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조선독립의 횃불을 들다

1. 머리말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1970년 지금의 〈불교신문〉 전신인 〈대한불교〉와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서였다. 〈대한불교〉는 같은 해 3월 8일 자에 “승려 3 · 1 독립투쟁사 발견”이란 제목으로 선언서를 소개했다. 그다음 호에서도 〈대한불교〉는 “대한승려연합회 독립선언서 원문 발견의 의의”라는 제목으로 그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 선언서는 1919년 11월 15일 발표된 후 매우 긴 세월을 유랑하다가 1970년에 비로소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프랑스 교포 홍재하가 보관하였던 원본이 그 유족에 의해 당시 유민사를 연구하는 현규환에게 전달되었고, 현규환은 이를 1969년 국사편찬위원회에 기증함으로써 3 · 1절을 기해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최초 보관자인 홍재하는 파리에 주재하면서 대한국민회 파리 지부장을 역임한 분으로, 상해에서 인쇄된 선언서를 파리 주재 외국 사절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에 대한 연구는 김광식, 김순석, 김창수, 김소진 등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들의 선행연구는 이 글의 바탕을 제공했으며, 글의 전개에서 선언서의 내용과 등장배경 등을 다루는 2장을 마련했다. 필자의 집필 목표가 선언서 내용의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이 장을 마련한 것은 이 귀중한 선언서의 존재를 밝히고 그 의의를 많은 분과 공유하자는 의도 때문이다. 2장은 불교 역사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축약하여 정리한 것이다. 

A4 용지 한 장의 선언서 내용을 이념적으로 분석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은 마치 한용운 스님의 짧은 시 〈님의 침묵〉을 긴 논설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이 선언서는 필자에게 붓다 다르마와 한국불교에 대해 많은 사유의 날개를 펴게 했다. 그 사유의 날개는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고 선언서의 의미도 그만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2.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 발표 배경과 과정 

“한토의 수천 승려는 이천만 동포와 세계에 대하여 절대로 한토에 재한 일본의 통치를 배척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주장함을 자에 선언하노라”

1919년 11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해에서 대한승려연합회 이름으로 발표한 독립선언서 첫머리 부분이다. 선언서 대표자로 스님 12명의 법명(또는 속명)이 선언서 끝에 나온다. 발표 일자를 ‘대한민국 원년 11월 15일’로 함으로써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확실하게 지지했음을 밝히고 있다. 대한승려연합 선언서는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 1920년 3월 1일 자에 ‘불교선언서’라는 이름으로 전제되었다. 기미독립운동 1주년이 되는 시점이다. 또한 같은 해 역사학자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승려연합대회 선언서’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실었다. 선언서 발표 날짜와 대표자 이름은 생략되었다. 같은 해 상해에서 발간한 《신불교》에서는 〈조선불교도지선언(朝鮮佛敎徒之宣言)〉으로 소개되었다. 위에서 열거한 선언서들은 제목과 내용이 미소하게 다를 뿐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와 큰 틀에서 동일하다. 

이 선언서가 국한문 혼용, 영문, 한문으로 작성, 공포됐다는 점은 이 선언서의 목적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즉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과 잔혹성을 세계에 알리고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여론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각국의 외교관에게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려고 한 의도일 것이다.

선언서는 3 · 1운동 당시 전국의 사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던 승려들이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하려는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3 · 1운동 이후에도 불교도의 독립운동이 치열하고 은밀하게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는 매우 의의 있는 문건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선언서가 나온 배경과 과정 등에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정황을 유추할 수 있는 간접적인 자료가 일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김광식은 다양한 단편적인 자료를 퍼즐을 맞추듯 재구성하여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와 민족불교론〉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연구는 기존의 연구를 모두 참고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김광식은 이 선언서가 나온 배경과 과정을 불교 항일 운동의 긴 맥락과 연결해 분석하고 있다. 그는 대한승려연합회는 3 · 1운동 직후 중국 상해 임시정부를 배경으로 대일 항쟁을 전개한 불교계 독립운동 단체로 보고 있다. 이 단체를 결성한 항일 승려들은 국내외를 아우르는 불교 항일단체를 결성하고, 전국적인 사찰조직을 배경으로 승려들의 대일 항전을 기도하였다. 그들은 3 · 1운동 당시 중앙학림, 전국 강원, 사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지속을 모색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불교의 독립운동에 대한 입장, 논리, 대응책 등을 선언서로 작성할 필요성이 제기된바, 그것이 선언서의 배경이라 본 것이다.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 말미에 적힌 12명의 대표자는 역사학자 간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일제 강점기 상황에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1970년 3월 8일 〈대한불교〉는 “지금 살아 계신 스님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오만공(오성월, 범어사 주지), 이법인(이회광, 해인사 주지), 김취산(김구하, 통도사 주지), 지경산(김경산, 범어사 고승) 스님”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 선언서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주지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선언서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서의 기초자가 누구인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학자들은 다양한 추정만 할 뿐 결정적인 주장을 삼가고 있다. 김광식은 신상완과 백초월에 함께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김순석은 백초월에 무게를 두고 있고, 김소진은 신상완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희승은 이종욱의 독립운동을 연구하면서 상해 임정에 참여한 불교계 공동의 결과물로 추정하고 있다.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대한불교 7천 승려의 이름으로 불교가 독립항쟁에 나선다는 견결한 의지를 동포와 세계만방에 선포함.

둘째, 불교의 근본 종지를 평등과 자비로 내세우면서 일본을 불교의 적으로 간주하였음. 일본은 침략주의 · 군국주의에 탐닉하여 인류 평화를 파괴하고 광폭함이 극에 달함. 특히 평화로운 3 · 1운동을 폭악과 살인으로 진압한 잔혹한 행위를 방관할 수 없음.

셋째, 3 · 1운동에 한용운, 백용성 스님의 참여를 거론하면서, 이천만 우리 민족을 억압하는 일본에 대한 독립운동은 역대 고조(高祖) 제덕(諸德)의 유풍으로 도도히 내려온 한국불교의 전통임을 밝힘. 

넷째, 한국불교는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압박을 받았지만 세계 불교사상사에 우뚝 선 찬란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에 불교를 전해 불타의 자비로 이끌었음. 또한 임진왜란 등 국가 위급 시에 국가와 민족을 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바 지금 독립투쟁을 하는 것은 불교도로서 당연한 것임.

다섯째, 일본은 한국의 민족적 전통, 문화 등을 말살하고 일본화를 강제하기 위해 법과 정책 등과 온갖 가혹한 방법으로 한민족의 혼을 멸살시키고 있음. 그 독수(毒手)가 불교에도 가혹하여 역대조사의 유풍과 대한불교의 생명이 절멸의 위기에 있음.

여섯째, 대한국가의 독립과 이천 년 찬란한 전통의 대한불교를 일본화와 절멸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하여 오직 나아가고 싸우겠다는 혈전(血戰) 의지를 천명함. 

 

3. 선언서 내용의 특징과 의의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의 내용을 분석함에서 필자는 ‘지식사회학적 접근’과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결합하여 보고자 한다. 지식사회학적 접근은 인간의 지식과 의식은 그의 사회적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접근법은 지식과 사고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하나의 관념은 그 자체로만 독립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경향이나 힘, 그리고 배경을 이루는 현실의 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사회학적 접근은 관념체계에 대한 연기론적 접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도구로 하여 관념체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인간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표상과 앞날에 대한 전망과 이상, 그리고 이에 따르는 실천방안의 변증법적 관계를 이성적으로 성찰하고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세 가지 구성요소 즉, 현실에 대한 상황규정, 지향가치의 제시, 그리고 실천방안의 전략을 가지고 있다. 상황규정은 당대의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해석 등을 포함한다. 지향가치는 이데올로기가 지닌 유토피아적 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규범적 당위성을 띠게 된다. 실천방안은 상황규정을 토대로 지향가치를 구현하려는 여러 가지 수단, 처방, 정책, 제도, 과정 등을 나타낸다. 이러한 지식사회학적 접근법과 이데올로기적 접근법을 결합하여 선언서를 분석하고 진단하면 그 내용의 특징을 조감할 수 있을 것이다.

1) 불교 정의론의 제시와 실천 불교

필자가 이 선언문에서 제일 주목한 구절은 “평등과 자비는 불법의 종지니 무릇 이에 위반하는 자는 불법의 적이다”라고 선언한 내용이다. 이것은 바로 불교의 실천적 성격을 짙게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보통은 불교의 근본 종지를 해탈, 열반에 두고 이를 실천하는 지혜와 방편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선언서에서는 평등과 자비를 불교의 종지로 내세우고 일본을 불교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평등과 자비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선언서에서 평등과 자비를 불교의 근원적 지향가치로 내세우는 것은 지식사회학적 측면에서 볼 때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또한 이데올로기의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지향가치를 평등과 자비로 제시한 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혁명 시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적 가치로 내세우며 삼색기를 휘둘렀는데, 마치 평등과 자비의 이색기(二色旗)가 대한 독립 투쟁의 장에서 펄럭이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선언서 내용의 3분의 2 정도가 일본의 행위가 평등하지 못하고 자비롭지 못함을 지적하고 규탄하면서 이로 인해 받는 국민의 고통과 한국불교의 위기를 절규한다. 필자는 이 선언서를 독해하면서 평등과 자비를 현대사상의 틀에 맞추어 ‘불교 정의론’의 핵심가치로 삼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불교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선언서는 단순한 국가의 독립이 아니라 평등과 자비를 이 세상에 실천하는 전법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철학적 관념론과 지적 유희가 아닌 현실적이고 실천 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서구 불교학자 제이콥슨(N. P. Jacobson)의 저서 Buddhism, The Religion of Analisis의 내용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서양인들이 불교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대한 장애가 되는 것은 불교를 삶의 해석이나 하나의 교리체계, 그리고 자아, 고통, 열반에 대한 가르침 따위로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왜 장애가 되는가 하면 불교의 뚜렷한 특징은 어떠한 사상체계나 총괄적 이론으로 전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는 본질적으로 가르침이나 교리가 아니다. 불교는 삶이 지속적으로 안고 있는 까다로운 문제들을 다루는 문제들을 다루는 실천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불교의 껍질뿐이다. 불교적 전통 속에서 자라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르침이 아니라니? 논리적인 형식을 띠거나 공식화될 수 없는 믿음이라니?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제이콥슨의 견해에 깊이 공감한다. 붓다의 가르침을 체계화시켜 보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문자불교에 빠져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공감한다. 불교의 가르침은 서양의 전통적인 서양철학이나 종교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서 인간 존재는 항상 제도나 법, 도덕률, 철학적 관념, 이론적 체계의 형식 등의 체계로 표현된다. 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 사랑의 계명, 구약의 모세 율법 등의 체계로 조직화되어 나타난다. 서양인 사고에는 자신을 이성적 질서 안에 두는 것이 최고의 덕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서양문명은 규칙과 원리들을 만들고 그것을 객관 세계에 투사하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일관되게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불교는 모든 조직화로부터의 해방 또는 해탈이다. 교리나 신념에 얽매이는 것의 해독과 바른 실천에 관한 교훈은 불교 경전에 수도 없이 많다. 강을 건널 때는 뗏목이 필요하지만 건넌 후에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붓다의 비유는 교리에 얽매이지 않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독화살의 비유도 그러하다. 붓다의 가르침은 상대방의 구체적인 질문이나 노력과 실천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붓다의 무기(無記)설법도 이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붓다는 인간의 고통과 그 극복하는 실천방법에 큰 관심을 가졌지, 세계가 영원한지,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어떤지, 내생은 있는지 없는지 등 이론적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에는 침묵하였다. 

불교의 실천적 성격은 ‘진속이제(眞俗二諦)’에 대한 논의에서도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세속제(世俗諦)는 사람들 사이의 합의로 이루어진 진리이다. 사회적 · 법률적 · 과학적 진리 등이 이에 포함된다. 세속제는 사회가 변하고 과학의 발달에 따라 진리도 바뀐다. 이에 반해 진제(眞諦)는 인간들이 제멋대로 정할 수 없는 궁극의 진리를 말한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최종적인 진리이다. 진속이제의 주제가 불교 논단에서 등장한 것은 아마도 붓다의 가르침을 어떻게 인간 삶의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느냐의 고뇌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제는 세속적인 말에 의해 표현되고 알려진다. 진제가 세속제에 의해 설명되지 않으면 붓다의 다르마는 결코 펼쳐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제와 속제는 표리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진속이제의 문제는 바로 ‘깨달음의 사회화’라는 과제와 연결된다. 깨달음의 사회화는 개인의 깨달음을 개인에게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면서 사회의 고통과 무명을 극복해 가는 실천이다. 

또한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의 내용은 이데올로기의 세 가지 구성요소인 상황규정, 지향가치 그리고 실천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일본의 야만적인 통치 행위로 인한 정치 공동체의 붕괴와 한국불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평등과 자비를 지향가치로 내세우고 독립 항쟁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깨달음의 사회화라는 화두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선언서의 내용을 단순한 독립선언문이 아니라 근대 한국불교의 실천성을 천명한 매우 뜻깊은 메시지라고 평가하고 싶다. 

불교 승가의 첫 출발은 바로 평등과 자비의 실현에 있었다. 사성 계급제를 비판하고 승가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신분과 계급 및 성별을 넘어 평등하게 적용되었다. 승가 구성원의 평등성은 세계 종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 생각한다. 오늘날 평등과 자비는 실천 불교의 제일 큰 기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에서 암베드카르가 주도한 사회개혁 운동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불교개혁 운동은 바로 평등과 자비의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붓다의 가르침은 원래 매우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세간의 일에 적극 간여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고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 또는 마음의 종교, 명상의 종교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조선시대의 불교 핍박기에 형성된 한국불교의 위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불교의 이미지를 은둔의 종교, 또는 산중불교로 인식하게 만든 한 원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는 단순한 믿음이나 학문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이 결코 아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쉬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과거 속에서 발견하는 의미는 바로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상들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적 관점으로 되새김할 수 있을 때 그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서는 결코 다른 시대의 가르침들에 접근할 수 없다. 붓다 다르마를 현대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바로 여기서 살아 숨 쉬게 했다고 생각한다.

 

2) 의병정신의 계승

필자는 선언서를 읽으면서 한국불교사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의병정신을 절절히 느꼈다. 선언서는 의병운동을 호소하는 창의문(倡義文)의 기개가 그대로 배어 있다. 필자는 한국 근현대사에 의병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공허했을까 하는 느낌을 받아 왔다. 일제 강제 병합이라는 국치의 과정 중에서 만약 의병운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이 되었을까? 그래도 의병운동이 있었기에 국치의 부끄러움을 어느 정도 위안받고 있다. 또한 그 의병정신이 독립운동의 뿌리가 되고 우리 민족의 정신사적 초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말 의병운동의 초기 연구가인 박은식은 “의병이란 민군이다. 이들은 국가가 위급할 때 조정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의롭게 종군하는 적개심에 불타는 사람들”로 정의하고 있다.또한 의병을 진압하려는 조정 스스로가 의병을 민병으로 불렀다. 한국의 의병에 깊은 관심과 경외심을 가졌던 영국의 신문기자 매켄지(F. A. Mckenzie)는 의병을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이를 구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이 스스로 일어난 ‘정의로운 군대(Righteous Army)’로 보고 있다. 

의병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필자는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부정의에 대한 저항이다. 여기서 정의는 ‘옳고 바른 사유와 행동의 총체’이다. 이러한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바로 부정의이다. 의병정신의 핵심은 이러한 부정의에 대한 저항에 있다. 두 번째는 민족 정체성과 문화 정체성의 정립이다. 근대 이전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일본은 근대문명의 선진국을 자부하며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을 지속적으로 고착시켜 나갔다. 한국에 대한 야만국 인식은 18세기 말부터 각 관공서, 교육기관, 언론, 각종 출판물을 통해 무제한적으로 선전되었다. 그 구체적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바로 소위 ‘황민화’와 ‘내선일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언서에는 한국불교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조선조에서 서울 도성이 출입이 금지되는 긴 억압의 과정 속에서 이러한 자긍심을 지키고 있었다는 데서 가슴이 찡하다.

원컨대 불법이 한토에 입한 지 우금(于今) 이천년에 이조에 지(至)하여 압박을 받음이 유하였다고 하더라도 기타의 역대 국가는 모다 차(此)를 옹호하야 그 발달의 융성함이 세계불교사상사에 관절(冠絶)하였나니 차 일본인을 불타의 자비 중에 인도한 자도 실로 아 대한불교라. 임진왜란, 기타 위급의 시에 여러 조사와 불도가 신을 희생하야 국가를 옹호함은 역사에 소상한 바이어니와……

이렇게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에는 부정의에 대한 저항과 문화· 민족 정체성 등 곳곳에 의병정신의 핵심이 깔려 있다. 일본의 야만적이고 부정의한 폭력 행동을 지적하고 규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한국의 역사, 문화, 전통을 무시하는 일본화 정책으로 한민족의 얼을 말살시키고, 한국불교의 자유를 박탈하고 한국 불교의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절규한다. 선언서의 끝말을 “대원을 성취하기까지 오직 전진하고 혈전할 뿐인뎌”로 맺고 있음은 바로 선언서가 의병의 거병을 선포하는 것이리라. 선언서가 나온 바로 이듬해인 1920년 1월 하순경에 승려의용대, 의용승군을 조직하였다는 내용은 임시정부 내무총장이었던 도산 안창호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불교와 의병운동과의 관계는 매우 오래되고 밀접하다. 고려 때 몽골의 침략에서 임진왜란이라 일컫는 조일전쟁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의병운동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선언서에도 한국불교가 지닌 의병의 전통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악과 이천만 생령의 고뇌를 더 깊게 하려 하니 이제 아등은 더 인견(忍見)할 수 없도다. 불의가 의를 염(厭)하고 창생이 도탄에 고(苦)할 때에 검(劍)을 장(仗)하고 기(起)함은 아 역대 고조(高祖) 제덕(諸德)의 유풍이라. 하물며 신(身)이 대한의 국민으로 생(生)한 아등이리오.

이러한 의병정신의 흐름은 동학농민전쟁 당시 승려들의 저항운동으로 연결된다. 1893년 동학농민전쟁의 전 단계로 보은집회와 금구집회가 있었다. 당시 금구집회는 전봉준, 김개남 등이 3만여 대중을 모으고 봉기를 서둘렀다. 이때 불갑사의 승려 인원(仁源), 백양사의 우엽(愚葉), 선운사의 수연(水演) 등이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공주전투에 승려대장이 있었다. 그 이름과 활동상황이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으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백양사 승려로 보인다. 또한 1897년부터 조직적으로 활동을 벌였던 ‘활빈당’에 많은 승려가 참여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승려들은 오랫동안 비밀 조직을 운영해온 ‘땡추’ 출신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의병정신이 이 선언서를 탄생케 한 큰 계기일 것이다.

또한 필자는 선언서에 나타난 한국불교의 의병정신이 지니는 현대적 의의를 ‘시민운동’과 연결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지금의 사회를 시민사회로 표현하는데, 시민은 정치 공동체의 주요 주체로서 등장한 개념이다. 시민은 국가 공동체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시민사회의 주인이다. 시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책무를 하면서도 국가가 잘못할 경우 이를 견제하기도 하고, 국가의 부정의한 행동에 저항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다양한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그 평가도 다양하다. 토대가 없는 위로부터의 시민운동, 집단이기주의의 변형, 선정주의적 운동, 정부의 부조금에 의지하는 의타성, 시민운동의 폐쇄성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시민운동이 정의롭지 못할 때 그 사회는 병들고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므로 한국불교의 의병정신을 계승한 시민운동이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주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에 반출된 조선왕실 의궤의 반환을 앞장서 관철시킨 혜문 스님은 반환운동을 의병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불교에 나타난 의병정신이 오늘날의 시민운동에 정신적 토대와 자양분으로 큰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 구현에 대한 원력(願力)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에서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 구현에 대한 불교도의 원력이 펼쳐지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국가’라는 용어 대신에 정치 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국가에 대한 고뇌 때문이다. 

선언서에는 ‘국가’라는 용어가 매우 많이 나오며, 국가와 불교의 깊고 오랜 인연을 강조하면서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 의해 국가가 침탈됨으로써 국민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한국의 역사, 전통, 문화가 절멸하고, 나아가 대한불교의 역대조사 유풍이 연멸(煙滅)하고 절멸의 참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 선언서의 내용에 의하면 대한국민의 불행과 불교의 절멸 위기를 모두 국가의 상실에 그 원인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독립선언서의 성격상 이러한 표현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선언서에는 국민의 행복을 위하고 불교의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염원이 깊이 담겨 있다. 그 염원을 과거의 국가가 아니라 일본의 압제를 벗어나 임시정부와 함께 건국할 국가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이다.

필자가 국가라는 용어 대신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국가를 규범론적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는 바르고 행동한 정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국가로 인한 비극과 고통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늘날 정치학 분야에서 제일 논쟁이 많은 부분이 국가론의 문제다. 국가의 기원에서부터, 국가의 구조와 기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수시로 모습을 변신하는 괴물과 씨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가의 문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제기되는 실천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는 자연적 욕구를 중심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필자는 자연적 결여에서 나오는 자연적 욕구를 중심으로 해서는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이 지닌 자연적 욕구는 국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많다고 본다. 필자는 국가구성의 원리는 윤리적 욕구에서 찾아야 한다는 규범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욕구에서 생성된 국가의 기능이 무엇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제도와 실천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은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로서 국가’이다. 이러한 정치 공동체로서 국가는 바로 선언서에서 불교의 본지로 밝힌 ‘평등과 자비’가 펼쳐지는 정치 공동체일 것이다.

불교 이론 자체는 국가나 민족에 대해 친화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초기불교에서는 수행자들은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이상사회를 구현하려 했고, 수행승은 국왕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를 증명하는 경전은 매우 많다. 그러나 국가가 권력을 행사하고 현실에서 국가를 무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법치와 평화를 지향하는 이상적인 국가상과 국왕의 자질과 책무에 대한 경구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국가 그리고 정치권력과의 관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칡덩굴처럼 얽혀 왔다. 또한 민족주의와 불교의 관계도 그 모습이 다양하다. 아시아의 독립투쟁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저항적 민족주의가 팽배하면서 불교와 민족주의 문제는 지역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는 폭력과 부정의가 불교와 함께한 사례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제 군국주의 세력의 앞잡이가 된 일본 조동종의 모습으로 붓다 다르마의 보편성을 훼손하는 불행한 사례이다.

필자는 선언서에서 불교의 본지를 ‘평등과 자비’로 표방한 것을 불교 정의론의 제시로 보고 실천불교의 지향가치로 내세웠다. 그런데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를 구현하는 가치로서 평등의 개념은 매우 익숙하다. 긴 정치사회사상사의 맥락 속에서 평등은 다양하게 논의되면서 그 가치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자비는 정확하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면 자비라는 개념은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치 덕목으로 어떻게 기능하는 것인가?

 

宣言書

 

韓土의 數千 僧侶는 二千萬同胞 及 世界에 對하야 絶對로 韓土에 在한 日本의 統治를 排斥하고 大韓民國의 獨立을 主張함을 玆에 宣言하노라.

平等과 慈悲는 佛法의 宗旨니 무릇 此에 違反하는 者는 佛法의 敵이라. 그러하거늘 日本은 表面 佛法을 崇한다 稱하면서 前世紀의 遺物인 侵略主義 軍國主義예 耽溺하야 자조 無明의 事를 起하야 人類의 平和를 攪亂하며 한갓 그 强暴함만 恃하고 敎化의 恩을 受한 隣國을 侵하야 그 國을 滅하며 그 自由를 奪하며 그 民을 虐하야 二千萬 生靈의 寃聲이 嗷嗷하며 特히 今年 三月 一日 以來로 大韓民族은 極히 平和로운 手段으로 極히 正當한 要求를 呌號할새 日本은 도로히 더욱 暴虐을 肆行하야 數萬의 無辜한 男女를 虐殺하니 日本의 罪惡이 斯에 極한지라 我等은 이믜 더 沈默하고 더 傍觀할 수 없도다.

일즉 全民族 代表 三十三人이 獨立宣言을 發表할세 我 佛徒中에서도 韓龍雲 白龍城 兩 僧侶가 此에 參加하였고 後에도 我 佛徒中에서 身과 財를 獻하야 獨立運動에 奔走한 者가 多하거니와 日本은 一向 前過를 懺海하는 樣이 無할 뿐더러 或은 警官을 增加하고 軍隊를 增派하야 더욱 抑壓政策을 取하고 一邊 不正한 手段으로 賊子輩를 驅使하야 一日이라도 그 惡과 二千萬 生靈의 苦惱를 더 깊게 하려 하니 이제 我等은 더 忍見할 수 없도다. 不義가 義를 厭하고 蒼生이 塗炭에 苦할 때에 劍을 仗하고 起함은 我 歷代 古祖 諸德의 遺風이라. 하물며 身이 大韓의 國民으로 生한 我等이리오.

願컨대 佛法이 韓土에 入한지 于今 二千年에 李朝에 至하여 多少의 壓迫을 受함이 有하였다 하더라도 其他의 歷代 國家는 모다 此를 擁護하야 그 發達의 隆盛함이 世界佛敎史上에 冠絶하였나니 彼 日本人을 佛陀의 慈悲 中에 引導한 者도 實로 我大韓佛敎라. 壬辰倭亂 其他 危急의 時에 여러 祖師와 佛徒가 身을 犧牲하야 國家를 擁護함은 歷史에 昭詳한 바이어니와 이는 다만 國民으로 國家에 對한 義務를 盡할 뿐이라. 國家와 佛敎의 깊고 오랜 因緣을 因함이니라. 日本이 强暴하고 그 詭譎한 手段으로써 韓國을 合倂한 以來로 韓國의 歷史와 民族的 傳統 及 文化를 전혀 無視하고 各 方面에 對하야 日本化 政策 及 壓迫政策으로써 韓族을 全滅하려할세 我 佛徒도 그 毒手의 犧牲이 되여 强制의 日本化와 苛酷한 法令의 束縛下에 二千年來 韓土의 國家의 保護로 누리던 自由를 失하고 未幾에 特有한 我 歷代 祖師의 遺風이 湮滅하야 榮光잇던 大韓佛敎는 滅絶의 慘境에 陷하려 하도다.

이에 我等은 起하엿노라. 大韓의 國民으로서 大韓國家의 自由와 獨立을 完成하기 爲하야 二千年來 榮光스러운 歷史를 가진 大韓佛敎를 日本化와 滅絶에 救하기 爲하야 我 七千의 大韓 僧尼는 結束하고 起하였노니 矢死報國의 이 發願과 重義輕生의 이 意氣를 뉘 막으며 무엇이 막으리오. 한번 結束하고 奪起한 我等은 大願을 成就하기까지 오직 前進하고 血戰할뿐인뎌.

大韓民國 元年十一月十五日 

           大韓僧侶聯合會

                                               代表者 吳卍光 李法印 金鷲山 姜楓潭    

                                                         崔鯨波 朴法林 安湖山 吳東一

                                                         池擎山 鄭雲峯 裵相祐 金東昊

 
 

자비의 정치적 역할과 의미를 탐색하기 위하여 미국의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머(Parker J. Palmer)의 저술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 The Couragy to Create a Politlcs Worthy of the Human Spirit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판되었다. 필자는 대학 재직 시 이 책을 ‘정치교육론’ 과목의 교재로 강의하면서 자비가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 가치로서 원용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파머는 마음을 우리의 모든 앎의 방식들-지적, 정서적, 감각적, 상상적, 경험적, 관계적, 신체적-이 수렴되는 중심부로 본다. 흔히 마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정치와 거리가 멀게 느낀다. ‘마음공부’에 몰두하는 사람은 정치 공동체의 위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파머는 내면과 외면을 분리하는 생각 자체가 정치 공동체를 타락시키는 뿌리라고 본다. 그는 “우리가 자아와 세계라고 이해하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고 불리는 중심부에서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아는 바에 따라 인간적으로 행동할 용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용기’는 온갖 절망적인 상황에서 체념하지 않고 자아의 중심을 붙들고 내면의 풍경을 그대로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백이 아니다. 그래서 당위와 현실 사이의 비극적 간격을 가슴에 품고 견디는 ‘비통한 자들(the broken hearted)’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서져 흩어지는(broken apart)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리는(broken open) 마음이 요구된다.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 ‘애매함’과 ‘긴장’을 끌어안고 사회적 연대와 공공적 책임을 추구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현실의 비극에 비통해하면서 이에 굴복하지 않고 부서지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바람직한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자비라고 보고 싶다. 자비의 비(悲)는 바로 비통한 마음이다. 자(慈)는 사회적 연대의식과 공공적 책임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내용은 바로 자비의 구체적 역할을 개인윤리적 차원과 사회윤리적 차원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다. 개인윤리적 차원은 개인의 도덕성, 즉 개인 의지와 결단에 바탕을 두고 개인의 가치관 정립과 그 실천 방향에 관심을 가진다. 사회윤리적 차원은 개인과 사회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함에 사회구조와 제도의 도덕성에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 사회정의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와 함께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며, 어떻게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등장한다. 이에 자비의 사회윤리적 기능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공업(共業)사상의 실천윤리라고 할 수 있다. 공업은 업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짓는 업으로서 그 고락의 과보 또한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선언서에 나오는 ‘대한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완성하기 위하여’라는 구절은 평등과 자비가 펼쳐지는 미래의 정치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서 일본의 부정의한 압제를 물리치고 스스로 바로 서야 한다는 서원과 원력을 표현한 것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단순한 지킴이가 아니라 평등과 자비가 함께하는 정치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광식은 민족불교의 특징으로 선언서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선언서의 내용 중 “신(身)이 대한의 국민으로 생한 아(我)등” “다만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진할 뿐” “이에 아등은 기(起)하였노라. 대한의 국민으로서” 등의 문구에 특히 주목하면서 선언서를 국가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민족의식의 뚜렷한 발로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논문 제목도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와 민족불교론〉이다. 한국 근대불교를 ‘민족불교’로 규정하는 문제는 그동안 많은 논쟁이 있었다. 조성택은 민족불교론은 항일 · 친일의 이분법적 구도의 협소한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김석순은 민족불교론에 대한 논쟁을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하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이 논쟁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이 논쟁은 근대 한국불교에 대한 사고 지평을 넓혀주었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을 뛰어넘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국가와 민족의 단위는 불교의 이상을 실천하는 밭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은 불교에 있어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장이다. 호국불교나 민족불교론도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하화중생의 원력을 실천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는 단순한 독립선언서가 아니라 평등과 자비로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를 구현하려는 서원과 원력이 담긴 선언이라고 본다.

 

4. 맺음말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불교는 신앙으로서만이 아니라 수양 및 교화의 방법으로 기능하여 왔다. 또한 삼국시대와 고려에서는 정치 이념으로 작용하였고 국가와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붓다의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화쟁(和諍), 총화(總和), 쌍수(雙修) 등 중도와 조화의 이론 등으로 내부의 갈등을 극복하여 온 화합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는 한국불교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는 침탈되었고 민족은 수탈되고 찬란한 한국불교의 전통은 붕괴되었으며 일본 제국의 하수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조선조 불교 핍박의 긴 형극의 여정에서도 버티어 온 한국불교의 절멸 위기 속에서 이 선언서가 나온 것이다. 

필자는 선언서의 중요 메시지를 ‘불교 정의론의 제시’ ‘의병정신의 계승’ 그리고 ‘바르고 행복한 정치 공동체 구현’으로 제시하였다. 이 세 메시지는 오늘의 한국불교에도 매우 의미 있는 나침판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 가치의 물화, 계층 양극화와 갈등, 공동체 의식의 붕괴, 시민민주주의의 위기, 남북 분단, 다문화의 수용 문제 등 현재 한국사회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미래는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최근의 한국불교는 그 구조와 역할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의 파고 속을 항해하고 있다. 필자는 백 년 전 한국불교의 위기가 또 다른 차원에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그 위기는 은폐되어 있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그만큼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의 메시지는 지금의 한국불교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

 

방영준
성신여대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윤리교육 및 사회사상 전공).성신여대 윤리교육과 교수, 성신여대 사범대학장, 중앙도서관 관장 등 역임. 주요 저서로 《아나키즘—저항과 희망》 《공동체. 생명. 가치》 등이 있다. 현재 자유공동체 연구회 회장.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