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백년의 시집 '님의 침묵'을 읽는다 ③ 평화의 밤을 공양한다는 것 / 이선이
백 년의 시집 《님의 침묵》을 읽는다 ③
1. 죽지 않을 권리를 찾아서
주검과 파괴의 이미지가 일상의 한 장면이 되고 있다. 어느새 2년이 훌쩍 넘은 러 · 우전쟁과 이어서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실시간 영상으로 전송되면서, 전쟁과 폭력이 인류의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암울한 비관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가공할 만한 전장의 이미지를 마주하면서 파시즘의 부상 앞에서 역사의 개념을 인상적으로 구상한 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상이 아닐까 싶다. 그는 역사를 서사적 연속성으로 인식하지도 말고 진보한다고 인식하지도 말자고 주장하며, 역사를 사유하는 일은 기억하기와 위험으로부터 깨어나기가 절묘하게 만나는 바로 그 지점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역사란 과거에 속하는 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 시간(Jetztzeit)’이라고 부르는 현재를 통해 재의미화되는 것인데, 이런 역사를 사유하는 일을 그는 기억과 자각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위험의 순간을 꺼내는 인식의 발굴 작업이라고 본 것이다. 전쟁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발굴 작업이 평화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일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해 보인다. 우리 방위산업체가 해외로 무기를 수출한 일을 쾌거로 소개하는 뉴스나 글로벌 군비 경쟁, 신냉전 시대, 신민족주의라는 말들로 치장되는 현실이야말로 평화의 행방을 묻는 일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의 인류가 그러했듯이 21세기도 폭력과 죽음의 세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이런 현실에서 무엇보다 현실을 절망스럽게 만드는 일은 평화를 향한 외침이 어느 때보다 공허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이러한 무감각은 자유와 정의라는 도덕의 망각뿐만 아니라, 인권 혹은 생존권이라는 인간의 존재근거마저 무자비하게 짓밟는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역사는 구체적으로 실증해 왔다. 실제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전쟁과 폭력은 살 권리가 아니라 죽지 않을 권리조차 허락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전쟁을 적극적으로 사유하며 인류의 미래를 모색한 두 명의 평화 사상가를 떠올리는 일은, 죽지 않을 권리 찾기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화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E. P. 톰슨(Edward Palmer Thompson)은 평화운동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미 · 소 냉전체제를 분석하며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인류 문명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가는 핵의 위험에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반핵 평화 사상가였다. 상호 대립하는 체제에서 서로에 대한 적대적 타자화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되는 공격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결국 인류는 절멸에 이를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구조화하고 이 구조 속에서 공격성을 내면화하는 방식은 우리가 목도하는 전쟁의 실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의 분석은 전쟁에 골몰하는 적대적 대립의 심층구조를 정확하게 포착해 냈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를 허물 방법은 없는 것일까. 톰슨은 대립의 드라마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내부적인 공격성에 저항하면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국제주의적 연대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톰슨의 구조적 분석과 달리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전쟁의 발발 이유를 인간의 본능을 통해 규명했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에는 사랑의 역량을 가진 에로스적 충동과 파괴의 역량을 가진 타나토스적 충동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았다. 파괴적인 충동이 인간의 본능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전쟁의 공포가 인류에게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전쟁과 폭력 자체를 불가피한 것으로만 인식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본능인 에로스적 충동이 파괴의 충동에 저항하도록 하면서, 문화적 승화를 통해 파괴의 충동을 적절하게 억제한다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고 했다. 톰슨과 프로이트가 전쟁의 원인을 파악하는 시각은 서로 달랐다. 하지만 전쟁의 극복 방식에서 인간의 내면적 공격성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국제적 연대이든 문화적 승화이든 간에 우리가 행동을 통해 평화가 깃들 틈새를 열어 나가야 한다는 입장에는 차이가 없었다.
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다 간 한용운은 에로스적 충동을 강화하고 평화가 깃들 틈새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시집 《님의 침묵》을 남겼다. 벤야민이 역사에 대한 사유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기억의 손잡이를 잡는 일이라고 했듯이, 이 시집은 죽지 않을 권리를 외쳐야 하는 전쟁과 폭력의 파국적 현실 속에서 우리를 구원할 기억의 손잡이를 내밀고 있다.
2. 평화를 향한 변론, 평화를 위한 시
불교계 대표로 3 · 1운동을 주도한 한용운은 서대문 감옥에서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로 조선독립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담은 글을 제출했다. 이 글은 면회 온 제자를 통해 비밀리에 외부로 반출되었고, 이후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獨立新聞)〉(1919년 11월 4일 자)에 〈조선독립(朝鮮獨立)에 대한 감상(感想)의 대요(大要)〉라는 제목으로 전문이 실렸다. 게재 당시에는 필자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다만 수감되어 있는 민족 대표가 쓴 글이라고만 소개되었다. 흔히 〈조선독립의 서〉로 불리는 이 글은, 독립이야말로 평화의 선결 조건이며 평화야말로 인류의 이상임을 논리적으로 제시한 한용운의 평화를 향한 변론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한용운이 이 글을 쓴 시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이 글을 검사장에게 제출한 1919년 7월은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제기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식민지 지식인들이 정신적으로 고무되었던 시기이다. 1918년 1월에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은 전후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담은 〈14개조〉를 미국 상원에 제출하면서 자결과 평화에 기초한 세계평화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선언은 전 세계적으로 환영 받으며 전후 문제 처리의 준거가 되었다. 특히 일제의 식민 통치하에서 고통받던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그 울림이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4개조〉에 담긴 실제적인 내용과 식민지 지식인의 열광 사이에는 괴리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식민지에서 법적 권한을 가진 정부와 주민의 이익이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그러했지만, 모든 인민과 민족이 정의의 원칙에 따라 자유와 안전이 보장된 조건 속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전제는 식민 통치라는 현실적 문제를 피상적인 인식으로 휘발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선언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그 이상(理想)은 소실되고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평화 선언의 의미는 부정당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하에서 신음하던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에서 이 선언은 민족자결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며 독립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한껏 고조시킨 선언이었고, 한용운도 당시의 조선 사회가 그러했듯이 이 선언에 고무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준비했던 3 · 1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면서 한용운은 조선독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새롭게 정리할 내발적 요구를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조선독립에 대한 한용운의 최후변론서와 같은 성격의 글이라 할 수 있는데, 글의 배면에는 피지배 민족의 정서적 분노감과 함께 평화를 향한 열망이 녹아 있어서 평화를 위한 변론서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글은 표면적으로 보면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국내외 정세와 우리 민족의 독립 역량에 근거하여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용운의 인식이 민족자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는 민족자결은 세계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며, 민족 간의 상호평등이야말로 세계평화의 근간이 된다고 주장한다. 조선독립은 세계평화를 위한 필요조건인 것이다. 특히 그는 자유, 평등, 평화는 상보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조선독립과 세계평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평화에 대한 비전은 내용 면에서는 계몽주의와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확장되어 온 서구의 근대적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글에는 한용운의 남다른 관점이 녹아 있어 주목된다.
우선, 그는 이 글에서 독립의 당위성이 자존성(自存性)과 조국 사상이라는 민족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자존성과 조국 사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일반이 가진 본능이자 본성인데, 민족 또한 이러한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타 집단에 대한 배타성과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을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본성이 존재하기에 각기 민족은 타민족의 지배와 억압을 거부하고 스스로 살아가려는 의지적 존재가 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 글에서 한용운은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 세계를 만드는 주체를 행동하는 민중으로 인식하는 시각을 보여 이채롭다. 그는 군함과 총포를 앞세운 군국주의로는 승전국도 패전국도 모두 실패일 뿐이라고 보고 군국주의 자체를 반대한다. 불살생과 비폭력을 강조하는 불교 교리로 볼 때, 승려인 그가 이런 시각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전쟁에 반대하는 그의 태도는 군축회담과 관련한 한 잡지사의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내가 군축회의에 참가한다면 근본적으로 군비의 철폐를 주장하겠다고 말한다.(〈내가 만약 군축회의에 출석한다면: 근본으로 군비철폐를〉 《혜성》 제2권 2호, 1932.2)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 군국주의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군대나 전쟁 자체를 거부하는 평화 지향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평화 지향적 시각을 지닌 그가 반전(反戰)을 실천할 수 있는 역사적 주체로 민중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연합국 측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한다고 큰소리쳤으나 그 수단과 방법은 역시 군국주의의 유물인 군함과 총포 등의 살인 도구였으니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친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의 실패가 연합국의 전승을 말함이 아닌즉 많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합력하여 5년간의 지구전(持久戰)으로도 독일을 제압하지 못한 것은 이 또한 연합국 측 준군국주의(準軍國主義)의 실패가 아닌가, 그러면 연합국 측의 대포가 강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칼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전쟁이 끝나게 되었는가. 정의와 인도의 승리요, 군국주의의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연합국과 손을 잡고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했다는 말인가, 아니다.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독일 국민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그는 전쟁이 종식될 수 있었던 것은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독일 국민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중에 반전의 목소리를 담아 일어난 독일 민중의 민주혁명에 주목하면서, 그는 정의와 인도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민중에게서 전쟁 종식의 원동력을 발견하고 있다. 이처럼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부정하는 논리를 민족의 본성과 평화를 지향하는 민중의 힘에서 발견함으로써, 이 글은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윤리적 주체의 탄생을 예기하고 있다. 실제로 한용운은 평화를 향한 열망이 철저하게 말살되는 파국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자 평화를 구하고자 하는 이 윤리적 주체를 시적 사유 안으로 불러들인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당신을 보았습니다〉 전문
이 시의 시적 주체는 땅 없음과 집 없음이라는 가난한 현실과 대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실의 현실을 지배하는 권력의 상징인 ‘주인’과 ‘장군’은 시적 주체의 인권과 생명권을 부정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인간의 존엄은 철저히 부인되고 훼손된다. 시적 주체는 이러한 절망적 현실에서 ‘당신’으로 호명되는 어떤 존재를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훼손된 세계에서 훼손된 현실을 직시하는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바라본 ‘당신’과 “남에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다가오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일까. ‘당신’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시에서 시적 주체가 호명하는 ‘당신’이 인권과 생명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까지 부정당하는 현실 속에서, 부정당한 그 모든 가치를 재가치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예감하게 된다. 시(詩)란 이 예감을 포착하는 탁월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윤리의 마지막을 지키는 예술 양식일 수 있다. 이 시의 시적 주체도 윤리와 도덕과 법률이 정의와 인도가 실현되는 평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규율이라고 생각했기에 칼과 황금이 지배하는 반윤리적 세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 믿음이 배반당하는 순간,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평화의 간절함은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반복된 진술을 통해 윤리적 주체를 호명한다.
군국주의가 힘의 지배를 당연시하면서 위압적 평화가 강제되고 동양 평화나 세계 평화라는 말은 폭력적 지배를 미화하는 위장 논리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한용운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감옥은 그가 지닌 평화의 형이상학이 피상적인 차원에서 휘발되지 않도록 평화의 염원을 벼리는 정신의 대장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를 향한 염원마저 파국의 현실 속에서 부서져 나가는 순간, 그는 평화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노래의 힘으로 걸음을 옮겨놓는다. 적어도 1919년 3월 1일부터 1921년 12월 22일에 이르는 2년 9개월 21일의 시간 동안 감옥으로부터 벼린 평화를 향한 사색이 있었기에 평화를 위한 기도는 깊은 울림을 자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3. 두렵고도 친밀한 어조
시집 《님의 침묵》에서 시적 울림을 만드는 원천이 시어나 주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집 전반을 감싸는 시적 아우라(aura)를 만드는 힘은 시적 어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집에서 사랑의 어조는 어떤 문체를 통해 빚어지는 것일까.
한용운이 이 시집을 쓴 1920년대 초 · 중반은 한시, 시조, 가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형시가가 자유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형으로 전환되면서 한글체 시 쓰기가 모색되던 시기이다. 이러한 한글체 시 쓰기는 시인의 개성적 음색이 반영된 서술형 종결어미의 발굴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어라’ ‘―노라’ ‘―러라’와 같은 서술형 종결어미는 이 시기에 시어체(詩語體)로 발굴된 대표적인 일례이다. 하지만 《님의 침묵》에는 시적 주체의 감탄조 정서를 담아내는 이러한 감탄형 종결어미의 사용이 드물고, 평서형 종결어미가 주로 사용된다. 특히 이 시집에서 활용되는 종결어미는 대상에 대한 공경의 태도를 담은 경어체를 통해 시적 아우라를 빚어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시집에는 격식을 갖춘 어법인 ‘―습니다’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시 〈님의 침묵〉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는 시적 진술이 대표적이다. 격식체의 경우, 대상에 대한 공손함과 정중함을 표현하는 어법이기 때문에 이 시집의 장중한 정서는 상대를 지극하게 높여 말하는 합쇼체의 압도적 우위가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시집이 개인의 정서에 함몰되지 않고 이른바 님의 형이상학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데에도 이러한 ‘―습니다’라는 종결어미 사용은 중요하게 기능한다.
한편, 이 시집에는 비격식적인 해요체의 종결어미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시 〈복종〉의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가 대표적이다. 격식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친근함을 표현하는 이 어법이 상대를 지극하게 높이는 합쇼체와 결합되면서, 이 시집은 님이라는 시적 대상을 위엄을 지닌 공경의 대상이자 일상적 삶을 함께하는 친밀한 대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습니다’와 ‘―해요’로 대표되는 격식과 비격식의 종결어미는 씨줄과 날줄처럼 시적 정서를 교직해냄으로써, 두렵고도 친밀한 님의 노래를 만들어낸다. 시집을 펼치면 흘러나오는 장중한 남성적 어조와 자상한 여성적 어조의 화음적 병치는 이런 사정과 깊이 연관된다.
그렇다면 한용운이 이러한 어조를 선택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무엇일까. 한용운은 우리 근대시의 개척자인 안서 김억(岸曙 金億)이 인도의 시성(詩聖)이라 불리던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면서 사용한 시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시집에 수록된 〈타골의 시(GARDENISTO)를 읽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한용운은 김억이 번역한 타고르의 시를 읽고 크게 고무되었다. 타고르는 인도 사상을 시작(詩作)의 자양분으로 삼아 1913년에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같은 처지에 있는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적극적으로 수용된 인물이다. 한용운도 대중적인 잡지인 《유심(惟心)》을 발간할 때부터 타고르의 글을 번역해서 실었다. 이처럼 당대 지식인의 관심대상이었던 타고르의 시집을 읽고 한용운도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흠모의 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가 타고르를 찬양의 대상으로만 인식한 것은 아니다. 한용운은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다고 타고르를 질타하며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라고 권유한다. 두 사람의 시적 지향점이나 시정신이라는 면에서 보면 무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이자 극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내용적인 면만 놓고 보면 두 시인의 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시집 《님의 침묵》의 창작에 타고르가 끼친 영향은, 타고르 시집을 번역한 김억의 번역문체가 끼친 영향 쪽이 훨씬 지대하다. 김억은 타고르의 대표작인 《기탄자리》(1923), 《신월(新月)》(1924), 《원정(園丁)》(1924)을 연달아 번역하며 자유시가 지향할 시적 문체들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합쇼체와 해요체가 엇비슷한 비율로 배합된 일종의 종교시체(宗敎詩體)를 만들었고, 이러한 문체는 시집 《님의 침묵》의 시적 아우라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격식체와 비격식체를 오가며 발화되는 사랑의 노래는, 님에 대한 한없는 공경의 마음과 다정하고 친근한 친밀감이 절묘한 긴장을 유발하면서 시집을 관류하는 두렵고도 친밀한 사랑의 태도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어조가 하나의 철학이자 삶에 대한 태도라고 볼 때, 이러한 시집의 어조는 대상을 섬기고 모시는 평화의 철학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 평화의 밤을 공양하자
시집 《님의 침묵》에서는 전쟁과 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시어를 종종 만나게 된다. 시 〈당신의 편지〉에는 당신(님)으로부터 편지가 와서 약을 달이다 말고 뜯어보는데, “당신의 주소는 다른 나라의 군함”이라고 진술된다.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약을 달이다 말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주소는 다른 나라의 군함입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남의 군함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편지에는 군함에서 떠났다고 하였을 터인데
— 〈당신의 편지〉 부분
약을 달이고 있다는 진술로 보아 시적 화자는 몸이 아픈 상태일 것이다. 병든 몸을 추스르고 있는 시적 화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님(당신)’이 있는 곳은 ‘남의 군함’이다. 군국주의가 기세를 떨치는 당대 현실을 시의 이면에 놓고 이 시를 읽어 보면, 화자가 지향하는 ‘님’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군함을 떠났다고 말하는 존재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님’은 군함에 있다. 이 시집에서 노래하는 ‘님’이 단순히 절대적 존재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말해주는 시편 중 하나이다. 또한 이 시집에는 전쟁과 폭력의 현실이 ‘님’과의 이별을 촉발한 원인임이 암시되는 시편이 적지 않다. 시 〈가지 마셔요〉에서는 ‘님’이 가고자 하는 곳은 ‘적의 깃발’과 ‘악마의 눈빛’과 ‘칼의 웃음’이 지배하는 곳이고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전쟁’ 중이며 생명의 위대한 시간이 정지된 곳이라고 진술된다. 님과의 이별은 전쟁과 파괴를 당연시하는 군국주의가 강제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시적 화자가 ‘님’을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이미지화되는 ‘죽음’은 군국주의에 맞서는 상징적 저항으로 그려진다.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님’과의 만남을 성취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시 〈오셔요〉에서, 시인은 “죽음의 앞에는 군함과 포대가 티끌이 됩니다”라고 노래하며 군국주의가 지배하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이 시집에서 반복되는 죽음 예찬은 이런 현실에 대한 일종의 성찰적 파국을 재현함으로써 위기의 자각을 촉진하는 시적 전략이 되고 있다.
한편,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비판의식은 ‘님’을 폭력과 전쟁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평화의 이상으로 그려낸다. 시 〈찬송(讚頌)〉은 파국을 예감하는 시인이 평화를 향한 열망을 담아낸 대표적인 시편이다.
님이여 당신은 백번이나 단련한 금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바다에 봄바람이여
— 〈찬송(讚頌)〉 전문
한용운이 흠모하고 찬미하는 ‘님’은 “아침볕의 첫걸음”이며 “옛 오동의 숨은 소리”이며 “얼음바다에 봄바람”으로 감각화된다. 이 현묘한 존재에 대한 감각적 포착은 “의(義)가 무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알고 “봄과 광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라는 진술과 공명하며 윤리적 주체로 형상화된다. 시적 화자에게 ‘님’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윤리적 주체로서의 ‘님’에 대한 찬미와 찬양이 아니다. 시적 화자는 윤리적 주체인 ‘님’에게 “거지의 거친 밭에 복(福)의 씨”를 뿌리라고 하고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라고 요청한다. 화자는 ‘거지’와 ‘약자’로 상징되는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해 달라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을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상징인 ‘님’에 대한 찬송을 넘어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할 평화적 실천에 동참할 것을 간곡하게 소망함으로써 바로 그 실천을 찬송하는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용운에게 평화의 이상은 고정되고 실체화된 이상향으로 주어진 완결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행하고 실천하는 역사적 수행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거지의 밭에 복의 씨를 뿌리는 실천과 약자의 삶에 눈물 흘리는 자비의 공감 능력은 우리가 평화의 기도를 마음속에서 기르는 정도(正道)이면서 지름길일 것이다. 평화는 외부의 특정한 곳에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삶의 공간에서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행위임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그가 노래한 사랑이 그러하듯이, 평화도 ‘씨 뿌리기’와 ‘눈물 흘리기’라는 구체적인 삶을 통해 구현되는 무엇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평화를 향한 자비의 마음을 내라고 요청하는 시집 《님의 침묵》은, 선승인 한용운이 중생을 향해 올리는 평화의 공양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시 〈고대(苦待)〉에서 한용운은 “풀 사이의 벌레들은 이상한 노래로 백주(白晝)의 모든 생명의 전쟁을 쉬게 하는 평화의 밤을 공양합니다”라고 노래한다. 평화를 향한 그의 간절함은 풀벌레의 울음소리마저 평화의 밤을 공양하는 아름다운 화음으로 듣는다. 전쟁과 폭력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화의 밤을 공양합니다”라는 시적 진술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전을 기원하는 일상적 인사이자 기도로 재음미될 수 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가공할 전쟁을 목도하고 제국주의의 폭압으로 수인(囚人)이 되기도 했던 시인이, 이 시집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 어린 충고는 ‘평화의 밤을 공양하자’는 전언이 아니었을까. ■
이선이 budatree@khu.ac.kr
경희대학교에서 한용운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저서로 《근대 문화지형과 만해 한용운》 《만해시의 생명사상 연구》 《생명과 서정》 《상상의 열림과 떨림》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