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미래 100년의 비전 : 사회적 역할

기본적으로 출가수행을 권하는 불교가, 혹은 불자 공동체[宗團]가 일반인들의 저출산 문제에 관여할 묘수가 있을까? 당연히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공조(共助)가 필요하다. 모름지기 지구촌 인간사회에 나타나는 일체의 현상은 불교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하고, 우선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한국의 불교계가 어떻게든지 관여해야 할 사안이다. 왜 그런가 하면, 불교는 온갖 세상사를 제일 · 최상으로 깨달으신 부처님[世間解 無上師]의 가르침이라고 설명되기 때문이다.

어느 때 아난이 부처님의 명호(名號)에 대해서 “왜 세간해 · 무상사라 합니까?”라는 질문을 드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답하셨다. “세간(世間)이란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와 지옥 · 아귀 · 축생 등의 종류를 말한다. 색온(色蘊) · 수온(受蘊) · 상온(想蘊) · 행온(行蘊) · 식온(識蘊)과 눈 · 귀 · 코 · 혀 · 몸 · 뜻과 6식(識)의 연이 되는 경계 등 일체의 법을 각기 갖추고 있으므로 세간이라 한다. 이를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알므로 세간해(世間解)라 한다. 또 그 세간에 존재하는 두발짐승 · 네발짐승 · 여러 발 달린 짐승 · 발 없는 짐승과 욕계 · 색계의 여러 하늘과 유상천(有想天) · 무상천(無想天) ·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의 범부와 성인을 막론한 일체유정 가운데서 오직 부처님만이 제일이고 최상이며 같을 이가 없으므로[第一最上無等], 무상사라 한다.” 

— 《불설십호경》 1권(K1141 v33, p.1181b-c)

그러나 불교의 원대한 이상과 달리 불교계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의 갈피를 잡고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일 터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저(超低)출산율 문제는 당장 고민해야 할 심각성이 있다. 연전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임을 전해 들은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 장면은, 널리 인터넷 ‘밈(meme)’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 글은 한국과 한민족이 세세생생 팽창하기를 바라는 민족주의 · 국가주의의 발로가 아니며,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독자들에게 알리려는 의도도 아님을 미리 밝힌다. 

1. 합계출산율의 추이

1950년대 전쟁을 거친 소위 베이비부머 시대 이후로, 1960년대 공공의 표어는 “세 살 터울 셋만 낳고 단산(斷産)하자”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으며, 19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뀐 것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도시에는 인구 탑을 세워서 시시각각 늘어나는 인구수를 알리고, 남성들에게는 정관수술의 대가로 예비군 훈련을 면제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불임수술을 할 경우는 금전적 혜택을 주었으며, 불임수술 가족에게는 아파트 입주 우선권을 주기도 했다. 그와 같은 산아제한 정책이 너무나 효과적이었던 탓인지, 1990년대부터는 부 · 모 2인이 2명의 자녀를 낳지 않음으로써 출생률(전체 인구 대비 출생아 수)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고, 인구구성비에서는 사회적 ‘노령화’ 경향을 염려하기 시작하였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기(可妊期, 15~49세) 여성 한 명이 생애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며, 연령별 출산율의 총합으로서 출산력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이다. 위의 그림이 바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의 추이를 보여주는데, 2018년에 드디어 0.98명 즉 부 · 모 둘이서 평균 1명의 자녀도 낳지 않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2022년에 0.78명, 2023년에 0.72명으로 낮아지다가, 2024년에 0.68명, 2025년에는 0.65명 등으로 통계청이 우리 사회의 장래인구를 추계하였다.1) 한국의 이러한 출산율에 대해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14세기에 유럽을 덮친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결과’라고 평하는가 하면, 혹자는 ‘전시(戰時) 상황급’ 국가적 위기의 출생률이라고 진단한다.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당장 군사적 안보에 비추어 볼 때, 장기적으로 그만큼 중차대한 문제라는 의미일 것이다.

 

2. 저출산 정책의 기조와 효과성

1990년대 이미 한국사회의 노령화를 예상한 당국자들이 2000년대에 들어서 ‘저출산 · 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했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 · 고령사회 위원회’를 출범시켰고, 5년마다 ‘저출산 ·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2024년 현재 제4차 시행 기간에 속해 있다. 청소년 인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노인 인구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고령화’와 맞물려서, 출산율의 지속적 감소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직시한 정부가 2019년에 기본계획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출산율 제고를 목표한 출산장려정책을 넘어서 ‘삶의 질’을 제고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성차별적 노동시장과 불평등한 육아 등을 개선하여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저출산 정책의 세부 과제로서, 출산 및 양육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고,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화하며, 공적인 돌봄 체계를 충분히 구축하고, 아동 존중과 포용의 가족문화를 조성하고, 더 나아가 2040 세대에게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그러한 정책 기조는 일견 타당해 보였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시행 효과를 얻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때마침 올봄에 만 25세 이상 49세 이하의 시민 2,011명을 표본으로 출산 및 자녀 양육에 대한 인식, 자녀 돌봄에 대한 의견, 일과 가정생활 양립, 정부 정책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한 결과를 참고해 보자. 

전체 응답자의 90%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였고, 90.8%는 정부가 그간 시행해 온 저출산 대책이 ‘효과가 없다’고 응답하였다. 그나마 정부의 대책 중 무엇이 저출산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지를 물으니, ‘자유로운 육아휴직제 사용’과 ‘남녀평등한 육아 참여문화 조성’이라는 응답이 각각 81.9%, 77.6%로 나타났다. 출산의 개인적 선택에 관한 질문에서는 첫째, 자녀의 필요성에 대한 긍정 비율은 평균 61.6%로 나타났다. 둘째, 현재 자녀가 없는 응답자 중에서 장차 자녀 출산의 ‘의향이 있다’는 29.7%,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27.3%로 나타났다. 셋째, 현재 자녀가 있는 응답자 중 추가로 출산할 의향이 ‘있다’는 10.0%,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15.4%로 나타났다. 위의 세 가지 질문에서 남성의 긍정률이 여성의 긍정률보다 더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현재 자녀가 없는 응답자에게 출산 의향이 없거나 출산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로서 1순위는 ‘임신 · 출산 · 양육이 막연히 어려울 것 같아서’이고, 2순위는 ‘자녀 양육비용이 부담될 것 같아서’, 3순위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로 나타났다. 또한, 맞벌이 가구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 가운데 1순위는 육아를 위한 시간 확보이며, 2순위는 육아 지원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직장문화라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 응답자들은 연령이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배우자 간 평등한 육아 분담’이 2순위로 필요한 사항이라고 응답했다.

 

3. 한 아이에게 필요한 온 마을 만들기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이 글의 목적은 단순한 출산 장려에 있지 않다. 저출산 · 고령사회 운운할 때마다 동반되는 경제활동의 ‘생산성’과 생산가능인구의 절벽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인용한 보고서에서 응답자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가운데 우선순위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라는 점을 심각하게 주목한다. 글로벌 국력의 순위가 6위라 하는데도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OECD 38개국 중 35위이고 세계 137개국 중 60위 안팎인 점과 상통하는 바 있을 것이다. 어른이 행복하지 않고,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세상이라면, 부모가 되고 자녀를 출산하는 일을 감히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정부 당국은 공공의 자원과 기회를 더욱 공정하게 분배함으로써 특히 미래세대 주체들로부터 각별한 신뢰를 얻어야 하고, 종교계와 같은 영역에서는 사회성원의 삶에 희망과 정신적 안녕을 증장(增長)해야 한다. 불교계도 예외가 아닌 그 과업으로서 집합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기르는’ 책무를 우선시하고, 성년이 되어서도 부모가 되기를 주저하는 작금의 문화적 · 생태적 요인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類似 世間解]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불교계를 구성하는 주체들, 예컨대 사찰의 경우에는 사부대중이 함께 아동 양육의 가치와 보람을 새삼 공유하고, 양육자의 성평등을 위해 솔선(率先)하는 실천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동들에게 안전한 지역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타 종교기관들과의 지속적인 연대와 협력도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불교인 기업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장서서 건강한 모성보호 · 출산 · 양육에 필수적인 육아휴직 제도와 유연한 근로 형태를 확립하는 데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주기를 제안한다. 

그야말로 온 마을의 어른들이 아이들 모두에게 전천후(全天候) 보호자가 됨으로써, 개별적으로 힘들게 느껴지는 육아를 넘어서 공동체적 육아의 지평을 다시 여는 불교계가 된다면, 저출산 시대에 최선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을 키우기에 마땅한 지역사회 공동체를 조성하여 그 가운데 미래세대가 신뢰와 희망을 느끼고, 거룩한 부모 역할을 통해서 차원이 다른 자긍심과 기쁨을 얻게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

 

이혜숙 hesook56@hanmail.net

동국대 불교대학원 박사(사회복지 전공). 동국대 겸임교수, 금강대 초빙교수 등 역임. 현재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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