은 그 사회에서 일정한 격식을 갖춘 종교로서 기능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여기서 힌두교가 미신적이며, 원시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려는 뜻은 아니다. 죄를 씻겠다는 마음의 발로에서 반성도 하고, 오체투지하며 기도로 신에게 간구를 할라치면 그의 영혼에 평정도 오겠고 얼마간 구원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힌두교도 가운데는 마하라지나 마하르시 같은 성자들은 우러러 존경할 만한 인류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 힌두교도들이 갈구하는 세속의 신 개념과는 차이가 나는 신의식(神意識)을 갖고 있다. 세속의 힌두교는 타력(他力)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다. 기복신앙에 너무 경도돼 있다. 근세 이래 우리나라에서 번창해 왔던 기독교인들의 경우도 그 속을 살펴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관점은 물론 거개의 불교도의 신앙 행태에서도 여전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제 나는 모든 신앙의 바탕에는 다 그렇고 그런, 인간 심리가 투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보편적 현상이라 본다.

갠지스 강을 따라 여행하며 이런저런 종교에 대한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불교 성지를 순례하면서 그 먼 옛날 힌두 신앙이 횡행하던 인도에서 고타마 붓다라는 인물이 출현하여, 천지가 개벽되기 시작했음을 상기하게 되니 역사적 의미에서도 그 감회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예수도 당시 사회상에 비춰보면 대단한 혁명가로서 인류를 위해 생명과 사랑의 메시지를 뜨겁게 전파했다. 하지만 그보다 오백여 년 앞서 부처님은 그 사회, 곧 당시의 힌두이즘 사회에서 보자면 대단한 혁명적 발상의 설법을 했던 것이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체가 그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남기까지는 오랜 진화의 결과라는 이론이 상정된다. 마찬가지 이치로 나는 종교 영역에서도 인간 의식의 진화에 따른 결과가 도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상정을 하게 된다. 헤아릴 수 없는 윤회의 결과, 모습 없는 경지를 보이신 부처님이 출현했듯이 말이다. 물론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자리야 태고(太古) 이래 결코 변함이 없었지만…….

여든 살에 접어든 노쇠한 부처님께선 어느 날 제자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현재도, 내가 입멸한 뒤에도,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한 수행자요, 내 뜻에 가장 맞는 사람이다.”

이처럼 부처님께선 우상 숭배를 철저히 배격하셨다. 자신의 참모습이나 삶의 근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서야 어떤 신앙이나 믿음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훌륭한 가르침의 전통은 2,5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지금은 서양에서도 많은 식자들이 불교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

인간의 목숨으로 사는 한 이러한 진리는 영원히 변함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이는 분명 나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