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미래 100년의 비전 : 사회적 역할
남북교류, 전환의 시대에 서다
남북의 교류협력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회담 노딜(no deal)에 이어,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해 모두 중단됐다. 2022년 5월에 출범한 윤석열 정권은 남북대화의 임계점이던 2024년 4월의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강 대 강의 정책적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군사적 대립이 공고화됐다.
2023년 12월 말부터는 그간 직접적 표현을 하지 않던 것과 달리 주적(主敵)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면서 정치심리전과 DMZ의 군사적 조치까지 등장했다. 북측의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1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경의선 북측 구간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 놓고,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 연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하기 위한 단계별 조치와 함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의 철거를 지시했다. 이 기념탑은 할아버지의 통일 유훈을 기린 선전물이었고, 경의선과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 사업은 아버지의 유산인데 이마저도 줄줄이 제거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2023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관계에서 민족 개념을 배제하고,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 관계이며,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고 평화통일 원칙을 공식 폐기했다. 사회주의 헌법에서도 “북반부, 자주 ·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 등의 표현을 삭제할 것을 지시하고, 대한민국을 제1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을 강화할 것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2024년 6월 19일 평양 금수산 태양궁에서 열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유사시 직접적 자동 개입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지체 없이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문화했다.
남북이 교류협력 원칙으로까지 존중했던 2000년 6 · 15 남북정상회담 성과까지 부정(否定)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고대 그리스의 《이솝우화》에 나오는 ‘바람과 해’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진보 진영은 햇볕정책, 보수진영은 퍼주기라는 두 가지 틀(frame)로 서로 맞불을 놓았다. 두 진영에서 어떤 명칭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감정적 대응까지도 끌어낼 수 있던 햇볕정책 대(對) 퍼주기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까지 추진한 평화관리 정책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대결로만 치달아 전쟁의 암운(暗雲)이 짙어지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DMZ를 두고,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지구촌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라 표현했다. 동서 155마일에 이르는 금단의 땅에 통일을 이루기 위한 도보다리가 필요한 까닭이다. 통역이 필요 없고, 같은 말을 하는 우리 형제와 이웃 그리고 조상을 다시 만나는 일이기에 소중하다. 또다시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고 전승하여 잘살기 위해서이다.
통일의 중요성은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어야 하는 우리 땅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현실은 소모적인 경쟁과 대결로 많은 자원을 낭비할 뿐 아니라 민족 구성원의 고통과 손실 등 사회적 비용까지 유발하고 있다. 진일보했던 지난 십 년 동안의 교류 성과를 기억하고, 백척간두 진일보의 자세로 개척해 나가야 할 미지(未知)의 세계이다. 통일과 교류의 가능성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고, 남북 공조로 건립한 금강산 신계사와 개성 영통사를 찾아가 성불하는 꿈을 품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반세기 동안 불교계의 통일과 교류에서의 선행동력(momentum)을 점검하고,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를 살피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남북불교 교류협력의 역사
일제강점기 36년은 식민 지배에서 해방하는 것이 제1의 목표였다. 국토가 분단된 후, 지금까지 국정과제의 으뜸은 평화통일이다. 통일을 통해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고자 함이다. 통일의 첫 여정은 1948년 4월 19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전조선 제정당 ·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약칭 남북연석회의)’로 시작됐다. 연석회의가 무산된 후 6 · 25전쟁으로 통일 조국의 꿈은 멈추었다. 1974년 7 · 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 2000년 6 · 15와 2007년 10 · 4 평양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2018년 4월 판문점과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국가 간 통일논의는 평화통일과 체제통일의 두 가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한반도의 통일은 원칙적으로 분단된 조국이 합쳐지는 것이지만, 분단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국토를 분단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과 다른 두 체제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에서 하나로 통합해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통일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를 향한 우리나라 역사의 창조적 과정이다. 이 같은 통일 과정에서 7 · 4 남북공동성명은 대화의 첫 선언이었다. 6 · 15 남북공동선언은 첫 만남이고, 남북한 간의 총론적 의미가 강했다. 10 · 4 남북공동선언은 구체적이고 각론적이었다. 각 분야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 실천적 조치가 미흡했다. 9 · 19 남북공동선언은 총론에서 각론, 각론에서 다시 실천적 조치로 이행한 측면에 볼 때 새로운 진전을 이뤘다.
양국 간 대화와 정상회담을 통한 통일논의와 별개로 민간 차원의 불교에서도 통일 과정이 전개됐다. 1990년 이전까지 민간 차원의 통일 전개 과정은 쌍방 간 고립적인 주장과 통일 논의가 지속되었다. 이때까지 남측 정부는 북측 당국에 대해 부정하거나 왜곡하면서 자주적 민간교류 운동을 통제했다. 정부 당국은 통일 문제의 정부 독점에 반대하고 직접적으로 남북 교류를 모색하는 통일운동 세력의 행동에 대해서 북측 주장에 동조하는 행위로 매도하며, 국가보안법 등을 동원하여 처벌을 가했다. 이 시기의 상호 간 태도의 차이가 정부의 창구 일원화와 자주적 민간교류 운동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난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분단 및 통일과 관련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그러한 여건 속에서 1991년부터 인적 교류와 인도적 지원에 참여한 불교계의 직간접적인 통일과 교류 활동은 “민족과 불교의 분단 및 그것의 공고화를 저지하거나 민족과 불교의 재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불교도들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불교계의 통일 사업은 2000년 6 · 15 정상회담 이후 남북 공조라는 차원에서 교류협력으로 급속히 발전했다. 2005년 5월 개성 영통사 복원과 2007년 10월 금강산 신계사 복원 사업에 의한 경제적 협력 단계로까지 전개됐다. 이로써 앞선 시기의 기독교 등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에서 불교계가 2000년대부터 교류사업을 선도했다. 그 배경에는 불교가 남북 간 이질화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 관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데에서 가장 유력하고 가능성이 큰 요소였기 때문이다. 불교는 우리 전통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심성에 깊이 자리한 민족성의 모태 또한 불교라고 할 수 있으므로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지닌 측면이 작동했다.
2008년 7월과 12월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이 중단되면서 남북불교 교류도 함께 멈추게 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의 출범과 관련 조치에 의해 중단된 남북교류는 2018년 두 차례 정상회담의 성과로 2019년 2월 12일 금강산에서 새해맞이 남북공동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이 2020년 6월 16일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함으로써 단절을 선언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명분으로 북측은 남측과의 DMZ, 중국과 러시아의 1,300km 국경선을 전면 폐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023년 12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적대국 관계로 규정하고 준전시적 상황으로까지 평가했다.
분단 극복을 위한 불교의 역할
남북대화가 중지된 한반도에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손자병법》의 교훈을 보더라도 한반도의 평화 체제는 안정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안보레짐(security regime)의 근간이다. “타국들도 상응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국가들이 스스로 행동을 제한하도록 만드는 원칙 ・ 규칙 ・ 규범”을 뜻하는 안보레짐에 의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남북대화에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18세기 독일의 칸트가 처음 붙인 말은 인식과 의존의 대전환이다.
하지만 2024년 6월 초부터 중국이 조 · 중 국경선을 단속 강화하고, 6월 19일 평양에서 조선 · 러시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약을 체결했다. 이보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4년 1월 15일을 기해 남측과 대화와 협력을 담당하던 대남기구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그간 남북회담을 주도해 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1961년 5월 13일 결성), 남북 당국과 민간의 교류협력을 전담한 민족경제협력국(2007년 12월), 현대그룹의 금강산관광 사업을 맡아온 금강산국제관광국(2002년 11월, 금강산관광총국) 등을 폐지했다. 앞으로 남북 간에 당국 간 회담이나 경제협력 사업, 민간교류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반세기를 지나온 시점에서 북측은 교류를 ‘자본주의 황색 바람’이기에 차단해야 할 요소로 규정하고, 종교를 ‘사상에서의 오염원’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까지 평가하는 정책적 기조가 부활했다. 그간 통일과 교류 과정에서 종교의 역할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3월부터 남북의 종교 협력 문제도 다루어지지 못했다. 사회문화의 다른 영역에 비해서도 활발하던 종교 교류까지 북측의 교류 기구가 축소, 폐지됨에 따라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특히 2021년 1월 말부터 북측 조불련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서기장 등 지도부 공백이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점도 동반관계의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향후 남북불교 교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 ‘남북공동발원문’을 처음으로 상정했던 1995년 대화의 시대로 되돌아간 시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 협력은 금강산 신계사 도감이 철수한 2008년 남북 공조의 시기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교류가 중단된 상황에서 종교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측면에서는 선행 사례인 전례(典例)를 중시하는 북측의 관점이 중요하다. 금강산 신계사와 개성 영통사 등 역사 유적을 공동 복원했던 불교가 가장 유용한 교류협력의 모멘텀을 가지고 있으므로 또다시 앞장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국면에서 남북한의 불교계는 양측 정부가 종교 교류의 필요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대화의 창구를 개설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남북 간의 현안과 국가적인 과제에 대한 양측 불교계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류협력의 필요충분조건이다. ■
이지범 abc992005@naver.com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94년 말부터 남북불교교류의 현장 실무자로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 · 금강산 등지를 다녀왔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과, 저서로 《고려대장경의 비밀》 《사찰문화 해설 가이드북》 등 다수. 현재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