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상’ 심사평

불교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보편적 평등과 자비를 지향하는 종교다. 브라만교가 아리안족과 인도 대륙에 안주한 반면, 불교는 설산을 넘고 광활한 사막을 지나 중앙아시아와 중국 대륙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불교가 특정한 지역과 민족의 종교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르침이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족불교’라는 말을 지극히 당연하고 심지어 자랑스럽게 사용해 왔다. 그것은 대동아 공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나라를 강탈했던 일제 강점기의 아픈 경험에서 유래되었다. 일제가 내세운 ‘내선일치’나 ‘대동아 공영’이라는 담론은 영토확장의 욕망으로 덧칠된 폭력적 획일성을 기저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민족적 특수성과 문화적 차별성을 드러내는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폭력적 획일성에 맞설 수 있는 저항의 담론이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한국불교 일각에서도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불교를 일본불교로 동화시킴으로써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일제에 맞설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수단이 바로 민족주의였기 때문이다. 근대불교사를 기술하는 불교학계의 관점은 이와 같은 상황에 주목해 왔다. 한국 근대불교를 민족주의를 통해 일제에 항거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보해 가는 역사로 기술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불교사를 친일과 그에 맞선 민족주의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만 기술하는 것은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당대 불교계가 안고 있었던 다양한 문제인식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조성택 교수의 〈근대한국불교사 기술의 문제: 민족주의적 역사 기술에 관한 비판〉이라는 논문은 이와 같은 역사기술 방식에 대한 성찰과 반론을 담고 있다.

논자는 1895년 도성 출입금지에서 풀린 조선불교가 불교 근대화의 모델로 선택한 것이 일본불교였으며, 일본불교를 통해 조선불교의 근대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불교계의 이중적 상황을 지적한다. 교육제도의 개편, 도심포교당의 개설, 사회복지 기관의 운영, 나아가 승려의 결혼 허용 등은 친일의 문제라기보다 한국불교의 근대화라는 측면에서 모색된 조치들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을 친일과 반일이라는 구도로만 도식화하면 불교의 근대화를 위한 고민과 접근은 사장되고 친일과 반일이라는 정치적 구도만 남게 된다는 지적이다.

민족불교라는 담론은 당대의 시대적 맥락에서는 분명 타당하고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글로벌화되었고 이제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우리 사회도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변모했다. 따라서 민족불교라는 협소한 자기규정이 한국불교를 나타내는 담론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세계적 경제력과 문화적 파급력을 지닌 국가에서 민족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약소국과 소수자에게 억압적 민족주의로 군림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불교평론》은 조성택 교수의 논문을 새로운 시대 상황에 걸맞은 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고민으로 평가했다. 《불교평론》은 조성택 교수의 논문을 올해의 논문으로 선정함으로써 근대불교에 대한 민족주의적 기술에 대해 성찰하고, 불교의 보편적 자비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

 

2010년 11월


심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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