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한번 되게
먹여 주리라 벼르던 사람이
초인종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들어서는 순간 결심을 놓쳐버리고
‘어서 와’라며 조금 반겨버리고 말았다
가빠지던 숨을 고르다가
마침 씻고 있던 딸기 한 알
그 입 안에 넣어주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비겁한 순발력이었다
함부로 웃음을 내놓진 않았지만
제대로 역정을 내놓지도 못했다
마침 딸기를 씻던 중이어서.

 

— 시집 《허리를 굽혔다, 굽혀 준 사람들에게》(청색종이, 2024)

한영옥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비천한 빠름이여》 《아늑한 얼굴》 《다 시 하얗게》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 《사랑에 관한, 짧은》 등. 천상병 시상, 최계락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수상. 성신여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