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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물방울 하나 빗금으로 흘러도 흔적이 남는다.

허공에 바람 한 줄기 지나간 길도 그렇다.

물 위에 떨어진 꽃잎처럼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의 몸과 마음이 흘러간 며칠 동안의 일이다. 세상에 그런 이 아무도 없는 듯하여도 누군가 깊은 산속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꽃 피고 잎 지는 걸 바라보듯 당신을 깊이 지켜보았다는 뜻이다. 그해 가을, 당신 마음 안의 풍경인지도 모른다.

 

그날 당신이 일행과 떨어져 버스에서 내린 것은 구례에서였다. 누군가 이렇게 당신 신상에 대해 말한다고 지레 놀라거나 겁먹을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일일 수도 있고, 또 그것이 이끄는 길도 있는 법이다. 여행 둘째 날이었다. 구례의 무엇이 당신의 발길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내릴 때 또 한 사람이 내렸다. 아침부터 기회를 엿보던 중 누군가 구례에서 내린다고 하자 당신도 얼른 핑계를 대듯 그곳에 볼일이 있다며 뒤를 따라 내렸다. 당신 앞에 내린 사람은 방금 전 아버지의 부음을 들은 삼십 대 후반의 여자였다.

함께 떠나긴 했어도 처음부터 편하게 따라갈 여행이 아니었다. 당신은 미처 몰랐지만, 전날 아침 버스에 오르고 보니 그랬다. 수시로 중국을 드나드는 당신 선배가 이미 충분한 회비와 찬조금을 냈으며, 자기 대신 누가 가도 상관없는 자리라며 대리 참가를 부탁했다. 일 년에 한 번 친교와 유대를 다지듯 실시하는 이박삼일간의 문화 기행이었다. 본인의 표현대로 중국과 스무 가지도 넘는 품목을 ‘잡다하게’ 교역하는 선배는 시월 들어서만 두 번째 중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당신에게 대신 참가를 부탁한 건 사흘 전의 일이었다. 

출발지는 서울 반포 뉴코아아울렛 주차장이었다. 도착하니 그곳에 서로 목적지가 다른 여러 대의 버스가 서 있었다. 당신은 처음이지만 매일 아침 그곳의 풍경이 그랬다. 당신은 여행을 주최하는 단체 이름이 적힌 버스에 올랐다. 타고 보니 당신만 낯설 뿐 서로 대략 아는 사이들인 듯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같은 재단 후원자로 우의와 유대감 같은 게 흘렀다. 복장이 자유로워 그렇지 더러 신문과 방송에서 보던 얼굴도 있었다.

여행사 직원이나 재단 관계자가 아닌 다음에야 일 년에 한 번 떠나는 문화 기행을 회사 업무처럼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반은 등산복을 입고 있어도 일반 사람들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사람들과 나란히 이름을 걸고 어느 사회재단을 후원하는 것이 선배에게는 업무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겠구나 당신은 생각했다. 자신이 다른 일로 못 가게 되면 그냥 불참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따로 찬조금을 내고 후배에게 대리 참가를 부탁한 것도 아마 그래서일 거라고 당신은 버스에 오른 다음에야 짐작했다. 

어른들의 수학여행처럼 버스 두 대가 움직이는 여행이라 저마다 타야 할 차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2호차엔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것은 당신 선배까지 세 사람이 불참했는데, 누구 대신 온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것이었다. 다들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주중에 이박삼일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 정도면 누가 보더라도 대단한 출석률이었다. 며칠 전 선배도 당신에게 대신 참가를 부탁하며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재단에 대해 자랑했다. 재단에서 매월 한 차례 각계 명사를 초청해 아침 대화 시간을 갖는데 그때마다 호텔 연회장에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초청 인사의 명성 같지만, 실은 행사를 치르는 재단의 영향력이고 그 자리에 모이는 사람들 면면이 갖는 영향력이라는 뜻이었다. 이번 여행 역시 그런 셈이었다.

재단 직원이 인원을 파악할 때 다른 불참자의 이름은 점검을 위해 두 번 불렀지만, 누군가를 대신 보낸 당신 선배 이름은 네 번이나 불렀다. 그때마다 당신은 약간 곤혹스러운 얼굴로 대신 참가를 설명하거나 어정쩡한 모습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뒤늦게야 올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내릴 수 없었다. 내리면 사람들은 당장이야 당신을 이상하게 보겠지만, 버스에 오르자마자 내리는 사람을 대신 보낸 당신 선배를 이상하게 여길 게 틀림없었다.

여행 첫날은 선운사와 소쇄원, 보성의 가을 차밭을 둘러보았다. 어색함과 어수선함은 버스가 이동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버스가 새로운 방문지에 도착할 때마다, 또 식사때마다 사람들은 속으로 흐르는 물처럼 표나지 않게 이 자리 저 자리를 찾아다니며 서로 분주히 인사했다. 당신에게도 몇 사람이 새로 알은체를 해 왔다. 어떤 사람은 당신의 직업을 알고 이미 공사에 들어간 집의 설계에 대해 물어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호의적이어도 당신에게는 시작부터 불편한 자리였다.

 

버스가 선 자리는 구례 공용버스터미널 앞이었다. 숙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송광사에 들렀다가 구례를 지나 화개로 가는 길 중간에 내렸다. 버스가 떠나자 길 위에 여자도 당신도 손잡이가 비죽 올라온 캐리어를 하나씩 비스듬히 눕혀 잡고 있었다. 시간은 아직 열한 시밖에 되지 않았다. 당신이 먼저 버스터미널 쪽으로 캐리어를 끌었다. 버스터미널 입구에 도착해 당신은 그 자리에 멈춰서고, 여자는 당신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참 이상도 한 것이 당신은 다시 여자가 나올 거라는 걸 미리 짐작이나 하듯 아무 동요 없이 그 자리에 선 채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짐작해서는 아니지만 실제로 여자는 잠시 후 다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서울 가는 차가 금방 없네요.”

여자는 아까보다 조금 얼굴을 펴고 함께 가야 할 사람에게처럼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금방 서울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함께 돌아간다면 그것은 다시 그 시간만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자는 송광사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당신은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 한 시간 반쯤 경내를 돌고 버스에 오르니 누군가 말했다. 사람들은 KTX를 타는 게 가장 빠르다고 했지만, 여자는 이미 한 차례 격정을 수습한 듯 차분한 얼굴로 버스가 구례를 지날 때 내리겠다고 했다. 여자의 얼굴이나 태도로 봐 부친의 죽음이 아주 예상 밖의 일 같지는 않았다. 당신은 한 사람의 얼굴에서 슬픔이거나 혹은 비슷한 감정이 그렇게 빨리 정리될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여자가 구례에서 내리겠다고 하자 누군가 버스는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여자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가면서 준비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조금 천천히 가는 것도 마음의 준비일 수 있었다.

여자가 내릴 때 당신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재단 관계자에게 실은 당신도 급한 일이 있어 함께 내려야겠다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가 너무도 선선히 응해 당신은 원격으로 서울 컴퓨터에 있는 어떤 도면을 누구에겐가 보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날부터 당신은 머릿속으로 내내 그 말을 할 시점을 계산했다. 첫날은 무조건 이들과 같이 보내야 한다. 그리고 둘째 날 일정을 시작한 다음 어느 시기에 전체 판을 깨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버스에서 내리면 선배에게도 누가 되지 않고, 자신도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자가 때를 알려준 셈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함께 간다면 그것은 저쪽 버스만큼이나 서로 불편한 일이었다.

“저는 오늘 안 가고 여기 있을 겁니다.”

당신이 여자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여자는 당신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잠시 착각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곤 손목을 꺾어 시계를 본 다음 조금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좀 이르긴 한데 저하고 매운 면 같은 거 함께 드시지 않겠어요?”

뜻밖이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같은 음식이라도 매운 것이면 조금 결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전 여자는 아버지의 부음을 받았다. 일단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면 빈소에 도착할 때까지 여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이다. 경황이 없긴 하지만, 차를 타기 전 무어라도 좀 먹어야 한다면 다른 음식보다 차라리 매운 면 같은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에겐 지금 역으로 슬픔을 중화시킬 어떤 자극 같은 게 필요할지도 몰랐다.

나란히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 뒤쪽 중국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한 것은 당신이었다. 여자는 자기 것은 보통보다 더 맵게 해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식탁 옆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캐리어와 당신과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자는 집에서는 혼자 밥을 먹지만, 음식점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는 건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엔 거의 그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자는 어제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아침도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때를 놓쳤다고 했다.

“빈속인데 매운 걸 먹어서 되겠어요?”

“괜찮아요. 저는 제가 그러니 다른 사람도 혼자서는 밖에서 식사를 못 하거니 여겨요.”

그래서 헤어지기 전 당신에게 식사를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 뜻일 것이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은 탁자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버지의 부음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처럼 보였다. 여자는 이 여행이 애초엔 세미나를 겸해 제주도로 떠날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변경되어 남도 문화 기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처음엔 송광사 다음 여기 구례 화엄사로 갈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1호차에 타신 어르신 몇 분이 화엄사는 이쪽으로 올 때마다 들렀으니 화개와 평사리로 가자고 해서 그리로 간 거죠. 우리는 중간에 내리고요.”

당신은 여자에게 조심스럽게 재단과 관계된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재단에서 일 년에 두 번 일반 시민을 상대로 가곡의 밤과 국악의 밤 행사를 하는데 무대 진행과 출연자 섭외까지 모든 기획을 자신과 또 한 명의 후배가 맡아 하고 있다고 했다.

여자는 음식을 반 넘게 남겼다. 당신도 시간이 일러 그다지 당기지 않았다. 식사를 마칠 때쯤 어색한 분위기는 조금 풀어졌지만, 다시 캐리어를 끌고 나와 헤어질 때까지 당신은 여자에게 부친에 대해 묻지 않았고, 서툰 위로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안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여자는 버스에서보다 담담했으며, 당신도 평소처럼 먼 길 조심하라는 말 만하고 명함 한 장씩 주고받았다.

“집을 짓는 분이시군요.”

명함을 받으며 여자가 말했다.

“자재를 들여 직접 짓는 건 다른 분이 하고, 작은 사무실에서 그것의 밑그림과 설계만 하는 거죠.”

여자와 헤어지자 당신은 갑자기 이곳에서 혼자 보내야 할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여자와 다른 버스로라도 그냥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바쁜 일도 없었지만, 왠지 전날 불편했던 기분을 이곳에서 벌충하고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캐리어를 끌고 공용버스터미널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전에 송광사에 들렀을 때도 그랬지만, 낯선 일행 때문이 아니라도 당신에게 절은 한없이 마음이 편해지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구례 공영버스터미널 앞에서 이제 어디로 가지? 했을 때 얼른 떠오른 것은 연곡사와 화엄사였다. 그중에 먼저 생각한 것은 연곡사였다. 그러나 당신은 화엄사로 가기로 했다. 연곡사 아래에 손수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있었다. 전에 아내와 함께 하루 묵고 온 적도 있었다. 지금 기분으로서는 연곡사에 가도 친구 집에 들를 게 아니지만 가면 이상하게 또 다른 빈자리를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당신은 여행 중 그런 것은 좋은 느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절이 당신에게 한없이 편한 공간은 아니더라도 화엄사에 가면 이번에야말로 그곳에서 저녁예불 법고 소리를 듣고 싶었다. 처음 든 생각은 아니었다. 그걸 들으러 서울에서부터 일부러 내려오는 것은 쉽지 않을 테고 지금처럼 이곳을 지나는 길에 자연스럽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쩌다 이 부근을 지날 때마다 했다. 전에도 몇 번 구례에 온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여럿이서 늘 낮에 지나는 길에만 화엄사에 들렀다.

당신은 터미널 건너편에서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화엄사로 가는 길 중간에 마땅한 숙소가 있으면, 그러니까 절까지 걸어 올라가기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기사가 당신을 내려준 곳은 지리산국립공원 남부관리소 부근의 한 모텔이었다. 방에 짐을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당신은 신발만 벗은 채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여행 일정에 맞춰 아침부터 일찍 움직인 때문인지 기다렸다는 듯 졸음이 몰려왔다.

까무룩 밀려드는 졸음 속에 당신은 불현듯 아주 먼 곳에 있는 한 여자를 떠올렸다. 아까 여행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버스에서 내린 여자가 함께 매운 걸 먹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뜻밖이긴 했지만, 그 말이 생경하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뒤늦게 깨닫듯 갑자기 얼굴이 떠오른 것이었다. 이미지가 달라 서로 연상되는 것은 없지만, 그 여자도 마음속에 참을 수 없는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게 밀려들 때면 매운 칠리 보드카를 마신다고 했다. 그것을 그냥 쭉 마시는 게 아니라 입술에 댄 잔을 거꾸로 세우듯 단숨에 털어 넣고 입을 꽉 다물면 슬픔이 술의 매운맛과 함께 어금니 사이에 물린다고 했다. 당신이 아내와 이혼하던 해 겨울, 일부러 혹한기 때 떠난 러시아 여행 중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만난 여자였다. 그 말을 들을 때 당신은 꽉 다물어도 별로 결연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여자의 턱선을 몇 번이고 바라보았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었다. 지금도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때 여자는 3년인가 4년째 러시아에 와 있다고 했다. 나이 든 다음 더 나이 들기 전 공부를 하러 왔다고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듯 보였다. 신상에 대해 자세한 건 서로 묻지도 않았고, 또 진지하게 나눈 얘기도 없었다. 기차 차창이 하얗게 얼어붙을 만큼 추운 날씨 속에 그런 추위를 견디게 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돌아와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스치듯 그 말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당신 마음속에 외롭거나 슬픔 같은 것이 밀려들 때가 아니라 아주 이따금 술자리에 보드카가 나올 때였다. 그럴 때면 잠시 당신도 칠리 보드카를 꼭 한번 마셔보고 싶다가도 그것 역시 곧 잊어버리곤 했다.

당신은 졸음 속에 정말 별게 다 떠오르는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걸 의식하든 하지 않든 어떤 기억도 다 연관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정말 별일을 다 생각해 내듯 절과 당신 사이의 이런저런 기억들을 순서 없이 떠올렸다. 이 세상 깊은 산속 어딘가에 절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 재색 옷을 입고 파랗게 머리를 깎은 스님이 산다는 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알았다.

당신 기억 속의 스님은 술을 잘 마셨다.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스님은 산에서 내려올 때 호랑이 등을 타고 왔다. 마을까지 호랑이를 데리고 오지 않는 건 동네 개들과 닭들이 놀랄까 봐서라고 했다. 스님이 마을로 간다고 하면 호랑이가 절 앞 문에서 스님을 태워 산 아래까지 데려다준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갔다가 스님이 돌아갈 시간이 되면 다시 산 아래로 온다고 했다. 그런데도 개들은 그걸 모르고 스님이 마을에 오면 이집 저집 다 함께 힘을 합쳐 짖어댔다. 스님은 어디 먼 곳에 다녀오거나 그냥 마을에 왔다 돌아갈 때면 제일 마지막에 당신 집에 들렀다. 그래서 스님은 아침이거나 낮에 오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해거름에 왔다. 스님이 마을에 오면 할머니가 늘 탁배기 상을 봐놓았다. 할머니는 스님이 오면 함께 합장하고 정중하게 대하면서도 반말로 세상일을 가볍게 나무라거나 타이르기도 했다. 

“여기서나 그러지 다른 데 가서는 그러지 말어.”

식구들 듣지 않게 할머니가 스님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러면 스님도 고맙습니다, 하고 할머니의 말문을 막듯 합장했고 할머니도 따라 합장했다.

할머니 집안의 귀한 붙이란다. 당신 어머니가 말하곤 했다. 스님은 늘 바람처럼 구름처럼 호랑이를 타고 왔지만 당신은 한 번도 호랑이를 보지 못했다. 스님이 있는 절에도 가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행색은 스님 같아도 부처님이 아닌 다른 신당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느 여름날 딱 한 번 할머니가 절에 갔다는 말을 듣고 어린 당신은 무작정 할머니를 찾아 떠난 적이 있지만 절에 가 닿지는 못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눈물과 콧물과 땀이 범벅되어 얼마나 헤맸는지도 모르게 걸었지만, 마지막 마을에서 만난 사람이 여기는 절이 있는 곳이 아니라고 너는 어디에서 온 아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오래 걷고 헤맸는데도 하얗게 꽃이 핀 감자밭 가에 해는 아직 중천에 그대로 떠 있었다. 당신은 갑자기 공포가 밀려와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동네 어른이 멀리 마을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때야 다시 해가 움직이기 시작해 개울 따라 집 가까이 오자 뉘엿뉘엿 저녁이 되었다. 할머니는 이미 돌아와 있었다. 할머니는 어느 길로 어느 절로 갔던 것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스님도 발길을 끊었다. 후에도 당신은 어딜 가다가 감자꽃만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당신이 공용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진 여자를 다시 본 것은 화엄사 명부전 앞에서였다. 그때 당신은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적멸보궁에 막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그곳에 특이한 모습으로 암수 네 마리의 사자가 입을 벌리며 떠받치고 있는 삼층 석탑이 있고, 그곳으로 오르는 길옆에 동백나무 숲이 울울하게 자라 있었다. 절이 한정 없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하면서도 당신은 화엄사에 올 때마다 적멸보궁 앞의 구부러진 노송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꼭 높은 곳에서 전체 전경을 바라보지 않더라도 화엄사는 건물들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것의 배치와 구도가 호쾌하고 장대했다. 반대로 가람의 규모가 큰데도 이상하게 오밀조밀하게 느껴지는 절이 있었다. 당신이 꼭 건축을 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각황전이야 워낙 큰 건물이지만 주변 배경과 건물의 어울림에서 각황전과 ㄱ자를 이루는 대웅전도 실제로는 각황전의 절반 정도의 크기지만 두 개의 탑이 있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면 거의 동등한 크기로 배치되어 있었다. 당신은 예전에 아내와 함께 왔을 때 절마다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얘기했다. 산이 제 품에 든 가람을 키우기도 하고, 가람의 지붕을 누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어쩌다 한 한기 학교 강의를 맡게 되면 사찰 기행이니 건축 기행이니 하는 이름으로 이따금 절들을 찾아다녔다. 그때도 당신에게 절은 절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정서처럼 한정 없이 편하고 익숙한 데가 아니었다. 절에 와도 낱개 건물의 구조를 살피고 주변 산세와 전체 건물의 어울림을 살피고 그걸 설명했다. 위안과 구도는 당신 마음 안에 아직 점으로도 자리 잡지 못했다. 

각황전 뒤쪽 동백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은 이 절의 전체 분위기와 다르게 외지고 호젓했다. 그 길을 따라 내려온 당신이 각황전 앞의 오층탑을 지나 대웅전 계단을 밟고 올라갈 때 터미널에서 헤어진 여자가 오른쪽 명부전의 가운데 문을 열고 나왔다. 늦은 가을 오후라 대웅전 앞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고, 명부전 앞에는 여자 혼자뿐이어서 서로 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바로 마주친 것이었다. 당신이 저녁때까지 절에 있을 요량으로 점퍼를 걸쳐 입었듯 여자도 버스에서보다 두툼한 옷을 입고 있었다. 캐리어도 당신처럼 어디에 맡기고 온 듯했다. 이럴 때는 서로 못 본 체 피하면 좋은데 당신도 여자도 그럴 수 없었다. 서로 모습을 보고 잠시 굳어 있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여자였다.

“아, 이곳에 오셨어요?”

당연히 당혹스러울 것 같은데 여자는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당혹스러워 예, 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머릿속으로 아주 빠르게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다.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도 여자는 서울로 가지 않고 절로 왔다는 것과 그런 사람이 아까는 서울로 바로 가려고 터미널에 들어가 표를 알아보았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당신이 올라온 대웅전 앞의 계단을 내려갔다. 당신은 그 자리에 서서 여자의 동선을 지켜보았다. 여자는 당신이 걸어왔던 오층 석탑 앞을 지나 각황전 뒤쪽으로 마치 화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빠지듯 사라졌다. 그 길은 네 마리의 사자가 삼층 석탑을 받치고 있는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이었다. 먼저 했던 두 가지 생각을 합치면 여자도 서울로 가려던 생각을 바꾸어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오전에 버스에서 여자가 들은 부음이 친부가 아니라 시부였던 것은 아닐까, 그런 걸 다른 사람을 통해 당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부음을 듣고 버스에서 내렸어도 바로 가지 못할 여러 상황이 있을 것이다. 잠시 전엔 당혹스러웠지만,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당신이 그랬다. 이태 전 봄, 여러 달 병원에 입원해 있던 당신의 빙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아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부음을 알린 건 그해 막 중학교에 들어간 딸이었다.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의 첫 생각은 장모의 죽음에 대한 놀라움보다 이혼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이었다. 장모의 부음을 처남이나 아내가 아니라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딸이 전하는 것. 당신의 빙모가 특별히 다른 집의 장모가 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당신에게 해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위의 이런저런 허물에도 늘 살갑게 대해 주었다. 나중엔 서로 마음이 가파르긴 했어도 원수처럼 헤어진 게 아니어서 이혼한 다음 해 어버이날에도 당신은 빙모에게 꽃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런 관계의 어울림과 섞임도 거기까지였다. 당신은 빈소에 쉽게 갈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가면 단숨에 빈소와 장례식장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걸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엄마 바꿔봐, 하고 당신이 말했고, 딸은 엄마는 지금 병원 원무과에 갔다고 했다. 그럼 엄마 오거든 전화하라고 해. 당신이 말했다. 당신 아내는 이제 빈소를 차렸다며 저녁 무렵에야 전화를 했다.

“아파서 입원해 계셨지만, 갈 때는 주무시다가 참 편하게 가셨어.”

“나는 어떻게 해야 돼?”

당신이 물었다.

“뭘 어떻게 해? 이혼한 남자가.”

“그러니까 장례 비용이라도……”

“그런 거 있으면 나중에 날 주고, 오빠하고 형부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당신은 그냥 있어. 나중에 다시 전화할 테니까.”

사십구재 때는 당신의 손위 처남이 연락했다. 장례 때야 많은 손님들이 드나드니 그럴 수 없었다 해도 어머니의 자식들만 참가하는 사십구재에 함께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윤희 엄마는요?”

“내가 말을 꺼내니 오려고 할까요? 하고 도로 묻던걸.”

그리고 당신 처형이 와도 좋다고 한 번 더 전화를 했고, 전날 아이가 아빠, 꼭 와, 하고 전화를 했다. 모두 당신 아내가 인정한 전화였다. 혼자 차를 몰고 절에 갈 때까지는 서먹하기도 했지만, 재를 지내는 동안 그런 서먹함이 조금씩 풀어져 재를 다 지내고 나서 종무소 옆 식당에 앉았을 때는 당신 빙모의 세 자식이 저마다 배우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사십구재에 참석한 듯한 모습이었다. 집으로 올 때는 당신이 아내와 아이를 아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때 차 안에서 뒷자리에 아이가 있는데도 당신 아내는 아이가 듣지 못하게 당신에게 물었다.

“지금은 여자 없어?” 

“그렇게 보여?”

“왠지…….”

“…….”

“당신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앞으로도 다른 생각하지 않고 윤희하고 둘이 살 거야.”

“…….”

“떨어져 있더라도 윤희한테 좀 잘해.”

“잘하잖아. 전화도 자주 하고.”

“그것만 말고, 당신 옆에 여자 없을 때만이라도 아빠 빈자리 느끼지 않게.”

그게 벌써 이태 전의 일이었다. 아이는 곧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다. 품 안도 바깥도 아닌 자리에 아이가 있었고, 더 멀어지지도 좁혀지지도 않은 거리에 당신의 아내가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 당신은 법고가 매달려 있는 운고각에서 멀지 않은 적묵당 앞에 일찍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깨와 등으로 으슬으슬 추운 기운이 몰려와도 그래도 가을엔 해가 일찍 져서 좋았다. 어쩌다 시간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계절에 관계없이 당신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간 절을 찾아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끝없이 펼쳐진 감자밭 한가운데에서 문득 시간의 공포를 느꼈던 때를 떠올렸다. 아마도 그 밭에 흰 감자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더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결에 여자가 옆에 다가와 앉았다.

“놀라셨죠?”

“아닙니다.”

“제가 버스에서 왜 내렸는지도 아시고…….”

“사연은 누구나 있지요. 갈 수 없는 사연도 있고, 가도 참석할 수 없는 사연도 있고…….”

“엄마를 생각하면…….” 

아버지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여자는 그건 용서라는 말과는 또 다른 것으로 마음의 정리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부음을 들은 것이라고 했다. 여자는 빈소보다 먼저 절을 찾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명부전에 아버지의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잠시 전엔 그냥 마주쳤지만, 이번엔 여자가 일부러 작정하고 당신 옆으로 와 앉은 듯했다. 누구에겐가 무슨 말이든 하지 않고는 이 절을 내려갈 수 없는, 해야 할 이야기의 어떤 결연함이 여자의 얼굴에 깃들어 있었다. 당신은 딸을 생각했다.

그때 두두두 다다다다, 하고 북소리가 났다. 북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울렸다. 당신은 운고각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대여섯 명의 스님이 서 있었고, 그중 한 스님이 암갈색 삼장 밖으로 흰 팔목을 드러내 보이며 북을 두드렸다. 두두두두 다다다다 두두두 다다 닥닥……. 

그래, 감자꽃이 피었어, 하고 당신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린 날만 그렇게 시간의 끝이 없는 것처럼 감자꽃이 피었던 게 아니었다.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 속에 당신은 전에 아내와 함께 월정사에 갔던 날의 조금은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일 년 중 해가 제일 긴 하짓날이었다. 아이는 아이의 외가에 맡겨 놓았다. 그때 이미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은 시작되었고, 더 덧나기 전에 어떻게 해보라고 처형과 손위 동서가 권한 여행이었다.

진부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숙소만 정하고 바로 절로 갔다.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았는데도 두 시가 채 되지 않았다. 당신은 그렇지 않지만 아내는 절에 오면 마음이 가라앉고 편해진다고 했다. 절에 대해 당신보다 아는 것도 많았다. 둘이 있을 때 법이나 이치에 대해서는 아내가 말하고 당신은 단지 절집의 기둥과 처마와 지붕과 그것의 어울림과 배치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었다. 아내는 그런 기회가 쉽지 않다며 이곳에서 해가 지길 기다려 저녁예불 때 법고 치는 것까지 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럼 위쪽 상원사에 갔다 오자.”

하지였다. 거길 다녀와도 해는 여전히 중천에 있었고, 시간은 무한정 남았다. 당신은 경내를 아무리 천천히 돌아도 이십 분이면 다 도는 절 안에서 하짓날의 길고 긴 시간을 다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원사에 갔다 온 다음 다시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오히려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당신은 아내에게 법고 치는 건 다음에 와서 보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바다에라도 다녀오자고 했지만, 아내는 말이 그렇지 언제 다시 오냐며 해가 아직 중천인데도 굳이 거기에서 저녁예불 때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당신은 어린 날 아무리 걸어도 절은 보이지 않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깊은 바다처럼 검푸른 잎사귀에 흰 꽃만 가득 피어 있던 감자밭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 당신 혼자 보고 와.”

화를 냈다기보다는 그만큼 보내야 할 시간이 막막했다는 것을 당신의 아내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은 아내에게 자동차 키를 건네고 절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에 빠져들었다. 저녁이 되어도 아내는 숙소로 오지 않았다. 전화도 꺼져 있었다. 아마 그게 새로운 악화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아이를 맡겨둔 친정에 가 오래 오지 않았다.

 

북은 계속 울렸다. 당신 마음에도 계속 북소리가 울렸다. 한 스님이 치기를 그치면 또 한 스님이 이어서 쳤다. 당신은 숙연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리도 모습도 경건하고 숙연하여 모두 그쪽만 바라보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두두두두 다다다다 두두 닥닥…… 저 북을 칠 때 스님들은 마음속에 마음 심(心) 자를 그리며 북채를 움직인다고 했다. 당신은 왼손을 가만히 올려 북의 뒷면을 누르듯 지그시 가슴을 눌렀다. 북소리는 점차 힘차졌다가 잦아졌다 다시 힘차졌다.

암수의 소가죽을 양쪽으로 댄 저 북은 땅 위의 짐승들과 무릇 중생들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물리치기 위해 저녁예불 시간 가장 먼저 친다고 했다. 아내는 그때 월정사에서 저 소리를 어떤 마음으로 들었을까. 아니, 듣기나 하고 서울로 왔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돌아왔던 것일까. 후에 당신이 물어도 아내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파르게 가을에 이혼했다. 균열은 이미 그전부터 있었지만, 돌아보면 하짓날 월정사 감자밭에서부터 가을까지 시간도 가팔랐고, 마음도 가팔랐다. 그해 겨울 급하게 떠난 러시아 여행도 마음의 무엇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더 시리고 싶어 떠난 것이었다.

세 명인가 네 명의 스님이 차례로 북을 치고 나자 운판이 울렸다. 각 위에서 한 스님이 망치처럼 생긴 나무 방망이로 법고 옆에 매달린 커다란 징 같은 운판을 쳤다. 당신 귀에 그것은 은은하다기보다 무엇을 경고하거나 다음 행동을 명령하듯 조금은 강퍅하게 울리는, 떨림과 울림을 죽인 징 소리 같았다. 당신 옆에 앉은 여자가 합장을 하고 작은 소리로 옴마니반메훔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새들과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는 저 소리에 실어 아마도 여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쉽게 화해되지 않는 아버지의 영혼을 천도했는지 모른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오늘 가십니까?”

그 경황에도 당신이 여자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먼저 가신 다음에요.”

오늘 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당신은 해석했다. 여자는 합장을 풀지 않고 다시 한번 옴마니반메훔이라고 말했다. 닥닥닥닥닥닥…… 한 스님이 두 개의 북채로 목어를 치자 경내엔 어둠이 더 짙게 내렸다. 처음 법고 소리가 당신 마음에 울렸을 때는 지리산의 시커먼 자락 위로 붉은 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북소리에 무두질되듯 조금씩 검게 변하고 운판이 울리고 목어가 울릴 때는 온 세상이 목어가 푸득푸득 소리를 내며 헤엄치는 검고도 깊은 물속 같아졌다.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한없이 무장해제 시켰다. 어둠이 내린 풍경과 가슴을 울리는 소리 속에 당신은 정말로 조금도 음험하지 않은 마음으로 오늘 저 여자가 당신과 함께 있어야겠다고 하면 당신도 그 감자밭 가에 함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선에도 영혼이 있을까요?”

목어를 치는 것을 보다가 여자가 물었다. 당신은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물고기에도 영혼이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면 당신도 금방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생선이라고 말했다.

“물고기 말인가요?”

“아뇨. 말고 생선요.”

당신은 여자가 그걸 왜 물을까 생각하다가 한참 만에야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아시는데요?”

당신은 다른 고기는 잘 모르겠지만 입을 쫙 벌리고 누운 북어를 보노라면 거기엔 물속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과 떠나지 못한 영혼이 깃들어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 그럼 오히려 죽은 다음에 말을 하는 거군요.”

“명태로 바닷속을 헤엄칠 때도 했겠죠.”

“아뇨. 저 목어가 말이죠. 북어는 벌린 입으로 말하고 목어는 배 안에서 울리는 소리로 말하고요.”

여자가 그 말을 할 때 뎅- 하고 운고각 반대편 쪽에서 범종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그것을 신호로 운고각과 보제루의 다른 곳에 있던 스님들이 마당으로 나와 마치 군대의 사열과 분열식을 하듯 절도 있게 걸어 무리의 반은 각황전으로, 반은 대웅전을 향해 엄숙하게 나아갔다. 경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스님들을 향해 합장했다. 범종은 먼저 친 종소리의 여운이 끊길 때쯤 다시 뎅- 하고 울렸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여자가 합장한 손을 풀고 당신에게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 눈에 여기저기 서너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보였다. 범종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몸 안의 긴장을 풀고 시름까지 내려놓게 하는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다. 

“예. 다녀오십시오.”

당신은 가볍게 말하고, 범종 소리는 다시 길게 울렸다. 새벽엔 스물여덟 번, 저녁에는 서른세 번을 친다고 당신 옆에 앉은 사람이 그 옆 사람에게 말했다. 법고도 운판도 목어도 범종도 새벽과 저녁에 울리는 것이 같은 소리일 텐데도 한 소리에 삼라만상이 깨어나고 또 잠든다. 당신은 양쪽 팔을 감싸 안듯이 팔짱을 꼈다. 절 마당에는 이제 어둠이 완전하게 내려앉고 하늘의 별만 범종 소리에 눈을 비비듯 반짝였다. 점퍼 깃을 세웠는데도 목덜미에 바람이 스치는 게 맨살에 쇠가 스치는 것처럼 선득했다. 옛날 이 절에 가족까지 다 버리고 도를 닦으러 온 아버지를 찾아 산 아래에서 한 아이가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와 조르고 조르다 저녁이 되어 아버지의 배웅을 받고 어미가 기다리는 아랫마을로 도로 내려갈 때도 이렇게 길게 종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당신은 낮부터 왜 자꾸 어린아이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종은 범종각에서 울렸지만 소리는 당신 마음을 휘감아 긴 여운처럼 먼 산을 향해 울려 퍼져 나갔다.

이윽고 종소리가 그치고 범종각에서 종을 울리던 스님이 한 발 한 발 계단을 걸어 땅으로 내려왔을 적묵당 돌계단에는 당신을 포함해 열 사람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 쪽으로 나아갔다. 당신은 범종 타종이 다 끝났는데도 여자가 왜 돌아오지 않는지 그 자리에 앉은 채 보제루 이쪽과 저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당신 주머니의 전화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낯선 번호였다.

  

저는 산문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위로 감사합니다.

 

공용터미널에서 나눈 명함을 보고 보낸 문자였다. 동시에 당신은 전에 아내와 월정사의 법고 때문에 티격태격하다가 읽게 된 어떤 ‘법고 후기’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법고와 운판과 목어를 치는 것을 산문 안에서 보고 들은 다음 마지막 범종 소리는 그게 다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지켜 앉아 듣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산문을 벗어나며 듣는 소리라고 했다.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가는 길 어디에도 고수와 스승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도 여자에게 합장하듯 문자를 보냈다.

 

늘 화엄하시길 바랍니다.

 

절 마당 하늘에 별이 바람에 쓸리고 있었다. 아직도 한 아이가 검푸른 이랑 사이로 파도가 밀려오듯 하얗게 꽃이 핀 감자밭 한가운데 길을 잃고 서 있었다. ■

 

 

이순원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소설집으로 《말을 찾아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은비령》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허균작가문학상, 남촌문학상, 녹색문학상, 동리문학상, 황순원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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