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흔히 연꽃에 비유되곤 하는 명상적 대상이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진흙탕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자신의 꽃이나 잎에 조금도 묻히지 않는(處染常淨)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온화해지고 즐거워지는(面相喜怡)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촛불 역시 그러한 기능을 지닌 특이한 불이라 할 수 있다.

촛불, 하면 얼른 떠오르는 우리나라 시인으로는 신석정(辛夕汀) 선생이 있지만, 여기서는 최근에 쓴 필자의 졸시를 계면쩍음을 무릅쓰고 잠깐 소개해 볼까 한다.

뼈도
재도 남기지 않는
절대소멸의 꽃

빛으로 태어나
빛으로 죽는
환한 생애

그에겐
한마디 유언조차
사치일 뿐
—〈촛불소묘·5〉

굳이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촛불이 지닌 깨끗함과 순수한 희생의 속성을 짧게 노래한 시이다. 필자는 “빛으로 태어나/ 빛으로 죽는/ 환한 생애”의 상징으로 촛불을 그리는 데 머물렀으나, 이보다 훨씬 더 촛불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다각도로 몽상한 시인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20세기 최대의 ‘상상력의 형이상학’을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2~1962)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내놓은 마지막 저작인 《촛불의 미학》(1961)은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에서 출발하여 특유의 현상학적 세계관을 세우기에 이르는 그의 철학의 궁극적 도달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불이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촛불이다. 촛불의 특징을 살펴보면, 난로의 불과는 아주 다른 몽상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난로의 불은 연료를 넣고 꼬챙이로 쑤석거려야 강렬하게 타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내버려 두면 이내 불꽃이 내려앉아 버리기 때문에 더 타게 하려면 연료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촛불은 처음부터 저 혼자서 타며 스스로 연료를 마련하기 때문에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고독하게 같은 불꽃으로 탄다.

촛불 밑에서는 깊은 잠이 들기 어려우며, 밤의 몽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과거의 모든 추억을 되살려 준다. 그리하여 상상력과 기억력이 일치하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촛불은 우리로 하여금 몽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이 다른 것과 융합하려고 하는 데 반해, 촛불은 결코 합치려고 하지 않는다. 혼자 타면서 혼자 꿈꾸는 것, 이것은 인간 본래의 모습 그 자체이다. 속으로 애태우면서 절망과 체념을 되씹는 남녀의 마음이나 짝사랑의 그리움은 혼자 조용히 타는 촛불의 이미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고고히 타는 촛불에 대한 동경을 가장 강렬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나방의 굴광성(屈光性)을 들 수 있다. 나방은 촛불에 매력을 느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 불꽃에 몸을 던져 황홀경 속에서 타 죽는다. 여기서 나방은 사춘기에 들어선 소녀를 비유한 것이다. 피에르 장 주브(Pierre Jean Jouve)의 소설 《폴리나》에서, 여주인공 폴리나는 최초로 무도회에 나가는 날 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유혹의 대상이 되길 바란다. 그녀는 수녀처럼 순결을 지키려고 하면서 동시에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춘기에 나타나는 소녀들의 유혹당하고 싶은 면과 순결하고자 하는 면의 갈등을 촛불과 나방의 관계에 대비시켜 말한 것이다.

또한 촛불은 그 자체의 모습만을 놓고 관찰해 보면, 불꽃이 붉은 빛과 흰 빛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흰 빛은 뿌리 쪽의 파란 빛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의 부패와 권력을 일소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붉은 빛은 심지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불순물과 더러움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의 투쟁이 하나의 변증법을 이루면서 탄다. 즉 촛불은 흰 빛의 상승과 붉은 빛의 하강, 가치(價値)와 반가치(反價値)가 싸우는 결투장인 것이다.

이렇듯 바슐라르는 촛불을 둘러싸고 있는 몽상의 내밀한 조용함을 지극히 아름다운 시적 센텐스에 실어 하나하나 펼쳐나간다. 《불의 정신 분석》(1938)이 주관적 인식 방법을 통해 얻어진 상상력의 원형들을 파헤친 것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는 그 연장선상의 끝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촛불의 미학》은 그가 궁극적으로 붙잡은 혼의 진실을 순수한 승화의 차원에서 겸허하게 이야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촛불의 미학》이라는 기술(記述)의 생성 속에는 존재 자체의 생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바슐라르가 촛불의 불꽃이 천정(天頂)을 향해 위로 상승하는 수직의 존재라고 말했을 때, 그 자신도 초(超)불꽃(surflamme)의 승화를 깊은 몽상을 통해서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촛불의 미학》의 미학은 단순한 몽상의 미학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는 적어도 삶의 상징적 메아리가 페이지 페이지마다 울려 나오는 내면적 유서(遺書), 놀라운 과학철학자 또는 상상력의 형이상학자로서 긴 경험 끝에 도달한 관조적 세계의 언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다운 혼의 울림을 함께 깊이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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