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영(본지 편집위원)

 

서재영
(본지 편집위원)

요즘 한국불교가 추진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다. 몇 년 전부터 조계종에서 추진하는 사업에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이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최근 한국불교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씨’를 뿌리겠다.”고 포부를 밝힌 것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감지된다. 바야흐로 한국불교가 세계를 향해 눈을 뜨는 순간이다.

토인비는 20세기 최대의 사건은 불교와 서양의 만남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초월적 신앙의 급격한 퇴조를 가져왔다. 반면 요가와 명상 등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서구사회가 직면한 문명사적 전환기에 불교가 대안적 종교로 주목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불교가 국경을 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겠다는 다짐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세계불교의 현황을 먼저 분석하고 한국불교의 강점과 정체성을 가다듬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세계에 불법을 전한 나라들은 저마다 독특한 자기 색깔과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서양에 선불교를 전한 것은 일본의 공이 크다. 스즈키 다이세츠와 스즈키 순류로 대표되는 임제종과 조동종의 선풍은 1950년대 미국에 선 붐(Zen Boom)을 불러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에 의해 소개된 선은 C.G 융과 에리히 프롬 등 많은 지식인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게리 스나이더, 앨런 긴스버그 등 비트의 문인들과 대안문화를 추구하는 히피들에게 사상적 자양분이 되었다. 문화와 예술에 뿌려진 선의 씨앗은 1990년대 말부터 패션과 디자인 등으로 확산되면서 소위 젠스타일(Zen Style)로 꽃피기 시작했고, ‘집중’과 ‘단순성’을 모토로 하는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철학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탄생했다.

서구불교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전통은 남방불교다. 미얀마, 태국을 위시한 남방불교는 위빠사나 수행법으로 독창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미얀마의 마하시 명상센터와 같이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수행센터는 물론 외국어에 능숙한 스님들이 자국과 외국에서 수행을 지도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위빠사나는 존 카밧진에 의해 체계화된 MBSR 등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과 접목되면서 영역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남방불교에 견줄 만할 또 다른 불교 전통은 티베트불교이다. 티베트불교는 달라이 라마라는 살아 있는 스승의 종교적 감화력에 의해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학 강연에 청중들이 몰려드는 것은 물론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대중법회에도 수만 명이 모여들 만큼 견고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특히 티베트불교를 전하기 위해 설립된 샴발라는 세계 최대의 불교출판사로 성장하여 서구에 불교를 전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베트남불교와 대만불교도 분명한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임제종 전통을 물려받았지만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서구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행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쉽게 번역된 불교용어, 구체적이고 명료한 설법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프랑스 남부에 설립된 플럼빌리지는 대표적인 수행센터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스님이 반전 평화를 모토로 하는 ‘참여불교’를 지향함으로써 현대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대문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불교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불교는 비록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불과 수십 년 만에 대만의 최대 종교로 급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2백여 곳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서양은 물론 아프리카에까지 불학원(佛學院)을 설립함으로써 그야말로 불교의 세계화의 선두주자로 뛰고 있다. 특히 재난구제와 복지활동에 초점을 둔 자제기금회는 7백 만에 달하는 후원회원을 거느리고 있을 만큼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이처럼 세계무대에서 불교를 전파하고 있는 나라들은 저마다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나름의 강점이 있다. 물론 한국불교도 다양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고려대장경으로 대표되는 유구한 역사, 매년 2천여 명의 수행자들이 안거에 들어가는 살아 있는 수행전통, 열정적이고 신심 깊은 불자, 찬란한 전통문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강점들은 한국이라는 영역 안에서만 작동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인류보편의 요구에 부합하고 한국불교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불교의 모범사례를 종단적 차원에서 연구해야 한다. 여건상 많은 사례를 분석할 수 없다면 우리와 유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대만불교만이라도 집중분석해야 한다. 대만불교는 우리와 같이 한문불전에 기반을 두고 있고, 지리적으로 동아시아권에 있으며, 신앙적으로 대승불교를 배경으로 하며, 열정적 신도들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딱히 내세울 만한 강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대만불교에 대한 탐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만불교는 한문불전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함으로써 한문불전에 담지된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다. 일례로 대정신수대장경과 속장경을 전산화하여 모든 불교학자들이 애용하는 기본 텍스트로 만듦으로써 한전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스스로 그 수혜를 누리고 있다. 이는 중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중국불교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욱 뚜렷한 강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에게도 대정장의 모본이 된 고려대장경이라는 최고 수준의 한문불전이 있다. 한국불교의 뿌리인 한문불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대만불교는 대승불교의 정체성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대만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봉사와 사회복지 등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참여불교이다. 대승행자의 종교적 서원에서 보살행이라는 열정적 삶이 나오고, 봉사활동을 종교적 실천으로 승화시켜 낼 수 있는 당위가 나온다. 자제기금회는 어려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를 통해 봉사하는 불교, 고난에 처한 중생에게 구제의 손을 내미는 불교를 지향하고 있다.

셋째, 인간불교로 대변되는 실천이념이다. 우리가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이상에 무게를 둔 출세간 중심의 불교라면 대만불교는 인간불교로 대변되는 참여불교이자,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불교이다. 한국불교도 불교를 위한 불교, 출가자를 위한 불교가 아니라 중생을 위해 보살행을 실천하는 대승불교의 정신과 신행을 살려내야 한다.

한국불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17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불교가 어떻게 대만불교를 배울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교의 역사는 상호 배움의 전통을 통해 발전해 왔다. 중국불교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오는 인도와 서역의 불교사상과 문화를 1천 년 동안 배우고 익혀 중국불교를 완성했다.
한국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신라에서 시작된 구법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졌고,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구법승들이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났다. 하지만 문화혁명과 더불어 배워야 할 중국불교는 사라졌고, 이와 더불어 배움의 전통도 단절되었다. 대신 일본불교가 근대 한국불교의 모델이 되었다.

개항 이후 50여 년간 한국불교는 일본불교를 통해 근대불교를 조형해 내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불교는 해방과 더불어 청산해야 할 전통이 되고 말았다. 이후 한국불교는 배워야 할 모델을 잃어버렸고, 다른 나라를 통해 장점을 배우는 자세도 망각했다.

하지만 한국불교가 세계로 눈을 돌리고 세계화를 꿈꾼다면 이와 같은 전통은 회복되어야 한다.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불교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여 세계적인 보편성을 담보하는 한국불교의 글로컬리티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

2011년 12월

서재영(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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