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고, 또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을 우리는 세월이라고 한다. 세월의 강을 따라 우리네 인생도 흐르니 신묘년 설날 또 한 살을 더 먹었다.

설날 아침, 지하철을 기다리고 서 있는 내 모습을 큰 거울 속에서 보았다. 60여 년 세월의 내 나이테를 보는 순간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전철을 타고 여러 정거장을 지나도록 나는 그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아무 답도 못 내놓고 먹통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 특징도 내세울 것이 없는 밋밋한 나만 보였다. 그러다 겨우 한 생각이 떠올랐다.

‘성실한 사람.’ 칭찬 같아 쑥스럽지만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대하든 성실한 편이었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질문을 바꿔보았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 내놓을 답이 없었다. 세상에는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사진을 잘 찍는 사람,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춤을 잘 추는 사람,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사람, 차 ·와인 등을 즐기는 사람, 여행을 잘 가는 사람 등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고 취미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어떠한가. 전시장에 가서 명화를 감상하고 오면 며칠씩 그 여운이 맴돌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맛있는 음식과 차를 마시면 즐겁고,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흥분도 하고, TV 여행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남이 해 놓은 것,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듣고 즐길 뿐 정작 내가 잘하는 것은 별로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살아오면서 자기 계발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거두어 내고 나의 재능을 찾아야겠다. 그러면 사고(思考)영역과 생활 반경이 넓어지고 내 세월의 강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처럼 아름답게 빛나지 않겠는가.

2.
새해를 맞아 어른 스님께 전화를 걸었다. 새해 인사를 드린 후 “요즘도 여전히 바쁘시죠?”라고 여쭈었다.
“바쁘다 바쁘다 하니 자꾸 바빠지는 것 같아서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네.”

“스님, 저도 새해부터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자네가 나한테 다시 물어보게.”

“스님, 요즘도 여전히 바쁘시죠?”

“별로 바쁘지 않네. 이번엔 내가 자네한테 묻겠네. 자네 요즘 건강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통화 이후 복용 중인 한약은 계속 먹고 있지만, 매주 받던 침 치료를 한 달 이상 받지 않았다. 장기간의 치료 효과이겠지만 긍정적 사고와 플러스 발상도 한몫했을 것 같다.

나는 지난해 연말 무렵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새해부터는 모든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플러스 발상을 실천하는 연습을 하기로 다짐했다. 구체적인 플러스 발상 연습에는 명상을 통한 마음의 안정, 복식호흡, 식습관 개선, 걷기 등도 포함된다.

나는 새해 들어 6바라밀 중에서 보시, 지계, 인욕을 새롭게 마음에 새겼다. 백성욱 박사는 이런 법문을 했다.
“보시는 탐심을 닦는 것입니다. 제 마음에 미안한 일이 있으면 성을 내게 되는데, 제 마음에 미안한 일 하지 않는 지계바라밀은 성내는 마음(진심)을 제거합니다. 자기를 단속하는 인욕바라밀은 욕된 것을 참아 제 잘난 생각(치심)을 닦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분명히 알아 부지런히 실행하는 것이 정진바라밀입니다. 정진이 잘되면 마음이 안정되니 그것을 선정바라밀이라 합니다. 마음이 안정된 뒤에는 그냥 지계가 나니까 그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결국 보시, 지계, 인욕바라밀 수행을 잘하면 탐 ․ 진 ․ 치 삼독심이 제거되고 지혜로워져서 불교의 종착역인 열반에 도달한다는 가르침이다. 쉽지 않겠지만 일상 속에서 늘 되새김질해야겠다.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나는 계속 눈물을 닦았다. 주어도 준 바 없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프리카 수단의 힘든 이웃을 사랑한 이태석 신부님. 의사인 그는 척박한 대지에 성당보다 먼저 병원과 학교를 세웠다. 어린이와 청소년, 한센병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준 그의 사랑 실천은 감동의 법문이었다.

수단의 이웃들은 신부님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고별의식을 거행하며 흐느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신부님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이 신부가 가르쳐준 한국 노래 〈사랑해〉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 강가에 오래도록 울려 퍼지리라.
영화를 보고 나서 모처럼 자비의 화신을 만난 느낌인데 나는 자꾸만 부끄러워졌다. 웃음과 눈물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3.
나는 침대에 누워 계신 어머니 얼굴을 닦아 드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는 떨리기도 하지만 힘이 없으신 왼손을 간신히 들어올려 내 앞머리를 만지셨다. 나는 가슴이 저렸다.

“엄마, 머리 감고 드라이했는데 예뻐?”

어머니는 고개를 끄떡이셨다.

“엄마, 오늘이 설날이에요, 토끼 해. 오래오래 계셔서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내년에 런던에서 올림픽 열리면 축구랑 마라톤 중계방송 보셔야죠. 아셨죠?”

빙그레 웃으신다.

“엄마, 알았다고 끄덕끄덕하셔야지.”

어머니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신다. 나는 “자, 약속”이라면서 어머니와 내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 도장을 찍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서 나는 이 ‘약속’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리고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약사여래부처님 가피 임하시옵소서.”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욕심인 줄 알지만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세월을 붙잡아 매고 싶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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