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칸 시렌 지음, 정천구 역주 《원형석서(元亨釋書)》

《원형석서》(상하 2권)
씨아이알 간, 2010. 12.
총1,408쪽, 값 상 38,000원, 하 32,000원
하얀 백지를 앞에 두고 잠시 선정에 들어가 보자.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연후에 스님들 이름을 한번 적어보기로 하자. 일단 우리나라 스님들 중에서 현존하지 않는 분들의 법명이나 법호나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는 것이다. 과연 몇 명이나 쓸 수 있을까? 정천구(丁天求, 1967~ )선생께서 애써 주신 공덕으로, 우리말로 번역된 《원형석서》(상하 2권)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일본 스님들의 이름을 아는 대로 적어 보시오.”라는 문제가 주어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고칸 시렌(虎關師鍊, 1278~1346)의 《원형석서》는 일본불교사 전반기, 즉 전래(552년)로부터 《원형석서》의 완성(1322년)에 이르는, 약 760년의 세월을 살았던 일본 스님들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독립된 전(傳)을 갖추어서 다룬 인물이 총 472명이고, 그중에 스님들은 417명이다. 스님이 아닌 인물로는 왕신(王臣)이 42명이고 신선(神仙)이 13명이다. 여기에 다른 스님들을 논하면서 이름이 등장하는 분들까지 더 헤아린다면 그 수는 좀 더 늘어나리라 본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색인이 없어서 그 수를 헤아릴 수는 없었다.

목차를 통해서 헤아려 본 472명의 등장인물 중 한 번이라도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분은 얼마나 될까? 나 스스로 헤아려 보았다. 결과는 86명. 그러니까 처음 들어 보는 스님들이 339명이나 된 것이다. 《원형석서》가 다루는 시대의 스님들 중에서, 내가 번역한 《인물로 보는 일본불교사》(松尾剛次 지음, 동대출판부, 2005)에 등장하는 분은 겨우 18명뿐이었다. 결국 《원형석서》를 읽는다는 것은 일본불교의 통사(通史)나 개설서를 지나서, 거기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많은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다름 아니다.

《원형석서》의 체재(體裁)와 내용

고칸 시렌에게 일본불교사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일이야말로 발밑을 살펴보는 일(照顧脚下)이다. 동시에 그 스스로 불교를 넓히는 계기도 되었으리라. 비록 임제종의 선승이었으나 선의 전통만이 아니라 모든 불교 종파를 다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료를 읽고, 정리하고, 직접 발품을 팔아서 여러 가지 증언을 듣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30권으로 《원형석서》(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元亨 연간에 이루어진 불교 책’이다)를 완성했으니, 그 구성은 다음과 같이 도표로 나타낼 수 있다.

열전(列傳) : 1-19권(僧俗 4백여 명의 傳記)
자치표(資治表) : 20-26권(편년체 佛敎史)
지(志) : 27-30권(열 가지 분류법에 의한 분류)

열전은 스님들을 비롯한 인물의 전기를 담고 있는데, 그 끝에는 그 인물을 기리는 찬(讚)과 특정한 주제를 좀 더 논의하는 논(論)이 부가되어 있다. 한 인물에 찬과 논이 다 있는 경우도 있고, 몇 사람을 묶어서 하나의 찬이나 논을 쓰는 경우도 있다. 앞서 472명의 인물이 다루어지고 있다 하였는데, 이를 다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범주(十度, 十傳)로 나누었다.

전지(傳智) : 법을 전한 스님들
혜해(慧解) : 법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스님들
정선(淨禪) : 선을 전하여 선풍을 드날린 스님들
감진(感進) : 감응과 영험을 남긴 스님들
인행(忍行) : 고행과 인욕에 투철했던 스님들
명계(明戒) : 계율을 잘 지키고 넓혔던 스님들
단흥(檀興) : 보시와 나눔으로 민간을 구제했던 스님들
방응(方應) : 중생의 제도를 위하여 나투신 스님들
역유(力遊) : 힘써 건너갔거나 건너오신 스님들
원잡(願雜) 고덕(古德) : 자세한 이력을 알 수 없는 스님들
왕신(王臣) : 왕과 신하
니녀(尼女) : 비구니
신선(神仙) : 신도와 불교의 관계
영괴(靈怪) : 신령하고도 괴이하게 들리는 영험담
도총론(度摠論) : 열 가지 범주를 설정한 이유

원잡에서는 앞의 아홉 가지 범주에 다 포섭되지 않는 스님이나 인물을 다시 더 거두어들인다. 거기에는 《원형석서》의 편집 방침을 알 수 있는 도총론까지 두었는데, 이는 고승전(高僧傳)의 서문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까지 하나의 정연한 고승전이 되었다. 여기서 끝나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칸 시렌은 중국의 고승전이 대개 열전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못마땅해하면서, 그것을 극복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자치표와 지를 덧보태게 된 것이다. 마치 2권의 책을 하나로 합친 것과 같은, 중층적인 구성을 선택한 셈이다.

자치표(資治表)는 불교를 받아들인 킨메이(欽明)황제로부터 겐랴쿠(建曆)황제까지 총 54명의 황제의 치세 중에 일어난 불교사를 서술한다. 편년체(編年體)의 통시적 서술로서, 열전이나 지가 가진 공시적 서술과 짝을 이루면서 서로 상보적인 역할을 하도록 했다. 자료는 《일본서기》 등의 일반적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불교 부분을 절요(節要)한 뒤, 고칸 시렌 스스로 그 기사(記事)에 대해서 좀 더 부연 해설하는 사기(私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절요 부분보다는 사기 부분을 한 글자 정도 들여쓰기함으로써, 이 양자를 구별해 주고 있다.

다음 지(志)는 불교교단의 일 중에 중요한 것을 공시적으로 논의해 본 것인데, 다음과 같이 다시 열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 범주의 세부 내용은 열전의 그것(十度)과 다르지만, 자치표를 중심에 두고서 좌우에 서로 열 가지 범주를 배치한다는 점에서는 유사성이 있다. 대칭의 형식적 구조를 보여준다. 지의 열 가지 범주(十志)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학수(學修) : 배움과 수행
도수(度受) : 출가와 수계
제종(諸宗) : 여러 종파
회의(會儀) : 정치와 불교의 관계
봉직(封職) : 승관 등 교단의 직제
사상(寺像) : 30개의 사찰을 소개함
음예(音藝) : 염불과 범패 등 불교의 예능
습이(拾異) : 기이한 영험담
출쟁(黜爭) : 교단 안의 다툼
서설(序說) : 《원형석서》의 편찬 방침

원잡의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도총론이 열전의 편찬 방침을 밝힌 서론이라 할 수 있다면, 지에 실린 서설은 《원형석서》 전체의 서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서도 고칸 시렌은 서설 뒤에 〈약례(略例)〉와 〈지통론(智通論)〉을 부록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편찬의 체제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러한 편찬의 체제와 특성 등에 대해서 역자가 마련한 〈해제: 《원형석서》의 특성과 의의〉(하, 611~626)에 자세하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고자 한다.

역자의 노고(勞苦)와 ‘옥의 티’

우리말로 번역된 《원형석서》는 상하 2권으로 나누어서 출판되었는데, 그 페이지를 합하면 무려 1,408쪽이나 되는 대저(大著)다. 감히 읽기도 쉽지 않다. 그런니 쓴 사람도 쓴 사람이지만, 번역에 도전하여 완역을 한 사람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 대단한 근기(根機)라고 상찬(賞讚)을 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정천구 선생은 무주 이치엔(無住一円, 1226~1312)의 《사석집(沙石集)》 역시 완역해 냈다. 《모래와 돌》(상하 2권, 소명출판)이 그것이다. 나는 《모래와 돌》을 상권까지밖에 읽지 못했으나, 정말로 환희심이 우러났었다. 이번에도 불교평론 편집위원회의 부탁으로, 말로만 듣던 《원형석서》를 완독(完讀)하게 되었으니, 고마운 인연이 연속된 셈이다. 역자가 번역과 각주를 마련하는 데 얼마나 큰 노고를 하였을까 하는 점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나 자신 그런 큰 작업을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역자의 학문적 열정에 한없는 존경을 갖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아울러 역자의 작업을 후원해 주신 ‘사단법인 불교학연구지원사업회’의 공덕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 최초의 불교설화집인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의 번역 역시 마친 것으로 듣고 있는데, 곧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옥의 티’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원형석서》를 읽으실 독자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이다.(첫머리의 숫자는 권차와 항목 숫자)

2.11. “무성과 섭론 등을 강설하였다(講無性攝論等)”(상, 122쪽)⟶ “무성의 섭론 등을 강설하였다.” 무성과 섭론으로 해석함으로써 각주 144)에서는 유식의 다섯 가지 종성과 연결짓는 수고를 하고 있으나, 오류이다. 《섭대승론》에 대한 무성(無性) 보살의 해석을 합본한 책(대정장 31책 수록)을 말한다.

5.1. “안카이安海는 에이잔의 코오료오興良에게 배워 천태교학에 매우 정통하였다. 논의를 펼치는 자리에서 쿠로다니黑谷의 젠유禪揄를 만났다.”(상, 247쪽) 역자는 이 문장에 나오는 젠유에 대하여, “겐쿠(源公, 1133~1212)를 가리킨다. 뒤에 전기가 나온다.”라고 각주를 붙였다. 그 생몰연대는 가마쿠라 시대 정토종의 개조였던 겐쿠(源空, 法然)의 생몰연대와 일치한다. 마침 그는 에이잔(=히에이잔, 比叡山)의 쿠로다니에서 수행한 적이 있으니, 오해를 사기 쉽다. 그런데 그것이 오해임을 시사해 주는 것은, 위에서 인용한 문장 뒤에 있는 다음 문장이다. “젠유는 안카이의 재주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몰래 킨류우지金龍寺의 센칸千觀에게 가서 물었다.” 여기 등장하는 센칸은 생몰연대가 918~984이다.

즉 호넨보다 2백여 년 이전의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페이지에 보면, “당시 겐신源信과 카쿠운覺雲이 천태종이라는 수레의 양쪽 바퀴였다”는 문장도 있다. 겐신은 호넨이 본격적으로 열게 되는 일본 정토종의 한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젠류는 ‘오와(應和)의 종론(宗論)’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13.10. 각주 84)에 잘못이 보인다. “도슈우土州 : 토사土佐의 옛 이름. 지금의 나라현이다.”(상, 659쪽) 전반은 맞는데, 후반이 틀리다. 토사는 지금은 시코쿠(四國)에 있는 고치(高知)현을 가리킨다.

17.28. “사미 야쿠엔은 비슈 사람이다.”라는 첫 문장에 나오는 ‘사미’라는 용어에 대하여, 역자는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미’라고 하였다.”(하, 100쪽)라는 각주를 달고 있다. 인도에서부터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사미’는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일본불교사에서는 특이한 의미가 덧보태어졌다. 세속에 살면서도, 부지런히 수행을 함으로써 가히 비승비속의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사미’라고 하였다. 야쿠엔(藥延) 역시 그런 사미였다. 본문에서도 “집이 길가에 있었는데……” “사미 야쿠엔은 세속에 있으면서…… ” “그 사람은 속세에 매여 있는데……”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첫 문장에 나오는 각주는 불필요한 각주이다. 오히려 사미라는 말이 이러한 특이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데 일본불교의 특성이 있음을 지적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신란(親鸞, 1173~1262)이나 잇펜(一遍, 1239~1289)이 그들의 선구적 역할모델로 교신을 말하고 있었다는 점은 역자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리라. 그런데 실수를 하고 말았다.

20.4 “법왕法王이 서쪽으로 온 도리 등”(하, 224쪽)⟶ “법왕法王이 서쪽에서 온 도리 등”이어야 하지 않을까? 불법이 중국이나 백제로부터 동쪽, 즉 일본으로 전해지는 일을 말하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26.10 “겐큐우 6년. 3월 12일에 토오다이지를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시켰다.”(하, 445쪽) 역자는 이 문장에 대하여 “1180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에 이때 새로 지었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카오오 황제 12년조에 서술되어 있다.”라는 각주를 붙이고 있다. 내가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카오오 황제 12년의 일을 단순히 ‘화재로’라고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일은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오찬옥 옮김, 문학과 지성사)에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나라 토오다이지(東大寺)와 코후쿠지(興福寺)의 승병들은 당시 실권자인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의 악정에 대하여 봉기한 미야모토(源) 집안을 지지하면서, 다이라의 군대와 일전을 불사한다. 이 내전의 와중에 토오다이지는 공격을 받아서 소실된 것이므로, 단순히 ‘화재로’라고 하는 것은 좀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28.8 “이 땅은 옛날에 선인仙人이 머물렀던 신령한 동굴로, 복장伏藏할 만한 곳입니다.”(하, 512쪽)에서, 역자는 ‘복장’에 대하여 각주를 붙였다. “불상을 만들 때, 그 가슴에 금 은 칠보 따위 보화나 서책을 넣는 것을 복장이라 한다. 여기서는 불상을 안치할 만한 곳, 즉 사찰을 비유한다.” 이 역시 잘못이다. 각주에서 말하는 복장은 腹藏이다. 여기서 말하는 伏藏은 불교용어로 “땅속에 묻혀 있는 보물 창고”를 가리킨다. 그러니 뭔가 귀중한 것을 묻어서 감출 만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일본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 스님의 말씀에, “곰곰이 생각하니, 저 아미타불의 오겁(五劫)에 걸친 사유는 나 신란 한 사람을 위해서였다.”는 명언이 있다. 이를 흉내 내서 말해 본다.

“곰곰이 생각하니, 정천구 선생님의 《원형석서》와 함께한 15년에 걸친 노고는 모두 나 (김호성) 한 사람을 위해서였다.”

많은 분들이 ( ) 속에 스스로의 이름을 적어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학위 취득. 일본 ‘북쿄대학’ 객원연구원 역임. 현재 일본불교사연구소 소장. 주요 저서로 《대승경전과 선》 《천수경의 새로운 연구》 《불교해석학 연구》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 등이 있고, 《인물로 보는 일본불교사》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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