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연결해 전시 기획하기
내가 하는 일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으로 일한 지는 15년, 본격적으로 내가 콘텐츠의 주도권을 갖고 미술관 전시를 기획한 지는 7년 정도 되었다. 앞으로 어떤 전시를 하게 되더라도 큐레이터로서 나에게 가장 특별한 전시를 꼽으라고 한다면 2019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아르헨티나의 현대미술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의 개인전일 것이다. 당시 나는 국공립미술관에 입사해 기획한 첫 번째 전시이자, 난생처음 내가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첫 번째 해외 작가 개인전으로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신기할 정도의 도전적인 아이디어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종적으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중간에 많은 아이디어들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좌충우돌이 있었다. 일 년간의 사전 논의에도 불구하고 전시 개최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작가를 설득하기 위해 전시 개최를 4개월 앞두고 30시간가량 걸려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그때 작가를 설득하기 위해 내가 갖고 있던 카드는 이미 유명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시각, 즉 불교를 포함한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겠다는 기획 방향이었다.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줄 기획자와 전시를 원한다. 에를리치는 주로 시각적 착시를 이용한 공간 설치 작업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이 실재가 아닐 수 있음을 드러내 왔다.
나는 기존의 이러한 작품 개념에 불교의 ‘무아(無我)’ 개념을 새롭게 더해 전시를 풀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즉 작가의 작품이 다루는 인식의 불완전성을 확장해 개인의 자아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사상까지 전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작가를 위해 《반야심경》에 담긴 공(空)의 개념을 미리 영어로 준비해 설명하고, 또 반영(反影) 이미지와 관련된 한국의 설화 몇 개를 들려주었는데 이때 비로소 막혔던 전시의 물꼬가 트였다. 석가탑과 관련된 무영탑 설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눈을 반짝이던 작가가 그 자리에서 새로운 작품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보여주었고, 결국 〈탑의 그림자〉라는 작품으로 제작되어 한국 관람객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전시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를 전시의 콘텐츠와 연결하고자 시도했고, 다행히 많은 관람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연기: 끝없이 이어지는 인연
불교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전시 주제에 녹아 들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준비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데도 큰 힘이 되었다. 당시 나는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하지만 만약 전시를 못 하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관계 맺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으로 남도록 노력하자’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지금 그때 시작된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에를리치가 전시를 하지 않겠다고 할 경우를 대비해 나는 ‘웹툰’ 관련 주제 그룹전시를 하겠다고 생각해서 기초적인 리서치를 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에를리치 다음 전시로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과 그의 아버지인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의 2인전 《호민과 재환》을 개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에를리치와의 인연이 큰 힘이 된 전시가 바로 2023년에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최한 한국 여성 원로조각가 김윤신의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이다. 지금은 세계 미술계의 스타 작가가 되었지만, 전시를 개최할 당시 김윤신 조각가는 한국 미술계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였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계속 남미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김윤신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코로나 이후 한국을 방문해 장기 체류하던 시기로, 나는 작가의 아르헨티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아르헨티나’의 어떤 것들이 그에게 영감이 되었을지, 그의 긴 타향살이가 어땠을지 작가에게 감히 공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반대편인, 그래서 한국이 여름일 때 겨울인 나라 아르헨티나,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김윤신의 미감과 그가 작업에서 이야기하는 합일(合一)이라는 개념. 그의 작품 주제처럼 나 역시 작가와 하나가 된 듯한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이 전시를 본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의 초대로 김윤신 작가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청되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나는 김윤신 개인전의 성공적인 결과는 김윤신 작가의 삶 전반에 작가가 뿌린 인연의 씨앗, 베풂, 주변인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거기에 나와 에를리치와의 인연도 작은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인연은 지금도 계속 새로운 가지로 뻗어나가고 있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전시를 만든다는 것은 작가가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그의 삶을 만나는 일이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내가 작가에게 서서히 빠져들 때 우스갯소리로 상사가 “선생님, 지금 또 (작가와) 사랑에 빠졌어.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에서 하트가 나와요.”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나는 한 작가에게 온전히 빠져 원치 않아도 하루종일 그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를 정도가 되어야 전시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전시를 준비할 때는 또 새로운 작가를 맞기 위해 마음 비우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작가)의 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나를 고착시키지 않고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불교의 무상(無常)과도 닿아 있지 않을까?
불교는 멀리 있지 않다. 큐레이터로서 내가 지금 하는 일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행하려고 노력할 때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방소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