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페미니즘의 새로운 길을 열다

1. 들어가며

필자가 리타 그로스(Rita M. Gross, 1943~2015)를 처음 만난 것 은 2009년 베트남에서 개최된 세계불교여성대회(샤카디타)였다. 당시 세계는 여성 인권을 위한 성주류화 정책이 강화되고, 여성과 지구 환경 등과 관련한 전 지구적 여성연대가 중시되었다. 불교도 이에 영향을 받아, ‘샤카디타’에서는 동아시아 출가 수행녀들의 열 악한 현실 극복과 티베트불교 비구니 승단의 회복을 위하여 전 세 계 불교 여성들이 연대해서 논의가 활발했다. 그런데 상좌부불교 국가에서 볼 때, 한국 비구니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독자적인 비구 니 승단으로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계종단 종법 은 총무원장, 교육원장 등 종단 지도자는 ‘비구’만이 가능하도록 비 구니 차별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처럼 교단 내 가부장성은 한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아시아 불교국가에서 나타난다.

“2,600여 년 전 평등과 해방의 기치를 내 걸었던 붓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왜 교단이 이토록 가부장화 되 었을까?” “가부장제를 극복한 후에 불교가 성평등한 종교로 변화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불교페미니즘은 등장한다. 성별 을 근거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저항하며 삶의 영역 전반 에서 여성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는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는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ior)는 1963년에 쓴 자서전에서, “기독교 이념은 여성 억압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고 주장하기도 했고, 메리 데일리(Mary Daly)를 중심으로 여성신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불교계는 여전히 침묵했고, 여성과 비구니 차별은 당연시되었다. 1980년대 들어와서 비로소 불교를 여성의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서구 불교 여성들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특히 리타 는 1970년대부터 종교를 여성의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종교 특히 불교 내 여성 연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고, 종교학자이자 티베트불교 신자로서 불교와 여성 관련 이슈를 분석하면서 불교페 미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 결과 교단의 가부장성 극복 을 고민하던 서구와 아시아 불교 여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페미니즘과 불교의 만남을 “상서로운 만남”으로 규정한 리타에게, 필자는 그녀의 저서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Buddhism after Patriarchy) 》 를 한글로 번역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녀가 고 인이 되고도 한참 후에야 번역본을 출판하였으니,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이 글은 리타 그로스가 주장하는 불교페미니즘의 정의, 그리고 불교와 여성 연구에 대한 인식 방법이나 현상 분석 등 학문 적인 연구 방법을 알아보고, 티베트불교 수행자라는 내부자적 관점 과 종교학자라는 외부자적 관점을 통해 그녀가 제시한 대안인 ‘가 부장제 이후의 불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 여성과 종교 연구의 선구자

리타 그로스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비교종교학 교수이자 작가로 일했다. 루터교에서 성장했지만 20대에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30대에는 불교로 개종했고, 1960년대 비교종교 분야를 탐구하기 위해 시카고대학에 들어갔다. 1970년대 종교학계는 남성 이 대부분이었고, 여성이 종교에 참여하는 방식이나 종교 행위에 무관심했으며, 심지어는 종교 내 여성에 대한 관심조차 탐탁지 않 게 여겼다. 리타는 처음에는 종교학에서 여성을 연구하겠다는 생각 을 하지 않았지만, 점차 ‘왜 여성과 종교는 제대로 연구조차 되지 못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성의 관점에서 종교 방법론을 비평하는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겠다고 결심하자, 어떤 남성 지도교수는 “인간 또 는 남성 그 자체가 여성까지 포함하는 것인데, 여성만 특별히 연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말리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동안의 종교사는 ‘종교적인 인간(남성, homo religious)’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반면, ‘종교적인 여성 (femina religious)’에게는 별 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남 성과 여성의 역사가 함께 언 급되지 않으면 온전한 역사 가 아니라고 보았다. ‘여 · 남 중심’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누락된 것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틀을 변형시키 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호주 원주민 종교의 연 구에서도, 여성이나 남성은 둘 다 상대의 성이 하고 있는 중요한 종교의식에서 제외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남성 중심 종교사나 연구 방법을 비판하면서, 처음으로 ‘남성중심주의(androcentrism)’라는 용어를 사용하 였다.

리타는 1974년에 ‘미국종교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Rel- igion)’에서 종교계 여성(Women in Religion)의 책임자가 되어 힌 두교, 불교, 신도, 이슬람, 아프리카와 호주 및 아메리카 원주민 여 성들이 서양 여성들과 동등하게 대표로 참여하도록 했다. 그리고 1975년 시카고대학교에서 〈배제와 참여: 호주 원주민 종교에서 여 성의 역할〉로 받은 박사학위는 종교 여성 연구에 관한 최초의 박 사학위 논문이었다. 당시 뛰어난 여성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의 창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면, 익숙하던 남성 위주의 기 존 역사가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이해된다며,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사라진 채로 기록된 역사를 남성에 의한 ‘선택적 기억’ ‘거대한 망각’ 이라고 주장했다. 러너가 ‘왜 여성사인가?’라며 가부장제의 창조를 설명할 때, 리타 역시 ‘왜 종교에서 여성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리타가 종교 연구에 관심을 가질수록 기성 종교학자들의 연구 방 법이나 이론들은 결코 성 중립적이지 않고, 정치경제나 역사, 신학 등 어떤 학문도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종교 연구에서 성별 구성이나 성별 분석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강 조하면서 여성 종교학자들을 규합하였고, 낸시 포크(Nancy Auer Falk)와 함께 출판한 《말하지 않은 세계: 여성들의 종교적 삶(Uns- poken Worlds: Womens Religious Lives, 1980)》은 서구는 물론 아시아에 널리 알려지면서 페미니스트 종교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1977년 리타는 나로파대학 설립자인 쵸감 트룽파(Chogyam Tru- ngpa) 린포체의 제자가 되면서 티베트불교 신자가 되었다. 카르마 까규학교(Karma Kagyu school)에서 수행 훈련을 받고, 국제적인 샴발라공동체에서 ‘여성과 여성 원리에 관한 TF’의 구성원으로 역 할을 했으며, 2005년 제춘 깐도 린포체가 이끄는 티베트불교의 법사가 되기도 했다. 또한 미국에 소재한 로터스 가든 센터(Lotus Garden Center)에서 불교를 가르치고, 1983년 불교-기독교 대화 에서 카르마 렉셰 초모 스님을 만나게 되어 이후 ‘샤카디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녀가 쓴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 불교에 관한 페미니즘적 역사, 분석, 재구성(Buddhism after Patriarchy: A Feminist History, An- alysis, and Reconstruction of Buddhism)》(1993)은 불교페미니즘 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서로 널리 읽혔으며, 《페미니즘과 종교》는 페미니즘적 가치에 입각하여 종교를 비판하고 재구성하는 주제 등 을 다룬 책이다. 그녀는 150편 이상의 논문을 썼고 10여 권의 책을 쓰거나 편집하는 등, 종교에서 여성 연구의 진정한 개척자이자 시 조였고, 불교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탁월한 이론가로 전 세계 여성 불교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2015년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3. 불교와 페미니즘의 상서로운 만남

리타는 “불교는 페미니즘이다.”라고 말한다. 왜냐면 페미니즘이 란 성별로 인한 차별을 거부하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도 남 성과 동등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인데, 이는 붓다의 가르침 이 지향하는 바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공성, 무아, 연기 사 상 등은 남녀 이분법과 남성의 지배와 억압에 대항하는 이론적 토 대가 된다. 고정적이고 절대불변의 자아란 존재할 수 없는데 어떻 게 성별로 차별할 수 있는지 반문하며, 성차별을 하는 사람은 결코 무아나 공성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불교와 페미니즘은 둘 다 경험을 중시하고, 긍정적인 변화 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력에 의한 해방을 중시하 며 끊임없이 실천하여 궁극적인 해방을 얻는 것이 목표라는 유사성 이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불교는 고(苦)를 극복하고 행복을 추 구하는 반면,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을 극복하고 여성 권익을 향상 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교는 페미니즘에 탈이분법과 탈유 일신 사상을 제공하면서 페미니스트들에게 현실에서의 고통과 실 존적 불안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에 페미니즘은 불교에 젠더 관점을 제공하며, 성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불교와 페미니즘을 ‘상서로운 만남’이라고 설명 하며, 불교페미니즘을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공동 인간성(co-humanity)에 대한 본질적 수행”으로 정의한다. 즉, 남성의 지배와 억압에 대항하는 여성의 투쟁이라는 이념적 경직성을 극복하는 이론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불교 성차별의 원인을 권력과 위계 구조로서의 가부장제에 두고, 남성 기록자에 의 해 선별적으로 선택되고 기록된 역사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배제되거나 가부장성이 첨가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불교페미니즘은 여성 억압과 차별이 어떻게 붓다의 가르침인 교리와 대치되는가를 제시하면서 가부장적 젠더 위계를 극복하고 성평등한 불교를 복원 하고자 한다.

불교페미니즘의 기원은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호너(I.B. Horner)는 어머니, 딸, 부인, 미망인, 그리고 여성 노동자로서 여 성의 다양한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를 하면서 세계 최초로 여 성 출가자인 비구니 교단이 등장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불교의 성평등성을 설명하였다. 불교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1980년대는 서구 페미니즘 이론의 확산과 전 지구적 여성운동의 발전, 그리고 여성신학의 발전이 있었고, 또한 서구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구 불교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본격화하기 시작 했는데, 예를 들면 알란 스폰버그(Alan Sponberg)는 불교가 위계 적인 가부장제를 지지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핵심적인 논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앤 클라인(Anne Klein)은 불교의 공(空)사상과 연결시켜 여성을 문화적 으로 구성된 성(gender)으로 설명하며, 하나의 카테고리로서 ‘여성’ 이 아닌 다양성과 특수성에 기반을 둔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여성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논리를 불교가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리타는 과거 불교의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성평등한 교단 문화 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유용한’ 자료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타는 불교 교리에서 나타나는 젠더 억압과 승가의 비구니 차별 적인 제도 및 불교 역사에서 여성 이야기의 왜곡이나 부정을 ‘제도 적인 실패’로 본다. 그 결과 가부장적 법과 제도가 성 차별성을 심 화시키고, 부정적인 여성관으로 인해 비구니 승단을 약화시키고 여 성 불자에게 부정적인 여성관을 강요한다. 특히 ‘팔경계’는 비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여성 지도자로서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어, 여성은 ‘전통에 의해 변형된 존재이거나 전통에 의해 변형되고 있 는 과정’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따라서 ‘제도적 실패’를 극복하기 위 해 교리의 재해석, 젠더 위계의 제도적 변혁, 불교사에서 잊힌 여성 의 소환, 아시아에서 사라진 비구니 교단의 재건 등을 강조하면서 불교페미니즘 이론을 정립하였다.

불교페미니즘은 다양한 젠더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예 를 들면 세계 불교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는 티 베트 비구니 수계 문제로, 이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개혁, 지구화 와 지역화가 만나서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불교 여성 내부의 차이 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슈이다. 서양 불교 페미니스트들은 비구니 수계를 강조한 반면, 티베트불교 여성들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을 더 시급한 문제로 여기거나, 불교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학위 (Geshema Degree)를 받는 대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교리나 제도 개혁을 통해 교단 내 젠더 권력 구조를 해체 하고자 하는 일체의 내용을 불교페미니즘이 포함하고 있지만, 다수 의 서구 불교 페미니스트들은 공통적으로 아시아 불교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불교의 공(空)사상으로 표현되는 근본 진리인 자유정신으로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4. 종교 연구가에서 티베트불교 신자로

리타가 주창하는 불교페미니즘은 기존의 서구불교 여성학자들과 는 차이가 있다. 그녀는 실천적 학자이자 비교종교학자로서, 티베 트불교 신자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이론가이자 실천가로서 불교에 대한 ‘내부자’와 ‘외부자’의 관점을 온전하게 결합한 연구자이기 때 문이다. 그녀는 불교를 여성의 관점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붓다 를 신화화하거나 가르침 자체를 신성시하지 않고 페미니스트의 관 점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고타미가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 라고 세 번을 간청했지만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팔경계’를 지킬 것 을 약속받고 비구니 승가를 설립했다는 것에 대해, “붓다께서 팔경 계에 기록된 진술들 그대로를 만들었다면, 나는 붓다가 완전히 깨달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주장한다.

2,600여 년 전 인도사회에서 살던 붓다는 그 자신도 가부장적 젠 더 위계를 수용했을 수도 있고, 당시 신생 종교인 불교가 여성 출가 자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인도사회의 전통적인 젠더 위계를 무시하 는 일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성취한 후에도 젠더 이슈는 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라고 리타는 주장한다. 그녀는 불교를 ‘세 가지 불교(three-yana)’ 관 점, 즉, 초기 상좌불교(hinayana), 좀 더 포괄적인 현대의 대승불교 (mahayana), 그리고 티베트 금강승불교(vajrayana)로 나누고, 불 교에서 여성의 역할과 이미지에 대해서 이 ‘세 가지 불교’라는 프레 임을 활용해서 분석한다.

《말하지 않은 세계(Unspoken Worlds)》의 공동 저자인 낸시 포 크에 의하면, 이 책이 출판된 후 ‘남성 중심성’에 대한 연구를 하는 동안 그녀는 티베트불교도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남성 중심성’은 종교 여성 연구의 출발점이었으며, 종교와 여성 연 구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남성 중심 모델’을 극복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남성 중심 모델’에 의하면, 남 성이 곧 인간이고, 사상이나 언어 등 모든 영역에서 남성적 규범이 가장 적절하며, 여성은 주류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남성 중 심 모델’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그녀가 티베트불교를 만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계의 위대한 스승 달라이 라마 존자는 티베트불교는 인도 초기불교가 전파되어서 교리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서구 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불교 사를 통해 볼 때 티베트불교는 어떤 불교 분파보다도 여성성을 중 시하는데, 수행의 완성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결합되어야 하므로 여 성성 또한 남성성과 동등하게 존중된다. 그리고 예세 초겔이나 따라보살 등 위대한 여성 스승들이 역사적 인물로 존재했으며, 오늘 날까지도 추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여성 스승들이 나 수행에 필수적인 여성 상징들이 발달해 있다는 것은 불교를 페 미니즘적으로 재구축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불교의 비구니 승단이 사라지고 교단 의 가부장성이 견고한 것에 대해 리타는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한 전통 티베트 불교학자들의 특정한 텍스트나 승가 계맥의 전통, 교리나 학문적 수준을 높이 평가하지만, 성차별에 무관심함을 지적 하며 견고한 티베트불교의 가부장성에 균열을 가하는 데 기여했다. 서구의 백인 여성학자로, 그녀는 불교 여성 내부의 차이에 근거한 전 지구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생 동안 세계의 불교 여 성들과 교류를 확장해갔다.

리타와 오랫동안 교류했던 세계 비구니들의 스승인 텐진팔모 스 님은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 한글판의 추천사를 써주었는데, “동 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늘날까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불교 전통 에서 전해오는 불교 문헌의 차별성에 대해서 그녀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과감하게 도전했다”라며 리타의 업적을 칭송했다. 동시에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의 분석이 유용할 정도로 불교가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5.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

불교는 가부장제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성 중심, 비구 중심을 극복한 성평등한 불교는 붓다께서 가르친 수행 방법으로 실현이 가능한가? 현대사회에 도움이 되는 상가(Sangha, 공동체)의 존재 방식은 어떻게 변해야 하며, 누가 이 변화된 불교를 이끌어나 갈 것인가? 리타는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불교 를 페미니스트적으로 재평가하고 재구축”하고자 노력했다. 심지어 티베트불교의 뛰어난 여성 상징들에도 불구하고 비구니 승단조차 사라진 현실에 대해 “슬픔과 회한을 불러일으킨다.”라고 말하며, 가부장성을 극복한 불교의 가능성을 사원 중심이나 비구 중심이 아 닌 서구불교 방식에서 찾는다.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녀는 불교에서 중심적인 세 영역 ―출가자, 재가자, 수행자―의 생활방식은 심각할 정도로 성 차별적이라고 진단한다. 비구들이 수행과 교단 운영을 독점하고 비 구니들은 비구의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거나, 재가 수행자를 열등하게 간주한다거나, 성 역할 고정관념으로 남성의 우월함에서 벗어나 지 못한다. 그러므로 먼저 불교 성평등을 위해서는 불교에서의 주 요 개념에 대한 재해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불교에서 가 장 기본적인 피난처인 ‘붓다, 가르침, 그리고 승가’ 가운데 승가에 대해 재개념화를 시도한다. 승단은 믿음 공동체에서 동반자가 되기 를 기원함과 동시에, 가르침에 합당한 실천이 따라야 하는데, 그녀 가 제안하는 승가는 절제된 출가 중심이 아니라, 불교의 핵심 개념 인 상호의존적인 연기적 방식으로 공동체, 양육, 소통, 관계, 우정 등으로 채우는 공동체이다.

불자들에게 ‘가르침을 촉진하는 세 개의 수레바퀴’, 즉 공부, 실천, 생계의 각각에서도 기존의 성역할을 극복하고 상호 소통을 통해 가 사와 양육 활동을 중요하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적’ 가치로 채워야 한다는 것인 데,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이 수행에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가부장제 이후 성평등한 불교의 재건을 위해서는 성별 역할이 현대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데, 특 히 재가 여성들의 뛰어난 영적 수준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불교사를 통해 볼 때, 재가 여성 수행 전통은 견고하며, 오늘날 명 상센터나 사찰 명상수행 프로그램 참가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 재가 여성들은 양육과 돌봄, 일상생활을 하면서 새벽마다 수 행 시간을 갖거나, 단기 혹은 장기로 집을 떠나 붓다의 제자로 수행 을 한다.

그러므로 붓다가 강조한 ‘상가(Sanga)’는 출가자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양육이나 돌봄, 정서 나누기 등 페미니스트적 가치로 채워진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적 수련과 계율을 강조하며 깊은 산 속에 은둔한 ‘사원’ 방식이 아니라, 재가자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에 ‘불교명상센터’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보육 이나 돌봄, 아동교육 등도 관여해야 한다고 본다. 이처럼 성평등한 사원 제도의 재구축은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를 위한 여성주의적인 이슈 가운데 가장 중요하거나 혁명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요가 수행을 하는 다양한 계층의 재가 여성 명상가들 가 운데 일부는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도 하는데, 가부장제 이후 불교의 혁신과 재구축의 역할에 이 여성 수행자들(요기니)이나 여 성 구루들에 리타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여성에 대 한 권리나 역할을 넘어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평화롭 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본다.

 

나가기

여성학과 종교학 두 방면에서 리타의 페미니스트적인 비전은 종 교의 변화를 통한 여성의 해방으로, 이는 40여 년 동안의 그녀의 삶 속에서 일관성 있게 전개되었다. 그녀는 종교학, 페미니즘, 불교라 는 세 관점을 복합적으로 연결하면서도 내부자로서 불교페미니즘 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페미니스트 종교학자로서 불교사 에서 여성의 역사를 재평가하며 주요 개념에 대해 재해석하고자 했 다. 종교 연구에서 삭제된 여성을 찾는 방대한 여정의 선구자였고, 동시에 남성과 여성을 완전하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종교 개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수행자였다.

또한 불교의 평등주의와 가부장적인 역사 사이의 모순을 탐색하 면서 그 모순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미래 불교에서 불교가 나아 갈 올바른 방향을 가부장제 이후의 재구성된 불교로 그 대안을 찾고자 노력한 실천가였다. 리타에게 불교는 종교 연구의 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이었기에, 불교 여성에게는 내부자인 동 시에 외부자로서의 관점을 통합적으로 활용한 그녀는 참으로 소중 한 존재였다. 티베트불교 신자였던 리타 그로스는 제1세계와 제3 세계 불교 여성 내부에서도 인종, 계급, 계층 등에 의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성 내부의 차이에 근거한 전 지구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서구 여성들이 티베트불교의 현실, 즉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도 동시에 티베트불교의 견 고한 가부장성에 대해서 비판하며, 불교페미니즘이 더욱 확산되어 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를 불교 페미니스트 로 더욱 추동하게 한 것은 티베트불교였음을 부정할 수 없는데, 불 교 페미니스트로서 서구로 전파된 티베트불교와 일체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티베트불교는 디아스포라와 그들의 정치적 불안함 때문에, 서양 수행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서양 제자들 에게 자신의 위치를 넘겨주는 것을 주저했을 수도 있다. 또한 깨달 음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티베트인들이 서양인들보다 전통적인 지 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느끼거나, 교단의 가부장성에 대한 비 판을 받아들이는 데에 인색한 경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구 불교권에서 그녀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탁월 함을 인정받았다. 특히 1983년 미국 내 불교 조직에서 발생한 성적 스캔들 이후, 아시아의 가부장적 불교 모델에 대한 비판과 함께 불 교에 대한 재해석과 재구조화를 통한 성평등한 불교를 발전시키고 자 할 때, 그녀의 이론은 어두운 밤에 길을 밝히는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리타의 분석이 특히 환영받은 곳은 아시아불교로, 가부장제에 고착된 현실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과 대안 모색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책들이 각국에서 번역되고 그녀가 강 사로 초빙되면서 불교페미니즘은 널리 확산되었다. 또한 은둔에서 벗어나 ‘세상 속으로’ 참여불교를 강조하면서, 가부장제 이후의 불 교는 여성과 남성 모두 온전하게 성숙한 주체가 되어 지구 공동체 에서 함께 살려야 함을 강조한다.

인간 해방을 위한 불교와 페미니즘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축이 ‘축복할 만한 동반자’라는 관계 위에 서 있기에, 불교 페미 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넘어서 불교를 해석할 기회와 책임이 있다 는 리타의 주장이 무겁게 다가온다. ■

 

옥복연 byok2003@hanmail.net

미국 코네티컷주립대에서 여성학 석사, 서울대학교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 았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민대 강사 역임. 주요 논문으로 〈불교 경전에 나타난 여성혐오적 교리 분석〉 〈붓다의 재가여성 십대제자에 대한 불교 여성주의적 분석〉 〈다시 팔경계를 소환하며〉 등이 있고, 《불교와 섹슈얼리티》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들》 등의 공저서와 번역서로 《불교페미니즘》이 있다. 현 재 종교와젠더연구소장, 불교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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