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학자 36. 진 스미스(E. Gene Smith, 1936~2010) / 김한웅

티베트 불교문화를 디지털로 복원하다

2024-09-06     김한웅

1. 유년 시절

엘리스 진 스미스(Ellis Gene Smith, 1936~2010)는 1936년 미국 유타(Utah)주 오그던(Ogden)의 모르몬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가족의 종교적 배경은 진 스미스에게 두 가지 면에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첫째, 계통과 족보를 중시하는 모르몬교의 전통은 이후 그의 티베트불교에 대한 관심과 활동에 반영되었다. 둘째, 전 세계 각국에 직접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모르몬교 교육에서는 여러 가지 언어들에 대한 학습이 중시되었고, 진 스미스 또한 이러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러한 집안의 종교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진 스미스는 모르몬교를 벗어나 다양한 주제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학생으로 성장했으며, 많은 독서와 여러 언어에 대한 학습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진 스미스는 1950년대 말, 당시 동양학의 메카로 유명했던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워싱턴주립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으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그는 다양한 아시아 언어들(티베트어, 중국어, 몽골어, 터키어 등)을 본격적으로 학습하게 되었고, 그중 티베트어 학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언어 습득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시아 문명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지니게 되었다. 그의 자전적 진술에 따르면 이 시기 그는 1960년대 중엽 미국 정부의 베트남전쟁을 위한 징집을 피하고자 여러 대학에 적을 두면서 학습을 계속해 나갔다고 한다. 당시 진 스미스는 계속해서 티베트 불교문화를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스승을 찾아다녔으나, 미국 내 교육기관들에서는 적당한 인연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인연은 홀연히 티베트로부터 다가왔다.

 

2. 데슝 린포체와의 만남과 인연

1959년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을 계기로 하여 많은 티베트인들이 중국 공산당 치하의 티베트를 빠져나왔으며, 이는 티베트에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당시 미국의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은 티베트의 지식인들을 세계 각지 유수의 교육기관으로 보내 티베트 불교문화를 보존 · 전파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의 워싱턴주립대학이 그중 한 기관으로 선정되었고, 인도에 머물고 있던 티베트불교 샤카파의 닥첸 린포체(1929~2016)와 그 부인 닥모 꾸쇼, 그리고 그 자녀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시애틀로 이주했다. 이때 닥첸 린포체 자녀들의 가정교사 자격으로 닥모 꾸쇼의 삼촌인 데슝 린포체(1906~1987)가 동행했는데, 그는 시애틀에서 일련의 미국 소장 학자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후 미국 내 티베트학 발전의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시 시애틀에서 이들 닥첸 린포체 가족의 미국 생활 적응을 위해서 티베트어 구사가 가능한 미국인이 필요했는데, 워싱턴주립대학의 학생이었으며 티베트 문화 · 언어에 익숙한 진 스미스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진 스미스는 아예 거처를 닥첸 린포체의 처소로 옮겨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등의 활동을 하며 그들과 4년의 시간을 함께했고, 닥첸 린포체 가족의 일원과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이 시기 진 스미스는 데슝 린포체의 인품과 학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와 시간을 보내면서 티베트 불교문화와 언어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진 스미스는 데슝 린포체로부터 우선 전통적인 티베트 학습 방식으로 배우기 시작했으며, 이후 《반야심경》, 짠드라끼르띠의 《입중론(Madhyamakāvatāra)》 그리고 파튈 린포체의 《위대한 스승의 말씀》 등 종파를 초월한 문헌들을 함께 티베트어로 읽어 나갔다. 이러한 학습을 통해 진 스미스는 데슝 린포체가 견지한 비종파주의적 입장(티베트어로 ‘리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시기 진 스미스는 티베트 불교문화 및 역사를 정리하며 자신이 지닌 의문점들을 데슝 린포체에게 질의하였고, 그 답변으로 완성된 결과물들을 워싱턴주립대학에서 콜로키엄 형식으로 발표 · 정리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 ‘진 스미스의 그린 북’이라는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데슝 린포체는 진 스미스를 ‘티베트인의 환생’이라며 매우 아꼈고, 그에게 ‘잠양 남곌’이라는 티베트 이름을 내리기도 했다. 진 스미스는 더 높은 수준의 티베트 불교문화 가르침과 그와 관련된 자료가 필요해 유럽 여행을 떠났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자 인도로 건너가서 티베트 라마들의 가르침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때 인도 내의 티베트 고승들 중 최고의 종교적 권위를 지닌 라마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데슝 린포체의 소개장 덕분이었다. 이로써 진 스미스는 인도에서 여러 전통의 다양한 티베트불교 및 뵌교 스승들에게 배움의 기회들을 얻어 티베트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었다. 

3. 미 국회도서관 인도 현지 주재원 역할

1954년에 미국 정부는 인도주의적 · 정치적 목적을 바탕으로 ‘농산물 무역 촉진 원조법(The Agricultural Trade Development and Assistance Act)’을 발효하였다. 이는 식량 부족을 겪는 국가들에게 미국이 과잉생산으로 보유한 잉여 농산물을 원조해 주고 그 대가를 현지 통화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950년대 식량 부족과 기근을 겪은 인도는 이러한 원조법(일반적으로 Public Law 480 프로그램이라 불림)의 수혜를 입은 국가였는데, 이로써 인도 통화인 루피의 상당 부분이 미국 소유로 되어갔다. 인도로서는 이렇게 늘어나는 미국의 통화 점유 추세를 되돌릴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 스미스는 1968년 미국 국회도서관에 의해 인도 현지 언어 전문가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수도 뉴델리에서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다. 티베트어 문헌 전문가인 진 스미스는 미국 정부 요원으로서 자신의 지위와 Public Law 480 프로그램으로 초래된 상황을 이용하여 티베트어 문헌의 복원작업이라는 문화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우선 인도 혹은 그 인근 국가들(네팔, 부탄 등)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의 소유이거나, 중국령 티베트로부터 계속해서 넘어오는 티베트 망명객들이 가지고 온 티베트 고문헌들을 선별 · 정리하였고, 이 문헌들을 Public Law 480 프로그램으로 확보된 자금을 이용하여 재발간을 추진했다. 

이 작업에서 진 스미스에 의해 선별된 문헌들은 각 100부씩 사진 인쇄 형태로 재발간이 이루어졌는데, 미국 국회도서관은 프로그램의 자금을 이용하여 원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재발간 서적들을 각 25부씩 구입했으며, 이렇게 확보된 여유 자금으로 마저 인쇄된 75권은 티베트인 등에게 일반 판매를 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미국 국회도서관은 새롭게 인쇄된 서적만 구입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각각의 사진 인쇄식 서적에 진 스미스가 상세한 서문과 내용 요약 그리고 목차 등을 첨부하여 형식상 새로운 서적으로 만들어 냈다. 티베트 불교문화와 문헌들에 조예가 깊었던 진 스미스에 의해 쓰인 이러한 서문들은 그 자체로 큰 학술적 의미가 있었으며, 이들은 이후 2001년에 Among Tibetan Texts: History and Literature of the Himalayan Plateau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전 세계의 티베트학 학자들이 널리 이용하는 핵심적인 자료가 되었다.

진 스미스의 이러한 작업은 티베트의 지식인들과 승려들에게도 널리 알려졌고, 더욱더 많은 티베트인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던 중요한 고문헌들을 진 스미스에게 가지고 와 재발간을 의뢰했다고 한다. 티베트 문화 일반과 문헌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진 스미스는 이들 고문헌 중 중요한 것들을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고, 그 덕분에 해당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재발간 서적들은 질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진 스미스의 작업은 티베트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1970~80년대에 구미권에서 티베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인도 뉴델리의 진 스미스를 방문하거나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1985년에 인도네시아, 1994년에 이집트로 주재원 자리를 옮겼지만 티베트어 문헌의 수집과 재발간에 계속 관여하였고, 그가 1997년 국회도서관 주재원 자리에서 은퇴할 때까지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이러한 재발간 사업은 최종적으로 4,000건 이상의 티베트 문헌을 200권 이상의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작업은 진 스미스의 기지가 발휘된 문화 보존 · 복원 사업이었으며, 자칫 유실될 수도 있었던 티베트 불교문화의 문헌 전통을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이러한 문헌의 수집과 보존에 대한 노력은 그의 은퇴 이후에 시대적 흐름을 타고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4. 티베트불교 자료센터(TBRC) 설립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간 진 스미스는 티베트 문헌 재발간의 결과물들과 자신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많은 티베트어 자료를 소장하게 되었다. 1999년, 진 스미스는 이들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의 티베트불교 학자 레너드 반더 큐입(Leonard van der Kuijp)과 함께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Cambridge)에 ‘티베트 불교자료 센터(Tibetan Budhhist Resou-rce Center, 이하 TBRC)’를 설립했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 사용의 저변 확대라는 시대적 흐름에서, TBRC는 다음과 같은 설립 취지를 지니고 있었다. 즉, 티베트어 자료들을 컴퓨터 스캔 등을 이용한 디지털화를 통해 보존성을 극대화하고, 이렇게 확보된 디지털 문헌들을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서 무료로 대중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그 활용성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진 스미스는 또한 이렇게 디지털화된 문헌 자료를 소형 컴퓨터 혹은 저장장치에 담아 인터넷 사용이 수월하지 않은 인도 등지의 티베트 사원들에 수차례에 걸쳐 직접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헌들의 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관련 종파, 장르, 저자 정보 등의 자료 또한 축적 · 정리되었으며, TBRC는 점차 티베트 문헌 자체뿐만 아니라 티베트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발전하여 티베트학 일반에 많은 도움이 되는 자료센터로 자리 잡았다.

TBRC는 2002년 미국 뉴욕시를 기반으로 하는 셸리 앤드 도널드 루빈 재단(Shelly & Donald Rubin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뉴욕의 맨해튼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진 스미스의 활동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당시 뉴욕에는 티베트 불교미술로 특화된 루빈박물관(Rubin Museum of Art)과 티베트 서적들을 중심으로 한 라체도서관(Latse Library) 등이 새롭게 들어서고, 인근 컬럼비아대학에서도 티베트학 연구 분야를 확장하면서 티베트 연구의 새로운 붐이 일어났다. 진 스미스는 이러한 학계의 흐름에서 정보제공자 및 자문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TBRC는 이후 패트리샤 앤드 피터 그루버 재단(Patricia & Peter Gruber Foundation)과 켄체 재단(Khyentse Foundation) 등의 추가지원을 받아 문헌 수집과 디지털화 작업을 확장해 나갔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중국령 내의 티베트 문화권에서 발간되어 온 티베트어 문헌 자료들을 입수하여 디지털화하는 작업도 추진했다. 이로써 TBRC는 티베트 망명인들의 손을 거친 문헌들의 보존뿐만 아니라 티베트어로 존재하는 모든 문헌에 대한 디지털 정보센터로 발전해 나갔다.

진 스미스는 인도 주재원 시절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게 된 희귀 티베트 고문헌들에 대한 디지털화가 마무리되자 이들을 본래 주인인 티베트인들에게 돌려주고자 희망했다. 네팔 혹은 부탄의 사원 또는 도서관 등이 그 수혜처로 제안되었지만, 진 스미스는 그 문헌들의 본거지인 티베트가 그것들이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진 스미스는 중국 내에서 티베트학을 연구하고 티베트 학생과 연구자들이 다수 소속된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의 서남민족대학(西南民族大學)을 최종 반환지로 선정하였고 반환과 관련된 협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2008년 티베트 라싸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로 인해 중국 내 기관과의 협의는 무한정 연기되었고, 티베트 불교문화를 티베트인들에게 돌려주려는 진 스미스의 노력은 그의 생애 동안에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5. 타계와 그 유산

진 스미스는 2010년 12월 16일에 74세를 일기로 뉴욕 맨해튼에서 타계하였다. 그가 TBRC 활동과 관련된 업무로 인도를 방문하고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아, 그의 지인들뿐만 아니라 티베트학 관련자들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부고에서 “진 스미스는 전쟁과 정치적 혼란으로 위험에 처한 문화적 보고를 지켜온 수호자”였다고 그를 애도하였다. 진 스미스의 추도식은 2011년 2월 12일에 뉴욕시의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열렸으며, 필자도 참석한 이 행사에는 전 세계의 티베트학 학자들이 모여 티베트 불교문화의 수호자였던 진 스미스를 추모했다. 2013년, 미국의 아시아학 커뮤니티(Association for Asian Studies)에서는 진 스미스의 업적을 기려 ‘진 스미스 내륙아시아 우수학술서적상(E. Gene Smith Inner Asia Book Prize)’을 새롭게 제정해서 매년 티베트학과 그와 관련된 내륙아시아 역사 · 문화 관련 우수 서적들에 대한 시상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그가 염원하던 티베트 고문헌의 본래 주인에게 반환은 그의 타계 후 머지않은 시기에 실현되었다. 중국의 서남민족대학 측과 최종적으로 협의가 이루어진 후, 2011년 6월에 대학 캠퍼스 내에 ‘진 스미스 도서관’을 세우고 개관하는 행사를 열었으며, 이곳에 진 스미스가 기증한 티베트 고문서 원본들이 소장되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염원하던 티베트 문화유산의 반환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졌다. 

진 스미스의 타계 시까지 그의 주관하에 TBRC가 스캔하여 제공한 자료는 총 7백만 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진 스미스 타계 후 그의 평생 노력의 결과물인 TBRC는 하버드대학 소재의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로 다시 이전되어 하버드대학 디지털 저장 서비스, 중국 절강대학, 서남민족대학 등과의 협력을 통해서 그 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2014년에는 진 스미스의 소장 도서에 대한 스캔 작업을 완료하였다. 2015년에는 운영위원회와 유수의 불교학자들이 모여 TBRC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티베트 불교자료 센터(TBRC)’라는 이름을 ‘불교 디지털자료 센터(Buddhist Digital Resource Center, 이하 BDRC)’로 바꾸고 그 활동 영역을 티베트 문헌들을 넘어서서 캄보디아, 몽골, 네팔, 태국의 불교 문헌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하기로 하였다. 2018년, BDRC는 그 근거지를 보스턴으로 옮기고 미국의 소장 티베트 불교학자인 잔 로니스(Jann Ronnis)를 새로운 센터장으로 선발하여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진 스미스와 자그마한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티베트에 대한 관심을 키운 후 필자가 티베트학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결정적 계기는 바로 앞서 서술한 진 스미스의 저서, Among Tibetan Texts를 읽은 덕분이었다. 티베트불교의 각 종파와 문헌 분야들을 총망라한 이 저서는 미국의 티베트학 연구 수준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 이정표였다. 이는 당시 티베트 연구를 위해 중국과 미국을 저울질하고 있던 필자에게 미국행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렇게 하여 2007년부터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티베트학 대학원 연구를 시작한 필자는 뉴욕에서 진 스미스를 직접 만나는 기회를 수차례 가질 수 있었다. 당시 TBRC는 뉴욕에 소재하고 있었고,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티베트학 프로그램은 TBRC와 긴밀한 관례를 유지하며 진 스미스의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 스미스가 학술행사 등에 나타날 때면 관련 학자들과 학생들이 그를 둘러싸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는 장면이 흔히 목격되었다. 필자도 진 스미스에게 연구 관련 질문들을 했고, 그때마다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변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 스미스는 학계에 소속되어 연구와 교육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의 불교학자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자신이 지닌 능력과 지위로 불교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기반을 닦아놓은 인물이었다. 그의 이러한 공헌은 티베트 불교문화를 연구하는 대부분 학자뿐만 아니라 티베트 내부 학승들의 업적들보다도 더 밝게 빛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티베트 불교문화 수호와 복원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불교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나아가서는 인류 문명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에 이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 스미스가 남긴 다음과 같은 격언이 바로 그 자신이 해온 일과 또한 그를 따르는 후속 세대들이 해야 할 일을 잘 갈무리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문화는 보존하고 재배할 가치가 있는 귀중한 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Every culture is a precious flower that deserves to be preserved and cultivated. It will make us more human.)”  ■

 

김한웅 
동아시아 역사 티베트 전공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티베트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문화가 중국 변경과 내륙 아시아 역사에서 지닌 중요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清帝國과 티베트 活佛〉 〈淸代 티베트 國師 짱꺄 뢸뻬돌제〉 〈역사서술의 변천으로 본 中國의 티베트와 西藏〉 등이 있고, 번역서로 《티베트, 달라이라마의 나라》가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