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이 글의 주제는 한국 불교음악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으로 신앙적·예술적·치유와 명상적·대중음악으로서의 가능성과 방향이다. 그러나 필자는 불교음악에 대한 이 모든 장르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까지를 제시할 능력이 없음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다만 그간 불교음악을 연구하기 위하여 아시아 각지를 다니다 보니 한국만의 독특한 불교음악 현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에 본고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우리네 불교음악 현실을 조명하면서 그에 대한 나름의 소견을 피력해 볼까 한다.

우선 불교음악의 현황과 방향을 논하기 위해서는 ‘불교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겠고, ‘불교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구(窮究)가 있어야겠다. 그래야만 그에 대한 해답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언젠가 모 학술대회에서 ‘불교의 현대화와 미래’를 위한 논의를 지켜본 바가 있다. 사찰에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는 불교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문제이다.

21세기를 맞아 문화 콘텐츠 하나가 자동차 생산보다 더 큰 이익을 낳는 경제 수단이 되었다. 얼마 전 다녀온 뉴욕은 경제불황으로 허덕이고 있어 시가지 사방에 온통 세일 표시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브로드웨이 공연가는 불빛이 현란하였다. 20년 전에 공연되던 〈오페라의 유령〉이 아직도 공연되고 있으니 그 한 작품이 벌어들인 수익을 간단히 계산할 수가 없다. 이를 불교음악에 비추어 보면 정보의 시대인 오늘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찬불가 한 곡이 포교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짐작하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전통문화를 부르주아의 잔재라고 하여 깡그리 쓸어버렸던 중국도 요즈음은 문화유산 등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제 그들의 문화 공정은 한족(漢族)의 전통예술뿐 아니라 소수민족의 춤과 노래까지 확장되어 조선족의 〈아리랑〉을 중국의 문화재로 등재하기 위하여 손을 걷어붙였다. 느닷없이 〈아리랑〉을 뺏기게 된 한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 이념 대립으로 전쟁을 치른 20세기와 달리 21세기에는 문화 전쟁이 일어날 판이다.

이런 시대에 영산재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불교계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네 신행 속 현실은 음악의 불모지(不毛地)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니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본고는 이러한 한국 불교음악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세계 불교음악과 한국 불교음악의 전개 과정을 통해 조망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한국 불교음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2. 신앙적 측면

1) 불교음악의 영역
믿음을 전제로 하는 타 종교가 신을 찬양하는 것과 달리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불교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현상으로부터 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그러므로 선정에 든 불보살을 찬탄하는 불교음악은 소리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소리 없음으로 향하는 음악 세계도 있다. 

불교 대중이 가장 친근하게 의존하고 있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 lokitesvara)의 명호가 ‘세상(世:loka)의 소리(音:svara)를 본다(觀:Ava)’는 뜻을 지닌 것은 소리에 대한 불교의 세계가 얼마나 심오한지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음악의 범주는 소리가 없는 세계인 무외음(無外音)에서부터 물소리 바람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 일정한 진동수로 발현되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무한히 넓다. 이와 같이 우주 현상에 대해 무한히 열려 있는 불교인지라 옛 조사들의 게송에는 허공의 소리, 소리 없는 소리, 없음도 있음도 아닌 소리에 대한 구절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의 4분 33초를 작곡했던 존 케이지의 음악 행위는 매우 불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른음의 배열로 이루어지는 일명 불교음악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우선 세계 불교문화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남방불교문화권에서는 초기불교의 전통을 고수하여 의식이 간소하고 이에 수반되는 음악은 경전 낭송 정도로 매우 간략하다. 그러나 사찰에서 행하는 조모과송의 율조들을 활용한 수많은 명상음악과 민간 불교음악들이 있다. 북방불교에 해당하는 티베트·중국·한국·일본 등지는 대중을 교화하는 방편에 음악이 활용되었으므로 의례가 장엄하고 여기에 수반되는 다양한 불교 악가무가 있다. 이들 음악은 불교가 전래되는 경로와 토착화의 정도에 따라 나름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각 나라의 불교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분류 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승려들로 구성된 기악 불악단이 있으므로 기악과 성악의 구분이 큰 갈래가 된다. 대만에서는 법당에서 의식에 수반되는 의식음악(liturgical music)과 법당 외의 공간에서 연행되는 공양음악(para-liturgical music)으로 나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승려 기악단이 역사적으로도 보이지 않았고, 현재도 그러하다. 또한 의식음악이지만 법당이 아닌 마당이나 공연장에서 하는 영산재도 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기악단과 범패단으로 나눌 수도 없고, 의식음악과 공양음악으로 나눌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전통 범패와 창작 불교음악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볼 때 한국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될 만큼 단절된 전통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제3항에서 살펴보겠다.

2) 경전에서의 불교음악
불교음악의 신행적 측면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전을 통해서 그 면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전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비롯하여 곳곳에 음악적 묘사가 발견된다. 또한 부처님이 직접 음악에 대해서 설하기도 하였는데, 이들 중 대표적인 일례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경전 속의 음악적 묘사

①부처님 일대기와 음악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출가·열반을 기술할 때 항시 음악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룸비니 동산에서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자 천상에서 음악이 울렸다는 내용을 악기 이름까지 거명하며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수행본기경》 중 《과거현재인과경》·《태자서응본기경》을 보면 부처님이 잉태되는 과정을 금과 북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이 함께 하였다고 한다. 또한 본 경전의 〈보살강신품〉에는 마야 부인의 꿈에 “공중에서 웬 사람이 흰 코끼리를 타고 광명을 천하에 두루 비추며 거문고를 뜯고 여러 가지 악기를 울리고 노래하면서, 금(琴)을 타고 북(鼓)을 치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라는 대목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이 탄생할 때의 기사는 더욱 성대한 음악적 묘사를 보인다. 《보요경》 〈욕생시 32서품〉 제5에 의하면 “(전략) 많은 천인들이 한꺼번에 백, 천이나 되는 기악(伎樂)을 울리며 왕후를 따랐다. (중략) 억만이나 되는 천신들도 역시 멀리서 고개를 숙이니 천지가 여섯 번이나 진동하였는데, 이는 모두 크고 밝은 광명으로 청정하였으며 백, 천이나 되는 기악도 함께 연주되었다. (중략) 이때 보살이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처님의 출가와 열반에도 많은 음악적 서술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에서 가릉빈가나 긴나라 등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음악을 연주했다는 등의 내용이 보인다.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궁중에서 궁녀들이 기악을 하는 모습은 사실적인 배경을 얘기하기지만 경전에 보이는 음악적 묘사는 대부분 상징적 표현에 속한다. 특히 부처님의 일대기에 등장하는 음악적 묘사는 부처님의 위격과 신비로움을 드러내는데 다른 그 어떤 형용적 기술보다 효과적이다. 이는 곧 종교 생활에 음악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② 부처님의 음성 
장아함에서는 부처님의 음성에 대해서 설하고 있는데 그 대목을 잠시 읽어 보자. “부처님의 음성은 다섯 가지의 청정함이 있어서 범성(梵聲)이라고 한다. 다섯 가지란, 첫째 음이 바르고 곧으며, 둘째 음이 화합하고 우아하며, 셋째 음이 맑으며, 넷째 음이 깊고 원만하며, 다섯째 두루 퍼져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음이다. 부처님의 음성은 이 다섯 가지를 갖추고 있으므로 범음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부처님의 음성에 대한 서술이 경전 곳곳에 보인다. 《법원주림》 권 제36 인증부(引證部) 제2편에서도 범성의 정의 다섯 가지를 통해 부처님 음성을 논하고 있다.

한편 《범마유경》에는 여래께서 법을 설할 때는 여덟 가지 음성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기도 한다. “여래께서 법을 설하실 때의 음성에 여덟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가장 좋은 소리, 두 번째는 알아듣기 쉬운 소리, 세 번째는 부드러운 소리, 네 번째는 화합하고 고른 소리, 다섯 번째는 존귀한 지혜의 소리, 여섯 번째는 틀림없는 소리, 일곱 번째는 깊고 묘한 소리, 여덟 번째는 여성의 소리가 아닌 소리이다.”  

부처님 음성에 대한 묘사는 오늘날 불교음악을 표현하는 발성과 음색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부처님의 음성에서 묘사하는 소리와 가장 가까운 음악 장르를 들면 역시 범패라고 할 수 있어 ‘범성’의 ‘범’과 노래 ‘패(唄)’의 근본적인 뜻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범마유경》의 부처님 음성 중 마지막 항목에서 ‘여성의 음성이 아니어야 한다’고 한 대목은 당시 인도에서 여성이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상의 반영으로 보아야지 여성의 음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항목에서 한 가지 의미를 새긴다면 뜻도 모른 채, 가볍고 경박한 소리로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에 대한 경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2) 음악에 대한 부정적 견해
초기불교 승단(僧團)은 계율에 따라 수행자의 ‘악가무’를 철저히 금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남방불교에서는 일반인이 수행할 때도 8계를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계율을 보면, “스스로 춤추거나 다른 이를 춤추게 시켜 즐기지 말 것이며, 스스로 노래하거나 다른 이를 노래하게 시켜 즐기지 말 것이며,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거나 다른 이를 연주하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승불교권인 중국의 경전 증일아함 《마하승기율(僧祇律)》 등에도 보인다.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략) 노래하고·춤추고·재주부리고·연주하고·웃고·울고·항상 방편을 쓰고·스스로 요술처럼 얼굴과 몸을 꾸미는 것 따위이다. (중략) 그러한 것들을 모두 사람을 제일 강하게 결박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너희는 부디 이 아홉 가지 법을 버리고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증일아함 제40권 44 〈구중생거품(九衆生居品)〉

이 외에도 증일아함 제38권 마혈천자문팔정품(馬血天子問八正品), 증일아함 제43권 47 〈선악품(善惡品)〉 《마하승기율》 권 제33 명잡송발거법 11 등에 음악의 부정적인 측면을 설하고 있다. 경전에서의 음악에 대한 부정관을 설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출가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이고, 남방불교에서 신도들에게 8계를 수지할 때도 집중 수행기간에 요구하는 계율이므로 음악이나 율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기 보다 재주(기교) 부리거나 쾌락을 쫓는 음악으로 이해해야겠다. 이를 증명하듯 남방불교권에서도 예불문의 율조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고, 30분에 이를 정도로 긴 자비송을 대중이 함께 합송할 때는 율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3) 음악에 대한 긍정적 견해
음악에 대한 긍정관은 대승불교권에서 특히 많이 강조되었다. 이는 불교의 포교와 신행 중에 대중이 한데 모여 의례를 행하는데 그 어떤 것보다 효용성이 큼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초기 승단에서 경전을 합송하는 정도의 율조만 있던 데서 불보살을 찬탄하는 노래가 새로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노래를 통하여 의례가 장엄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부처님을 뵙고 환희하여 예배하고 곧 음악을 연주하여 부처님과 승가 대중을 공양하고 발원한 뒤에 떠나갔다. 부처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사람들은 음악을 연주하여 부처님과 승가 대중을 공양한 공덕으로 미래 세계에 1백 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략) 만약 어떤 사람이 음악을 연주하여 삼보(三寶)에 공양한다면 얻어지는 공덕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할 것이다.”
— 《법원주림》 제36권 34 〈패찬편(唄讚篇)〉

《법화경(法華經)》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만약 사람을 시켜 음악을 연주하게 하되
북을 두드리고 각패(角貝:나팔)를 불며
퉁소·피리·거문고·공후며
비파(琵琶)·징· 바라 등
이와 같이 갖가지 미묘한 소리를
 모두 가져다가 공양을 올리면
그들은 모두 부처님의 도를 이루리라.

이 외에 장아함 권 제10 《석제환인문경(釋提桓因問經)》 《대비로자나성불경소》 권 제8 〈입만다라구연품〉 《남해기귀내법전》 권 제4 등에 음악에 관한 긍정적인 기사들이 실려 있다.
 
3) 한국인들의 불교 신행 속 음악 
아시아 전역 불교문화권 국가에서 예불이나 기도 중에 행하는 모든 낭송과 노래는 ‘범패’이다. 한국에서는 ‘범패’라면 ‘승려가 부르는 전문적인 노래’로 인식하지만, 중국과 대만에서는 사찰에서 의식 중에 행하는 모든 소리가 범패이다. 그러므로 범패는 염불, 조석예불문, 재장에서 승려들이 부르는 노래가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범패는 일반 대중과 승려의 합송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에도 초기의 범패는 대중의 합송이 대부분이었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의하면 산동 적산법화원의 신라인들이 한낮 의식으로 ‘강경의식’ ‘일일강의식’ ‘송경의식’이 행해졌는데 여기에 승려와 대중이 주고받거나 합창하는 다양한 범패가 불렸다. 이들 의식에 수반된 노래들은 당풍·신라풍이 있었는데 신라풍의 노래는 대중이 동음으로 불보살 명호를 반복하는 염불류가 많았다. 이를 통해서 보면 신라 본토에도 일반 대중에 의해서 불리는 신라풍의 범패가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의 범패는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더욱더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산중으로 숨어든 사찰에서는 여러 가지 법기로 의식을 장엄할 수 없었고, 대중이 함께하는 범패 또한 부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반 대중의 범패가 사라지다 보니 범패라면 승려 개인이 독창으로 부르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불교 음반을 보더라도 중국과 대만은 여러 가지 법기와 함께 대중이 합송하는 것이 일반적인 데 비하여 한국은 목탁 하나로 이루어지는 개인 염불이나 전문 범패승의 독창 범패가 주를 이룬다.
오늘날 한국의 범패는 대중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함께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애이다. 실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제 범패는 종교적 의례로서보다 문화재 활동으로 치우치는 감이 있다. 같은 범패라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희귀음반 〈영남범패〉에서는 해방 전후로 부산 지역에서 행해진 범패를 들을 수 있다. 여기에는 여러 승려들이 주고받으며 민요조로 노래하는 범패가락이 다수 있는가 하면 독송으로 부르는 범패도 그다지 어렵거나 기교적이지 않아 대중이 몇 번 들으면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음반에는 대중창으로 노래하는 반염불조, 민요조의 범패와 다양한 법기 사용으로 흥을 돋우는 곡이 다수 있다. 이들 중 〈천수경〉을 들어보면 사물장단과 목탁의 절주가 재장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신명이 난다. 이러한 모습은 산동 신라인들이 다 함께 불보살 명호를 노래하던 노래들과 같이 향토적이면서 대중적인 점에서 오늘날 한국의 불교신행 음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공연 예술적 측면

1) 한국 불교음악의 전개와 갈래

(1) 통일신라시대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기록된 중국 산동 지역 신라인들의 불교의식과 범패를 볼 때 본토인 신라에도 신라풍의 범패가 대중들에 의해 널리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대중이 노래하는 범패는 곧 민요와 일반 음악으로 전이되어 민요에서 불교적인 색채가 그대로 묻어났다. 한편 전해지는 향가의 가사들이 대부분 불교 노래인 것을 보더라도 신라의 불교음악이 얼마나 번성하였는지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국가행사로 정착한 팔관재도 신라시대부터 행해졌던 만큼 역사적으로 공연 예술적 불교음악이 매우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었고 이들은 화려하고 장대한 관현악에서부터 소소한 노래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매우 넓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 때보다 더욱 불교가 공고화되었으므로 불교신앙에 의해 민심을 수습하고 국운의 가호를 위해 수많은 호국 도량과 호국탑을 지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을 통해서 불교음악의 면모를 살펴보면, 왕실과 국가 행사가 불교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이에 수반된 음악들은 모두 불교음악이었다. 그중 한 부분을 소개하면 “11월에 팔관회를 베풀었다. (중략) 왕이 위봉루에 나아가 관람하고 그 명칭을 ‘공불낙신지회(供佛樂神之會)’라 하였다. 이때 수많은 악공이 기악을 하고 춤과 노래로 법연(法宴)이 이루어졌다. 당시 악공들이 연주한 악기와 연주 상황에 대한 연구가 다수 이루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때의 악기들을 보면 요즈음은 볼 수 없는 다양한 악기들이 보이기도 한다.

한편 균여 대사(均如大師, 923~973)는 고려조에 들어 새로운 찬불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를 지었다. 통일신라 말기에 태어나 고려가 개국(918)한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균여 대사는 자신의 성장기에 익힌 신라 향가를 활용하여 찬불가를 지었다. 〈보현십원가〉의 서문을 보면, “대중들이 쉽게 불교를 이해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새롭게 향가를 만들되 대중들이 부르기 쉬운 향찰문으로 가사를 지어 사뇌가 형식으로 가락을 지었다.”고 적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속요’라는 명칭이 생겨났는데 이때의 속요는 요즈음 우리가 생각하는 ‘민간의 가요’라는 의미와 다르다. ‘향가’라는 말이 ‘당풍 범패’와 대칭을 이루는 ‘국악 찬불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듯이 고려의 ‘속요’는 ‘불교음악’과 대칭이 되는 명칭이었다. 왜냐면 당시 궁중음악을 비롯하여 일반 음악이 불교음악이었으므로 일반 음악이 오히려 ‘속요’라는 특별 명칭으로 불렸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음악을 ‘국악’이라 하고 서양음악을 ‘음악’이라 하는 것과도 같다. 이를 증명하듯 고려시대의 도성이 있었던 개성 지역의 서도민요에는 〈긴염불〉 〈자즌염불〉이 민요의 중요한 레퍼토리이다. 한편 고려 궁중에서 연주되던 불교음악 〈영산회상〉과 〈처용무〉 등은 조선시대까지도 궁중에서 연행되기도 하였을 정도로 시대와 왕권을 초월하여 한민족의 사랑을 받았던 악가무였다.

(3) 조선 초기의 불교음악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를 국교로 삼았으나 유교는 정치적 이념과 현세적 의례에 그쳤고 사후의 세계와 관련이 있는 불교적인 의례가 지속되면서 불교음악도 어느 정도 그 맥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세종은 소헌왕후 심씨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석보상절》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양나라 승우(僧祐)의 《석가보(釋迦譜)》 《법화경》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 《약사경》 등에서 뽑은 내용을 한글로 풀이한 석가모니의 일대기이다. 이듬해(세종 29년, 1447)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또한 세종은 치세 31년(1449)이 되던 해에 선왕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인왕산에 불당을 건립한 후 낙성식을 겸한 법연을 베풀었다. 이때 행해진 불교의례와 내용을 김수온(金守溫)이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것이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이다. 

《사리영응기》에는 봉불의식에 쓰였던 찬불가가 실려 있다. 이들 노래의 작사자는 따로 밝혀져 있지 않고, 악곡은 세종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악곡의 가사를 보면 ‘귀삼보’ ‘찬법신’ ‘찬보신’ ‘찬화신’ ‘찬약사’ ‘찬미타’ ‘찬삼승’ ‘찬팔부’ ‘희명자(영가의 명복을 빔)’ 등으로 부처를 비롯한 모든 성현을 공양한 뒤 일체중생의 영혼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악곡을 연주한 악기들을 보면, 편종·편경을 비롯한 악기가 29종, 연주자가 45명, 죽간자 2명, 노래 10명, 무용 10명으로 총 67명의 가무단이 연주하고 있다. 이상 내용을 볼 때 왕이 곡을 짓고, 왕손과 승려가 함께 노래하고 의식을 행하는 데다 관현악 반주에 악가무가 수반되는 불교음악 연주가 매우 융성한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4) 조선 후기
조선 초기와 달리 후기로 가면서 유생들의 세력에 의해 궁중에서 행해지던 〈영산회상〉은 결국 민간의 풍류음악으로, 〈영산회상〉과 합설로 연주되던 〈처용무〉는 오방작법무로 변하였다. 궁중의 후원과 호위에서 벗어난 불교의식은 무당의 푸닥거리나 민간의 유흥음악으로 변해갔다. 억불정책으로 강제 환속한 승려들은 거사나 혹은 기타 잉여 인력으로 전락하였다. 거사와 더불어 재불 여자는 사당(社堂)이라고 하였는데 세조 이후 이들 잉여 집단의 사회적 물의가 문헌에 등장하기도 한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유민 일부가 거사 집단과 합세하여 떠돌이 예인 생활을 하는 남(男)사당패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국가의 보호에서 벗어난 사찰의 빈약한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유랑 예인 집단과 불교의 전략적 제휴가 이루어져 사찰의 신표를 받아서 불사를 행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법고춤과 바라춤을 추며 수익을 창출하였고 불교의식과 행사에서 행해지던 다양한 노래와 춤은 민간의 놀이와 잡기가 되었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무리들은 사찰과 대중을 연결시키며 민중의 삶 속에서 복잡한 양상을 지녔고, 그 존재 양태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조선시대의 감로탱에서 볼 수 있으니 사찰에 그려진 불화 속의 사당패, 솟대패 등이 그것이다. 이때의 떠돌이 예인 집단은 승려가 주도하는 걸립패에서부터 사당패, 초라니패, 솟대쟁이패, 걸립패, 중매구패, 광대패, 대광대패, 무동패, 애기장사, 풍각장이패, 남사당패, 굿중패로 변모되어 오다 마침내 붙박이 예인 집단인 선소리패까지 생겨났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민간에 숨어든 불교 악가무 중에 불교에서 비롯된 것을 골라내어 현대화하고 공연화한다면 다양한 레퍼토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5) 오늘날의 영산재
영산재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됨으로써 한때 단절의 위기를 겪던 불교 악가무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리하여 전국 각지에 범패 승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반 공연장에서 불교 악가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비중이 점차 문화 활동으로 기울어지면서 이들 악가무를 예술 행위로 볼 것이냐 종교 행위로 볼 것이냐 하는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불교 악가무가 가진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의례의 뜻이 무엇인지 노래의 내용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문화재를 구경하는 관중들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제는 문화재 악가무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두고, 실제 신행에 이들 음악적 아이템을 되살려 대중이 함께할 수 있는 실용 의례음악을 창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실용 의례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지 알아보자.

2) 전통의 회복과 현대화

(1) 전통의 복원

① 의례와 법구(法具)

한국의 사찰의례나 행사에서 법기 활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                         

가 있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평일의 조석예불에도 대경, 인경, 목탁, 협자(자바라), 불령(종), 당자(1개로 된 운라), 영고(종과 북 세트) 등으로 박절을 넣으며 의식을 진행한다. 이때 법기는 노래의 반주 뿐 아니라 의식을 이끌어 가는 신호의 역할도 하거니와 의례를 장엄하고 성스럽게 한다. 법회(한국의 재와 비교됨) 때는 보다 많은 법기들을 동반하여 마치 한국의 사물놀이와 같이 흥겨운 반주를 한다.

같은 대승불교권인 중국이나 대만에 비해 티베트는 법기와 음악적 활용이 보다 적극적이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의례 중에 선율악기를 일절 배제하지만 티베트에서는 나팔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다음 페이지의 사진은 즈쿵 사원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 예불에서도 이와 같은 법기 사용을 볼 수 있다. 대만의 요발과 같은 법기를 들고 있는 승려가 있는가 하면 맞은편 승려(사진에는 보이지 않음)는 요령을 흔들며 경전의 구절마다 타악기로 송경 절주를 반주하고 있다. 그 오른편 사진에 보이는 손북은 북 양면에 끈으로 연결된 고리가 있어 북을 흔들면 소리가 나는데 한국의 소고와 유사하다.

재미난 것은 지금도 경상도 지역에서 소고를 ‘버꾸’라고 하는데 이는 ‘법구(法具)’ ‘법고(法鼓)’ 혹은 사찰 의물을 통틀어 지칭하는 ‘법구’에서


                      불공을 하고 있는 승려들             법기를 두드리며 시주하고 있는 비구니

온 말이다. 조선 말기 민간 유랑인들 중에 ‘중매구패’가 있는데 ‘매구’는 꽹과리를 칭하는 방언으로 승려 집단의 풍물단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사물놀이에서 꽹과리가 리더를 하듯이 경상도 지역에서 재를 지낼 때는 어장 승려가 광쇠(꽹과리)로써 범패뿐 아니라 모든 의례를 이끌어 간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볼 때 한국의 사찰에도 예전에는 중국·대만·티베트 못지않게 다양한 법구들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서 오늘날 한국 사찰의 법기 활용은 매우 빈약하다. 이는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산중에서 조용히 의례를 행하면서 축소된 것이지 우리네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조석예불과 연중 사찰 행사에 다양한 법기를 활용하면 신행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천 배를 할 때도 북을 치고, 사물을 두드려 대중의 움직임에 리듬을 주면 힘들이지 않고 절하면서 환희심을 증진 시킬 수 있다. 이는 또한 불교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② 궁중과 민간 음악에서 불교음악 되찾기
조선조 성종 대에 편찬된 《악학궤범》에는 궁중에서 〈영산회상〉과 더불어 ‘학연화대 처용무’를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과 세조 대의 음악을 기보한 《대악후보》의 영산회상에는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가사가 붙어 있으니 이러한 가사를 되살려서 불교음악화 할 수 있다. 또한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하여 《사리영응기》에 보이는 의식을 재현하고 그 속에 있는 음악을 복원해 보면 불교계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불교음악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어설픈 복원은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긴 시간을 두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하여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제대로 된 복원이어야 한다.

한편 민간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풍속 놀이나 민요와 춤 중에서 본래 불교 악가무였던 것이 많다. 이들 중에 불교적 악가무를 골라내어 불교 공연물로 되살리고 이를 현대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민요로 불리는 긴염불 자진염불, 판소리조로 불리는 보렴(보시 염불의 준말), 선율이 사라진 향가의 복원을 통해 불교 악가무의 레퍼토리가 다양해지면 오늘날 산사음악회에서 대중가수들을 불러와서 비난을 받는 일은 면하게 될 것이다. 간혹 이들 민요나 향가를 복원한 국악 연주가 행해지기는 하지만 이들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것은 너무 국악에 매여 대중화에 실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층의 감성에 부합하는 불교음악을 위해서는 보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도발(?)이 필요한 것 같다.       

4. 치유와 명상적 측면 
 
20세기 접어들어 서구의 뮤지션들은 전통의 사상과 음악 행위에 반기를 들며 다다이즘을 비롯하여 우연성음악·구체음악·전위음악·전자음악과 같은 무수히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쏟아냈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장르의 공존으로 안착해 갔는데 여기에는 무외음과 같은 소리 세계를 공연화하는 움직임도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인용한 존 케이지의 4분 33초이다. 한발 더 나아가 요즈음은 심신을 치유하고, 명상으로 몰입하게 하는 음악이 대중음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자연음과 소리가 없는 무외음의 경지까지 무한히 넓은 불교음악이 현대의 치유 음악으로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 
 
1) 명상음악의 흐름
일찍이 명상음악으로 많이 알려진 것은 인도의 라즈니쉬의 아쉬람에서 발간되는 시리즈들이다. 이들 음반은 뉴에이지 음악과 인도의 전통악기들이 크로스오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로서 이들 음악을 분석해 보면 음악적으로 그다지 높은 예술성을 지니거나 연주에서 뛰어난 기교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잔잔히 흐르는 이런 음악들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명상적 아이디어와 거기에 수반되는 인도 악기가 주는 동양적 이미지가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티베트불교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면서 요즈음 뉴욕에서는 “티베트의 ‘티’ 자만 붙어도 장사가 된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그런 만큼 티베트 불교의례에 수반되는 모든 법기들이 명상음악의 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직접 의례를 집전하며 시범을 보여준 금강령과 금강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명 싱잉볼(Singing Bowl)이라고 불리는 놋쇠 주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이 주발은 막대로 문지르거나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데 신비스러운 공명과 강한 파동을 일으켜 마음과 정신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티베트는 불교 의례뿐 아니라 민간의 악기들도 명상음악으로 활용된다. 한국에도 이런 음반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데 대나무 피리 연주자 나왕 케촉과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피터 케이터가 협연한 음반 ‘더 댄스 오브 이노선츠(the dance of innocents)’도 그중 하나이다.

인도, 티베트로 대표되던 불교 명상음악이 이제는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번져가고 있다.  아래 사진의 재킷은 최근에 뉴욕에서 구입한 것이다. 월드뮤직 시리즈 중 하나인 본 음반을 만든 사람들은 티베트 스님을 비롯하여 스웨덴, 남미 등 다국적 인물과 악기들이 참여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인도의 바잔 음악과 라가, 자바, 티베트 등 동양적 소리 음향과 남미의 인디오 악기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퓨전 명상음악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종래의 인도 음악이 명상음악이나 월드뮤직의 한 파트로 활용될 때 주로 고전음악인 고전 힌두음악인 ‘라가’를 활용해 왔는데 이제는 오늘날 대중적 힌두음악인 ‘바잔’이 편성되기 시작했으며 명상음악의 다양성과 대중성을 느끼게 한다.  
  
2) 한국의 명상음악
서양인들에게 동양음악은 어찌 보면 모두가 명상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명상적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한국 전통음악이 대부분 명상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데, 궁중음악과 정악에 이러한 면이 많다. 불교음악 계통의 음악들에 명상음악이라는 부제가 붙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뉴욕이나 세계 각지에서 출반되는 명상음악들을 보면, 대개 미니멀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진언이나 불명을 연속하여 부르는 염불과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옴마니반메훔’과 같은 진언인데, 이들은 반복되는 율조의 패턴으로 몰아의 상태에 접어들거나 심신의 안정을 얻게 하는 현대적인 염불이라 할 만하다. 한국에는 여러 스님들의 염불을 담은 음반이 시리즈로 출반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세계 명상음악의 흐름에 합류하지는 못하는 것은 왜일까? 이제 우리도 염불을 기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수행의 도구로 여기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를 활용한 세련되고 여법한 명상음악이 탄생할 수 있는 모태가 될 것이다.

한국 명상음악의 대표적인 소재를 들자면 〈영산회상〉을 들 수 있다. 본래 ‘영산회상불보살’을 노래하던 곡에서 중령산·세령산·상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가락덜이·타령·군악에 이르기까지 9곡의 모음곡으로 확대되었다. 이들은 각각 관현악곡·실내악곡·관악합주로 연주하므로 근 30곡에 가까운 레퍼토리가 된다. 더구나 이들 편성 중의 악기들이 각기 독립하여 독주곡으로 연주하면 또 다른 악곡이 되기도 한다.

〈영산회상〉에서 천년만세를 이어 타는 별곡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영산회상〉의 레퍼토리는 끝도 한도 없는 셈이다. 요즈음은 〈영산회상〉을 주제로 한 새로운 창작곡들이 종종 발표된다. 아래 사진의 〈미래회상〉은 이러한 음반들 중 최근에 발표된 것으로 여러 작곡가들이 나름의 음악 어법으로 재창작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악곡의 면모를 살펴보면 피아노를 비롯하여 다양한 악기 음색이 크로스오버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작곡가들은 일반 음악적 개념으로 〈영산회상〉 선율을 활용하고 있지만 불교음악인 〈영산회상〉에서 비롯된 점만으로도 뛰어난 명상음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위 사진에서 조석예불을 명상음악화한 김영동의 〈선〉은 지금도 명반으로 꼽힐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음반의 가장 큰 의미는 한국은 물론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조석예불의 아름다움을 알게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을 듣고 산사의 맑은 기운과 정신을 느끼며 심신의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필자(윤소희)의 〈소리향〉은 완전히 자신의 음악적 기법으로 창작된 음악들이다. 그러나 이 음반 속의 곡들의 제목을 보면 불교음악이라는 느낌이 그다지 없다. 이는 의도적으로 불교를 넘어서서 일반인들에게까지 접근하고자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다수의 음반들이 불교 명상음반으로 출시되었지만 대만이나 기타 불교문화권의 명상음반들에 비하면 너무도 빈약한 레퍼토리이다. 이런 데에는 오늘날 사회적으로 만연되고 있는 음반 불법복제로 인해 생산자들이 음반 제작을 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없는 것도 한몫을 한다. 

반면 불자들 중에는 “불교적이면서도 명상적인 음반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못 산다.”라고 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이 안 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성당마다 성물 판매소가 있어 신자들의 편의를 제공하면서 운영 수익도 올리고 있다. 사찰에도 불교음반을 비치하여 불자들이 음반을 구매함으로써 불교음악을 후원하고, 음반 발매자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찰에 보시한다면 유통과정의 손실을 덜면서 불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불교음악이 보급되는 이익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5. 대중음악으로서 가능성과 방향
  
현대를 일러 대중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의 구심점이 왕과 귀족들에 있었고, 불교 또한 왕과 승려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오늘날은 국가의 지도자도 대중이 선출하고 시대의 흐름도 대중의 취향에 따라 변해간다. 이름 하여 대중이 주인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대중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불교음악의 시대를 개척해야 한다. 아시아를 휩쓴 한류가 이제는 유럽까지 선풍을 일으키고 있듯이 케이팝(K-pop)을 활용한 불교음악은 한국불교의 부흥과 세계 불교음악에 한류의 붐을 일으킬 역량이 충분하다.

조석으로 하는 사찰 사물타주를 비롯하여 여기에서 비롯된 사물놀이, 재식에 수반되는 다양한 악가무에 세계문화재급의 영산재는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대만의 대중 불교음악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현재의 한국 불교음악은 다소 빈약해 보이지만 한민족이 지닌 악가무적 저력을 생각해 보면 결코 비관할 일이 아니다.  본고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시대와 일제를 거치며 세속화되어버린 불교음악을 찾아내어 케이팝을 입혀본다면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대중 불교음악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이 개발될 것이다.

전통적인 요소를 살려 대중화한 음악으로는 박범훈의 위 음반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탑돌이나 회심곡, 가요 등을 국악 관현악의 반주로 노래함으로써 음악적으로 풍성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음악도 이제는 장년층의 음악이 되어 청년들이나 젊은 세대에게는 정서적으로 흥미를 끌기가 어렵다. 불교음악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는 어린이부터 청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다. 불교음악이라면 느리다는 선입견이 있을 정도로 빠르고 신명 나는 음악이 드물다. 그런 점에서 좀 더 경쾌하고 비트감이 있는 악곡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현재 대중음악, 혹은 청소년을 위한 불교음악을 보면, 보컬그룹을 형성한 ‘야소다라’ 팝스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붓다 콘서트’ 《반야심경》을 랩으로 부른 ‘순야타’ 20대의 젊은 불자 가수 강혜윤의 활동과 찬불동요를 만들어 오고 있는 ‘좋은벗 풍경소리’와 같은 단체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단체들의 사정 얘기를 들어 보면 그야말로 사막을 걷는 듯이 팍팍하고 힘들다. 사찰에 어린이와 청년이 없다는 것은 불교의 미래가 없다는 것과도 같다. 찬송가가 좋아서 교회 간다는 사람들이 있듯이 찬불가가 좋아서 절에 오는 어린이와 청년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젊은 찬불가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호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불교 언론에서는 청년 불교음악 스타가 만들어지도록 ‘띄워 주기 작전’이 필요하다. 사찰 행사에서도 젊은 음악인들의 무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힘을 얻은 악단과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음악어법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해 오던 불교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탑돌이〉 〈회심곡〉 혹은 조선 말기 비승비속의 유랑인들이 해 오던 불교음악들을 케이팝 불교음악으로 재창조한다면 사찰에서도 앞다투어 부를 것으로 보이거니와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폭 넓은 팬 층을 확보할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융합한 퓨전음악과 악가무를 과감하게 시도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대중문화 시대이니까. 

6. 맺음말 
 
불교음악의 세계는 소리 없는 영역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넓다. 또한 음악이 끝나는 지점부터 진정한 불교가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심오한 세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대부분 불자들에게는 음악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조석예불문과 염불에 율조가 없으면 대중이 함께 의례를 진행할 수가 없거니와 여기에 수반되는 목탁과 기타 여러 법구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들어본 음악 중에서 불교적인 감화와 미적인 감동을 받은 음악을 든다면, 티베트의 참무에서 턱 하니 늘어뜨리는 춤 동작, 미얀마와 대만의 수행처에서 들려오는 조모과송, 한국 고찰의 새벽예불송, 범패 중에는 해방 전후로 활동한 범어사 출신 용운 스님의 범성이 그랬다. 부드러운 저음으로 느긋이 울려내는 용운 스님의 범패는 온갖 시름을 놓게 하였다.

예를 든 이들 악가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수행’과 ‘무심(無心)’이었고, ‘무심’으로 울려내는 노래와 춤에는 ‘의도하지 않는 기품’이 있었다.

이를 볼 때 불교음악은 ‘굳이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신심이 그윽하면 그 자체가 음악으로 들리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불교음악은 음악을 하지 않는 음악’이며, 거기에서 풍겨 나오는 ‘무심’과 ‘품위’야말로 불교음악의 지향점이고, 이것이 곧 ‘소리를 볼 수 있는 관세음(觀世音)의 경지’이며 타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음악의 세계이다. 따라서 불교음악을 위해서는 먼저 아집을 덜어내는 수행과 청정한 신심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한국의 불교음악이 세계화되고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한국 사람들의 영성적 순수와 진정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멋진 불교음악을 듣고 사찰에 오는 사람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이들이 귀의하고 싶을 만큼의 교단이 아니라면 음악은 음악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한국 불교음악의 현 상황과 미래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많이 얽혀 있다. 조선시대와 일제를 거치면서 세속 잡기와 무속과 불교의례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하여 불보살을 찬탄하는 노래가 ‘천박하고 비루하여 도깨비장난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이들은 결국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가 오늘날은 문화재 활동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 음악에서 불교적인 감화를 받을 수 없다’거나 출가자의 계율이 무용지물인 범패 승단을 일러 ‘승복으로 분장한 예술단’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나본 범패 승려들 중에는 계율 가운데서 삼보에 대한 찬탄과 공양에 지극 정성인 스님들도 많았다. 오히려 문화재 음악의 가장 큰 한계는 대중과의 소통이 어려운 점이다. 문화재라는 근본 취지가 ‘과거의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므로 원형은 원형대로 두고 그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시도가 없는 것이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범패를 너무 특수한 노래로만 인식되는 편견을 깰 필요가 있다. 범패는 승려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요, 불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는 한글 영산재, 한글화된 의례문을 현대인들의 감성에 맞는 선율과 리듬으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 

이렇게 된다면 세계문화재급의 불교음악이 있음에도 의례 중에 신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찬불가(범패)가 없다는 고질적인 난관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다리 구실을 하는 음악이 많이 아주 많이 만들어지고 시도되어야 한다. 한글 가사에 의한 노래와 염불과 민요, 좀 더 빠르고 경쾌한 찬불가들이 쓰여야 하고, 삼천 배나 기타 불교 의례에 다양한 법구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대중적인 음악들도 과감히 시도해 보면 좋겠다. 

그간 만들어진 수많은 불교음악들의 활용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찬불동요를 비롯하여 수많은 찬불가가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찬불가들이 합창단의 전유물로만 활용되고 있다.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하고 싶어도 불자용 찬불가집이 없다는 지적도 들었다. 성당이나 교회의 찬송가집처럼 한 손에 잡히는 가볍고 작은 일반 불자용 찬불가집이 널리 보급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찬불가의 선별과 저작권 및 기타 여러 제도적 해결까지 종단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문제와 재가불자들의 원활한 소통과 진행 등 많은 구체적 실행이 필요하다.

정보의 전달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져 가는 21세기는 잘 만들어진 불교음악 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포교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의 시대이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져 있는 좋은 자산들도 활용하지 않고 있는 불교계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세조는 “왜 우리 조상들은 살아서는 우리 음악을 듣다가 죽어서는 중국 음악을 들어야 하느냐?”며 기존 제례악의 틀에 향악을 얹은 퓨전음악인 종묘제례악을 만들었고, 그것을 과감하게 제사 음악으로 채용하였다. 이제 우리에게도 세조 이상의 과감한 불교문화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

 

윤소희 / 부산대학교, 동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원 강사. 부산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작곡으로 석사학위, 한양대학교 음악인류학 박사학위 취득. 《한·중 불교음악 연구》 《신라의 소리 영남범패》 외 다수의 저서와 〈불교음악의 기원과 전개〉 〈티벳 탐무를 통해 본 처용무와 영산재〉 〈팔리어 경전 독송과 찬팅에 관한 연구〉 등 불교음악 관련 논문이 있다. 창작 활동으로 음반 〈소리향〉을 출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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