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포스트모던 불교학을 이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미의 불교학계에서는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텍스트에 담긴 교리와 철학을 연구하였던 고전적이고 규범적인 불교학을 뒤로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불교학이 대세가 되었다. 루이스 고메스(Luis O. Gómez, 1943~2017)는 북미 불교학이 포스트모더니즘, 역사주의, 탈식민주의의 불교학으로 변화하던 시기에 그 변화와 발전의 선두에 있었던 학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불교학은 ‘불교’란 다양하므로 같은 표준으로 잴 수 없다는 생각, 즉 세속의 불교 전통들은 서로 본질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것이므로 이들에게서 공통된 핵심적인 가르침이나 정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불교 연구 방법을 통칭한다.

고메스는 실증적 역사주의에 상당히 치우친 당시 미국의 불교학계에서 다양한 사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균형감 있는 방법론으로 학문적 중도를 지키며 이론적인 정교함과 학문적인 엄격함을 보여주는 불교학자의 본보기였다. 고메스는 불교학의 방법론에 관하여 깊이 있는 논의를 하였고 불교학이 일반적인 사회과학의 학문과는 본성이 달라서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운 학문임을 설파하였다. 그러므로 불교학의 방법은 명료성과 투명성을 핵심적인 조건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이스 고메스의 생애

루이스 고메스는 1943년 푸에르토리코 남부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역사상 첫 번째 여류 박사였던 고모의 영향을 받아 고메스는 자연스럽게 학구적인 삶의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의사 공부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일리노이주의 페오리아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자랐다. 그 시절 그는 수많은 책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이국적인 문화와 사상에 강한 관심을 가지면서 성장했는데, 고등학교 때 공자의 글과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 16세에 푸에르토리코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외국어를 전공했다. 어느 날 철학 수업에서 인도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는데, 그의 교수가 인도철학에 관해 “이건 철학이 아니야.”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고메스는 도서관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교수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대학에서 그는 이미 일본어와 산스끄리뜨어의 기초에 숙달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불교학과 인도철학 그리고 일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스물네 살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고메스는 워싱턴주립대학에서 1년을 가르치고, 아시아에서 1년, 푸에르토리코대학에서 4년을 가르친 뒤, 1973년부터 미시간대학교에서 종교와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푸에르토리코에 있을 때, 그는 당시의 철학 전공자를 위한 선집인 《철학의 문제(Problemas de la Filosofía》(1975)의 편집에 참여했다. 이 책의 중국철학과 인도철학에 관한 부분을 고메스가 번역하고 편집하였다. 이 책은 당시 스페인어로 된 철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동양 사상을 서양 사상과 동등한 수준으로 통합, 소개하였다.

1973년에 고메스는 미시간대학교의 종교학과 조교수로 임명되었는데, 이로써 미시간대학교의 종교학 프로그램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에게 동양의 종교와 철학을 광범위하게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 정교수로 임명된 후 고메스는 극동어문학과의 대학원 과정에 불교학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고메스의 지도 아래 불교학 전공 학생들은 불교학이 요구하는 다양한 언어들을 배워야 했을 뿐만 아니라, 후기 구조주의에서부터 철학적 해석학까지, 그리고 문화인류학적인 이론을 거쳐 문학 비평과 성경 비평까지 공부하면서 현대적인 철학 소양을 두텁게 쌓아야 했다. 이처럼 방대한 영역을 다루는 학습 내용 덕분에 미시간대학교의 불교학 프로그램은 미국 대학에서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고메스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도널드 로페즈(Donald Lopez), 레이코 오누마(Reiko Ohnuma), 찰스 굿맨(Charles Goodman), 로버트 샤프(Robert Sharf), 조너선 실크(Jonathan Silk)와 같은 미국의 차세대 불교학자를 키워냈다.

고메스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심리학과 불교의 관련성에 깊은 관심을 가져 뒤늦게 심리학을 공부하여 1997년에 미시간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임상심리학자로서 일하면서 심리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래서 미시간대학교에서 그의 직함은 불교학 프로그램의 교수이자 종교학과의 교수이고 또 심리학과 교수였다.

그는 교육자로서의 헌신과 노력을 인정받아 많은 상과 명예직을 수상하였다. 1986년부터 찰스 허커 교수직(The Charles O. Hucker Professorship)으로 임명되어 후원을 받게 되었다. 1995년에는 대학원생을 위한 인문학 분야의 탁월한 가르침을 높이 평가받아 존디암스상(John H. D’Arms Award)을 수상하였고, 1997년에는 대학에 탁월한 공헌을 한 교수들 5명에게만 임명하는 아서 투르나우 교수직(The Arthur Thurnau Professorship)에 선정되었다.

2008년 35년에 달하는 미시간대학교에서의 교편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후에도 멕시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을 써내며 왕성한 연구 활동과 강연 활동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삶의 지침으로 여겼던 작품인 《입보리행론(Bodhicaryāvatāra)》의 번역 작업을 끝내면서 《노턴 세계 종교 선집(The Norton Anthology of World Religions)》의 완성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과 멕시코시티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했고, 불교연구소의 학술이사로 재직하였다. 2017년 투병 중에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불교경전번역학회에 참석하였고,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스탠퍼드 대학의 폴 해리슨 교수와 함께 《유마경》의 범본(梵本)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였다.

 

고메스의 학문과 사상

고메스는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불교의 학자이면서 티베트불교에도 정통하였다. 그의 연구 분야는 주로 인도 대승불교, 티베트에 전파된 불교, 불교의 자기 수양 이론에 대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종교심리학을 연구하여 정신역동 이론과 종교적 체험 간의 상호작용과 관계에 관해 연구하였다.

그의 많은 저작 중에서 《아미타경》과 《무량수경》을 번역한 《행복의 땅(The Land of Bliss: The Paradise of the Buddha of Meas-ureless Light)》(1996)과 1989년에 조너선 실크와 공동 작업한 《대승문학 연구: 세 가지 대승 불경(Studies in the Literature of the Great Vehicle: Three Mahāyāna Buddhist Texts)》이 특히 유명하다. 편집한 저서로는 《대승연구(Studies in the Great Vehicle)》와 《보로부두르: 불교 유적의 역사와 의의(Barabudur: History and Significance of a Buddhist Monument)》가 있다.

고메스는 불교 텍스트의 번역에 언제나 특별한 관심과 정성을 쏟았고 동시에 텍스트 해석의 방법론인 불교 해석학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그는 ‘불교 범어(Buddhist Sanskrit)인 중기 인도아리안 계통의 문어에 대한 탁월한 실력을 지닌 유일한 전문가’라고 불렸다. 불교학자로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메스는 끊임없이 다른 학문 분야와의 상호교류에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타 대학에 초빙받아 다양한 학부 과정 수업에서 강의하기도 했으며,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미국뿐 아니라 일본,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등에도 수없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고메스의 학문적 성취는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고 일본, 캐나다, 대만,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열린 국제적인 연찬회와 토론의 기조연설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의 특색을 세 가지 방면에서 개괄할 수 있다. 첫째, 그는 탁월한 언어 능력을 기반으로 원전 해석 및 자료 분석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둘째, 불교 해석학에 대한 탐구와 불교학의 정체성을 정립하였다. 셋째, 계몽적인 활동과 다양한 분야와의 교류를 통해 불교와 불교학의 위상을 높였다.

다양한 동양 언어에 정통한 고메스는 그 능력을 바탕으로 인도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인도-티베트불교, 타이불교, 미얀마불교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 범위의 중요한 주제에 관해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었다. 범어, 빨리어, 티베트어, 중국어, 일본어 등을 자신의 모국어인 스페인어와 영어만큼 능숙하게 구사하는 고메스의 비범한 언어 실력에 동료 학자들은 감탄하며 ‘신비한’ 능력으로 보았다. 한두 개의 언어를 통달하기 위해 애쓰는 동료 학자들의 눈에는 6개의 동양 언어(범어, 빨리어, 일본어, 중국어, 티베트어, 초기 인도 방언)에 능통하여 학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고메스가 신비한 인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한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언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전설적인 존재로 통했다.

고메스의 언어적 천재성은 텍스트를 분석하고 서로 다른 언어의 텍스트를 비교하여 불교 전통 전체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데 두각을 나타냈다.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 대부분이 동아시아 연구 또는 남아시아 연구처럼 하나의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연구를 하는 데 반해, 고메스의 연구는 모든 아시아 지역을 아울렀다. 그래서 인도불교 전문가들도, 일본불교의 전문가들도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랠프 윌리엄스 미시간대학교 종교학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고메스 교수의 지식 영역은 기막힐 정도로 넓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서양 종교 전통도 매우 세밀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박식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설명은 명료하면서 언제나 신선하다.”

고전의 해석 능력, 원전의 성립과정과 여러 판본의 차이를 분석하고 해명할 수 있는 문헌학적 지식, 사상사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한 텍스트에 대한 사상사적 이해도는 이미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부터 드러난다. 1967년에 쓴 그의 박사논문 〈《화엄경》에서 선별된 구절: 텍스트와 비평 장치와 번역(Selected Verses from the Gaṇḍavyūha: Text, Critical Apparatus, and Translation)〉에서 그는 당시 학계에서는 최초로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관한 비평적 연구를 시도하면서 네 개의 범본, 두 개의 범어 판본, 베이징 사본과 라싸 사본을 번역하였다. 이 글의 편집과 번역과 함께 고메스는 범어, 티베트어, 한문 텍스트의 다양한 번역문들 사이의 문헌적 관계, 인도 문학에서 보이는 〈입법계품〉에 대한 참고서적들, 범본의 언어학적인 특색, 그것의 기원과 철학을 논의하는 긴 서문을 발표하였다. 박사학위 논문과 연결하여 고메스는 1977년에 〈입법계품〉의 철학을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입법계품〉의 세계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하였다.

두 논문을 통하여 고메스는 〈입법계품〉이 주는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불교도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믿음을 정교하게 결합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두 가지 믿음이란 나타난 모든 현상은 환영이라는 것 그리고 고행(asceticism)의 수행으로 마음의 힘을 얻는다는 것인데, 〈입법계품〉은 이 두 가지를 결합한 가르침을 깔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입법계품〉에서 법의 진정한 본성, 법계, 부처의 궁극적인 본질, 색신을 가지고 표현하는 보살의 길은 결국 같다는 사실이 확립되면서 법계는 형이상학적이고 마술적이고 구원론적인 측면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깨달은 자는 법신을 가지게 되고 이원성을 초월하고 그 결과로 미혹된 중생을 구하기 위해 환영의 형태를 재창조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법계는 기반이자 목적이자 보살행의 결과이다.

〈입법계품〉에 대한 고메스의 해석이 현대 불교학에서 통찰력 있고 영향력이 크다고 인정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번역과 해석에 결함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화엄학자 마크 에먼(Mark Ehman)의 비판에 의하면, ‘금욕적인 수행을 통하여 마음의 힘을 얻게 된다’라는 고메스의 주장은 〈입법계품〉의 텍스트에서는 찾기 힘든 내용이라고 한다. 에먼은 ‘마음의 힘’은 《화엄경》의 중심 주제이지만 고행이 이러한 힘을 준다는 논의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입법계품〉에서는 ‘마음의 힘’은 선우(善友) 또는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고 함께 가며 그의 가르침을 통한 삼매의 달성으로 얻어진다고 주장한다.

텍스트 해석의 어려움은 고전어 해독 능력과 문헌학적 지식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메스는 잘 알고 있었다. 문헌학자는 텍스트로부터 진리를 파악하여 잘 설명해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모호함 속에 머물러 있으며, 또한 그의 해석에는 언제나 모순점이 잠재해 있다고 고메스는 말했다. 고메스에 의하면, 이러한 해석자의 딜레마는 해석 능력의 부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원래 ‘글쓰기’의 본성이기 때문에 글 쓰는 이를 딜레마에 빠뜨리는 것이다.

    

책을 쓰는 방식에는 네 가지가 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글을 조금이라도 보태거나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쓴다면, 그는 단지 필경사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쓰는데 자기 생각이 아닌 다른 요소를 보태면, 그는 편찬자이다. 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의 글을 함께 쓰는데, 그 글의 본질이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그는 주석자이다. 끝으로 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의 글을 함께 쓰는데 자기 생각이 그 글의 본질이고 다른 사람의 글은 단지 자신의 생각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는 저자이다.

 

이처럼 고메스는 자신의 글에서 중세 가톨릭 신학자인 보나벤투라(Bonaventura)의 생각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문헌학자로서 또한 불교학자로서 누군가의 글을 읽고 해석하는 데에서 완전하게 원본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교학자가 원본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있을 때는 위의 네 가지의 글쓰기 중에서 필경사의 역할을 할 때뿐이다. 우리가 그대로 베껴 적지 않는 한, 우리는 원전을 온전히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없다. 원전을 읽고 어떤 글을 쓴다는 것은 원전 이외의 무언가가 덧붙여진다는 것이고 그것이 원래의 뜻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불교의 원전을 우리의 언어로 해석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산물이 해석의 행위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자신의 ‘문화’라는 가방을 간단하게 투하한 뒤, 사람은 신의 뜻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존재라는 중세 시대의 관념으로 돌아가서 우리에게는 장인(匠人)과 저자로서의 학자의 역할이 있다는 믿음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고메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문헌학자나 불교학자는 원전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으며 원본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도 없다는 그의 믿음 때문이다. 인문학자는 결코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 수 없으며 자신의 시대와 문화에 항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자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획득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고메스는 역설한다.

인문학자가 처한 이러한 학문적인 궁지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학자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지 말고, 오히려 어떤 생각이든 그것은 자신의 고유 생각임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라고 고메스는 말한다. 이것은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숨는 비겁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학자 스스로 발견한 고유한 해석이라고 믿어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자신의 글을 쓰고 타인의 글을 덧붙이거나 타인의 글을 쓰고 자신의 글을 덧붙이는 과정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메스에 따르면, 학문을 하는 데에서 학자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방법론과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우리는 이론과 방법으로 학자를 키우고, 가치를 전달하고, 우리 스스로 정직해진다. 그러므로 이론과 방법론에는 준비의 요소, 전달의 요소, 정직의 요소가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학자는 자기기만을 통제하고 지식 그 자체를 조사할 수 있다고 고메스는 말한다. 이로써 학자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비평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메스는 불교학을 공부하는 자신의 학생들은 현대의 역사주의 방법론, 문헌 비평, 현대 비판이론을 배워야 하며, 지난 100년 동안 유럽, 북미, 일본에서 사용했던 서구식의 연구 방법들을 배워야 하는데, 이를 통해서 그들이 불교학이라고 부르는 연구와 담론의 형태 논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배워야 하는 방법론을 크게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고전적인 문헌학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실증주의이다.

고메스의 이전 학자들은 불교 문헌의 출처와 진위성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지만, 고메스의 시대에는 텍스트로 학자가 무엇을 하고 왜 그것을 이해해야만 하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였다. 특히 1980년대는 미국 학계의 사상적 변화가 심한 시기였는데, 만일 어떤 불교학자가 역사와 상관없이 장소, 시간, 문화를 초월한 ‘불교’가 있다고 주장했다면 그는 구식의 학자로 취급당하던 때였다. 역사주의와 탈식민주의로 변신하고 있었던 이 당시 최신 경향을 좇는 학자들에게는 이전의 불교 해석들이 오리엔탈리즘의 투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탈식민주의 불교학자에게는 세속의 불교 전통이 서로 본질에서 다르고 문화적으로도 다른 것이기 때문에 공통된 핵심적인 일련의 가르침이나 정수는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은 보편적인 것보다는 특수한 것에 관심이 있었으며, 사건보다는 사건의 맥락에 관하여 더 관심을 두었다. 그들은 비판적이었으며 이러한 비판적인 학문을 위해 문헌학적인 소양을 키웠다. 그리고 불교철학의 본질보다는 불교적 사건의 역사와 계보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고메스도 그들과 유사한 맥락주의적이고 비판적이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학자였지만, 고메스는 동시에 그들이 한물간 것으로 깎아내리는 불교 논사의 글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철학적 분석과 비교종교학적인 연구를 시도했다. 그는 구식과 신식의 장점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고메스는 불교의 한 주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문헌학적, 철학적, 언어학적 도구를 모두 갖춘, 지극히 보기 드문 학자이다. 더욱이 그는 서구의 문학, 종교, 철학의 유산에 대해 통달한 학자이다. 그러나 정작 고메스를 빛나게 한 것은 그가 가진 기술과 박학다식함이 아니라 불교학의 문제에 접근하는 그의 지적 틀이었다.

고메스는 불교학계에서 누구보다 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주의, 계보학적인 연구에 정통한 학자이다. 그러나 그러한 최신의 학풍을 통달했다고 해서 불교 전통의 최고 지성들의 문학적, 철학적 유산에 관한 존경심과 진지함을 결코 잃지 않았다. 그는 불교학 연구나 불교에 접근하면서 극도의 진지함과 경의를 갖추고 임하였다. 자신과 다른 접근법이나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과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관심을 찾아냈고, 그것으로 시공을 가로질러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철학적인 깊은 구조를 연역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주제를 큰 틀에서 보면서 동시에 지엽적이고 독특한 것과 함께 균형을 맞추는 능력은 불교학계에서 이룬 그의 업적을 더욱 의미 있고 빛나게 해주었다.

열린 마음과 이론적인 정교함 그리고 학문적인 엄격함으로 언제나 그의 글은 불교학에서 일어나는 특정 현상을 노련하게 분석하고 그 분야의 방법론과 이론을 반성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것은 해석과 불교학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가 뒷받침되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이 자타의 구분 없이 사유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힘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맺는말

루이스 고메스는 대학에서 불교학을 가르친 교수이자 연구자였고 동시에 불교의 수행자였다. 그는 비판적이지만 개방적이었으며 기존의 규범적인 불교학 스타일을 거부하였다. 그는 포스트모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정신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오히려 포스트모던의 전통 해체주의를 고전적인 불교학과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고메스는 ‘중도적인 자세’를 지키면서 학문의 투명성을 부각하였다. 고메스는 미국 불교학의 정립과 확장을 위해 방법론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았고 또한 자신의 방법론에 따라 많은 불교 텍스트를 깊이 연구하고 해석하였으며, 미래의 학자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미국불교에 대한 고메스의 생각은 북미의 불교계에서 불교학자의 역할은 불교가 전통적인 종교로서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나라의 불교학자보다는 더 대중적이어야 하고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불교 종파의 승려나 학문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승려가 부족한 미국 불교계에서 불교학자들은 북미의 불교도와 지지자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메스는 불교학자들의 수행에 관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이처럼 ‘수행하는 학자’들은 상아탑에서는 멘토의 역할을 하고 대중을 위해서는 불교 수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메스는 비단 정식 학회에만 참가하지 않고 수많은 비학술적인 대회에 자주 참석하여 많은 강연을 하였다. 그는 불교학자의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는 북미의 불교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메스에 따르면, 불교학은 훈련과 탐구가 공존해야 하는 연구의 장으로서 불교학자는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원전 연구 능력과 해석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학의 연구의 출발점일 뿐이며, 본격적인 연구는 불교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폭넓게 이해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자는 지금 현시대에 대한 이해와 텍스트가 만들어진 시대에 대한 다각적 이해와 함께, 연구자 자신에 대한 이해와 현시대의 독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이것이 불교학의 본성에 대한 고메스의 시각이다.

세계적으로 불교 인구가 5억이 넘는데 이것은 세계인구의 7%에 이른다. 그렇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세계의 전 지역에 분포된 데 비해 불교 인구는 아시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불교가 아시아권을 벗어나서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 있다면 그것은 북미 지역뿐이다. 북미에서 불교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의 하나이다. 고메스는 빠르게 성장하는 불교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도록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고메스는 불교학의 방법론과 정체성에 대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하여 후학들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고메스는 미국불교가 세계 불교가 될 수 있도록 북미 불교학의 다각적인 발전이라는 포석을 깔아 놓은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언젠가 고메스가 말했다. “미국의 피자가 피자의 원산지인 이탈리아의 피자를 만드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듯이 미국의 불교는 아시아의 불교 수행법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고메스의 예언은 이미 실현이 되는 듯하다. 북미의 불교 연구 방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과 맞물려 세계의 불교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미의 불교학은 불교의 진리에 대한 다각화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진리 탐구를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한다. 이처럼 북미 불교학이 유연성과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 고메스가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CIIS)’에서 비교종교학 석사와 동서양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IIS 동서양심리학과 초빙교수, 미국 중독심리전문상담사(CAADAC),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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