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학자 41. 케네스 첸 (Chen, Kenneth,) / 박해당

중국불교 연구의 빛나는 선구자

2025-06-07     박해당

들어가며

케네스 첸 (Chen, Kenneth,)

케네스 첸에 대해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생각해보니, 필자가 이런 요청을 받은 것은 순전히 그의 저서 가운데 하나인 Buddhism in China: A Historical Survey를 《중국불교》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케네스 첸이라는 학자의 이름을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린 것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필자는 벌써 30년도 더 전에 그의 책을 번역하였을 뿐, 그 인불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도 해 보고,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학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자료를 얻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들도 대부분 짤막하게 학력과 경력, 연구 업적 그리고 가족관계를 소개하는 내용뿐이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학자로서의 명성에 비하여 그에 관한 자료는 너무 소략하였다.

이에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들을 소개하는 선에서 그치고, 그의 연구 업적을 통해 그의 학문적 관심사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Buddhism in China: A Historical Survey에 이어 Buddhism, the Light of Asia와 The Chinese Transformation of Buddhism 또한 한글로 번역됨으로써 그가 남긴 세 권의 저서 모두를 한글로 접할 수 있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기면서, 이들 저서에 대해 옮긴이들의 말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평함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하의 글에서 이미 잘 알려진 대학이나 고유명사가 아닌 경우 잘못된 음역이나 의역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중국어나 영어 표기를 한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다.)

 

1. 생애

인터넷에서 찾은 그의 생애에 관한 자료를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립대만대학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臺大佛學數位圖書館 사이트에는 다양한 그의 이름이 소개되어 있는데, 중국식 이름 陳觀勝을 비롯해 Chen, Kenneth Kuan-sheng / Ch’en, Kenneth K. S. / Ch’en, Kenneth Kuan sheng / Chen, Kenneth / Ch’en, Kenneth / チェン, ケネス.K. S. / Ch’en, Kenneth K. S.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의 생애에 관하여 중국의 검색 사이트 바이두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대만에서 나온 《불광대사전(佛光大辭典)》에 실린 것과 거의 같다.  

1907년 하와이 단향산(檀香山, 호놀룰루의 중국식 표기이다. 하와이에 이주한 중국인들이 호놀룰루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에서 태어났다. 하와이대학 학사, 연경대학 석사, 하버드대학 박사이다. 주로 불교학과 인도철학을 연구하였다. 일찍이 하와이, 연경, 캘리포니아, 하버드, 프린스턴 등의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의 저작은 모두 영어로 씌었으며, 중국불교사를 연구하여 영어권 불교학계에서 명예를 얻은 중국 학자이다.

영어로 제공되는 다른 자료들에서 그를 미국 학자로 소개하는 것과 달리 중국이나 대만 자료에서는 그가 영어권 불교학계에서 권위 있는 ‘중국 학자’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의 학력과 경력에 관한 더 자세한 소개는 ‘Persons of Indian Studies by Prof. Dr. Klaus Karttunen’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07년 9월 20일에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1993년 4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인도학자(불교학자)이다. Huahsiu Ch’en과 Chu See 부부의 아들이다. 하와이대학교(1931년 학사), 북경에 있던 하버드 연경대학(1934년 석사), 캘리포니아대학(1940~1941), 하버드대학(1946년 인골스(Ingalls) 교수의 지도 아래 불교와 인도학 전공으로 박사학위)에서 공부하였다. 1935~36년에는 하버드 연경대학에서 역사학 분야의, 1936~1940년에는 하와이대학에서 중국어 분야의 강사였고, 1946~1947년에는 하버드 연경대학에서 연구원으로, 1947~1950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Assistant director and Professor로, 1950~1958년에는 하버드대학의 원동언어 분야의 객원 강사로, 1958~1961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동양언어 담당 교수로, 1961~1968년에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불교 담당 교수로, 1968~1971년에는 프린스턴대학에서 종교 담당 William H. Danforth 석좌교수로, 1971~1976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불교 담당 교수이자 동양언어학부의 장으로 있다가 1976년에 명예교수로 퇴직하였다. 1935년에 Chao-ying Tan과 결혼하였고, 1970년에 홀아비로서 Man Hing Yue Mok과 재혼하였으며, 두 명의 아이가 있다.

현역으로 활동하던 때에 첸은 상당히 저명하고 (권위를) 인정받았으나 퇴직한 뒤로는 (아무런 활동이 없어서) 마치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언급된 그의 두 부인에 대해서도 짤막한 정보가 있다.

중국식 이름이 譚超英일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첫 번째 부인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Chao-ying Tan은 1906년 10월 15일에 중국 광동성의 카이핑(開平)에서 태어났다. 케네스 첸과 결혼하여 Sylvia Hsiao-wei Chen(1937~1977)이라는 딸이 한 명 있었다. 1969년 10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Buddhism, the Light of Asia의 한글 번역본 《불교의 이해》에 실린 저자의 머리말 뒷부분에 실린 “나의 아들 레이튼 첸에게는 원고를 타자해준 노고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아내에게는 가사를 잘 돌봄으로써 내가 이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준 데 대하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는 말로 미루어 보면 딸과 더불어 아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Sylvia Hsiao-wei Ch’en이라는 딸과 Leighton Lo-tung Ch’en이라는 아들이 있다고 밝히고 있는 다른 자료가 더 정확해 보인다.

중국식 성이 막(莫)씨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번째 부인에 대해서는 저자가 직접 언급한 말이 있는데, The Chinese Transfor-mation of Buddhism의 한글 번역본 《중국인의 삶과 불교의 변용》에 실린 저자의 ‘감사의 글’ 뒷부분에 있는 “UCLA 오리엔탈 라이브러리의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 주고 또 원고의 최종 준비 과정에서 귀한 도움을 준, 그곳 동양학 도서관장이자 필자의 아내인 Man Hing Y. Ch’en에게 감사한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로 볼 때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부부 사이를 넘어 저자의 집필에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학문적 동반자 관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케네스 첸은 하와이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학문적으로 하와이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공부하고, 유수한 대학에서 학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불교 관련 연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였다는 것과 은퇴한 뒤에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개인사적으로는 두 번의 결혼을 하였는데,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과 아들을 한 명씩 두었지만 딸은 그보다 앞서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두 권의 저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것과 첫 번째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재혼한 두 번째 부인과는 학문적 동반자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연구 업적

먼저 앞서 언급한 바이두나 《불광대사전》에서는 그의 저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저서는 《佛教在中国:史学考察》(1964年) 《佛教: 亚洲之光》(1986年) 《中国佛教的变迁》(1973年)이 있다. 이 가운데 《佛教在中国(Buddhism in China)》은 중국인이 영문으로 저술한 첫 번째 중국불교 통사로 모두 18장인데, 헤아려 보면 导言, 成长与适应(初期至隋), 成熟与吸收(唐), 衰落(宋以后), 结论 等 다섯 부분이다. 우리나라(중국) 불교의 역사적 사실을, 한 왕조부터 중화민국에 이르기까지 요약하여 소개하고 평하였다.

여기에서는 그가 남긴 세 권의 저서를 모두 들면서, 특히 Budd-hism in China가 중국인이 영문으로 저술한 최초의 중국불교 통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Persons of Indian Studies by Prof. Dr. Klaus Karttunen’ 사이트에서는 위의 세 권의 저서와 더불어 몇 편의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박사학위 논문이 ‘A study of the Svāgata story in the Divyāv-adāna in its Sanskrit, Pāli, Tibetan, and Chinese versions’라는 것을 밝히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의 연구 업적에 관한 가장 자세한 소개는 국립대만대학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臺大佛學數位圖書館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세 권의 저서와 학위 논문, 중복된 논문, 서평, 번역본을 뺀 그의 연구 업적은 다음과 같다.

(원자료에는 논문마다 그의 다양한 이름이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있고 게재 학술지가 기록되어 있지만 지면 관계상 모두 빼고, ‘논문 제목/연도’만 남겼다. 일부 잘못된 표기는 수정하였다.)

 

멘다카 이야기에 관하여(Apropos the Mendhaka Story / 1953)

남조(南朝) 시기의 반불교 선동(Anti-buddhist Propaganda During The Nan-ch’ao / 1952)

치초(郗超)의 “봉법요(奉法要)”에 관하여(Apropos the “Feng-Fa-Yao”of Hsi Ch’ao / 1963)

팔십일화도(八十一化圖)에 보이는 불교와 도교의 습합(Buddhist-taoist Mixtures in the Pa-shih-i-hua T’u / 1945)

중국 역사에서 불교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태도(Chinese Commu-nist Attitudes Towards Buddhism in Chinese History / 1965)

중국불교의 효(Filial Piety in Chinese Buddhism / 1968)

위, 진, 남조 시기의 비문(Inscribed Stelae During The Wei, Chin, and Nan-ch’ao / 1975)

대승불교와 중국 문화(Mahayana Buddhism and Chinese Culture / 1968)

위진 시대의 신도가와 반야학(Neo-taoism and The Prajna School During The Wei and Chin Dynasties / 1957)

송대와 원대의 대장경에 대하여(Notes on the Sung and Yuan Tri-pitaka / 1951)

북주에서 불교 탄압을 가져온 몇 가지 요인에 대하여(On Some Fa-ctors Responsible for the Anti-Buddhist Persecution under the Pei-Ch’ao / 1954)

공산주의 중국에서 종교적인 변화(Religious Changes in Commun-ist China / 1970)

한문 불경의 번역에서 몇 가지 문제점들(Some Problems in the Tr-anslation of the Chinese Buddhist Canon=佛經翻譯過程中幾個問題/ 1960)

신유학과 도교에서 불교의 공헌(The Buddhist Contributions in Neo-confucianism and Taoism / 1970)

회창 폐불의 경제적 배경(The Economic Background of the Hui-ch’ang Suppression of Buddhism / 1956)

당대 사회에서 불교 사원의 역할(The Role of Buddhist Monaster-ies in T’ang Society / 1976)

송대에서 승려 도첩의 판매 : 중국에서 불교 쇠퇴의 한 요인(The sale of monk certificates during the Sung Dynasty:a factor in the decline of Buddhism in China bibliog/ 1956)

티베트 삼장(三藏)(The Tibetan Tripitaka / 1946)

티베트에서 불교의 변형(Transformations in Buddhism in Tibet / 1957-1958)

 

이들 논문의 주제를 살펴보면 박사학위 논문은 산스끄리뜨, 빨리, 티베트어, 한문으로 기록된 불교 자료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로 추정되지만, 이후 발표된 논문들은 티베트불교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을 빼면 모두 중국불교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범위도 시대적으로는 중국 초기 불교에서 현대까지, 주제로는 중국불교 자체에 관한 연구에서 폐불과 중국 사상과의 영향 관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그는 전적으로 철학적이거나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폭넓은 문화사적 관점에서 중국불교를 연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불교에 대한 그의 이해가 얼마나 깊고 정확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교 전반과 중국불교에 관한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실이 바로 중국불교에 관한 두 권의 저서와 아시아 불교 전반에 관한 한 권의 저서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3. 저서

① Buddhism in China: A Historical Survey

1964년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된 이 책은 케네스 첸의 첫 번째 저서로서, 출간된 이후 불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고, 이를 통해 케네스 첸은 중국불교 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과 영예를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해당의 번역으로 《중국불교》라는 이름으로 민족사에서 간행되었는데, 원서는 단권이지만 상권(1991년) 하권(1994년) 두 권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인도불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중국으로의 전래 과정, 그리고 한 왕조의 불교를 다룬 ‘제1부 전래’, 한 왕조 이후부터 수 왕조의 불교를 다룬 ‘제2부 성장과 토착화’, 당 왕조의 불교를 다룬 ‘제3부 성숙과 융합’, 송 왕조에서 중화민국까지의 불교를 다룬 ‘제4부 쇠퇴’, 중국문화에 대한 불교의 공헌을 다룬 ‘제5부 결론’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방대한 참고문헌을 싣고 있어서 그 당시까지의 주요한 학문적 성과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의의와 가치에 대하여 옮긴이(필자)는, 이 책이 불교가 중국이라는 이질적인 문화적 전통 속에서 뿌리내리고 자라나서 열매 맺으며, 흥성하고 쇠퇴하고 되살아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술함으로써 통사가 갖는 무미건조함을 극복하고 있으며, 중국의 불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인도불교와 달라졌는가를 비교 서술하여 중국불교의 특징을 뚜렷하게 제시함으로써 단순한 중국불교사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고 평하면서,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뚜렷한 장점이라고 밝혔다.(〈역자 후기〉) 

이처럼 이 책은 기본적으로 문화 사상사적 관점에서 중국불교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 중심의 다른 중국불교사류에 비해 사상사적 깊이는 훨씬 뛰어나지만 교단사, 제도사의 측면에서는 소략한 느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인도문화와 중국문화의 만남이라는 문화사적 관점이나, 각 시대의 주요한 불교사상이나 논쟁점에 대한 관심에서 중국불교사를 찾는 이에게 특히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이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보완해야 할 부분이 분명 많이 있겠지만, 영어권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중국불교 연구가 가장 활발했던 일본에서 출간된 중국불교 통사류조차 대부분 이 책이 출간된 뒤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책이 지닌 선구자적인 업적과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② Buddhism, the Light of Asia

1968년 미국 뉴욕의 우드버리(Woodbury) 출판에서 간행한 이 책은 케네스 첸의 두 번째 저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불교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분도출판사에서 간행되었는데, 옮긴이는 길희성, 윤영해 두 명이다.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에 대하여 옮긴이는, “본래의 책 이름대로라면 《불교: 아시아의 빛》이라 해야 하겠지만, 불교에 대한 아주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소개서라는 점에서 《불교의 이해》라고 이름했다”(〈역자 서문〉)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장 배경, 제2장 붓다의 생애, 제3장 붓다의 가르침, 제4장 대승불교, 제5장 승가, 수도 공동체, 제6장 상좌불교의 전파, 제7장 중국의 불교, 제8장 일본의 불교, 제9장 티베트의 불교, 제10장 불교 문헌, 제11장 불교 예술, 제12장 불교의 의례와 축제, 제13장 현대 세계의 불교.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제1장에서 제5장까지는 인도불교의 가르침과 역사에 대해 개괄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제6장에서 제9장까지는 기본적으로 인도 밖으로 전파되어 뿌리 내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각 지역의 불교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상좌부불교가 전파된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관해서는 한 장으로 묶어서 나라별로 매우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는 반면에, 대승불교가 전파된 중국, 일본, 티베트의 불교는 따로 장을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불교, 특히 중국불교 전문가로서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동아시아 불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한국불교 항목이 없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인데, 옮긴이의 말처럼 “그만큼 해외의 한국불교 연구가 미약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제10장에서 제13장까지는 경전과 예술, 의례 등 불교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제13장에 실린 ‘불교와 공산주의’에서는 이른바 냉전 시대 서방 학자가 지닌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불교와 인종 문제’에서는 차별적인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맞서 모든 계급이 평등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설파하였던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나라 미국에서 알게 모르게 겪었을 인종 차별의 부당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또 다른 감회를 안겨주기도 한다.

이 책에 대하여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불교에 대한 하나의 포괄적인 입문서를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역자가 아는 한, 여기에 번역된 첸 교수의 책은 그러한 유의 책으로서는 으뜸이다. 이 책은 위에 언급한 불교의 여러 측면을 잘 정리하여 포괄적으로, 그러나 매우 요령 있고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어, 불교 입문서로서는 안성맞춤이다. 특히 학문적인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불교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애정이 깊이 느껴지는 책이다.(〈역자 서문〉)

물론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불교 입문서로서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③ The Chinese Transformation of Buddhism

1973년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서 간행한 이 책은 케네스 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저서로서 Buddhism in China와 더불어 케네스 첸의 ‘중국불교 2부작’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중국인의 삶과 불교의 변용》이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씨아이알에서 간행되었는데, 옮긴이는 장은화이다. 이런 제목으로 번역한 이유에 대해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목을 번역하는 데 역자의 고심이 있었다. ……중략…… 결국 고심 끝에 원제목을 변경하여 ‘중국인의 삶과 불교의 변용’이라고 결정하였다. 책의 내용이 외래 종교인 불교 민중의 사회생활로 스며들어 가며 중국인의 삶과 일체감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그 원래의 의미에서 그리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옮긴이의 글〉)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서론, 제2장 중국의 윤리와 불교의 변용, 제3장 중국의 정치와 불교의 변용, 제4장 중국의 경제와 불교의 변용, 제5장 중국의 문학과 불교, 제6장 중국의 교육과 사회 그리고 불교의 변용.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밝히고 있는 제1장 서론이다. 이에 따르면 이 책의 저술 계기가 된 것은 1936년 하버드대학 설립 300주년 기념식에서 호적(胡適) 박사가 행한 〈중국의 인도화〉라는 연설이다. 여기에서 호적은 불교가 중국인의 삶과 사상을 인도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표적으로 송나라의 합리적인 철학자들(송대 신유학자, 특히 성리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이 중국을 인도화한 가장 유력한 주체라고 하면서, 불교야말로 중국 최고의 악덕 가운데 하나라고 여러 번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호적의 주장이 공평하지 않다고 평하고, 중국식으로 변형된 관음보살과 미륵보살이나, 천태종의 오시팔교로 대표되는 경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선종 등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중국의 인도화’와는 반대로 불교가 중국인의 삶에 녹아들어 가면서 중국식으로 변한 면도 있는데(케네스 첸은 이를 ‘불교의 중국화’라고 하였다.), 예술을 제외한 여러 분야에서 이를 논증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제2장 이하는 그 구체적인 논증이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해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원저는 우선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어 중국인의 삶 속으로 융화되는 과정을 통시적 입장에서 서양 언어로 기술한 최초의 서적 중 하나로서 서구에서는 중국불교 연구의 본보기로 간주되며,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참고문헌의 목록은 그 자체로도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옮긴이의 글〉)

이 책에는 불교의 상호주의적인 윤리설이 중국의 일방적인 의무의 윤리관에 의해 제대로 조명되지도 못한 채 왜곡되어 묻혀버린 점, 《부모은중경》 등에서 보이는 중국불교의 여성주의적인 기능 등의 주요한 주제가 빠져 있기도 하고, 문학을 다루면서 백거이 한 사람의 생애에만 집중하는 등의 단점들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불교가 중국에서 어떻게 변용되고 중국화되어 갔는지를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해 논증한 선구자적인 업적이라는 학문적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나가며

이상 케네스 첸의 생애와 학문적 업적, 한글로 번역된 그의 세 권의 저서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의 명성에 비하면 너무 부족한 자료에 대한 아쉬움과 그의 학문적 업적을 충분히 파악하고 드러낼 능력이 없는 필자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이 먼저 느껴진다. 그래도 그의 저서 세 권이 모두 한글로 번역되어 그의 학문 세계에 조금은 더 쉽게 다가갈 길이 열린 것은 몹시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면서, 필자를 포함한 모든 옮긴이들에게 경의와 고마움을 전한다. ■  

 

박해당
1962년 전북 남원 운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기화의 불교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와 봉선사 불경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서울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지금은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이산인문예술학당에서 불교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