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최동호 교수
유난히 덥고 길다는 금년 여름 아주 무료한 시기에 우연히 국립중앙박물관에 세 번이나 가게 되었다. 첫 번째는 〈그리스의 신과 인간〉을 보기 위해 다음은 〈조선 백자〉를 보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리스의 신과 인간〉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원반 던지는 사람〉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조각가 미론(Myron)이 청동으로 만든 이 조각상은 다시 기원 후 2세기 로마 시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리스 시대 가장 인기가 있었던 운동선수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이 조각상에서 내가 느낀 것은 아름답고 균형 잡힌 인간의 육신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에는 이상적인 균형과 조화가 있어서 그의 육신 속에 살아 있는 정신이 감도는 것 같았다.

〈원반 던지는 사람〉을 보는 순간 떠오른 조각품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천 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왜 서양을 대표하는 두 조각품이 서로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아마도 신들과 함께 전설의 시대를 살았던 그리스인들에게는 신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19세기 말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했지만 그와 동시대인인 로댕은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옥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고뇌를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표현했을 것이다. 최후의 심판 앞에서 그리고 신의 심판 앞에서 선 인간은 언제나 죄 많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 그리고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인간들은 행복했으리라는 것이 그리스 조각상에 대한 나의 소감이다.

중복 무렵에 다시 〈조선백자〉를 가 보았다. 고려청자에 대한 찬탄을 무수히 들어 왔던 까닭에 그동안 조선백자에 깊이 주목해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눈여겨보니 조선의 백자는 그것 나름으로 한국 도자 예술의 한 정점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달 항아리〉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흰 눈송이처럼 티 한 점 없는 백자에서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엄격한 절제와 넉넉한 여유를 아울러 느낄 수 있었다. 여러 형태의 문양과 색깔의 변화를 보여 주는 〈달 항아리〉가 눈길을 끌어당기지만 마지막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백색의 달 항아리〉였다. 순백의 미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백색은 모든 것을 거부하는 색이어서 조그만 틈새라도 있다면 순식간에 오염되어 버리고 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조선 백자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도 백색의 품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 엄격한 절제는 물론 원융한 관용이 백색의 항아리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조선백자〉에서 새롭게 느꼈다. 차가운 백색이 아니라 은근한 따듯함이 감도는 백자의 흰 색에서 사치스러운 청자의 색깔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형상미를 느끼게 된 것은 새로운 발견의 기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덥다고 하는 말복은 일요일이었다. 특별히 멀리 갈 곳도 없어 다시 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다시 보기 위해서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나에게 충격을 준 최초의 조각품이라면 〈반가사유상〉은 나에게 최초의 감동을 준 조각품이다. 충격과 감동 사이에는 이질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아마도 충격은 고통받는 인간의 형상 때문이고 감동은 그 고통을 넘어선 초월적인 미소에 대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느껴 온 바이지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에는 사유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생각은 있지만 사유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을 걸러내는 사유의 과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옥문 앞에 고뇌하는 인간에게 우선하는 것은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다. 막다른 길에 앉아 있는 인간은 다른 무엇을 생각하고 그것을 사유로 끌어올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끔 〈반가사유상〉을 찾아와 그 앞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시간은 나에게는  수시로 떠오르는 파편적인 생각들을 순화시켜 보기 위해 은밀하게 가져 보는 자기 발견의 시간 중의 하나이다.

공휴일이어서인지 초등학생들이 〈반가사유상〉 주변을 점거하고 있었다. 정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방학 과제를 하기 위해서 몰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반가사유상〉 앞에 놓여 있는 몇 개의 좌석을 차지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그들이 나에게는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20년 전 경복궁 시절 국립박물관에는 어린 학생들 관람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반대로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의 말소리가 복도를 진동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작은 소란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들이 지금은 웃고 떠들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와 그들 나름의 생각에 잠길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학생 중에 누군가가 또 다른 위대한 창조물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기대해 보는 것도 즐거운 예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몇 차례 주변을 맴돌다가 겨우 자리를 얻어 다시 〈반가사유상〉을 바라보았다. 약간 기울어진 자세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단아한 불상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통과 희열이 어우러진 〈반가사유상〉에서 내가 느낀 것은 생각할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초탈한 미소였다. 그 미소는 잔잔한 바다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어쩐지 〈반가사유상〉이 단조로워 보였다. 아마 소란을 피우는 초등학생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전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살펴보게 되었다.

〈반가사유상〉 뒤로 돌아가 보았다. 머리 뒤쪽에 커다란 장식 고리가 솟아 있었다. 그러니까 〈반가사유상〉의 뒤편에는 그 전체를 감싸는 광배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처럼 전깃불에 비친 빛이 아니라 광배로부터 우러나오는 빛을 전에는 내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원래의 형상이 아니라 광배가 없는 〈반가사유상〉으로서 예전의 빛 속에 있는 〈반가사유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옥문 앞에서 고뇌하는 〈생각하는 사람〉과 광배를 거느리고 빛을 발하는 〈반가사유상〉은 1300여 년의 시공을 넘어서 우리 앞에서 조각난 생각들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생각하는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심판에 대한 공포와 전율이며 〈반가사유상〉을 감싸고 있는 것은 고뇌를 넘어선 희열과 관용이다. 여기서 나는 양자의 우열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반가사유상〉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아름답게 표현한 그리스인들이 가지고 있던 인간의 이해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원의 인간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 시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말복에 더위에 고통받는 것도 인간사일 것이다. 아홉 시 뉴스에는 산과 바다를 찾아 피서 간 사람들의 즐겁고 명랑한 표정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죽고 사는 인간 세상의 일들이 저녁 뉴스의 화면에 넘쳐나고 있었다.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서로 다른 시공에 살았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이나 〈생각하는 사람〉 모두 인간의 인간에 대한 존재를 표현한 불멸의 명품들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반가사유상〉 앞에 서려 있는 어둠이 예전보다 더 친밀한 침묵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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