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적 가치의 사회적 구현

1. 공동체의 역사

유정길
에코붓다 공동대표
공동체를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의 승가공동체를 먼저 접하게 된다. 이어 예수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에세네파 쿰란 공동체와 이후 예수의 정신을 유지하며 살았던 초대 기독교 공동체, 그리고 가톨릭의 수많은 수도회도 바로 이러한 신앙적 결사를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들을 접하게 된다.
19세기는 가히 공동체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많은 공동체들이 만들어졌다. 로버트 오웬과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완전사회를 꿈꾸기 위해 만든 뉴하모니 공동체(New Harmony)로부터, 1787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셰이커 공동체(The Shakers), 1804년에서 1904년까지 100년간 지속된 하모니 공동체(The Harmony), 캐나다에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후터파 공동체, 드호볼파 공동체 등이 있고, 아난다 협동마을(Ananda), 르네상스 공동체(Renaissance), 1950년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발전되어 온 일본의 산안회(Yamagishi Gai), 그리고 어메이너 공동체(Amana), 조아 공동체(Zoar), 스노우힐 공동체(Snowhill), 성 내지언즈 공동체(Saint Nazianz), 베델과 오로라 공동체(Bethel, Aurora), 오나이더 공동체(Oneida), 호프데일 공동체(Hopedale), 북미 팰랭크스 공동체(North American phalanx), 코뮤니아 공동체(Communia), 부룩 팜 공동체(Brook Farm) 등 수백 개의 공동체가 실험되었고 그 수명은 2~3년에서부터 200년 정도의 전통을 갖고 지금까지 지속된 공동체도 있다.

이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반전운동, 반문화운동에 힘입어 새로운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세기의 공동체 운동이 ‘무엇에 대한 추구’를 위한 공동체로 엄격한 질서와 구조, 원칙을 갖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반면, 1970년대에 만들어진 공동체는 ‘무엇에 대한 도피’로서의 성격 때문에 질서 잡히지 않고 혼돈스러운 형태여서 오래 지속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1980년 약 3만여 개의 공동체가 있다고 저드슨 제롬(Judson Jerome)은 그의 책 《에덴의 가족(Families of Eden)》에 추측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동체가 자신들을 대중에 드러내길 꺼리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공동체의 수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대략 이보다 약 10배~20배 정도의 공동체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새벽의 건설자들 (Builders of the Dawn)》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실제 드러난 공동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장 큰 계획 공동체 (Intentional Community) 인터넷사이트 ‘www.ic.org’에는 2011년 2월 현재 미국에만 1,827개의 공동체, 미국 이외의 나라 795개 등 총 3,600여 개의 공동체 사이트가 모여 있다. 그곳에는 각기 공동체의 성격과 규모, 인원, 역사와 위치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격월로 공동체 잡지도 발행하고, 격년으로 공동체편람(Directory)을 발간한다. 이 사이트에서도 대략 5분의 2는 종교 공동체이고 나머지 5분의 3은 일반 공동체인데, 종교 공동체 중에는 여러 개의 불교 공동체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공동체가 20~30배 정도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 공동체의 종류

공동체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트윈오크스 공동체의 안내서인 핑거북(Finger Book)에는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찾으러 여기에 오지만 우리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여러분이 만일 유토피아를 찾으면 우리에게 알려 달라. 그러면 우리가 모두 그곳으로 가겠다.”고 쓰고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를 유토피아로 생각하지만, 공동체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의 최종 도착지가 아니라, 그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공동체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과 임상시험을 하듯이 공동체는 새로운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한 실험실이다. 또 공동체는 일종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각박한 사회 속에 자신을 정화하고, 치유하며, 갈증을 풀고, 올바른 정신을 회복하는 곳이다. 또 공동체는 사업에 실패한 사람, 이혼한 사람, 직장을 그만둔 사람 등, 사회적 독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해독해 주는 곳이며, 새로운 결정을 하거나 마음을 정리할 때 필요한 간이역 같은 곳이다.

대부분의 공동체는 ‘무엇으로부터의 탈출’의 성격을 지니면서 동시에 ‘무엇에 대한 추구’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외부사회와의 상대적 단절은 필수적이다. 외부와 관계를 강하게 단절할수록 내적인 결집과 실험의 수준이 높아진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만의 삶으로 고립되면 사회적 의미를 갖지 못하고 컬트(Cult)로 취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외부사회와 별다른 변별 없이 무차별적으로 개방된 공동체는 외부사회의 논리가 그대로 공동체 내에 틈입하여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공동체라는 정의는 200여 가지가 된다고 로자베스 켄터(Kanter, R, M)는 말한다. 그러나 일단 사회적 변화의 의미 있는 형태로 공동체의 소유 방식과 거주 방식, 관계의 방식에 의거하여 아래와 같이 구분하고자 한다.

① 계획공동체: 계획공동체는 일종의 공동소유 공동체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공동체이다. 일정한 공동의 공간에서 배타적인 구성원들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이곳은 무소유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 부분적으로 개인소유를 인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동소유를 기본으로 하며 집단적인 결속력도 아주 높다. 불교의 승가공동체나 수도원도 여기에 속하고 이스라엘의 키부츠가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는 화성의 산안회나, 정토회, 부안의 변산 공동체, 태백의 예수원, 울진의 한농복구회, 화성의 두레마을 등이 있다.

② 공동주거공동체: 덴마크에서 시작된 공동주거(Cohousing)는 집을 같이 짓고 공동으로 사는 것이다. 공동주거 운동은 개인적 소유를 기반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공동소유하며 공동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귀빈래마을이나 안솔기마을, 홍성 문당리의 주거 공동체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③ 마을공동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두레나 기타 부족사회, 씨족사회에서처럼, 마을끼리의 공동체적 상호 지원과 협력을 통해 자치와 자립적 마을을 만드는 것으로 일본의 마을 만들기(마치쓰구리) 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사 한생명 공동체, 부산의 물만골 공동체, 괴산의 솔뫼농장, 홍성 문당리의 마을 공동체 등이 여기에 속한다.

④ 생산공동체: 공동생활이 아니라 공동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로 노동자협동조합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위에서 언급한 마을 공동체 중에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곳은 대부분이 생산 공동체의 성격을 갖다. 이스라엘의 모샤브나, 우리나라의 솔뫼농장, 장성의 한마음 공동체, 원주의 협동조합, 홍성의 문당리등의 농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공동체가 있고,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협동조합 공동체’등도 지역내에 다양한 산업을 협동조합화하여 생산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⑤ 네트워크공동체: 함께 생활하고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부조하면서 협력하는 공동체이다. 대체로 온라인상의 네트워크와 같이 동반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만을 본다면 생활협동조합이나, 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로 불리는 ‘지역통화(Local Money)’ 가 있다. 대전의 한밭레츠 ‘두루’ 서울의 미내사의 ‘FM money’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서초품앗이’ ‘송파품앗이’ 과천의 ‘과천 품앗이’ 성남의 ‘문화통화’ 대구의 ‘희망 품앗이’ 등이 여기에 속한다.

3. 왜 공동체인가

그러면 공동체는 어떠한 특징이 있고 이곳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첫 번째는 깨달음과 영적 성장, 심리적 정화를 이룰 수 있다.

깨달음을 의한 공동체나 신앙을 위한 공동체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신념의 원형대로 살고자 한다. 부처님의 승가공동체가 그러했고, 초대 기독교 공동체와 가톨릭의 그 많은 수도원이 그러했으며 지금도 많은 공동체들은 고유의 정신적 가치, 철학을 갖고 있다. 계급사회와 인간소외, 물신주의가 팽배한 기성사회 속에서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면서 살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에서만이 정신적인 성장, 영적 성장뿐 아니라 심리적 정화와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숭산 스님이 만든 프로비던스 선원이나 틱낫한 스님이 만든 프랑스의 자두마을(Plum Village), 미국의 단풍림승원(Maple Forest Monastery) 등이 바로 그러한 공동체이다. 이러한 수행공동체에서는 밥하고 빨래하고 농사일과 바느질하는 모든 것이 다 자신을 살피는 수행이 된다.

2) 두 번째는 사랑과 배려, 인간의 이해가 어우러진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공동체는 커다란 가족이다. 어쩌면 부족, 씨족, 대가족을 거쳐 핵가족으로 발전해 왔지만, 가족의 진화가 끝나지 않았다면 ‘공동체 가족’은 미래의 새로운 가족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내 것과 네 것 없이 공유하고 사랑하고 배려하고 아끼면서 상호부조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항상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위로할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자신들끼리 공동체공 간에서 성차별, 인종차별, 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사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매 맞는 아내들의 피난처로서, 성적 소수자를 위한 공동체, 장애인들을 위한 공동체 등, 소외되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기도 하다.

3) 세 번째는 가난한 삶을 살아도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산업사회에서 개인은 출세와 명예, 부를 위해 끝없는 경쟁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청빈하게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은 이들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동체에서는 가능하다. 개인이 하나씩 냉장고를 갖출 필요도 없고, 모두가 큰 집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 코뮨적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덴마크의 뭉게쇠가르같이 300여 명이 사는 공동주거 공동체의 경우에도, 개별적인 공간을 최소화하고, 손님을 위한 방이나 부엌, 세탁실 등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자의 집기나 장난감, 책이나 물건들을 교환하고 공유하고 있다.

또한 공동체의 모든 것을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풍요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친환경적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작게 사는 삶, 자발적인 가난,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삶’을 위해 생태공동체를 만들어 왔고 기존의 공동체들도 생태적인 시스템을 갖추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의 자급자족을 통해 외부세계에 의존적이지 않은 삶을 구현하고 있다. 외부세계와 관계가 많을수록 그만큼 돈이나 경제적 가치 등, 외부세계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공동체들이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은 서로 의지하면서 상호부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은 인류가 가르쳐온 지혜이다.

4) 네 번째는 사회의 미래와 인간의 삶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

공동체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이것은 수행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 정신에 입각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정신적인 한계를 실현하고 실험한다. 승가공동체는 관법, 염불, 화두선, 간경, 명상 등 사람들이 우주의 실상을 깨달아 궁극의 경지에 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실험되어 전해져 왔다. 또 새로운 사회변화와 발전을 위해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해 온 곳도 공동체이기도 하다. 아랍과 이스라엘, 러시아, 미국 등의 분쟁 조정을 교육한 하버드 협상팀의 집단동력학(Group Dynamic) 기법도 캘리포니아의 에살렌 공동체에서 실험된 결과물이다.

영국의 핀드혼 공동체처럼 개인과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조율하는 ‘집단조율(Group Attunement)’ 방식과, 스프링힐 공동체의 ‘마음 열기’ 메타노킷 공동체의 ‘상호상담기법’ 등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버지니아 공동체인 새넌 농장의 경우는 ‘노동자 소유의 협동기업모델’을 성공적으로 개발했고, 덴마크의 공항 근처의 히피 공동체로 1500여 명이 살고 있는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는 지도자가 따로 없는 자치적인 도시를 만들어 경찰과 세금이 없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다양한 기술적 실험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핀드혼 공동체의 유기농업과 다양한 퇴비 만들기, 팜 공동체의 자연분만술, 아르코산티의 환경계획도시, 세븐오크스의 바이오에너지 요법, 치누크 공동체의 대안적 경제시스템 만들기 등이 있다. 또한 많은 교육 실험도 있었다. 스프링벨리 공동체에서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방식에 따른 발도르프 교육을, 그리고 트윈오크스 등을 비롯한 많은 공동체는 ‘홈스쿨링’을 실시하고, ‘어린이 언어교육’ 정토회도 불교의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일체의 장’ 등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수련프로그램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4. 불교공동체의 역사

1) 부처님의 초기 승가공동체

부처님은 6년간의 고행 끝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떠오르는 새벽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신 뒤 함께 수행한 다섯 비구에게 깨달음의 내용을 설하시면서 6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승가공동체인 상가(Sangha)를 만드셨다. 이후에 야사와 그 친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얻어 60명이 되었다. 이후 불교 공동체는 계속 커져서 2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초기경전에는 ‘비구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이후 대승경전에는 ‘선남자 선여인들이여’라는 용어가 쓰인 걸로 보아 대승불교 공동체는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포함한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부처님의 깨달음은 모든 기성의 가치관을 뒤엎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깨달음을 위해서 수행자들은 집을 나와 함께 집단을 구성해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했다. 계급을 뛰어넘는 가르침이 계급사회 속에서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깨달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고도화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와의 구분된 삶으로서 승가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렇게 구성된 승가는 부처님이 열반 후 약 100년이 지난 뒤에 계율에 대한 이견으로 인하여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그 영향력이 직접적이었고 따라서 결속력이 강했지만, 입멸 후 느슨해진 공동체는 결집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 결집은 《사분율(四分律)》로 대표되는 소승 계율과 《범망경(梵網經)》 〈보살계〉 등의 계율과 청규를 근거로 생활해 오면서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왔다. 특히 철저한 무소유 정신과 깨달음을 위한 승가공동체는 어떤 공동체보다도 엄격한 질서가 필요했다. 불교의 수행공동체는 가장 오래된 만큼 초심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계율이 쌓이고 쌓여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가 만들어져 내려왔다.

승가공동체는 승단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공동체를 구성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들 중생계로 돌아가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외부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선방에서는 안거(安居)라는 형태와 만행(萬行)이라는 방식으로 ‘닫힘과 열림’의 주기를 만들어 놓고 있다. 공동체 안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하고 그것을 외부세계에 회향하며, 다시 속세에서 경험한 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문제의식으로 삼는 것이다.

2) 한국 역사 속의 불교 공동체

    -승가(僧伽), 결사(結社), 향도(香徒), 승도(僧徒)

불교가 전래된 이래 신라와 고구려, 백제 그리고 이후 고려에서 불교가 공인되었고, 수많은 사찰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승가공동체들이 출연했다. 더욱이 도선국사의 풍수지리 사상으로 인해 산세나 지세, 수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기운이 강하거나 약한 곳에 생기는 재앙이나 화를 막기 위해 세운 비보사찰(裨補寺刹)이 많이 건립되었다. 당시 사찰의 도량은 당시 우리 고유의 사회정신과 문화를 포용했던 사람들의 공동체 공간이었고, 마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역민들과 더불어 각종 불교행사를 하면서 승가공동체뿐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결합된 단체로서 결사가 있다. 불교가 권력과 유착하여 권세를 누리며 중생을 외면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마다 항상 그 가르침의 본연으로 돌아가 굳건한 깨달음과 중생구제를 서원하는 결사체들이 생겼다. 중국 동진의 혜원 스님의 백련결사 이후, 신라 경덕왕 대 강주의 염불만일결사와 고려 인종 때 진억 대사에 의해 지리산에서 수정사(水精社)라는 결사가 있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왕실과 결탁하여 부패할 때, 몇몇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 혁신운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이다. 지눌은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문〉을 쓰고 세속화된 호국불교, 미신불교를 타파하고 타락한 형식불교를 척결하며 정법불교와 수행불교를 주창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사회개혁적 결사는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가 있었고, 화엄종계에서도 있었다.

대중들의 불교 신앙 공동체로 향도(香徒)가 있다. 고대 신라 때 향도(香徒)는 불교 신앙을 목적으로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결사조직을 말한다. 최초의 향도 사례는 신라에서 609년(진평왕 31)경에 김유신을 중심으로 조직된 화랑도(花郞徒)로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의 향도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였고, 불상, 종, 석탑, 사찰 등을 조성하거나 법회, 보시, 매향 등, 대규모적인 노동력과 경제력을 제공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불교 신앙 활동이 주된 활동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스님과 일반 신도들이 함께 조직되어 작게는 20여 명에서 크게는 3,000여명에 이를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분화하는 소농민들의 상호부조를 위해 향촌공동체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17세기 이후 이양법 등 농업기술의 발달로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공동 노동 조직으로서 두레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향도는 의식이나 상제일 등만 하는 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신라 및 고려시대에 국사나 왕사를 비롯한 고승들은 왕실과 백성의 존경을 받았고, 사찰의 고승들도 지역 공동체의 정신적 수장 역할을 해 왔다. 그러면서 당시의 지역에서 사찰의 세력과 경제력이 커지면서 그러한 사찰의 일을 담당하는 승도(僧徒)들도 증가했다. 조선 중기 《동국여지승람》에는 당시에 1,600여 개의 사찰에다 국가공인 승려가 5,500여 명이라고 했다. 한편 세조 13년 호패 발급 시에는 승려 수가 30만이라고 나와 있는데, 성종 11년 정극인의 상소에는 10만 5, 6천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1만여 사찰과 10만여 승려는 사찰 수는 오늘날의 4배에, 승려 수는 10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그런데 이들 10만 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행승이 아니고, 국가에 공인되지 않은 승려, 재가화상(在家和尙), 수원승도(隨院僧徒), 도중(道衆) 등은 비승비속인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지역의 민정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들 승도는 결국 사찰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사부대중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숭유억불 정책 과정에서 모두 환속의 대상으로 삼거나 혁거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무튼 조선 말까지 이들의 승도들은 불교의 거대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나 불교 활동을 전개해 왔다. 승도 속에 승려로 불리는 사람도 엄밀한 의미의 수행승과는 달랐다. 사찰이나 마을에서 재가를 이루면서 살았고 때로는 조선 정부의 위협적인 존재로 당취(黨聚) 즉 ‘땡추’가 되기도 했다 한다.

5. 오늘날 한국의 불교 공동체

한국불교는 이승만의 정화유시 이후로 비구, 대처 싸움을 비롯하여 치열한 종권 싸움으로 얼룩져 왔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미래사회의 희망을 제시하지만, 오늘날 한국불교라는 그릇은 그 가르침을 담기에는 너무도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동안 많은 새로운 개혁의 노력은 큰 의미를 갖고 있었고, 근대적 체계를 만드는 데 많은 성과가 있었다.

불교개혁을 정치혁명으로 생각하여 종단 개혁만을 전부로 생각하기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진정한 종교개혁은 정치개혁과 다르며 달라야 한다. 종교개혁은 언제나 종교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불교개혁은 불교의 정법을 올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개혁 세력이 다시 혁파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 시대에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그룹은 소수이며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들은 가장자리, 변방의 일점(一點)으로 시작된다. 아래 소개할 새로운 한국 불교의 공동체는 불교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위해 최근 다양한 형태로 모색되고 있다. 이들 공동체는 그 자체로 불교개혁이면서 동시에 사회 개혁이자 미래문명적 대안을 통합적으로 생각하며 시도되고 있다. 이들은 승가 중심만의 결사가 아니라 대체로 사부대중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이다. 아래에 소개하는 불교 공동체는 사찰의 승가공동체가 아니면서 미래사회의 의미 있는 대안의 모습을 띠고 있는 공동체로,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와 ‘정토회’ 두 곳을 소개한다.

1) 생태적 마을공동체의 실현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는 1999년 9월 11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출범으로 시작된다. 이 공동체를 만든 도법 스님은 이미 1990년 초, 실상사를 근본도량으로 한 ‘선우도량’이라는 불교개혁적 모임을 만들어 토론하고 연구하며 다양한 모색을 해 왔다. 이후 당시 지리산 내에서 계획 중이던 지리산댐의 건설 반대 운동을 지역 주민들과 전국의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고, 한국전쟁 당시 좌우대립으로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며,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천도제를 성대하게 치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위축되고 방황을 거듭하는 한국불교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연기적 세계관에 근거한 사부대중공동체와 지역마을 공동체로서, 도농 교류를 위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창립하게 되었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각종 사회활동과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사부대중공동체로 나뉜다. 특히 실상사 사부대중에서 출가 부문은 현재 실상사 사중 소임스님, 화엄학림, 화림원, 약수암, 서진암, 백장암 스님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재가 부분은 실상사의 재가대중과, 실상사 귀농학교, 한생명 사무국, 산내 여성농업인센터,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 지리산영농조합법인 등이 구성원이며, 이들은 신행 생활과 다양한 활동의 관리운영을 전문적으로 담당한다. 이들 간에 종교적으로 출가와 재가의 위계질서는 있지만 관리운영 면에서는 평등한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산내면의 지역 공동체와 결합하여 고려시대 승도와 같은 마을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1)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각종 기구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기구로 우선 초기에 시작된 ‘불교귀농학교’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귀농운동본부와 협력하여 진행된 귀농교육 프로그램으로 1998년 시작하여 1년에 2회에 걸쳐 매회 약 30~40명씩 참여하며 현재 25기까지 진행되어 귀농자를 배출했다. 이것을 이어받아 1998년 8월부터 장기 과정으로서 실상사귀농학교를 운영해 오고 있다. 귀농 희망자들은 실상사 농장에서 2개월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유기농 실습과 지역운동, 생태주의 사상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이곳은 전국귀농학교의 2차 교육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현재 500여 명이 거쳐갔다. 그리고 도제식으로 진행되는 1년 과정 ‘현장귀농학교’는 ‘거창, 하동, 남원, 봉화, 횡성, 진안’ 등 농촌 현장에서 유기농사를 직접 배우고 지역 농민들과 어울리며 마을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고, 2개월에 한 차례씩 워크숍을 통해 각자 경험을 나누기도 하며 일 년에 1회 마을학교를 통해 선지식으로부터 다양한 지역공동체의 경험을 듣기도 한다. 

또한 2003년 1월 18일 ‘인드라망 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하여 사찰에 생협매장을 만들고 유기농 생산자와 사찰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현재 조합 실무자들을 교육하고, 생산지를 견학하며, 유기농업 생산자를 발굴하고, 녹색 생활재를 사용하는 친환경적 생활양식을 확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신정동의 센터에서 채식요리 강좌, 요가, 한방약차, 단소, 바느질 등 다양한 소모임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우리 옷 인드라망’이라는 개량한복을 만드는 사업을 통해 불교계 단체복 등을 제작하는 문화운동도 전개해 왔다.
현재 불교귀농학교와 인드라망 생협은 서울에 신정동에 사무국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또 다른 많은 기구들은 실상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2001년 3월 4일 개교한 대안중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본래 교육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일부러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한 팀이 되어 공동체적 삶으로 배우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으로 유명한 곳이며 최근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개설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불교를 토대로 만들어진 최초의 대안학교이며, 오랜 기간의 교육적 노력이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그리고 2001년 8월 27일 출범한 ‘사단법인 한생명’은 실상사가 있는 산내면 지역의 생태, 자립, 공동체 등 대안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지역공동체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이다. 이곳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실상사 귀농 전문학교뿐 아니라, 생명문화학교, 흙집, 천연염색 등의 생명살림 강좌를 실시하고, 산내면의 ‘산내 여성농업인센터’를 만들어 여성농업인 영농교육과 가정상담 및 자녀교육상담, 어린이 도서관과 문화센터, 보육원, 교양강좌, 여성생산자조합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지역생태농업센터’를 만들어 실상사의 친환경 농업지구를 조성하고 생명농업이 그곳에 정착하도록 하도록 노력해 왔다. 이와 함께 생태공원을 조성하거나 지역을 생태마을로 만드는 등, 주민자치와 지역 발전을 위한 지역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이뿐 아니라 대안의학를 연구하는 연구소와 의학센터, 건강생협 등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학교로서 교육문화사업과 도시와 농촌을 잇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며, 지리산 둘레길 조성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실상사는 지역공동체 속의 사찰로서 바람직한 불사에 대하여 스님들, 지역 주민과 사부대중, 많은 전문가들과 오랜 토론을 전개하여 10가지 원칙을 정했다. 이 과정과 결과는 향후 한국불교 사찰 불사의 큰 실험이자 경험적 자산이 될 것이다.

또한 실상사의 수련 기구로 귀정사가 있다. 귀정사는 본래 백제 때 만행사라는 사찰터로 수많은 수행자들의 수행처였다. 6·25 때 전소된 것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웅전, 승당, 산신각, 요사채 등을 다시 지었다. 이곳에서 생명평화의 장 ‘쉼’이라는 2박 3일 명상수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 생명평화 결사운동과 탁발순례

도법 스님과 실상사의 이러한 실험과 실천은 한국불교의 차원을 넘어 한국사회와 세계의 비전을 키우는 자궁이자 씨앗을 만드는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2001년 5월 26일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진행된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와 이후 좌우익 이념 대립 희생자와 개발에 스러져간 뭇 생명을 위한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 지리산 천일기도’가 진행된 뒤에, 이를 기반으로 ‘지리산 생명연대’를 거쳐 2003년 11월 15일 ‘지리산 생명평화결사’가 창립되었다. 이 기구는 불교가 기반을 제공하지만, 범종교적 범사회적 기구로 수많은 종교,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함께 만든 조직이다.

조직이 결성된 이후 2004년 3월 1일부터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하여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2008년 12월 13일까지 장장 5년간에 걸쳐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 많은 회원들과 사회인사들이 전국 방방곡곡, 도시와 농촌을 다니면서 요소요소 우리 사회의 지역 현장을 살폈고, 지역 사람들과 유지 및 사회인사들과 만나 대화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장정은, 과연 이 시대 이 땅에 생명은 무엇이며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이 속에서 오늘날 시대의 방향을 모색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만나는 대화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 생명평화 탁발순례와 결사운동은 우리 사회에 몇 가지 큰 이정표를 만들어 주었다. 우선 그 이전까지 ‘생명’ ‘생명운동’이라는 말은 용어의 관념성 때문에 많은 사회인사들조차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5년간 전국의 지역에서 시민, 신부, 목사, 스님, 사회인사 등,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와 교류를 해 오면서 이제 ‘생명평화’라는 말은 ‘시대의 앞선 가치이자 전환의 새로운 이념’으로 공인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전에는 생경한 용어였지만, 이제는 부정적이었던 단체들마저도 스스로 ‘생명평화’를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두 번째로는 이 과정에서 같은 지역 내에서 활동하면서도 과거 이념적 불편함과 그 외의 이유로 만나지 않았던 단체와 인사들끼리 대화하고 함께 지역공동체를 모색하는 장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후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지역자치, 풀뿌리 생명공동체 운동’이라는 운동의 방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듯 지역 내에서 화합과 대화의 마당이 마련되고, 풀뿌리 지역공동체 운동의 활성화를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명평화운동의 선도 세력으로서 불교의 도덕적 리더십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후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비롯하여 수경 스님의 환경운동과 법륜 스님의 평화운동은, 1990년 이후 세계의 격변 과정에서 일반 사회운동과 타 종교운동이 혼돈과 어려움을 겪을 때, 이념적, 도덕적 지도력과 실천적인 지도력을 제공하며 다양한 사회 의제를 앞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재 생명평화결사는 여러 지역에서 생명평화포럼을 만들었고, 그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과 평화운동과 환경운동, 지역공동체 운동, 주민자치와 민주주의와 참여를 위한 많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위하여
     ―수행공동체 ‘정토회’

정토회는 불교혁신과 사회운동을 해 왔던 법륜 스님과 젊은 활동가들이 모여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기치로 만들어진 서원 공동체이다. 출범하기 5~6년 전부터 이미 봉천동과 비원 근처에 ‘중앙불교교육원’을 개원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던 중 1988년 3월부터 홍제동과 명륜동에 각각 정토법당과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이후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을 거쳐 현재 에코붓다로 개칭됨)과 한국불교사회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정토회는 시작되었다. 출범 당시에 각 기구는 서로 역할 분담을 통해 불교개혁과 불교 사회교육활동, 사회민주화운동을 전개해 왔다.

한국불교사회연구소는 사회운동의 정책 및 불교 운동의 이념을 생산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은 ‘민족불교학당’ ‘민족여성학교’ 등의 교육 활동을 통해 불교계 청년들의 사회의식 고양과 지도력 개발, 페미니즘운동을 고양하는 역할을 해 왔다. 당시 민족불교학당 출신 졸업생으로 구성된 ‘청년여래회’는 지금도 불교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불교 사회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 전후로 동구 및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위기의 문제로 제기된 환경문제 등이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면서 정토회의 중심 활동가들은 그간의 활동을 중지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후 약 3년여에 걸친 연구와 토론 등의 내부 모색 기간을 거쳐 1993년부터 ‘일과 수행의 통일’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수행을 함께하는 수행공동체’로 거듭나면서 본격적으로 1만일 결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러한 서원을 갖는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정토회의 모든 대중이 수행공동체를 만들어 그 원력을 최소 1만일 동안 함께 마음과 힘을 모으면 문명과 사회의 궤도를 작게나마 수정할 씨앗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정토회는 모든 괴로움과 사회적 갈등, 자연환경 파괴로 인한 인류문명의 위기의 주범으로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며 직선적인 성장과 풍요를 도모하는 산업사회의 가치관을 주목한다. 따라서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세계관 운동과 생활양식 전환 운동을 전개해 왔다. 결국 ‘나와 사회, 자연은 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는 한 생명이며(無我), 죽이면 죽임으로, 살리면 살림으로 돌아오는 인과의 도리를 알아, 내 것이라는 소유욕과 자기만이 옳다는 아집을 끊고(無所有, 無我執), 일체의 사로잡힘을 내려놓고, 적게 쓰며 서로 돕고 화합하는 공동체’를 이루려는 것이다. 그래서 무아, 무소유, 무아집을 통해 ‘맑은 마음(인간 자신 수행)’ ‘좋은 벗(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 ‘깨끗한 땅(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활동해 오고 있다.

(1) 정토공동체의 생활과 수행

이 1만일 결사는 1천일(약 3년)마다 모든 활동을 전면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되어 있다. 주요 성원들은 모두 직위가 해소된다. 이후 성원들은 나이, 연령, 학벌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보직을 순환하게 된다. 한 번은 연임할 수 있지만 3번째부터는 무조건 다른 보직으로 이동한다. 업무의 계속성이나 축적으로 인한 ‘사업상의 효율’보다는 모든 성원이 두루 일을 경험하면서 이해하는 ‘공동체적 효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 업무를 시작하는 활동가는 설령 과거의 보직을 그대로 한다고 해도 초심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1천 일을 다시 1백 일씩 나누어 전국의 모든 결사자가 모인다. 그래서 매일 행해 온 ‘수행, 보시, 봉사’의 수행과 동시에 주어진 사회실천 과제의 결과를 점검하고, 다시 이후 1백 일간의 수행과 실천지침을 갖고 돌아간다. 정토회는 2011년 2월 현재 6차 1천 일 기도가 끝났고, 이후 7차를 준비하기 위한 평가와 검토 및 이후 활동을 기획 논의 중에 있다.

정토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생활공동체 구성원은 현재 서울에 45여 명, 문경에 60여 명 등 약 100여 명이다. 이들은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예불과 108배 기도와 명상, 간경 등을 하고, 아주 오랜 전통 방식의 발우공양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실무자들은 8시 50분에 10분간 ‘여는 의식’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저녁 5시 50분에 ‘접는 의식’으로 하루 생활을 마무리하고 법회나 기타 신행 활동, 혹은 행사 등에 참여하며, 10:30분에 취침한다. 이들 생활공동체 구성원들이 대부분 정토회의 상근실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활동의 실무 중심은 일반 청년, 보살과 거사 등, 헌신적인 수행공동체 자원 활동가들에게로 이전되는 추세이다.

정토회의 자원 활동가들은 대단히 헌신적이며 그 시스템도 아주 견고한 편이어서 모든 사회적 활동의 기획, 실행, 평가뿐 아니라 웬만한 행사의 실무도 모두를 이들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일반적 의미로 함께 생활하는 생활공동체는 100여 명을 지칭하지만, 정토회 전체 수행공동체는 약 7,000여 결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토법회는 2011년 현재 서울과 부산에 각각 2곳을 비롯하여 대구, 마산, 울산, 경주, 대전, 청주, 광주, 제천, 일산 등에 13곳에 지역 법당이 있으며, 미국에 7개, 유럽에 6개, 마닐라, 방콕, 북경, 동경 등지에 법당이 있거나 법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정토회 법당은 일반 사찰의 기능보다는 수행과 사회실천의 모임 장소이자 커뮤니티센터로서 역할하며, 실질적인 정토회 신행 활동은 전국의 가정이나 직장 약 200여 곳에서 10~30여 명이 모여 진행되는 수행법회 모임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법회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토회의 ‘수행, 보시, 봉사’ 원칙에 따라 수행도 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

(2)정토회 각 기구의 활동

정토회의 정신적 중심은 문경수련원이다. 그곳에서 진행되는 ‘깨달음의 장’은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0명을 단위로 진행되며, 불교의 화두선에 종교적 색깔을 걷어낸 수련으로 2011년 2월 현재 730여 차례가 실시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일반 사회단체나 지식인들에게 광범위하게 정평이 나 있다. 또한 위빠사나 수행을 현대화시켜 매월 1회 이상 진행되는 ‘나눔의 장’ 역시 230회가 진행되었다. 또한 매월 1회 이상 진행되는 명상수련과 노동선 프로그램인 ‘일체의 장’도 진행 중이며, 약 50명을 단위로 진행되는 100일 출가 프로그램도 11회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2년간의 행자대학원 과정도 진행되고 있다.

정토회는 산하에 환경운동단체인 ‘에코붓다(Eco-Buddha)’, 평화와 난민지원 기구인 ‘좋은 벗들(Good Friends)’, 국제개발지원기구인 ‘한국제이티에스(JTS, Join Together Society)’ 등 3개의 사단법인이 있다.
‘에코붓다’는 1991년 창립된 불교 최초의 환경단체로서 그 전신은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이다. 이 기구는 8여 년 동안 약 1,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생태학교’를 비롯하여 자연과 조화되는 가치관과 생활양식 전환을 위한 교육과 수련, 대안사회에 대한 다양한 교육과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후 2000년부터 그 방향을 생활양식 전환운동으로 정하여 전 정토회 회원을 대상으로 쓰레기제로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 실천 항목의 하나인 ‘빈 그릇 운동’은 2005년부터 대사회적으로 전개하여 160만 명의 서약을 받아 한국사회운동 사상 가장 성공적인 캠페인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 불교계 환경단체인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불교환경연대’ 등의 출범에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1년에 창립한 국제 기아·질병·문맹 퇴치 민간기구 한국제이티에스(JTS)는 1993년 인도 보드가야 전정각산 밑의 불가촉천민 마을인 ‘둥게스와리’에 학교를 세운 이래, 주변 17개 마을의 개발과 의료, 교육지원 활동을 해 온 불교계 최초의 국제개발 NGO이다. 그리고 현재 필리핀의 분쟁 지역인 민다나오의 산간마을에 지역단체와 더불어 40여 개의 마을학교를 지어 주었고, 전통문화를 지원하는 센터와 주택 건설 등의 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맞는 개발지원활동을 벌여 왔다. 이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긴급구호 활동, 스리랑카와 캄보디아의 마을개발 지원 활동 등도 전개했다. 북한의 식량 지원과 나진, 선봉, 온성, 청진 등지에 농업지원과 유치원, 탁아소 지원 사업 등도 전개해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2007년 UN ECOSOC의 특별 지위의 국제 NGO로 승인된 한국 최초의 불교 기구이다.

1996년에 창립된 사단법인 ‘좋은 벗들’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선결 과제인 북한식량난과 난민 문제 해결을 출발점으로 난민지원사업, 갈등 분쟁의 해결을 위한 평화운동, 인권운동을 전개해 왔고, 현재 북한소식지를 발간하는 조사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하여 정토회의 실무력과 재정 지원으로 2004년 11월에 ‘평화재단’이 정토회와는 별개의 독립 단체로 설립되었다. 이곳은 동아시아와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정책개발과 연구, 교육활동을 활력적으로 전개했다. 또한 냉각된 남북관계를 새롭게 잇는 종교 간 연대, 사회 원로들 간의 모임과 실천도 주선해 왔다. 특히 매월 1회 이상 토론회와 연 2차례 대규모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6개의 전문가 그룹 50여 명이 매월 각각 콜로키움을 진행하면서 민간 부문에서 평화와 남북문제에 관한 가장 큰 싱크탱크 역할을 하며 결과물을 생산해 내고 있다. 여기에 1박2일로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는 워크숍, 연 2차례 진행되는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와 ‘열린아카데미’등의 교육활동으로 향후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비중 있는 리더십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외에 정토회 대학생회도 대단히 활력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여름과 겨울 한 달 정도 인도, 필리핀 몽골 등 해외에서 진행되는 대학생 캠프는 이미 YMCA, 현대자동차, 코이카 등에서 실시하는 대학생 해외 지원 활동의 전형으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정토회의 청년회 모임과 방송인 모임인 ‘길벗’ 모임도 성원들의 자발적 기획과 실천을 통해 큰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6. 글을 마치며

《홍길동전》의 ‘율도국’, 여인들만의 이상촌 ‘이어도’, 티베트의 ‘상그릴라’, 유럽의 ‘유토피아’, 기독교의 ‘에덴동산’이나 불교의 ‘정토’ 등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사회이기도 하지만, 중생이 도탄에 빠지거나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꿈꾸어 온 이상사회이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야 할 때, 사회개혁만으로 난국을 헤치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인류는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가 항상 삶의 근본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래서 인간 삶의 원형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을 오롯이 헌신해 온 공동체의 역사가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무소유의 삶을 기반으로 고도의 정신적인 깨달음을 추구해 온 승가공동체 같은 정신적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기성의 가치를 거부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실험하며 만들어온 대안적인 공동체, 그리고 공동으로 주거를 함께하며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누리며 사는 공동체, 개별적인 삶을 인정하면서 생산을 공동으로 해온 협동조합공동체도 있었다. 또한 두레나 향약, 계 등처럼 마을의 상호부조와 자치를 추구하는 마을공동체도 있었고, 지역통화처럼 화폐 중심의 사회의 틈을 비집고 새로운 사회를 구현하려는 공동체도 이었다.

이스라엘은 과거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사회주의자들과 시오니즘이 결합되어 ‘키부츠’라는 공동체로 시작된 국가이다. 대체로 400~600명으로 구성된 각각의 키부츠 공동체는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 않으며, 공동생활, 공동생산, 공동판매의 무소유 공동체로 현재에도 약 270개가 있다. 그리고 사유재산은 허용하되 공동생산을 하는 공동체 ‘모샤브’가 360개 있으며, 공동노동 기업체인 ‘모샤브 쉬투피’는 70여 개, ‘모샤바’라는 농촌공동체가 100여 개가 있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근본 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에 대한 정치적 판단 여부를 떠나 사막이라는 황무지, 외부의 위협이라는 악조건 속에 상호부조하며 발달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바로 공동체가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데 공동체가 아주 유용한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불교의 역사나 세계 역사,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도 오탁악세에 물들지 않고 정법에 의거하여 깨달음을 증득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삶을 결단한 성원들이 외부사회와 독립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동체를 이루며 미래의 씨앗을 키워온 유장한 전통이 있었다. 이때 불교 내의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 운동은 그 원력의 씨앗을 유지하고 강화하며 확대하는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을 역사의 교훈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공동체는 일종의 새로운 사회를 위한 씨앗이다. 우리가 공동체에 요구하는 것은 현실사회가 이루지 못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미래의 꿈을 꾸고 설계할 수 있는 실험적 결과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다른 사회적 실천보다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이후 최근까지 전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공동체들이 준비하거나 시작한 곳이 급격히 많아졌고, 그 형태도 다양해졌다.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사과나무를 심고자 하는 사람들, 불교의 앞날을 걱정만 하지 않고 새로운 원력을 갖고 근본 자리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공동체들이 시도되는 것이다.
그 공동체는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공하면 성공한 것만큼 나가는 것이고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인류에게 교훈을 축적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 운동의 사회 전략은 ‘틈’ 전략이다. 틈을 비집고 넓히면서 결국은 사회의 중심을 이동하게 만드는 작은 틈. ■

 

유정길 / 에코붓다 공동대표. 1988년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의 사무국장, 1991년부터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실무책임자로 활동함. 2001년부터 3년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긴급구호 활동, 2005년부터 5년간 남북문제 정책개발기구인 평화재단 기획실장 역임. 현재는 2010년 12월부터 동아시아의 불교 간 네트워크를 위해 일본에서 불교사회단체의 교류 및 조사연구 활동 중이다. 저서로 《환경논의의 쟁점들》 《세계어디에도 내집은 있다》 《한국전통문화 속의 환경지혜 및 녹색발전》 등의 공저서와, 《그린피스 이야기》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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