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고 신 난다”

그날도 인드라망 사상에 입각하여 봉은사와 4대강 문제를 중도 또는 화쟁적으로 해결하고자 사무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실상사로 내려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는데 박경준 교수로부터 “스님의 글이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으로 뽑혔다”는 전화를 받았다.

소식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한국불교의 지성화’를 일구기 위한 원력으로 마련된 불교평론 마당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니 덤으로 신났다. 좋은 평가를 해 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쯤에서 〈생명평화운동과 대승불교의 수행〉이라는 글을 쓰게 된 문제의식을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오늘의 한국불교 현실을 보면 과거와 미래의 불교는 넘쳐나는데 지금 여기에 살아 숨 쉬는 오늘의 불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생각과 말과 지식의 불교는 화려한데 구체적인 행동과 삶으로 약동하는 현장불교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 여기에서 초기·부파·대승·선·한국·미국·현대화·세계화의 불교를 논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대부분 과거가 아니면 미래의 불교이지 지금 여기에 생동하는 현대의 불교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가 않다. 선(禪)과 교(敎), 이(理)와 사(事), 자(自)와 타(他), 세간과 출세간, 지혜, 자비, 삼매, 깨달음, 부처, 해탈, 열반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불교가 생각과 말과 지식으로는 풍성한데, 구체적인 현실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현장불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결과가 한국불교의 오늘과 내일이 매우 어둡고 우울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 해답을 찾고자 몇 해 전부터 명실상부한 새로운 대승불교 또는 현대불교의 길을 모색해왔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불교인이 초기와 대승, 선(禪)과 교(敎), 이(理)와 사(事), 자(自)와 타(他), 세간과 출세간, 이론과 실천, 수행과 삶이 통일될 수 없는 비중도적인 이원론 또는 실체론적 불교관과 수행론에 붙잡혀 있음을 보았다.

과연 불조가 뜻한 가르침의 본의가 그런 것일까. 면밀하게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불교의 진면목은 스스로 갈등과 대립을 낳을 수밖에 없고 지난한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이루어지게 되는 이분법적인 불교와 수행론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바로 깨어 살면 그것이 그대로 깨달음이고 부처행위 하면 그것이 그대로 부처라는 중도적으로 통일되는 불교와 수행론이다.

굳이 부연설명을 하자면 “행위가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는 붓다의 가르침대로 “붓다의 행위가 있을 뿐 붓다가 따로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불교를 이렇게 보고 이렇게 실천할 때 수행이 삶이 되고 삶이 수행이 되는 참불교, 참정진이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활발하게 펼쳐질 수 있다.

끝머리에 21세기 한국불교가 풀어야 할 화두를 단순화시켜 정리해보겠다.

언제나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실천되는 참된 불교와 수행의 길인 새로운 대승불교 또는 현대불교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구세대비(救世大悲)의 원력으로 위풍당당하게 행동하고 생활하는 현장의 출가수행자, 불교신행자로 우뚝 설 수 있는 참불교, 참수행론은 어떠해야 하는가. 불교평론 마당이 한국불교에 던져진 화두를 풀어내는 큰 마당으로 빛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거듭 감사의 마음 올린다. ■

 

▣ 수상자 도법 스님 약력

18세에 집을 떠나 40여 년을 출가수행자로 살았다.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불교결사체인 ‘선우도량’을 통해 청정불교운동을 함께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실상사 주지를 지내면서 실상사 귀농학교와 중등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를 열었고, 전국적으로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단체를 통해, 지역에서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한 기관인 사단법인 한생명을 통해 생태적 지역공동체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1,000일 기도’를 올리면서 생명평화의 화두와 실천을 사회화하는 기반을 가꾸었다. 지리산 공부 모임과 지리산 1,000일 기도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생명평화결사’를 만들었고, 2004년 3월 1일부터 2008년 12월 14일까지 5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걷고 지역주민, 종교인, 관의 인사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했다.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에 살면서 불교의 수행과 사회적 역할, 마을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실상사 회주, 사단법인 한생명 이사장,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올해 6월부터는 불교적 시각에서 사회 갈등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교보생명 환경문화상 환경운동부문 대상, 2003년 제5회 인제인성대상, 2008년 포스코 청암상 봉사상을 수상하였다.

펴낸 책으로 《화엄경과 생명의 질서》(1990), 《길 그리고 길》(1995), 《화엄의 길 생명의 길》(1999), 《청안청락하십니까》(2000), 《내가 본 부처》(2001),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2004), 《그물코 사랑 그물코 인생》(2008)이 있고, 관련된 책으로는 경향신문의 김택근 논설위원이 기록한 《사람의 길−도법스님의 생명평화탁발순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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