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을 중심으로

1. 머리말

윤남진
NGO 리서치 소장

젠더 문제, 직접적으로는 ‘젠더 불평등 문제’는 ‘집단, 연합체나 일반 사회 수준에서 양성이 차지하는 지위, 권력, 위세 등에서 보이는 차이’로 정의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배경으로 한다. 양성은 식품, 재력, 권력이나 시간 같은 가치에 접근하는 것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여자와 남자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 비슷하게 제시되어 있는가, 여성의 역할과 활동은 남성의 그것과 비슷하게 평가받고 있는가 등등(앤서니 기든스, 2009).  

이런 일반적인 젠더 불평등에 관한 질문을 종교 집단에 던질 때, 우리는 사회적 체험이나 사회적 권력구조와 ‘신성한 것’ 간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같은 맥락을 고려한 결과는 “(창시자에 대한) 예찬자 집단은 모든 영장류에서 그러하듯이 카리스마 넘치는 수컷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며, 이들이 남성 형상을 한 신에게 접근할 특권이 부여되면 그들의 권력은 필연적으로 증대되고, 이들 집단이 종교 조직으로 진화하면서 그 종교의 창시자들과 후계자들의 권위는 마침내 신성한 경전에 새겨진다.”(에드워드 윌슨, 1998)는 진술과 같이 생물학적 탐구의 결과로도 추출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말 속에 절대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말을 해석하는 전문가 집단이 생겨나고, 이들이 어김없이 권력을 차지하며, 불변의 진리를 해석하는 것이 그들의 업이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지적, 도덕적 진보의 반대자로 변해 버린다”(버트런드 러셀, 1930)는 논리실증주의 철학자의 비판적 결론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젠더 불평등과 관련하여 분명한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적어도 역사 종교에서 종교집단의 권력적 실체는 전적으로 남성에 의해 장악되어 왔고 현재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권력구조는 반드시 신성한 교의(doctrine)로써 정당화된다. 셋째, 종교 집단의 이런 권력관계와 교의의 변화는 일반적인 사회적 체험이나 사회적 관계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일반적 상황에서 종교의 내적 논리는 보수적인 교의 해석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다만 사회역사적 변화에 직면하여 기존의 교의와 그에 대한 해석에 모순이 발견되고, 그럼으로써 불가피하게 교의의 해석을 변경 또는 확장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최대한 기존의 전통적인 교의 해석의 틀을 허물지 않는 한계 내에서, 즉 새로운 교의 해석이 원형적인 교의의 진정한 적통임을 주장하는 한도 내에서 변경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종교는 교의에 관한 한 보수적이지만 교의 체계로서의 종교와 사회조직 체계로서의 종교는 반드시 병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불교계에서 양성평등 또는 여성정책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는 과정 또한 크게 볼 때 우리 사회 일반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비록 대표적 비구 종단인 조계종이 ‘비구니 팔경계’나 ‘여성 변성성불론’을 공식적으로 폐기하는 해석적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이 결정적으로 수그러들었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교단 구성원 다수는 그런 교의 해석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통으로 승격된 해묵은 인습들은 대체로 정치적인 이유로, 더욱 직접적으로 거론하자면 교단의 권력적인 요청에 의해 지배적인 제도적 관습의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따라서 대체로 교의 해석의 변화는 현실조화적인 한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조화되어야 할 현실이 앞서서 간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불교(교단)의 양성평등 또는 여성정책 문제를 굳이 사실상 교의 해석과 긴밀히 연결된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교의 해석을 어떻게 현실조화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현실조화적인 행동을 먼저 조직함으로써 조직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다분히 실용적인 과제 차원에서 다루어질 때 변화를 더욱 효율적이고 급진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진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불교(교단)가 사회정치적으로 처해 있는 현재 상황(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여성정책을 5년 내지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교단재구조화’ 차원의 상수(上手=常數)로 다루어야 할 영역이라고 본다.

재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게 증대되어야 한다는 것은 저출산 고령사회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 차원에서도 사뭇 강조되고 있다. 불교교단이 우리 사회와 동떨어져 구름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사회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문제, 즉 양성평등 또는 여성정책의 문제는 이상과 같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다. 따라서 이 글은 젠더 불평등 문제에 관한 이론이나 혹은 실태를 분석하는 목적이 아니라, ‘불교 및 불교조직체(교단)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능동적인 여성정책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으로 접근해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포괄적 구도를 잡아보기 위한 목적에서 쓰인 것이다.

2. 회고와 성찰

불교의 여성정책에 대해 논의하고자 할 때 조계종의 1994년 종단개혁과 1998년 내홍이라는 두 계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 시점의 변화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의 변화였다. 그 밖에도 종단 차원에서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추진된 정책적인 노력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최근의 가장 유력했던 역사적, 집단적 경험을 먼저 성찰해 봄으로써 우리는 교계의 여성정책 수립에 바탕이 되는 전략적 프레임을 구상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1) 제도적 변화―1994년 종단개혁

1994년 종단개혁은 양성평등 문제에 관한 한 양면성을 지닌 경험이었다. 당시 비구니 스님들은 정혜도량을 결성하여 개혁에 힘을 실었고, 전국비구니회와 창구를 일원화하여 “비구니 위상 정립을 위한 대론회”(1994. 5. 29−중앙승가대학 정진관)를 열기도 하는 등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개혁회의에 의해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비구니의 참종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는 다분히 상징적인 수준이었다. 중앙종회의원에 비구니 의원 10석을 보장했고, 산중총회 및 교구종회에 말사 주지를 맡고 있는 비구니에 한해 구성원 자격이 주어진 정도이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개혁회의의 입법 논리 때문인지는 검토해 보아야 하겠지만, 각종의 자격 규정에 법계보다 승납과 연령을 우선하고, 종정, 원로회의, 종회의원, 3원장, 호계원 및 호계위원, 교구본사 주지, 교구 종회의원 등의 자격 기준을 모두 ‘비구’로 한정하여 명시한 부분이다. 이전에는 1976년 제정된 법계법에 따른 ‘법계’가 기준이 되었으나 개혁회의에 이르러서는 각각의 자격 기준에 법계 이외에 세랍과 비구라는 기준이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다.

특히 세랍은 마치 종단의 권력구조를 조정하는 민감한 요소로서 정치적 타협의 가장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이것이 개혁회의 이후 기본적인 입법 논리의 한 이면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법계고시 시행이 단절됨으로써 실질적 효력을 가지지 못했던 탓인 것처럼 보이지만, 법계법과 법계고시가 시행되고 있는 현재에도 그런 현상이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까지도 가장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입법 논리가 아닌가 판단된다. 즉 1994 종단개혁의 제도화 측면을 검토할 때에 법계법에도 해당 법계의 품수에 필요한 승랍이 명시되어 있고 승가고시와 자격이 연계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세랍 자격규정을 두는 것이 법다운 것인지, 또한 ‘비구법계에 준하는 비구니법계를 그대로 동일하게 자격기준으로 삼는 것이 법(法)답다’는 비구니계의 의견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로 명문화된 결과는 한계가 명백하다 하더라도 1994년과 1998년의 격동 속에서 비구니 스님들과 여성 불자들의 역할은 분명하게 각인되었다. 전국비구니회로 창구가 단일화된 공인된 통일적 지도력이 구축된 것도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중이 동원되어야 했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한마음선원 등을 비롯한 비구니 사찰과 신도의 역할에 따른 종단 내 위상의 제고도 분명한 심리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책적 대응-사회적 변화의 물결

종단개혁 이후 현재까지 유일하다고 보이는 여성정책이 1999년 수립되었다. 조계종 포교원은 1999년 2월 당해연도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여성불자 조직화사업’을 발표하였다. 취지는 ‘여성 불자들의 활동 영역을 확보하여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포교원과 연계하여 대사회활동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계종 포교원은 이 정책에 따라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0년 11월 27일 불교여성개발원을 산하단체로 창립하게 된다. 여성지도자의 조직화, 대사회적인 활동, 대외적으로 한국불교 여성계를 대표하는 전문조직으로서 위상확보 등 초창기 제시된 과제들이 지난 10년간 충실히 추진되고 성취되었는지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종단 차원의 정책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유의미했다고 판단된다.

1999년 앞서 인용한 논문에서 해주 스님은 제도 개혁의 안(案)으로 종단에 비구니원이나 비구니부를 따로 설치하여 전국비구니회를 행정 공식기구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또한 비구니 총림을 세우고 비구니 본사를 두어 수행과 교육, 포교에서 효율화를 도모하자는 제안도 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내내 묵살되었고 개혁회의 입법 이후 양성평등과 관련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2003년 총무원장 선거에서 법장 스님이 비구니 스님의 위상 제고 및 교단 활동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혔고, 구체적인 방안으로 비구니 스님 전담부서 설치와 종무기관의 각 부서에 비구니 스님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후 총무원 문화부장과 국장을 비구니 스님으로 임명했다. 이는 중앙종무기관 최초의 비구니 부장 임명이라는 역사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3) 종책적 정체 혹은 전환

안타까운 점은 현 33대 총무원에 들어서 이렇다 할 만한 여성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독립적인 영역으로서의 여성정책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성역할론적인 발상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현 총무원이 2010년 1월에 발표한 종단 4개년 발전계획이다. 총 25쪽에 달하는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이 계획은 25개의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있고 그에 따른 세부사업들이 각각 나열되어 있는데 이 문건 전체에서 ‘여성’이란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법장 총무원장 이래 유지되어 왔던 총무원 문화부장의 비구니 배려 관행 정도가 살아 있다.

한편, 비구니 조직의 통일성 유지도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인 듯하며, 조계종 차원의 사설사암과 토굴(개인 거처) 바람이 비구니계에도 비켜가지 않았다. 이로써 비구니계 특유의 공동체적 유대도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비구니원이나 비구니부와 같은 공식적인 행정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현상인데 현재의 종책은 이런 현상과는 매우 비대칭적이다.

3. 현실의 이해

2007년 한 교계신문에 의하면 여성 출가자가 최근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데 대해 조계종 관계자는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권리와 경제력이 커지면서 출가의 계기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말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권리와 경제력이 커진 것은 맞았고, 출가의 계기가 줄어들었다는 말은 틀렸다. 정확히 말했다면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권리와 경제력이 커진 만큼 출가의 매력(호감도나 유인 요소)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1) 출가 현황

1997년에는 여성 출가자와 남성 출가자(행자교육 수료자 기준)의 비율이 183명 : 194명, 1998년에는 205명 : 223명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부터 여성 출가자 비율이 줄기 시작해서 2002년에 169 : 237→157 : 216(2003)→150 : 147(2004)→143 : 183(2005)→134 : 267(2006)→109 : 226(2007)→118 : 169(2008)로 2007년의 경우는 남성 출가자의 2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또한 다음 페이지의 〈표 1〉은 남녀 행자의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고, 남녀 공히 출가 단계에서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5년 11월 중앙종회에서 출가연령을 40세 이하에서 50세 이하까지로 확대하는 종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그나마 출가자 수를 유지하게 되었으나, 2008년도 통계를 보면 이 숫자 또한 방어하기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고령 출가자의 비율 증가하고 전체 출가자 내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정 수준이 되었을 때 출가공동체에 던져질 문화적 균열에 대한 처방이 필요하다.

정책적으로 볼 때에 고령화의 문제는 사회문제이면서 동시에 출가공동체의 현실적인 문제로 되었다.

아래의 〈표 2〉는 2006년을 기점으로 조계종 승려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표에서 보듯이 60세 이상 승려의 수는 2006년도에 2,099명으로 처음 2,000명을 넘겨 2008년에는 2,720명에 이르고 있다.
이를 연령대별, 신분별로 더 세분하여 분석해 보면 비구(사미)보다 비구니(사미니)가 연령 구성에서 고령화 대책이 더욱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표 3〉은 2004년과 2008년의 연령대별 출가자 구성을 나타내는 표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30대 이하 연령에서 비구(사미)보다 비구니(사미니)의 감소가 더욱 현저하다. 또한 2008년도의 70대 이상 고령자는 비구가 321명인 데 반해 비구니는 549명으로 더욱 많았고, 60대 이상의 총수도 비구는 1,172명, 비구니는 1,316명으로 비구니의 고령화가 더욱 급속하고도 부담스러운 양상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조사들에서 보면 노스님을 돌보는 데 대한 학인(사미니)들의 부담과 불만이 표출되고 있고, 사설사암이나 토굴을 원하는 원인도 대체로 노후 대책의 일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지직과 종무직의 비구 독점적 상황, 고령화로 인한 공동체 내부의 부담, 행정적 권능이 부 여되지 않는 비구니 조직 등의 악조건이 서로 얽혀 여성 출가공동체의 부담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출가 시점의 고령화(40대화)와 출가공동체 전반의 고령화로 인해 발생할 문제와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경향성(트렌드)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에 대한 수용적인 대응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 사회 현황

양성평등 혹은 여성정책과 관련한 사회적 현황에 대해서는 필자가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앞서의 발제 참조) 다만 여성정책 수립에 있어 참고할 만한 사회통계 부분을 몇 가지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그림 1〉 참조).

우선 결혼관의 변화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 등이 여성출가에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데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여성출가가 더욱 의미 있고 활동적인 인생 설계에서 선택지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으면 좋을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기존 여성출가수행자의 사회적 활동력과 교단 내에서의 지위를 제고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매우 필요한 조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출가의 의미가 세속적 의미의 ‘독신생활의 결심’ 정도로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동일한 ‘독신생활의 결심’이라면 출가의 삶이 더욱 값어치 있는 선택지라는 사회적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형성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을 지적하자면, 종교지도자의 사회적 신뢰도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고 종교단체의 권력화와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사회인들이 접하는 종교지도자는 대부분 남성이며 따라서 종교 조직도 대체로 남성 성직자에 의해 전반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종교지도자나 종교 조직의 경우 투명성 문제와 성차별(혹은 폭력) 문제는 신뢰형성에 결정적이다. 98%의 선행도 2%의 악행으로 무화되는 것이 종교의 도덕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 수준이다. 따라서 양성평등 문화를 조성하는 문제는 그저 적극적인 정책 수단의 하나가 아니라 종교 조직의 존립에 관한 공중관계 전략의 일환으로 위치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인들의 인생 주기, 그리고 해당 주기마다 겪게 되는 독특한 장애 요소와 욕구의 변화들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사회인들의 종교 선택 시기에서 20대가 가장 많은 비율(24%)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30대(결혼~초아 출산 연령대)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불교 인구가 감소하고 천주교 인구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죽음’과 관련이 깊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 특히 모친과 자녀 세대 간의 종교 전승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제2 인생을 위한 변화 또는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에 있는 여성불자들을 어떻게 인입하여 교육·훈련시키고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된다.

4. 전략과 정책

1)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의 이중성(관념:현실, 제도:교육)

교계에서 시행한 다양한 조사들이 있다. 그런데 그 조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할 때에 몇 가지 해석상 유의할 점이 있다. 먼저 불교관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개의 조사 결과에서 불자들은 불교교리는 남녀평등, 환경보호, 생명사상 등 현대의 첨단 사상들에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상과 문명을 선도할 것이라는 ‘바람직성 판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평등 의식에 있어서도 불교교리의 해석 등에 대한 추상적 질문에서는 높은 평등의식을 보인다.

그러나 사회 일반적이고 구체적으로 성평등에 대한 인식 및 태도, 행동을 열거하여 질문을 하면 반응은 추상적 질문에 대한 응답의 성평등 의식과 매우 거리가 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불교교리는 성평등을 가르친다는 데 대한 긍정 응답이 여성보다 남성이 높고, 여성이 불교신행을 더욱 잘한다고 평가하는 비율도 남성이 높고, 전생에 업이 많아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응답도 남성의 비율이 더 높은 등 관념적으로는 남성 응답자의 양성평등 의식이 유의할 정도로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지난 2010년 한 조사에 의하면, 구체적으로 비구니 중앙종회 의원을 10명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 24.7%가 남녀차별이 아니라고 응답했고, 비구니 스님은 총무원장이 될 수 없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17.9%가 남녀차별적인 조항이 아니라고 응답하여 여성이 느끼는 차별 인식과는 유의할 만한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관념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

다음은 제도적 개선과 교육적 개선 간의 이중적 태도이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남녀 불문하고 압도적 다수가 예시한 현행 종헌^종법에 대해 남녀차별적이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양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물었을 때 법과 제도의 개선이나 전문기관의 설치 등이 필요하다는 등 실제적, 강제적 처방보다는 교계 지도자가 모범을 보인다든가 문화적, 심리적 처방을 선호하는 응답이 높았다. 정책적 처방은 제도와 교육(의식과 문화) 사이에서 이중적이다. 이는 양성평등/여성정책을 수립할 때에 심리적 요인, 문화적 요인을 충분히 감안하여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여성 고령자의 욕구 이해

이른바 ‘보살불교’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불교에서 고연령의 여성 불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따라서 불교 여성정책 수립에서 이들 연령층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07년도에 조계종 총무원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교계 고령자의 인력 활용에 관한 한 조사에 의하면 여성 고령자들은 비영리 활동(46%)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았다. 그리고 재취업·창업(15%), 귀농(13%)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제2의 인생 설계가 미비한 이유로 여성의 경우는 방법을 몰라서(22%),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19%), 현재 생활에 만족해서(18%), 육아, 가사 부담이 있어서(12%)의 순으로 응답하였다. 이는 적절한 교육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면 많은 여성 불자들이 새로운 활동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성 불자들은 80%가 불교계에서 활동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고, 불교계에서 활동할 의향이 없다고 한 응답자의 경우 그 이유는 업무 관련 전문성 부족(49%)을 꼽았다. 교계 활동을 위한 교육을 시행할 경우 이용할 의사에 대해서는 40~44세, 60~64세 여성 불자의 교육 참여 욕구가 높았다. 선호하는 근로조건으로 불자들의 경우는 주 8시간 이내의 근무를 선호하였지만 사찰이나 교계 기관은 상근직을 선호했고, 불자들은 주 8시간 근무에 월 20만 원 정도를 가장 선호하였으나 사찰이나 교계 기관의 경우는 상근직에 월 100만 원 정도 수준의 조건을 선호했다.

그리고 〈표6〉과 같이 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묻는 질문에 불교 소양교육보다는 ‘취업자격 과정 이수’ ‘창업 및 기획능력 개발’ 등과 같이 기능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원했다. 또한 근무조건도 일터의 안정성이나 근무조건보다는 ‘육아지원 및 가사분담’ ‘탄력적 출퇴근 근무’와 같은 유연한 근로조건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표7〉). 이러한 조사결과는 불교 여성정책 수립에 있어 소양교육이나 기본교리교육 수준을 넘어서는 기능교육이나 전문 활동에 필요한 교육, 여성의 적극적인 활동을 위한 맞춤형 근로조건의 제공 등이 필요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조사 시점이 3년 전이었으므로 당시에는 사회적으로나 교계의 인식으로나 유연 근무제도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지만 지금은 근로조건이나 환 경에 대한 인식이 매우 크게 변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유의미한 조사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전략

①지도자의 변화와 모범

일단은 교육적 처방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양성평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차별인가, 사회적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은 무엇인가, 여성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가, 여성의 미래는 사회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등등 포괄적인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교단의 출/재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에서 이 주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필수가 아닌 선택일지라도 이 문제가 책임 있는 지도자들 사이에서 교육되고 토론된다는 것 그 자체로서 상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현장의 정책 실행과 적용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②영향력(참여) 우선의 제도 개선

제도의 개선은 불가피하다. 최종적으로 제도에 의해 정책은 실행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도가 높아 제도개선의 저항이 크면서도 그 개선의 결과가 소수에게만 국한되는 제도에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 그보다는 민감도(제도 개선 저항)가 낮으면서도 다중에게 영향(참여나 혜택)을 주는 제도부터 먼저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앙종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문제보다 교구 종회의원에 선출직 의원의 비례대표로 비구니 스님을 반영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보다 강원교육에 젠더 교육을 편입시키는 등과 같은 것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③종단 차원의 플랫폼 제공

중앙종단 차원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여성 불자 스스로 활동을 모색해 갈 수 있도록 코스화된 플랫폼을 제공해야 한다. 예시하자면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하는 착상(발상)에서부터 활동의 콘텐츠를 구성하고, 포지셔닝을 하고, 메시지를 송출하고, 조직을 구축하는 등 활동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취지는 종단에서 조직을 만들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정보와 서비스의 제공자’ 역할로 자신을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1999년 포교원과 같이 ‘여성 불자 조직화’를 하는 목표가 이제 종단 차원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종단은 스스로 다양한 조직을 만들고 활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행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가 필요하다. 지금 종단은 정치와 행정의 과잉에서 벗어나 서비스 제공자이자 수평적 네트워크의 연결자로서 자신을 재구축해야 한다. 이런 재구축에 가장 도전해 볼 만한 역동적인 영역이 여성(정책) 분야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4) 출가 정책

①종단의 각종 의사결정에서 비구니 참종권 확대

앞서 살펴보았지만 이는 양성평등 차원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다양한 통계와 현상들은 비구니 공동체가 현재 상태에서 얼마나 더 잘 견딜 것인지 심사숙고할 지점에 와 있다고 판단된다. 현재의 제도를 바꾸기가 어렵다면 십수 개의 유관 위원회라도 만들어서 비구니 스님들이 종단 일에 참여하는 폭을 최대한 넓혀주어야 한다. 큰 일, 큰 무대를 열어 주고 그럼으로써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전적으로 종단의 몫이다. 특히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종단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공중관계를 형성하는 데 비구니 스님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본다.

②비구니 조직에 행정권을 부여

현재의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독자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도 이 문제를 숙고할 때가 되었다. 비구니원이나 부를 신설하든 아니면 현 비구니회에 낮은 단계에서부터 행정권을 이양해 가든, 공적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비구니 공동체 스스로 재정을 모으고 인재를 키우고, 활동을 조직하는 등 자구적인 방법으로 활력을 찾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③교육과 활동의 기회 확대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혼자서도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실용 교육을 개설해야 한다. 개설하기 어렵다면 지역문화센터 등에서 시행하는 실용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불교교리나 수행 등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지역사회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과 자질, 스킬(기술)을 반드시 익히도록 해야 한다.

5) 재가 정책

①다양한 젠더 교육 실시

기본교육 커리큘럼으로 반영되게 한다. 포교원 차원에서 불교대학 교재로 불교사회교리(가칭) 입문서를 발간하고 그 안에 젠더 문제를 필수 목록으로 다룬다.

②특수에서 보편으로 전문화
이제 불교(교양)대학 교리교육을 넘어설 때가 되었다.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정치적인 지역자치 활동, 지역사회봉사 활동, 소셜미디어나 소셜네트워크 활동 등 불교 집안 또는 사찰 울타리를 벗어나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다양한 전문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③참여 확대
사찰의 운영이나 재정관리 같은 것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책임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조사에서도 30% 이상이 이런 사중의 큰일들을 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표했다.(현행 사찰운영위원회법의 집행 여부를 주지 인사고과 평가 목록에 넣어 강제한다.)

④여성전문조직 다양화
인생 주기(연령대)에 따른 주특기를 가진 다양한 전문 조직을 개발한다. 현재의 여성 조직들이 결혼, 출산, 육아, 자녀교육, 자기계발, 사회참여, 제2 인생설계, 평생교육, 죽음의 준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조직들로 잘게 분화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불교여성개발원의 유관 조직이나 파생 조직들을 보면 (사)지혜로운여성,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웰다잉운동본부, 젠더연구소 등이 있다. 앞으로 최소한 150명 정도의 회원을 가진 전문 분야 조직들이 12개 이상은 만들어져야 한다.

5. 부연

필자의 경험으로는 불교계 지도자들 또는 활동가들에게 두 가지 환상이 있다. 하나는 종단이 하면 될 것이라는 혹은 종단이 해야 한다는 환상이다. 다른 하나는 불교 인구가 많으니까 뭔가 크게 사업을 벌여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첫 번째 환상을 깬 사람은 이미 많아졌다. 그러나 종무기관의 구성원들은 그 환상을 깨지 못하고 있는 가장 완강한 집단이다. 실체 없는 종풍(宗風)의 강변, 정체성 형성의 ABC도 탐구하지 않은 무지와 독선에 기반한 종단 정체성 강요 등등. 이런 것들이 새로운 여성 불자 시대를 열어 가고자 결심한 지도자나 활동가들이 마주쳐야 할 가장 큰 장벽일 것이다.

두 번째 환상은 영리기업과 정치인들이 먼저 깼다. 그들은 과거 통계상의 불교신자 수를 믿고 사업적으로 접근해 왔다가 망했다. 그리고 표가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불교 지도자들 중에는 그런 환상과 착시현상에 기반해서 무슨 사업을 구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허상이다. 오직 10명에서 15명 내외의 핵심 그룹(결심자), 150명 내외의 회원(적극적 동조 그룹)만이 믿을 만하다. 그런 풀뿌리 조직들이 번성하는 길, 불교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은 보편적인 민주시민의 자질과 사회정치적 교양을 갖춘 그런 불교인과 불교 조직을 육성하는 길을 어쨌든 열어야 한다. 그 무궁한 자원으로서, 동력으로서 여성 불자들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능동적인 여성정책, 이것은 호교(護敎)를 위해서도 불가피한 전략이다. ■ 


 
윤남진 / NGO리서치 소장.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처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연구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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