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전쟁과 평화 그리고 종교
1. 들어가며
인류 문명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어떤 시대, 장소, 종족, 혹은 민족도 전쟁의 비극으로부터 비켜서 있지 못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성인과 사상가와 정치가가 태어났고 그들의 가르침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고 해도 전쟁은 종식되지 않았다. 전쟁의 이유 역시 잉여생산물과 노동력 확보, 그리고 영토 확장이라는 물질적 이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피부색과 혈통이 상대방보다 ‘우수’하다는 이유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었고, 각자가 믿는 종교와 추구하는 가치가 절대선이라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의 핏값을 요구했다. 하지만 물질적 이익, 이데올로기, 종교 등 모든 전쟁의 원인은 같은 피부색과 혈통을 가진 집단과 나라, 심지어 부모 자식 사이에도 빈번히 일어났다.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와 같은 거인들의 어깨에 서서 우주를 바라본 뉴턴(1643~1721)의 관점은 근대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대규모 생산과 경제적 풍요, 그리고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 나갔다. 물론 과학 발전, 경제적 풍요, 이성의 진보에 대한 기대는 모두 그 반대의 이름 아래 신음하는 ‘열등’한 식민지의 착취를 기반으로 한 서구 열강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따라서 사라예보에서 울린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총성을 신호탄으로, 부의 축적에 몰두하던 열강들이 20세기를 세계대전으로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류사에 전에 없었던 대규모 살상을 경험하고도 20세기는 물론 현재까지도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의 강력한 원인 중 하나로 작동한 종교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람살라, 메카, 바티칸, 예루살렘으로부터의 메시지가 총성을 멈추게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고, 종교는 전쟁 앞에서 무력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종교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인간 사회의 모든 제도와 사상에는 현실적 변용과 왜곡이 뒤따른다. 종교 역시 예외일 수 없지만, 그것이 종교가 추구해 온 본질의 폐기까지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규모 집단의 생활 의례와 의식, 그리고 터부의 모음을 벗어나 세계 종교로 발돋움한 종교는 사랑과 평화, 그리고 연민―그것을 열반, 도리, 천명, 신의 뜻이라고 표현하든 상관없이―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전 생애에 걸쳐 실천한 성자들이 끊임없이 출현해 종교적 가치가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발표는 종교에 대한 이러한 ‘믿음’을 전제로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한 불교의 관점을 고찰하려고 한다. 불교는 널리 알려진 대로 마음과 마음 작용에 관한 통찰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은 욕망이라는 마음 작용으로 구축된 욕계(欲界)의 사건이므로 욕망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불교는 욕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루어왔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욕망에 따라 인류가 겪은 구체적 전쟁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전쟁의 어떤 대의명분도 욕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욕망과 연결해서 이해하려 할 때 이 글은 평화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즉 총기 난사나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는 현대인들의 숫자가 이미 과거 인류가 경험한 전쟁의 피해를 넘어서고 있다. 고전적 의미의 전쟁과는 다른 양상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비전시(非戰時) 상황의 평화 상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현상을 간과할 때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추구할 수 있을까?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현대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구체적 사례까지 시야에 넣어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에 관한 불교의 관점을 고찰할 것이다.
2. 문명은 전쟁과 함께
고대 서북 인도로 이주해 온 아리아인들은 점차 동쪽으로 진출하여 기원전 10세기경에는 갠지스강 유역을 점령하였다. 이와 함께 전파된 철기 문명은 농업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였고, 이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증가는 상업의 활성화를 견인하였다. 나아가 부(富)를 둘러싼 개인, 집단, 국가 간의 분쟁이 점차 증대하였으며,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기존의 베다(Veda) 전통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가치체계의 정립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주도한 주역 중 한 명이었던 붓다는 마가다 왕국이 코살라 왕국을 침략해 전쟁이 일어났음을 전해 듣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언제나 약탈을 일삼고 약탈자는 다시 약탈을 당한다. 어리석은 이는 죄의 과보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것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죄의 과보가 나타날 때 어리석은 이는 괴로움에 울부짖는다.
죽이는 자는 또 다른 죽이는 자를 만나고 승리자는 또 다른 승리자를 만나며 욕하는 자는 또 다른 욕하는 자를 만나고 격노하는 자는 또 다른 격노하는 자를 만나니, 업은 이처럼 돌고 돌아서 약탈자는 또 다른 약탈자를 만나는구나.
— 각묵 스님 번역 《상윳따 니까야》 《전쟁의 경전》
즉, 인간은 언제나 약탈을 위해 분쟁을 일삼는데 이때 자신이 승리를 얻으면 그 행위가 이익을 줄 것으로 오판하지만 또 다른 승리자가 나타나고 결국 자신이 한 행위 그대로의 결과를 받아 괴로움에 울부짖게 된다. 붓다의 통찰처럼 인류가 신화의 시대에서 벗어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쟁을 추억하는 작업이었다.
고대 인도 정신의 원천인 《마하바라타》는 기원전 4세기경부터 작성되기 시작해 오랜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는데,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를 합한 것보다 8배나 분량이 많은 대작이다. 이 작품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종족 간 전쟁이 주요 줄거리이다. 비슷한 시기 제작되어 《마하바라타》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서사시 《라마야나》도 비극의 왕자 라마의 사랑과 전쟁의 이야기다. 이들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전쟁은 고대 인도에서 빈번히 발생했다.
고대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을 구축한 마우리아왕조(기원전 322~기원전 185년경)는 제3대 아쇼까(재위: 기원전 272~기원전 236년경) 대왕 때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자연의 보편적 원리인 다르마(dharma, 법, 진리)를 바탕으로 제국을 통치하고자 하였으며, 자신의 정치적·종교적 신념을 바위, 절벽, 석주(石柱) 등에 새겨서 남겼다. 이는 현재 ‘아쇼까 법칙(法勅)’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 전통에서는 아쇼까 대왕을 불교 수호의 핵심적인 군주로 기억하며, 그가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 보시(布施), 공공복리의 증진을 강조한 이유를 불교 교리에서 찾는 해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아쇼까는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종교를 우대하였으며, 법에 의한 통치를 천명한 다른 배경으로는 제국 통일을 위해 감행한 정복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깊은 반성과 자성(自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고대 인류 문명인 중국은 기원전 8세기경 주(周) 왕조 말기를 기점으로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는 공자, 묵자, 노자 등 위대한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인(仁), 예(禮), 무위자연(無爲自然) 등의 가르침을 통해 질서 회복을 모색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후국 간의 끊임없는 패권 다툼으로 전쟁이 지속되었다. 궁극적으로 진(秦)의 시황제가 통일 제국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민중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원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평가받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기원전 8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작품은 ‘트로이 전쟁’을 중심 서사로 삼고 있으나, 해당 전쟁은 기원전 10세기 이전 아나톨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일정 부분 중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이들 서사시는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이 혼재된 형태지만,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인류는 청동 무기를 손에 든 수천 년 전에도 전쟁에 몰두했다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발전한 자연과학의 힘은 인류의 합리적 이성에 강한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우주의 법칙을 거의 이해했다고 믿은 19세기 말의 인류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20세기의 막을 올렸다. 그 후 30여 년간 이어진 전쟁은 기존의 ‘돌격 앞으로’와는 차원이 다른 지옥을 선사했다. 그때까지 발전해 온 과학기술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것들을 하나둘 현실로 끌어냈다.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잠수함,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인 독가스, 철갑으로 무장한 탱크는 이제 더 이상 신화 속 무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제우스만이 쥐고 있던 ‘천둥’과 ‘번개’마저도, 인간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며 직접 다루기 시작했다. 그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류는 더 파괴적인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전쟁의 끝자락에서, 단 두 발의 원자폭탄이 제우스가 아닌 사람의 손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졌다. 순식간에 10만 명이 넘는 생명이 사라졌고, 이후에도 방사능 후유증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즉, 과학의 진보는 더 많은 사람을 더 빠르게 죽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포성이 멎자마자 극동과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발발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양 진영 간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베트남전의 여파는 이웃한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주가 출현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200만 명이 넘는 자국민이 크메르루주에 의해 학살당해 ‘킬링필드’라는 참혹한 이름을 인류사에 새겨 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도 베트남도 캄보디아도 모두 애덤 스미스(1723~1790)나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고향도 아니었고, 그들의 사상이 이 지역의 중요한 문화나 가치관을 형성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인류는 미립자의 세계로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갔다. 양자역학은 전자 문명의 기틀을 마련했고, 신경과학은 우리 안에 작은 인간―호문쿨루스―이 있다는 오래된 상상을 연금술사의 일기장 속으로 복귀시켰다. 이제 정신이란 뇌 속의 전기·화학적 반응으로 설명된다. 그 과정에서 신, 영혼, 종교, 철학처럼 ‘증명 불가능한 관념’의 자리는 점차 좁아졌고, 대신 이성의 진보와 인권 의식이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약탈은 또 다른 약탈을 낳는다”고 통찰한 2,500년 전 붓다의 말처럼, 전쟁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오늘의 승자는 곧 또 다른 패배의 고통을 예고하는 불안한 우위에 서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고 값싼 대량 살상 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연 인간에게 이성이나 보편적 도덕관념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인류의 수많은 분쟁과 전쟁은 민족, 종교, 물질적 이익, 피부색 등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일 뿐이다. 진짜 원인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근본 원인을 직시하는 일이다. 이제부터 그 원인과 실천적 해결을 불교의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3. 전쟁의 원인에 대한 불교의 관점
불교는 마음(citta)과 마음 작용(caitasika)에 관한 가르침이다.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 중의 하나인 《법구경(Dhammapada)》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모든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이다”라고 선언한다. 즉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로 불리는 이들의 핵심 가르침은 불교를 창시한 교주에 대한 믿음, 전생과 내생의 이야기, 경전에 등장하는 여러 초월적 존재들의 신통력, 혹은 우주의 구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바로 청정한 마음의 획득이 최종 목적지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마음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을 이해하고 다스릴 줄 알게 된 수행자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그릇된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불교는 그 상태를 열반(nirvāņa)이라 부르는데 최상의 고요, 평온, 행복의 경지이므로 당연히 분쟁과 전쟁이 사라진 상태이다. 그런데 열반이란 불꽃이 꺼진 상태, 즉 욕망의 불꽃이 소멸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분쟁의 원인 및 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교가 제시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은 욕망의 발생과 소멸을 통찰하는 것이다.
욕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욕망(欲望)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인상이 강하지만 의욕(意欲)이라고 할 때는 긍정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즉, 한자 문화권에서 욕(欲)으로 번역되는 단어를 인도불교 경전에서 찾아보면 다양한 단어가 등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들을 ‘욕’이라는 번역어 하나로 이해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문헌적 고찰은 이 글의 목적을 벗어나므로 필요한 부분에서만 언급하되, 여기서 욕은 부정적 의미의 욕망을 지칭한다. 일상생활에서 긍정적인 의욕 역시 열반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에서 장애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은 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가? 이를 논의하기 위해 먼저 불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에 대한 정의를 검토해야 한다. 마음의 가장 기본 작용은 대상을 아는 기능이다. 이러한 인식 작용은 우리의 눈·코·귀·입·피부의 감각기관에 각각 대응하는 모습·향기·소리·맛·촉감이라는 정보의 해석에서 발생한다. 이 경우 감각기관에 접하는 5가지 대상에 관한 마음을 인도불교에서는 까마(kāma)라고 하는데 이 역시 욕(欲)으로 번역되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이다. 따라서 불교는 보통의 인간들이 사는 곳을 욕계(欲界)라고 한다. 즉, 인간이 발 딛고 있는 세상은 눈·코·귀·입·피부로 들어오는 정보의 해석을 기반으로 구축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신의 뜻’ ‘붓다의 가르침’ ‘하늘의 명령’ ‘득도’는 모두 그 표현은 달라도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일 뿐이다. 따라서 욕계에 속한 인간들이 그 어떤 고귀한 가치를 내세워 전쟁을 일으켜도 그것은 감각기관에 의해 포착된 대상에 대한 탐(貪, 탐욕), 진(瞋, 성냄), 치(痴, 어리석음)라는, 소위 삼독(三毒)이라 불리는 좋지 않은 마음 작용의 표출일 뿐이다. 결국, 삼독에 의해 욕계에 머무는 인류는 끝없이 다툼과 분쟁과 전쟁을 이어갈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이하에서는 먼저 탐진치에 따라 인류사에 벌어진 전쟁을 배치한다. 이를 통해 삼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규모 살상과 전쟁을 일으켰는지 살펴본다.
1) 욕망의 마음
우리 마음은 무언가를 인식할 때 즐겁다, 괴롭다, 맛있다 등등의 감각을 느끼게 된다. 이때 사람들은 좋은 느낌은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하고, 반대로 좋지 않은 느낌은 제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대해 붓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행자들이여, 진리를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가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그 느낌을 갈구하고 지속되길 갈망한다. 그런 그에게 이제 그 즐거운 느낌은 소멸한다.
— 《삿짜까 긴 경》
어리석은 이가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슬퍼하고 걱정하고 통탄한다. 이제 그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수행자들이여, 보통의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말고 그 괴로운 느낌에서부터 벗어나는 다른 출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화살경》
즉, 닦음이 부족해 마음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상을 통한 즐거운 감각의 향수를 욕망한다. 그러나 대상을 획득해도 그에 대한 싫증이 발생하고 그 상태는 괴로움(苦)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대상을 취해 보아도 욕망의 불꽃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크게 타오르게 된다. 따라서 무력을 동원해 타인의 소유물까지 가져 보아도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괴로움의 상태로 밀어 넣을 뿐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오랜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바로 이 욕망의 실현을 위해 분쟁과 전쟁을 일으켜 왔다.
춘추시대 말기 공자(기원전 551~기원전 479)가 제자들과 함께 노(魯)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태산(泰山)을 지날 즈음, 시아버지와 남편에 이어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울부짖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공자는 여인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그곳에 호랑이는 있을지언정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정치는 없으므로 차라리 그 동네에 그대로 사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예기(禮記)》에 등장하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즉, 폭정(暴政)은 호랑이보다 더 공포스럽고 가혹한 일이라고 하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인간 사회에는 신석기 농업 혁명 이래 정치권력과 부의 불평등이 발생하였으므로 ‘가정맹어호’는 지속되고 있다. 공자의 가르침을 통치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 역시 호랑이보다 무서운 폭정으로 수많은 사람을 지옥 속으로 밀어 넣었다. 조선의 조세 제도는 토지에 매기는 전정(田政), 16~60세의 남성에게 군역 대신 군포 1필을 부과한 군정(軍政), 그리고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준 후 추수철에 갚게 하는 환정(還政)의 삼정(三政)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 이르자 삼정의 문란은 극에 달했다. 그중 군정의 경우 과세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이를 피해 도망간 이들이 증가하자 이웃에게 대리 부과한 인징(隣徵), 친족들에게 부과한 족징(族徵), 젖먹이 어린애들에게도 부과한 황구첨정(黃口簽丁), 죽은 이에게도 부과한 백골징포(白骨徵布)가 횡행하였다.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통해 핍박받는 민초들의 삶을 관찰하고 이에 대한 개혁을 꿈꿨던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 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중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문은 군정에 대한 처참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즉, 한 남자가 죽은 아버지, 갓난쟁이 아들, 그리고 자신까지 군역을 지게 되자 스스로 양물을 잘라 이제 남성이 아니니 군역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세도 정권의 학정, 거듭되는 흉년, 그리고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을 원인으로 몰락 양반이었던 홍경래가 1811년 농민전쟁을 일으켰다. 초반에 농민군이 승승장구하여 정주, 곽산, 선천, 철산을 차례로 장악하였지만, 애초 조직과 체계에 한계가 있는 민중 항쟁이라 성공하기 어려웠다. 홍경래의 난은 100일 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조선 왕조의 문제점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한 모순은 1862년의 진주민란을 겪으면서도 해결되지 않았고 다시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이 도화선이 되어 1894년 동학 농민전쟁으로 폭발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정부의 무능과 혼란 끝에 조선은 멸망과 함께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500여 년 전, 불교국가 고려도 타락한 승가와 권문세족에 의해 멸망했고 또 그보다 수백여 년 전의 통일신라 역시 비슷한 이유로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재화를 차지하기 위한 탐심은 근현대 인류에게도 변함이 없다. 벨기에 제2대 국왕인 레오폴드 2세(1835~1909)는 콩고를 식민 지배하면서 콩고인 약 1,000~2,000만 명을 식민 정책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사망하게 했다. 무엇보다 그를 악명 높게 만든 것은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콩고인들의 손목을 절단한 잔인한 정책이었다. 현대인이 그린 또 다른 지옥도는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1990년대를 피로 물들인 시에라리온 내전(1991~2001)이 있다. 이 전쟁은 특히 마약에 찌든 소년병들로 하여금 무차별적 학살과 강간 등 반인도적인 전쟁 범죄를 자행하게 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 내전으로 시에라리온의 인구 약 450만 명 중 35만 명이 사망하고 15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어느 종교의 지옥도가 이보다 더 잔혹한 지옥을 표현할 수 있을까? 욕계 속에서 영위되는 인간의 삶은 욕망을 쉽게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우월과 혐오의 마음
탐심의 또 다른 작용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강력한 집착을 만들어내 자신을 남과 끝없이 비교하게 한다. 이로 인해 내가 남보다 잘 났다, 못났다 등의 생각을 일으키는 만심(慢心)이 발생한다. 또한 진(瞋, 성냄)은 타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은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으로 인류사에 기록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독일인으로 대표되는 순수 아리안의 혈통이 그 외 ‘열등’한 민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망상이 빚어낸 결과이다. 하지만 대규모 집단학살을 의미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용어는 나치 이전 1915년에 오스만제국이 100만 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을 강제 이주, 강간, 즉결 처형으로 학살한 사건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광기의 근저에는 ‘나, 우리’가 우월하다는 만심과 상대에 대한 거부, 혐오가 자리하기 때문인데, 모두 탐과 진이라는 마음 작용의 결과이다.
‘혈통’과 더불어 이러한 우월감과 혐오를 확인하는 또 다른 기준으로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 유럽 역사의 변곡점이 된 십자군 원정(11세기~13세기)이나 30년 전쟁(1618~1648)은 각각 가톨릭과 이슬람, 가톨릭과 신교 사이에서 벌어진 참화로 여러 국가가 전쟁 속으로 얽혀 들어갔다. 30년 전쟁의 주무대였던 독일에서는 무려 800만 명이 죽어 나갔고 보헤미아의 인구는 1618년 200만 명에서 1648년 전쟁이 끝날 무렵 70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종교전쟁’답게 전쟁 당사자들은 ‘신의 뜻’을 위해 엄청난 피를 흘려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적대적이었던 종교끼리 합종연횡하여 같은 종교를 가진 나라와 싸웠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즉, 이 성스러운 전쟁에서 신이 누구의 기도 소리에 더욱 귀 기울였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종교는 분노와 혐오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20세기에도 내가 믿는 ‘우월한 종교’를 이유로 대규모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을 분리하기 위해 급하게 그어진 래드클리프 경계선(Radcliffe Line)으로 인해 천만 명 이상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이주해야 했다. 이때 두 종교 사이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는 1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동일한 종교를 가졌어도 서파키스탄은 민족, 언어, 역사적 배경을 기준으로 동파키스탄을 탄압했고,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학살 피해자가 발생했다.
민족과 종교가 얽힌 분쟁은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다시 불붙은 중동을 빼놓을 수 없다. 하마스의 침공에 면죄부를 줄 수 없지만 그들의 근거지인 가자 지구(Gaza Strip)는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총길이 약 60킬로미터에 걸쳐 높이 6미터가 넘는 장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이로 인한 의료품 및 생필품 부족과 오염된 식수로 인한 질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가자 지구의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 속에서 어떤 희망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감옥’마저 하마스의 침공에 대한 보복으로 괴멸되었고 현재까지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족과 종교 때문에 학살당한 이들이 민족과 종교를 이유로 또다시 학살을 자행하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전쟁이 있지만 라이베리아 내전(1990~2003)의 원인은 집단적 우월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보여준다. 라이베리아는 ‘자유의 땅(Liberia)’이라는 국호가 보여주듯이 “자유에 대한 열망이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왔다(The love of liberty brought us here)”라는 기치를 걸고, 미국에 노예로 끌려갔던 이들의 후손이 돌아와 세운 자유의 나라이다. 그러나 ‘문명국’ 미국에서 돌아온 소수의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독점했고, 자신들의 선조가 끌려가서 당했던 것처럼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차별했다. 그 결과 25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3) 분노와 어두운 마음
지금까지 재화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이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임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평화를 고려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전쟁’을 검토해야 한다. 전쟁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한 싸움’이라고 한다. 그리고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함, 혹은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규정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비록 휴전 중이지만 무력에 의한 국지전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화로운 상태에서 살고 있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의하면 구매력 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2017년 기준 41,001달러로 40,827달러를 기록한 일본을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가 7개 경제 선진국의 모임인 G7(Group of Seven) 회의에 초청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70~80대 고령층은 유소년기에 기본 교육은커녕 세끼 밥도 배불리 먹지 못한 세대였다. 그러한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강대국―승전국이건 패전국이건 간에―인 서방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로 발돋움하여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꾸준히 상승해 2022년 자살 사망자 수는 12,906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25.2명꼴이다. 이는 하루 평균 35.4명, 2시간마다 3명이 자살을 선택한다는 끔찍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자살은 한국인들의 사망원인 1위인 각종 암 162.7명, 2위 심장질환 65.8명, 3위 뇌혈관 질환 49.6명에 이어 4위에 올라 있다. 2023년에는 1만 3,978명으로 자살자 수는 더 증가했다.
통계청이 발간한 〈한국의 안전 보고서 2023〉을 기반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2020년 한국의 자살자는 10만 명당 24.1명으로 OECD 국가 중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리투아니아 18.5명(2021년), 슬로베니아 15.7명(2020년), 일본 15.4명(2020년)이 차지했다. 이러한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 10.7명의 2배를 넘는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10명 중 4명이 정신적 문제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 미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20년 한 해 동안 총 43,595명이 총기 관련 사고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전체 총기 관련 사망자 중 약 54%에 해당하는 24,245건은 극단적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 즉, 언론에 보도되는 타인에 의한 무차별 총기 난사나 할리우드 영화가 보여주듯 복면 쓴 강도에 의한 희생자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의 또 다른 분석에 의하면 이미 1968년 이래 총기로 인한 모든 미국인 사망자 수는 미국이 역사상 참전한 모든 전쟁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전쟁이 아닌 황당하기 그지없는 정책으로도 인류는 대규모로 죽어가야만 했다. 식량 증산을 위한 마오쩌둥(1893~1976)의 어이없는 참새 소탕 작전 등은 오히려 해충의 천적을 없애는 결과로 이어져 최대 4,000만 명을 굶어 죽게 했다고 추정된다. 자연현상을 정확하게 통찰하지 않는 어리석음 탓이다.
이상의 통계치가 의미하는 바는, 대규모 국지전이 아님에도 상당수 현대인이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살아감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전적 의미의 전쟁이 아니라고 해서 이를 간과하면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불교적 통찰에 따르면 성냄에 해당하는 용어 중 ‘프라티가(prati-gha)’는 무언가에 대립하고 반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내가 원하는 바나 생각하는 바가 내 삶 속에서 지속적인 반대와 거부를 당하면 이는 분노와 혐오로도 나타나지만 결국 나의 마음은 어두워진다. 특히 현대인들은 발달한 매스미디어 환경에 의해 많은 비교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비교는 더욱 큰 박탈감을 느끼게 하며 이를 채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비교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어떤 것으로도 박탈감은 제거되지 않는다. 이러한 원인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는 어리석음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다.
4. 평화를 위한 불교적 관점
인간 사회를 욕망을 기반으로 한 욕계라고 본다면 다툼, 분쟁, 전쟁은 인류의 숙명인가?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인류 문명의 모든 장면에는, 심지어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이 발전하고 물질적 풍요를 이룬 현재에도 전쟁은 지속되고 있으므로 ‘그렇다’라는 부정적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앞서 언급했듯이 불교라는 가르침조차 욕망에 갇힌 감각기관의 해석에 불과한 것이라면 진리에 대한 회의까지 들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진리는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붓다도, 깨달음도, 윤회도, 중생도 모두 공(空)’이라는 역설적 문구를 통해 자주 표현된다. 즉,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존재, 개념,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 진정한 붓다의 길,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하면 붓다와 깨달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욕계 속에서 형성되는 모든 대상은 욕망의 투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나의 앎이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불교는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역설적 표현으로 추상적인 해석에 몰두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거나 지금이나 인류를 괴롭히는 대규모 전쟁과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통해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는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불교적 해법은 결국 욕계의 감각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친다. 물론 이러한 주문은 ‘욕망을 버려라’ ‘착하게 살자’라는 흔하디흔한 도덕책 구절처럼 하나의 무기력한 선언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불교는 그러한 욕망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모든 과정을 들여다보고 체험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수행도(修行道)’이다. 불교가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 가지로 탐진치를 지목한 것 역시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이지 이론적 산물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탐심(貪心)과 반대되는 불탐심(不貪心), 진심(瞋心)과 반대되는 부진심(不瞋心), 그리고 치심(痴心)과 반대되는 불치심(不痴心)의 획득이다. 너무 거창하게 다가갈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위대한 성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아끼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 친구를 떠올려 보자. 그가 가진 재화를 탐내지 않을 것이다. 그가 한 행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고 그와 비교해서 어두운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그를 오해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날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예지만 불교의 마음 수행이란 이렇게 인간이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므로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렇게 훈련을 더 해 갈 때 불교는 욕망의 농도가 매우 낮아지는 색계(色界)와 그리고 더욱 순수한 마음의 세계인 무색계(無色界)가 있음을 수많은 수행자의 경험을 통해 확인해 주고 있다.
물론 욕망에서 벗어남이 쉽지 않은 문제지만 지금까지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외의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자비를 갖기 위한 훈련이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일 수 있다.
5. 나가며
이상 전쟁의 원인과 이를 방지하기 위한 불교적 관점을 고찰하였다. 인류는 문명의 여명기부터 대규모 학살을 동반한 전쟁을 일으켰으며 합리적 이성이 진보했다고 믿는 21세기에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과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종교조차 전쟁을 막기는커녕 전쟁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동하였다. 불교는 그 이유를 욕망에서 바라본다.
불교는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을 욕계로 규정한다. 즉, 5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욕망을 기반으로 이 세상은 구축되었다. 따라서 어떤 최고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불완전한 진리이다. 그 아래에 근원적으로 흐르는 인간의 속성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지배한다. 이렇게 보면 왜 최고의 가치라 여긴 종교조차도 정치가와 권력자의 계산 아래 수많은 이들을 핏빛 제단의 희생물로 몰아넣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물질적 풍요와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현대에는 고전적 의미와 또 다른 분쟁이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미국에서는 매년 2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불과 수십 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 역시 매년 1만 명 이상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다. 이러한 사회현상 역시 전쟁에 준하는 비평화적 상태로 봐야 할 것이다.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불교는 욕망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그것은 탐진치라는 마음 작용이 인간의 삶을 괴로움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불교는 이에 반대되는 탐내지 않음, 성내지 않음, 어리석지 않은 마음의 획득을 가르친다. 이러한 선언은 미사여구가 동반된 이론적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마음 움직임에 대한 통찰의 결과이다. 따라서 불교는 ‘욕심을 버리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행도를 통해 다툼이 사라지고 평온이 유지되는 실제 상태를 제시하고 있다.
인류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단 한 순간도 전쟁을 멈추지 못했다. 불교는 ‘좋은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좋은지 실천적 방법을 제시했다. 여전히 방법론에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행하지 않음에서 오는 결과를 방법적 문제로 볼 수는 없지 않을까? ■
정상교 sunsbar@naver.com
금강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도쿄대학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 석사, 박사. 동국대(와이즈) 티벳대장경 역경원 전임연구원 역임.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 연구》 《천 번을 부서져도 그대는 여전히 바다다》 등이 있다. 현재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부 조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