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폿킨 《상호부조론》 / 방영준

아나키즘의 자연론적 세계관과 연기론 

2025-12-01      방영준

1. 시작하는 글: 아나키즘은 불교를 닮았다

아나키즘은 많은 혼란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자연적인 조화의 찬미와 통치 권위에 대한 저항은 정치철학의 여러 문제에 풍부한 상상력과 충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과 볼셰비키혁명 사이의 불연속성 시대에 구체화한 아나키즘은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고드윈(William Godwin), 슈티르너(Max Stirner), 프루동(P.J. Proudhon), 바쿠닌(M.K. Bakunin), 크로폿킨(P. Kropotkin) 등에 의해 아나키즘의 전통이 형성된 이래, 아나키스트들은 ‘뒤죽박죽의 혼란스러운 설교자’ 또는 ‘천진난만한 꿈의 옹호자’로 비치기도 한다. 반면에 아나키즘은 다양한 이념들을 함께 연결할 수 있는 규범적 교의로도 평가된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아나키즘은 거의 논의되지 않아서 사라진 이데올로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 68혁명’을 기점으로 아나키즘은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다시 등장하였다. 아나키즘은 다양한 영역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노장사상, 불교, 초기 기독교 사상 및 무교회주의, 양명학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상과 비교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관련된 여러 저항문화 운동, 소집단 중심의 공동체 운동, 국경과 민족의 벽을 뛰어넘고자 하는 아나코 평화주의, 지구별을 구하자는 환경 운동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즘 이론으로 접근하는 영역은 여러 가지다. 

아나키즘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은 변신술이 능한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와 씨름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독단과 권위를 배제하고 완벽한 흉내를 내는 이론을 피하면서 극도의 자유와 개인적 우위를 강조하는 아나키즘의 자유스러운 태도가 각양각색의 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이미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은 큰 바다로 향하여 흐르는 물줄기라기보다는 땅의 여러 구멍을 통해 스며 나오는 물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즉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의 흐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기도 하고, 땅의 틈새로 분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끊임없는 운동 속에서 생성하고 붕괴한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사라지지 않고 잠복할 뿐이며, 계기적인 맥락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에 윤리학과 사회사상을 전공하면서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졌고 아나키즘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아울러 불교 공부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나키즘이 붓다의 가르침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붓다 다르마의 내용은 물론이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붓다의 가르침이 불교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도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불교와 아나키즘을 비교하는 논문을 여러 차례 쓰고 발표하기도 했다.

아나키즘 사유의 뿌리는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자연론적 세계관’ ‘자주인적 개인’ ‘공동체 지향’ 그리고 ‘권위에의 저항’이다. 아나키즘의 사유 원형은 붓다 다르마와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많다. 특히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러시아 아나키스트 크로폿킨의 저서 《상호부조론》에 담긴 주장은 연기론과 자비 공동체 구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크로폿킨이야말로 러시아에서 태어난 붓다의 제자라고 감히 부르고 싶다. 

 

2. 붓다를 닮은 크로폿킨의 생애

크로폿킨(Pyotr Alekseyevich Kropotkin, 1842~1921)은 1842년 굴지의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세계 5대 자서전 중 하나로 꼽히는 《한 혁명가의 회상》으로 잘 알려졌으나, 노년기의 활동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의 검열 탓에 드러난 내용이 많지 않다. 부유한 환경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은 그는 황실 친위대나 미래를 보장받는 화려한 직책을 마다하고 시베리아의 코사크 부대 근무를 자원했다. 긴 역사 동안 잊힌 땅인 시베리아가 러시아로 합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시베리아에서 5년 동안의 여정은 그에게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시베리아 황무지에서 번성하던 토착민의 작은 자치 공동체에 깊이 감동하였다. “나는 명령과 규율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상호부조라는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라고 회상했다. 또한 지리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이 있던 그는 시베리아와 만주를 종단하고, 아무르강의 지류인 쑹화강의 지도 제작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며, 새로운 통행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출세의 지름길인 장교 군복을 벗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지리학 공부를 계속하여 새로운 학설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 지리학회의 총무간사로 추천받았지만 사양하고, 북극 탐험을 목적으로 핀란드로 향했다. 이를 계기로 크로폿킨은 유럽의 많은 ‘파리코뮌’ 망명자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터내셔널의 총평의회에 도전하는 스위스 쥐라 연맹의 시계공들과 깊은 인연을 맺으면서 아나키스트로 변모해 갔다. 그는 자치 공동체적인 삶을 사는 쥐라산맥의 시계공들에게서 상호부조의 현장을 깊이 있게 체험했다. 

1872년 쥐라산맥에서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젊은 인민주의자들의 단체인 ‘차이코프스키단’에 가입하여 자유 공동체 구현을 위한 아나키스트 혁명 투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투옥과 탈옥의 과정을 거쳐 영국으로 망명하여 해외에서 40년의 긴 세월을 보냈다. 투옥과 도피가 반복되는 망명 생활을 하면서 상호부조론 이론을 전개했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의 발발로 75세의 노인이 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임시정부의 수상 케렌스키가 국가 연금과 교육부 장관직을 제안했지만 분개하며 이를 거절했다.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자 그의 열정은 낙담으로 변하고 말았다. 평생 싸워온 바로 그 이상의 이름으로 자유로운 사회의 꿈이 짓밟히는 것을 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1920년 3월 그는 레닌에게 러시아가 ‘말로만 소비에트 공화국’이고 ‘지금 러시아를 지배하는 것은 소비에트가 아니라 당 위원들’이고, 이상주의의 꿈이 서린 ‘사회주의’라는 말 자체가 저주의 용어로 변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러시아혁명에 절망하던 그는 1921년 2월 6일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크로폿킨의 유해를 따르는 긴 추모 행렬에는 아나키즘의 상징인 검은 깃발이 나부꼈다. 그것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붉은 공산당 정권에 대한 최후의 저항 행진이었다. 

크로폿킨은 ‘아나키즘의 공작’이란 별명으로 불렸지만, 본인은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그 별명을 싫어했다. 그는 오스카 와일드 등 많은 지인으로부터 오늘날 간디나 슈바이처에 비견되는 성자로 불렸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톨스토이가 단지 옹호했을 뿐인 삶을 크로폿킨은 몸소 살았다”라고 표현했다. 버나드 쇼(Bernad Shaw)는 “크로폿킨은 성자라 이를 만큼 다정하고 그의 복스러운 붉은 수염과 인자한 표정은 디렉타블산(《천로역정》에 나오는 아름다운 산)의 양치기 모습과 같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크로폿킨의 품성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영혼’으로 표현될 만큼 강력한 호소력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붓다의 생애를 보면서, 붓다는 단순히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부드럽고 높은 도덕적 품격을 지닌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크로폿킨 삶의 발자취를 살펴보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붓다의 제자가 아닌가 싶었다. 

 

3. 상호부조론의 특징과 연기론의 관계

1) 상호부조론의 내용과 특징

크로폿킨은 아나키스트 혁명가로서, 지리학자(생물학자)로서 다양한 저서를 출판했다. 대표적인 저서가 《상호부조론: 진화의 한 요인》이다. 그 외에 《근대과학과 아나키즘》 《빵의 정복》 《전원, 공장, 작업장》 《한 혁명가의 회상》 등이 있다. 그는 말년에 온 정열을 다해 《윤리학》의 저술에 전념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지구별을 떠나고 말았다. 

《상호부조론》은 일반인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치사상이나 사회사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크로폿킨의 이름과 《상호부조론》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많은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의 관심 대상이었고, 서적과 팸플릿 등 다양한 형태로 알려졌다. 크로폿킨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들에게 제일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이것은 불교, 노장사상, 유학 등 동아시아가 지닌 사유의 원형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로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유자명, 우관 이정규 등이 있다. 한국에서의 《상호부조론》에 대한 관심은 인문학적인 동기를 넘어 민족의 해방과 비전의 열망에서 출발하였다. 팸플릿 등 다양한 형태로 소개되던 《상호부조론》은 1983년 열렬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인 하기락 경북대 교수에 의해 완역판이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만물은 서로 돕는다》 《아나키즘의 도덕적 기초》 등 다양한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그중에는 소설가인 김훈이 번역한 책도 있다. 필자가 크로폿킨의 사상과 상호부조론을 접한 것은 30대 초반의 대학원 시절이었다. 그때 상호부조론을 읽으면서 붓다의 연기론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1902년 출판된 《상호부조론》은 결코 책상머리에서 쓰인 책이 아니다. 크로폿킨은 서론에서 이 책의 탄생 과정을 자세히 적고 있다. 젊었을 때부터 동시베리아와 북만주를 여행하면서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생존해 가는지 관찰하고, 토착 주민들의 생활 양식을 탐구하였다. 그리고 유럽의 오랜 망명 생활에서 여러 장소를 탐사하면서 중세 도시와 근대 사회의 상호부조 사례를 탐구하였다. 그는 어떤 교조의 선전자가 아니라 과학과 진리의 탐구자라는 자세를 굳건히 견지한 인물이다. 

치열한 아나키스트 혁명가인 그가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마저 드는 《상호부조론》은 생물학과 지리학의 범위를 넘어 인간 삶의 양식과 비전에 많은 지혜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유물사관으로 자신의 이론을 과학화하였다면, 크로폿킨은 상호부조론을 통해 ‘아나키즘의 과학화’를 주장하고 있다.

크로폿킨이 살던 시기에는 경쟁이 미덕이던 초기 산업사회의 입맛에 맞게 해석한 다양한 생물 진화론이 시대를 휩쓸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헉슬리(T.H. Huxley)의 《생존경쟁과 그것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이다. 크로폿킨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생물 진화론자의 주장에 반대했다. 《상호부조론》 제1판의 서문에서 책을 쓴 동기를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자연법칙이자 진화의 요인으로서 상호부조를 다루는 책이 쓰이면 중요한 차이를 메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크로폿킨은 자연법칙이자 진화의 요인이 생존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라고 본 것이다. “상호부조가 동물들 사이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라는 스펜서(H. Spencer)의 주장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비판했다. 그는 상호부조가 인류의 본능임을 입증하기 위해 철저한 고증과 현지 조사, 그리고 관찰을 통해 엄격한 과학자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먼저 연구 과정을 담은 긴  분량의 〈서론〉과 〈동물들 간의 상호부조〉 〈야만인들 간의 상호부조〉 〈미개인들 간의 상호부조〉 〈중세 도시의 상호부조〉 그리고 〈우리 자신의 상호부조〉로 각각의 장을 마련하였다. 마지막으로 결론의 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상호부조의 다양한 사례를 부록으로 제시하였다. ‘야만인’ ‘미개인’ 등 지금의 시각에서는 불편한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용어 정의에 얽매이지 않고 문명에 덜 물든 인류를 시기적으로 분류하였다. 

크로폿킨은 동물들 간의 상호부조에서 개별 동물들 간의 투쟁을 최소한 줄이고 상호부조의 실천을 최고도로 발달시킨 종(種)이 가장 개체수가 많고 번영하며, 미래가 보장된 종임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인간 간의 상호부조는 석기시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행되어 온, 인간 진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당시의 급속한 산업혁명과 진보도 그 시대를 풍미했던 경쟁과 개인주의의 승리라고 보는 견해를 반대하면서 인간 간의 상호부조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상호부조의 개념은 크로폿킨의 아나키즘 철학의 요체일 뿐만 아니라 모든 윤리적 원칙의 기반이다. 그는 윤리와 도덕은 인간의 본능적 사회성으로부터 생성되었으며 진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본능적 사회성이란 행복의 긴밀한 의존성, 다른 사람의 권리가 자기 자신의 그것과 동등하다고 느끼게 유도하는 정의 그리고 평등의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지이다. 즉 인류의 생존은 바로 상호부조 또는 상호협력에 절대적으로 힘입은 바가 크고, 따라서 갈등보다는 협조가 역사 과정이나 그 전개의 근본적인 원동력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크로폿킨의 사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인간 본성이라는 홉스(Hobbes)의 견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또한 당시 유행되고 있던 적자생존의 진화론에도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상호부조의 정신이 없는 동물들이 멸망한 여러 사례를 들면서 인간도 상호부조의 삶의 양식을 지키지 못하면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상호부조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윤리학》이라는 대저의 집필에 몰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저서는 완성되지 못했다.

크로폿킨은 자신의 상호부조 사상을 미학과 예술로 연결하고 있다. 그는 아나키스트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학을 수립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의 자서전인 《어느 혁명가의 회상》에서 인간의 예술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어린이의 경우 예술은 생득적인 재능의 자유로운 행위로 나타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교육으로 인해 그 자발성은 박탈당한다. 그리고 성인에게 예술은 모험과 발견의 세계에 대한 예감을 주는 것이고, 나아가 결정적인 정치적 자각의 상징으로서 사회적 구속으로부터의 탈출이 된다. 그리고 예술은 참여를 통해 혁명적 이성과 마찬가지로 압제에 대한 반역 운동에 대한 기초를 제공하는 실천이 된다. 사회 참여에 의해 예술가는 그를 위협하는 볼모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무엇도 예술의 발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2) 상호부조론과 연기법

상호부조론과 연기법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다양한 아나키스트 학파는 일군의 공통된 가설에 합의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론적 세계관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자연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자유와 사회적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는 속성을 자기 안에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실 자연이라는 아이디어에 강박적이라고 보일 정도로 ‘자연’ 개념은 아나키즘 이론가들의 저작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자연의 유일성, 화합성, 우위성, 자율성이 아나키스트들에게 개인의 자유와 질서 정연한 사회생활과의 조화 또는 통일을 믿게 한 이유이다. 호혜적인 자연성의 문제는 프랑스의 대표적 아나키스트 푸르동에 의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자연론적 세계관은 바로 연기론으로 연결된다. 연기론적 세계관과 우주관은 아나키즘의 자연론적 세계관과 맥을 같이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수많은 원인과 조건으로 생겨나고 소멸한다는 연기론은 존재의 구성 원리에서부터 해탈로 향하는 수행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된다. 자연론적 세계관과 연기법의 공통점은 모든 존재와 현상을 ‘상호 발생(dependent co-arising)’으로 본다는 점이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 개인과 집단과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 나와 자연과의 관계, 생물체와 무생물의 관계 등 이 세상의 삼라만상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며, 여기에서 새로운 관계도 형성된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은 아나키즘의 자연론적 세계관을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연기법의 체취를 흠뻑 느낀다. 상호부조론은 붓다 연기론의 변용이고 화엄 사상의 한 지류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조건에 의해 연결된 덩어리이며 여기에 타자는 없다. 나와 타자는 하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연기법에서 불교의 자비 사상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크로폿킨이 상호부조의 가치에 기반한 윤리학 저서를 완결했다면, 필자는 그 내용의 핵심을 ‘상호 윤리(Mutual Ethics)’라 명명했을 것이다. 상호 윤리라는 명칭은 미국의 생태철학자이자, 50여 년 동안 자비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조안나 메이시(Joanna Macy) 여사의 저서에서 빌려 온 것이다. 구순이 넘은 메이시 여사는 지금도 ‘재연결 작업(The Work That Reconnects)’라는 자비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녀는 《불교와 일반 시스템이론》에서 불교윤리를 ‘상호 윤리’로 명명하고 있다. 상호 윤리는 모든 존재와 현상은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크로폿킨은 상호부조론이라는 이름으로 저서를 냈는데 조안나 메이시는 연기론에 바탕을 둔 불교 윤리를 상호 윤리라고 명명하고 있으니 가슴에 큰 진동이 온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 일반체계이론을 배우면서 연기법의 위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반체계이론은 오늘날 ‘복합체계이론’으로 확장되어 불린다. 복합체계이론은 붓다의 연기론을 오늘날의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틀에 의해 재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라 하겠다. 복합체계이론은 기계론적 패러다임에서 생명론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즉, ‘요소 환원주의’에서 ‘전 포괄주의’로, ‘정적인 구조’에서 ‘동적인 프로세스’로, ‘설계제어’에서 ‘자기조직화’로, ‘타자의 세계’에서 ‘자기를 포함한 세계’로의 변환이다. 체계이론 연구자 중에는 오랫동안 불교 수행을 하는 학자도 있고 연기적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실천 운동을 펼치는 분도 있다. 복합체계이론은 불교 연기론과 아나키즘의 상호부조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4. 자비 공동체 구현과 상호부조론

 자비 없는 불교는 존재하지 못한다. 불교는 붓다의 깨달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중생 구제의 자비심에서 출발하였다. 붓다의 자비심이 아니라면 지금의 불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비 공동체 구현을 위한 과제가 빙벽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크로폿킨이 상호부조의 기치를 내세우고 치열한 혁명가의 삶을 산 것은 자비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가 생을 마치기 전에 《윤리학》 저술에 매진한 것도 자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실천 윤리를 정립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공동체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이다. 그동안 근대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공동체의 붕괴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사회변화의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공동체는 이제 과거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이는 근대화, 산업화의 틀 속에서 조건 지워진 현대인의 삶의 양식이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21세기 문턱에서 공동체는 다시 인류의 희망으로 등장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앞으로 오실 붓다는 ‘공동체’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현대사회의 구조는 한 사람의 붓다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동체란 용어는 불교의 붓다 가르침의 틀에서 보면 특별한 정의나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개념이다. 공동체의 구조적 특성 중 제일 중요한 것이 ‘호혜성(reciprocity)’이다. 호혜성의 핵심은 바로 상호부조이다. 크로폿킨은 동물에서부터 원시 인류에서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 삶의 양식, 각종 지역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상호부조의 형태와 그 방법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탐구하였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은 상호부조라는 규범적 가치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실천 윤리적 과제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 전통적으로 윤리학은 실천 철학으로 불렸다. 그러나 윤리학이 실천보다는 이론 윤리학이라는 늪에 빠져 그 실천성을 상실했다는 반성과 함께 ‘실천 윤리학’이라는 영역이 등장한 것이다. 《불교윤리학 입문》을 저술한 영국 선덜랜드대학교 피터 하비(Peter Harvey) 교수는 저서 내용의 반을 실천 윤리에 할당했다. 그는 경전의 구체적 내용을 들어 불교의 실천 윤리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붓다는 고통과 삶에서 벗어나는 일과 무관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희론(戱論)을 경계하였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은 희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땅을 밟는 발걸음에서 나온 것이어서 자비 공동체 구현의 길에 많은 교훈을 준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크로폿킨은 붓다의 참다운 제자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여러 문헌을 보아도 붓다 다르마를 접한 흔적이 없는 크로폿킨은 아나키스트가 특정 이론에 집착하면 이미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라고 한 붓다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또한 그는 저서 《현대과학과 아나키즘》에서 아나키즘의 기원을 개개의 사상가 속에서가 아니라 민중(People) 속에서 찾고 있다. 아나키즘이 민중의 운동에 머무르는 한 그 생명력과 창조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나키즘의 기원이 석기시대부터 존재한 민중의 힘이라고 보며, 자유와 자치를 압제하는 권위에 저항하는 긴 여정을 탐색하고 자유롭고 자주적인 자비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렇다면 그 ‘민중’이 곧 불성이 아닐까. ■

 

 방영준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윤리교육 및 사회사상 전공). 성신여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사범대학장 역임. 아나키즘과 자유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 저서로 《공동체, 생명, 가치》 《아나키즘-저항과 희망》 《붓다의 정치 철학 탐구》 《자비의 길을 찾아서》 등이 있음. 현재 성신여대 명예교수, 성신학원 운정장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