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불교, 무시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1. 이 시대 계율에 관한 논의의 의미

박병기 교수
우리가 살고 있는 이른바 21세기는 최소한 윤리가 중심이 되는 시대는 아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늘 먹고사는 문제에 밀려 가치와 당위(當爲)의 문제는 뒷전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념적으로는 그 가치와 당위를 중심에 둔 시대가 없지 않았다. 우리 역사 속에서 통일신라와 고려는 불교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정치를 이끌어 갔고, 조선의 경우 신유학, 즉 성리학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불교적 가치를 배척하고자 했던 전형적인 ‘도덕국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그들의 이상적 지향이 현실 속에서 어느 정도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의 평가가 요구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가치 지향 자체가 평가절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시대는 개인(個人, individual)이 주인공인 시대이고, 이때의 개인은 이기성과 고립성을 전제로 해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은 인간을 의미한다. 그에게 사회나 공동체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 자체도 개인의 이익이라는 범주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그 개인의 이기성(利己性)이다. 이기성이란 자신의 이익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는 명제를 담고 있는 개념인데, 실제 인간의 본능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이 이기성이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의 차원에서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석가모니 붓다의 인간 욕망에 대한 중도적 인식이나 순자의 성악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이기적 본능은 언제나 당위나 가치와의 연계성 속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상관적 변수였을 뿐이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본능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맹자처럼 그것과는 차별화되는 또 다른 인간만의 본능인 선함의 단서에 주목하거나 삶의 의미 차원에서 재해석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상사의 기본 맥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근원적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홉스(T. Hobbes) 이후의 서구 사회철학이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서였다. 인간이 처한 본질적인 상황을 생존을 목표로 삼는 투쟁 상태라고 정의하고자 했던 홉스의 생각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의 이기성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로 진화했고, 결국 그 이기성을 제외한 다른 인간학적 요소들은 부차적이거나 그것에 도움이 될 때에만 사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변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윤리적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광의의 이기주의로 평가되는 공리주의 윤리설의 경우도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거나 유예해야 하는 경우는 사회적으로 좀 더 큰 이익을 확보한 후에 그 커진 이익을 다시 개별적으로 나눠 가질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 때에 한한다.

서구적 의미의 시민사회가 이미 우리 사회의 모습이 되어 버린 상황 속에서 모든 도덕이나 윤리에 관한 논의는 바로 이 인간의 이기성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우리가 주제로 삼는 계율론도 그 이기성 담론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을 경우 특정한 영역 안에 머물게 해야만 하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계율의 문제가 기본적으로는 승가공동체 안의 문제이지만, 이미 석가모니 당시부터 재가자들을 위한 계율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승가공동체 자체도 재가자들을 전제로 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의 범주 안에 속한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의 계율에 관한 논의는 시민사회의 도덕담론으로서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지닐 수밖에 없다.

상좌불교 계율의 현재적 유효성을 주제로 삼는 우리의 논의는 그런 맥락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진다. 승가공동체가 재가자 공동체, 시민사회라는 외연 확장을 전제로 삼아 상좌불교의 계율이 그 각각의 외연(外延) 속에서 어떤 의미와 유효성을 지닐 수 있는지를 고찰하는 방식의 논의가 전개될 예정이지만, 이를 위한 토대로 한국적 시민사회 속에서 도덕담론이 지니는 의미와 한계에 관한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오늘 우리의 논의가 우리 자신의 현재적 상황과의 유기적 연관성 속에서 전개될 수 있고, 만약 그 시도가 성공할 수 있다면 계율에 관한 논의가 불교의 범위를 넘어서서 우리 시대와 사회의 도덕담론으로서의 유효성도 담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 윤리

1) 인간 본성으로서의 욕망

도덕(道德)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도덕이라는 개념의 의미와 정의를 묻는 물음이기도 하고, 도덕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위상과 의미를 지니는가를 묻는 실천적 성격의 물음이기도 하다. 전자는 메타윤리학의 주제에 속하고 후자는 실천윤리학 또는 규범윤리학의 주제에 속한다. 도덕에 관한 정의는 다시 사회적 제도로 존재하고 있는 외적 규범체계로서의 그것과 한 인간의 내면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일종의 기준 또는 준거로서의 내적 규범체계로서의 그것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도덕을 후자에 초점을 맞춰 고찰하고자 하는 경우에 우리는 그 내면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욕망과 이기성의 문제와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면 도덕에 관한 메타윤리학적 논의와 실천윤리학적 논의는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오늘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고 세수를 하면서 새로운 날을 맞는 준비를 한다. 몸의 건강을 위해 가까운 동산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어 맑은 공기를 마시고 맨손체조를 하고 돌아와 먹을거리를 챙겨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노트북 컴퓨터를 걸머지고 단골 커피 전문점에 가서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으로 행복감을 느끼며 밀린 글을 쓰고 있다. 이러한 나의 일상 속에는 인간 삶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인간은 잠을 자야 하고 일정한 수면을 취한 뒤에는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며, 일어나서는 배고픔을 느껴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이러한 수면과 음식 뒤에는 그것들을 향하는 나의 본능적 욕구가 숨어 있다. 오랜 시간 잠을 자지 않으면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았을 때에도 그와 유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는 나의 삶과 짐승의 삶 사이의 차별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짐승도 배가 고프면 먹고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본능에 내재된 프로그램에 따라 잠을 자기 때문이다. 짐승의 그것과 차별화되는 나의 삶의 요소는 몸의 건강을 위해 아침에 산책하고 맨손체조를 하는 부분과 배고픔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커피를 마시는 일,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쓰는 일 등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런 요소들은 나를 인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확실한 차별화 지점이지만, 좀 더 분석해 들어가면 역시 근원적인 차별화 요소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 쉽게 드러난다. 산책과 맨손체조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생존 욕구와 연결되고, 커피를 마시는 일도 우리 몸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물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글을 쓰는 일조차도 생존을 위한 돈벌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와 인간의 문명 속에서 형성된 작위적인 욕망을 구별해 볼 수 있다. 그런 구별을 통해 전자는 짐승의 그것과 전혀 차별화될 수 없지만 후자는 그 나름의 ‘인간다움’을 보장해 주는 차별화 요소로 규정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구체적인 장면에서 그 구별이 쉽지 않다는 데서 생긴다. 나의 생활 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그런 구별을 어렵게 하는 경우에 속한다. 커피를 마시는 일이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고 글을 쓰는 일도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들은 동시에 생존과 완전히 무관한 것인가 하는 의문의 대상이기도 하다.

기본적 욕구와 작위적 욕망은 이와 같이 그 경계선이 분명치 않고 특히 보드리야르(J. Baudiriar)의 지적과 같이 현실과 이미지 또는 가상 사이의 차이를 점차적으로 줄여오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서 보면 그 차이는 경미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돈이라는 허구의 매개체를 통해서 생존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 돈은 한편으로 종이나 금속으로 이루어진 실체이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그것이 담보하는 교환가치와 그것으로 상징되는 부의 가치이다. 그런 전제 속에서 본다면 돈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한편으로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 속에서 형성된 작위적인 욕망이다.

불교에서 욕구는 중도(中道)를 통해 조절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지만, 그 먹을거리가 연기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인지하면서 먹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이 계율을 통해 일정한 원칙 속에서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불교의 계율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를 긍정하면서도 일정한 원칙을 전제로 한 충족을 허용하는 중도(中道)의 윤리(倫理)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명에 의해 형성된 욕망에 대한 불교적 관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먼저 문명을 바라보는 불교적 관점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는 선행 질문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문명(文明)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일정한 수준을 확보하면서 우리 삶에 질적인 전환을 가져온 특정 형태의 삶의 결이다. 이 삶의 결은 특정한 형태로 그 구성원들의 삶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출발점을 이룬 자연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 자연에 대한 태도 속에 당연히 자신의 본능에 대한 태도도 포함되기 때문에, 문명은 제도로서의 도덕과 상당 부분에서 겹치게 된다.

제도로서의 도덕은 도덕의 외부이면서 동시에 그 도덕의 지배를 받는 각 개인들의 내면세계에 일정한 판단과 강제의 준거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도덕의 내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제도로서의 도덕에 입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인간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그 외부의 도덕에 대한 저항감을 형성하며 반성적 사회화 또는 비판적 사회화의 역동성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인간 욕망의 주요 동인으로 평가되는 이기성도 그러한 제도로서의 도덕과 지속적으로 충돌하면서 완화되거나 왜곡된다.

2) 인간의 이기성과 자본주의 윤리

우리가 속해 있는 문명은 역사 속에서 자연과의 거리가 가장 먼 자본주의 문명이다.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그 핵심은 인간의 이기성(利己性)과 고립성(孤立性)에 대한 인정과 도덕적 정당화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고립된 존재로서의 독자성을 지닌다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전제는 두 가지 점에서 인류 문명의 새로운 국면을 의미했다. 첫째는 도덕을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찾고자 했던 전통에 대한 전복으로서의 의미이고, 둘째는 역시 오랜 시간 공유되어 온 신념이었던 인간의 공동체성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의미이다.

이기성을 극복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했던 윤리학사의 다양한 전통은 특별한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맹자가 그러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으며, 근대 이후에는 주희와 칸트에 의해 인간 이기성의 극복 과정과 방법이 상세하게 제시되기도 했다. 불교에서는 이기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이기성이 무명(無明)에 의한 집착의 산물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중도적으로 극복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러한 이기성을 오히려 도덕적인 정당화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전복자로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이기성은 시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구현되고 또 구현되어야 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꾀하는 이른바 경제성의 원리는 이러한 이기성 구현의 구체적인 원칙이고, 이러한 경제적 합리성은 경제의 영역을 넘어서서 정치와 도덕, 교육의 영역에까지 도덕적 정당성을 전제로 해서 통용되고 있다. 우리 사회도 특히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에는 이러한 경제성의 원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보기가 극히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와 같은 이기성에 대한 정당화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인 고립성과 짝을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강화된다. 연기성(緣起性) 또는 관계성으로 통용되어 왔던 인간 본성의 중요한 속성을 강하게 부정하면서 인간은 본래 고립적인 존재로 이 땅에 왔다가 그것을 토대로 살아가면서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잠시 협력하는 자세를 보일 뿐이라는 계약론적 사유로 정착되어 우리 삶의 또 다른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이기성과 고립성의 토대 위에서도 윤리를 말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두 가지 차원의 논의를 동시에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 하나는 이기성과 고립성에 대한 정당화 자체가 갖는 도덕적 의미에 관한 논의이고, 두 번째는 이기성과 고립성을 토대로 하는 윤리적 논의의 가능성 자체에 관한 물음이다.

첫 번째 논의는 인간을 이기적이고 고립적인 존재로 규정짓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강한 도덕적 관점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과연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론이 가능하고 고립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적인 근거들을 부정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이기성과 고립성의 개념에 의지해서 정당화하고자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념 또는 강한 관점이라는 점에서 니체적 관점주의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자본주의의 이런 강한 인간학적 전제는 그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일정한 방편적 의미와 효과를 지니고 있었음에 유의할 필요는 있다.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부당한 억압은 중도적 관점에서 극복되어야 하는 과제라고 볼 수 있고, 인간의 공동체성에 대한 과도한 강제는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억압이라는 점에서 극복되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우리에게 노정시키기도 했다. 최소한의 생존 문제 해결이라는 성과와 인권(人權)에 대한 존중감의 확산 등이 민주주의와 결합된 자본주의의 성과라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또한 윤리 영역에 있어서도 전통담론인 최대도덕을 괄호 속에 넣고 각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영역에서의 도덕을 강하게 부각시킨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윤리는 늘 최대도덕의 담론이 아닌 최소도덕의 담론 체계 안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그만큼의 성과도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우리 사회보다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권에서 에티켓과 같은 최소도덕의 제도화가 심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내세울 만하다.

물론 이러한 최소도덕은 강제성을 지닌 규범인 법과의 차별화가 쉽지 않고 그런 점에서 과연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도덕의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에 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를 지탱해주는 윤리적 담론으로서의 최소도덕 논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전제로 하는 최대도덕을 논외로 하면서도 도덕에 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세계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보편윤리를 지향하는 담화적 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새로운 윤리적 담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윤리학사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윤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온전히 배제한 채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자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소도덕이 인간의 외적 삶의 한 부분에 대한 일정한 해답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남는 문제가 의미와 가치의 문제라는 점이 확실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윤리는 결국 궁극적인 지점에 가서는 최대도덕을 도외시할 수 없고 바로 이 점이 현대윤리학의 실천적 불모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서구적 담론 중심의 현대윤리학이 제기한 다양한 메타윤리학적 질문들을 포용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모색하는 최대도덕의 담론을 다시 펼쳐 들어야 하는 지난한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오늘 우리의 논의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맥락 속에서 상좌불교의 역사적 승가공동체 속에서 형성되었던 불교의 계율이 지니는 의미와 한계에 관한 물음을 공유하고자 하는 모색의 하나일 뿐이다.    

3. 상좌불교 공동체 계율의 기본 정신과 현재적 유효성 문제

1)상좌불교 승가공동체 계율의 기본 정신

상좌불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석가모니 붓다의 생존 시부터 부파불교에 이르는 시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초기불교 내지 근본불교 중에서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리되기 시작한 이후의 부파불교를 주로 가리키는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정의에 대해서 이 시공간의 범위 안에 포함되는 불교가 동일한 속성을 지닐 수 있는지를 되물을 수도 있고, 만약 그 동일성과 연속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 하는 방법론적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아함부 경전과 빠알리 니까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 그 당시의 것들과 견주어 그 양과 질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들이 지닐 수 있는 학문적이고 실천적인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훈고학적 자세가 응용불교적 논의를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요소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논자의 일관된 생각이다.

우리 불교 공동체의 계율로 현재 작동하고 있는 것은 《사분율(四分律)》로 대표되는 소승계율과 《범망경》 보살계로 상징되는 이른바 대승계율이다. 그중에서도 비구계와 비구니계의 경우에는 《사분율》에 주로 의존하고 있고, 승가공동체를 움직이는 계율로는 《범망경》 보살계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청규(淸規)가 활용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 논의의 주된 대상은 당연히 상좌불교 공동체를 전제로 하여 형성된 사분율이지만, 이 계율이 대승불교 또는 북방불교의 계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근원적인 전거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논의의 외연(外延)을 작위적으로 《사분율》에만 제한할 수는 없다.

초기불교 승가공동체는 석가모니 붓다의 생존 시와 입멸 후의 상황 속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생존 시의 승가공동체는 석가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발휘되면서 그 범위와 결속력이 점차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여 준 반면에, 입멸 후의 공동체는 다양한 형태의 결집 노력 등을 통해서 그 결속력을 확인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위약함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현재 접할 수 있는 계율은 이 두 공동체 모두에서 통용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좀 더 확고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뉜 붓다 입멸 100년 이후의 상황 속에서 존재했던 승가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계율이다.

한영 스님의 계학에 관한 개론서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본래 “율의 제정은 녹야원에서 사라쌍수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조용히 외운 것이었는데, 우바리 존자가 계속하여 여래의 말씀을 여든 번이나 외워 불렀으므로 이를 ‘80송율’이라고 했고, 이를 마하가섭이 받들고 아난이 보전하고 말전지, 사나파제, 우파굴다 등 다섯 아라한에 의해 차례로 전수되어 백십여 년 동안 주고받음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역사적 믿음에 근거해 형성된 담무덕부(曇無德部) 또는 담다국다(曇摩鞠多, Dharmagupta) 부파 전통의 계율이 《사분율(四分律)》이다. 

이 《사분율》은 승가공동체를 중심으로 하여 공동체로부터 추방되는 바라이죄와 남아서 계속 참회해야 하는 승잔죄와 같은 순서로 처벌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계율을 규정하고 있는 60권의 방대한 율장이다. 그 구성이 네 개의 분(分)으로 나뉘었다는 데서 그 명칭이 유래하는 이 율장은 각각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담고 있는 바라제목차, 수계와 의식주에 관한 세칙을 담고 있는 건도(犍度)를 중심으로 결집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집법(集法), 계율을 지키는 도중에 생기는 구체적인 의문 사항을 다루는 조부(調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수대장경 22권에서는 《사분율》에 앞서 《오분율》과 《마하승기율》이 먼저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 내용과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일반적으로 4대 광율이라고 일컬어지는 율장 중에서 《마하승기율》만 대중부 계통의 율장이고, 화지부(化地部)의 《오분율》과 설일체유부의 《십송율》, 법장부의 《사분율》은 모두 상좌부 계통으로 분류되는 율장이다. 부파에 따라 각각 다른 결집 형태를 보여 주면서도 그 내용과 구성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율장의 근본 정신은 부파의 분열 후에도 어느 정도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다는 간접적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좌불교 승가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계율의 근본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4대 광율의 공통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계율의 핵심은 승가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범해서는 안 되는 소극적 계율과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지켜야 하는 적극적 계율 모두를 포함한다. 상좌부 율장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우선 범한 계율의 결과 강약에 따라 순차적으로 승단에서 추방되는 바라이(波羅夷)와 승단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참회하면 겨우 비구로서의 생명이 유지되는 승잔(僧殘), 재물이나 말과 관련된 바일제[捨墮와 單墮], 실수로 인해 계율을 범한 경우의 제사니(提舍尼), 일상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돌길라[衆學] 등의 무겁고 가벼운 계율 위반에 따른 처벌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다. 마지막 돌길라는 상대적으로 죄가 가장 가벼워서 고의가 아니었다면 상대방에게 참회하는 뜻을 표시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뉘우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구체적인 계율만을 따로 모아서 ‘비구계’ 또는 ‘비구니계’라는 명칭으로 독립적인 분류를 하기도 한다. 모든 율장은 이러한 바라제목차와 수계와 의식을 담고 있는 건도부를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고, 그 구체적인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덧붙여 참회의 의식이자 수행 과정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한 갈마법을 중시했음도 모든 상좌부 율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은 이 모든 계율들이 승가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승가공동체에 출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 그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을 그것을 어겼을 때의 처벌이라는 관점에서 경중의 순서를 두어 나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상좌부 계율이다. 따라서 상좌부 계율은 곧 상좌부 승가공동체의 계율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된다.

물론 이러한 승가공동체의 계율이 재자가들을 온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선 승가공동체와 재가공동체 사이의 밀접한 연계성 속에서 이 계율들의 영향력이 재가자들에게도 간접적인 방식으로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재가자들을 포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좀 더 적극적인 방식의 보살행은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권장되기는 하지만, 상좌불교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깨달음이 단지 승가공동체의 영역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계망 속에 존재하는 재가자들에게 미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점에서 승가공동체의 계율은 재가공동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두 번째 연계성 고리는 율장에 등장하는 거사(居士)의 존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세존에게 계율에 대해 묻고 있는 주된 질문자는 물론 우발리 존자이지만, 거사가 마련한 자리에서 석가와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승가공동체를 지속시키는 다양한 경제적 토대를 제공해 주기도 했던 장로 우바이들은 단순히 승가공동체의 외부자가 아니라 그 스스로 승가공동체의 깨달음의 길에 동참하고자 노력했던 넓은 의미의 수행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상좌불교의 계율이 기본적으로 승가공동체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을 규율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계율이라는 사실 자체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상좌불교 승가공동체는 부파불교라는 한계 속에서 움직이기는 했지만, 계율의 유사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석가모니 당시에 작동하고 있었던 계율을 다시 확인해 가면서 수행공동체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적 확인은 거의 가능하지 않지만, 최소한 《사분율》이나 《오분율》 등을 통해서 계율을 중심에 두는 수행공동체로서의 의미를 잃지 않고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상좌불교 승가공동체 계율의 근본정신과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수행공동체로서의 승가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과 도덕으로서의 의미’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석가 입멸 후 100년을 지내면서 조금씩 초심을 잃고 있었을 당시의 승가공동체가 수행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석가 당시에 마련된 계율을 지속적으로 확인함으로써 그 청정함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은 역으로 당시의 승가공동체가 그 청정함을 상당 부분 상실했거나 시대적 상황이 상당 부분 변화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어떻게 보든지 당시의 계율은 깨달음을 지향하는 수행공동체로서의 승가공동체를 유지해주는 최소한의 공통 규범으로 작동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분명하게 유추해 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이러한 계율의 의미가 타율적이고 외적인 규범으로서의 율(律)과 자율적이고 내적인 규범으로서의 계(戒)와 통합되면서 승가의 자율적인 운영은 물론 그 ‘구성원들 개개인의 삶에서 청정함을 지탱하게 하는 지렛대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이러한 비구와 비구니의 청정함은 그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했던 장로 우바새와 거사를 통해 재가공동체로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의 청정함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도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긍정적인 의미와 함께 당시의 불교가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파화되다가 다시 수십 개의 ‘부파로 분열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목적의식의 일정한 상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비구와 비구니를 중심으로 사중승가가 형성되면서 지니고 있었던 깨달음을 향한 열망은 석가가 설한 교리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쟁점을 중심으로 각자의 입장에 충실하는 논쟁과 지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런 과정은 곧바로 본래의 목적의식 즉, 깨달음의 지향이라는 의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계율이 그러한 세속화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 작동했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교의 이론화와 교리 중심의 쟁점화는 각 부파의 관심사와 연결되면서 그 계율마저도 논쟁의 대상에서 배제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빚었을 가능성이 높다.

2) 상좌불교 계율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가?

(1) 만해와 용성, 한영의 계율관

부파불교의 승가공동체를 전제로 해서 형성된 계율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유효한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차원의 문제를 고려할 것을 전제로 하여 비로소 찾아질 수 있는 이론적이면서도 실천적인 문제이다. 우선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필요로 한다. 만약 그 우리가 한국불교의 승가공동체를 중심에 두는 사부대중 공동체의 구성원을 의미한다면, 상좌불교의 계율은 거의 대부분 승가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그 적용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역시 현재 우리 승가공동체의 계율로서의 유효성을 묻는 질문으로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극단적인 입장으로 ‘율장은 금서(禁書)’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지점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그러나 율장에 등장하는 거사들의 위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율장의 제정 과정에서부터 재가자들은 온전한 국외자로 취급되지 않았고, 승가공동체가 온전히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바새와 우바이라는 두 주체가 배경이 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계율 준수를 통한 깨달음의 지향이 재가자들의 깨달음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율장은 금서일 수 없다. 대승계율에 오면 보살계가 그 중심을 이루면서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의 거리는 더 좁혀지게 되지만, 상좌불교 계율의 경우에서도 그 핵심 지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러한 상좌불교의 계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범위 안에서 지켜야 하는가이다. 대부분의 계율이 석가모니 당시의 승가공동체 안에서 벌어졌던 구체적인 사건을 사후적으로 판단하고 규제하는 과정에서 제정되었다는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상황에 맞게 개정하거나 취사선택하는 일이 가능해야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상좌부 율장이 비록 암송을 통한 결집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 자체라는 종교성을 고려한다면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입장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지어 이미 20세기 초반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경험하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인 역사를 갖고 있다. 승려의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만해 한용운과 백용성, 박한영 등이 벌인 논쟁이 그것이다. 물론 이들이 각각 서로를 직접적인 논쟁의 상대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서로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가고 있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논쟁의 출발은 승려의 결혼을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로 돌리자는 한용운에 의해 마련되었다.

그는 고려 말년 이후의 불교사에서 나타난 승려의 음탕한 행위로 인한 불교 전체의 오손과 같은 역사적 근거와 함께 화엄의 사사무애(事事無碍)라는 교리적 근거를 들어 ‘승려의 결혼을 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진실임이 분명하다.’는 강력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계율 일반에 대해서도 “다만 소승의 근기가 천박해서 욕망으로 흘러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을 상대하셔야 했기에, 방편으로 사소한 계율을 설정해 제한하신 데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현실을 고려해서인지 “그러나 나라고 해서 부처님의 계율을 무시하여 승려 전체를 휘몰아 음계를 범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그 자유에 일임하려 하는 것뿐이다.”라고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백용성은 오늘날 철학과 과학 등 배울 것이 많은 시대에 한문 경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선각자다운 주장을 한편으로 펼치면서도 계율에 관해서는 오후 불식(不食)과 묵언수행,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 등과 같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오늘날 조선 승려가 대처육식을 감행하여 청정사원을 더러운 마귀의 소굴로 만들고 승체를 돌아보지 아니하니 피눈물을 흘리며 통탄할 일입니다…… 승려의 대처육식을 엄금하여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1926년〈제2차 건백서〉)

용성의 계율에 관한 분명한 입장은 자신의 계맥을 상좌인 동산에게 전하는 전계증(傳戒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해동의 화엄초조인 원효대사가 전하신 대교의 그물을 펴서 인천(人天)의 고기를 걸러 올리는 보인(寶印)으로써 계영을 삼았으니, 정법안장인 정전의 신표와 함께 동산혜일에게 전하노니 너는 굳게 이를 호지하여 정법안장의 혜명으로 하여금 단절됨이 없도록 해서 부처님의 정법과 더불어 이 계맥(戒脈)이 영원무궁토록 할지어다.
세존응화 2963년 병자 11월 18일
용선진종이 전수하니 동산혜일은 받아 지킬지어다.

박한영의 경우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청년승려들이 계율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계율학 교재를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계학약전(戒學約詮)》이 그것인데, 이러한 작업과 함께 스스로 계행을 엄정히 하여 위당 정인보로부터 “만년에는 주로 서울에 머물며 속세에 있었지만 그 발자취 또한 청초하여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니, 마치 거울에 그림자가 스치는 것과 같았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상황을 ‘불교의 부활시대’로 규정하고 있는 그는 조선불교의 현대화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청년 불교계를 제대로 교육시키는 일이 가장 근원적인 대안인데, 그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교단의 강의 재료를 간략하면서도 알기 쉽게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현실로 구현한 것이 바로 계학에 관한 개론서인 앞의 책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그의 계율에 대한 입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 우리 시대 윤리로서의 불교 계율, 그 가능성과 한계

우리는 논의의 초점을 상좌불교 공동체의 계율이 지닐 수 있는 현재적 유효성의 문제를 그 공동체 안으로 한정짓지 않고 우리 시대 도덕담론으로서 가능성 문제로까지 확장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사분율》 등을 중심으로 하는 상좌불교 계율의 근본 정신과 의미를 수행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준거로서의 의미, 구성원 개개인의 삶 속에서 청정함을 유지하게 하는 지렛대로서의 의미, 그리고 부파분열로 인한 목적의식의 일정한 상실이라는 한계 등으로 정리해 보고자 했다.

비록 상좌불교 계율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4대 광율의 핵심 내용인 비구계를 어기는 대처(帶妻)와 육식(肉食) 문제를 둘러싼 20세기 초반 한국불교계의 논란을 만해와 용성, 한영이라는 당대의 거목들의 관점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기도 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논의의 초점을 계속 견지하면서 우리 시대 도덕담론 안에서 이러한 불교 계율에 관한 논의가 어떤 위상과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보는 일이다. 물론 그 불교 계율은 일차적으로 상좌불교 계율을 지칭하지만, 《범망경》으로 대표되는 대승계율이 굳이 배제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대승계율의 경우에도 수행공동체로서의 승가공동체를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성에 관한 인정과 수용, 더 나아가 도덕적 정당화까지 허용하는 자본주의 윤리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 시대와 사회에서 승가공동체라는 한정된 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불교 계율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에서 불교의 위상이 어떤지를 물어야 하고 또 깨달음과 이를 위한 수행이라는 강한 목적의식을 가진 승가공동체의 현황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불교는 전통종교이자 문화재를 보전하고 있는 관광지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템플스테이를 통해 불교의 수행전통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고 법정 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무소유 정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만, 소유를 목표로 삼는 일상적 삶의 변화가 어느 정도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교의 계율이, 그것도 깨달음이라는 최대도덕적 지향을 전제로 하는 상좌불교의 계율이 이 시대 도덕담론으로서의 유효성을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만약 유효성을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자본주의 윤리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는 혁명적 유효성이거나, 자본주의 윤리의 최소도덕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보완재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제한적 유효성 중의 하나를 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자는 개인의 이기성과 고립성에 대한 반격을 시도하는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일상적 삶 속에서 구현하기 위한 이 시대의 수행공동체를 제안함으로써 가능해지고, 후자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철학함으로서의 불교를 시도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우리는 이 두 시도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지점으로 내몰리고 있다. 20세기 초반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 불교의 미래를 위한 개혁에 뜻을 품었던 만해와 용성, 한영이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나 방향에서 다른 지향을 보였던 것은 어쩌면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포용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한 시대를 살아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좌불교의 계율이 깨달음을 전제로 하는 수행공동체로서의 승가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이자 과정 자체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다면 그 근본 정신을 계승하는 일은 가능한 차원을 넘어서는 당위의 과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부파적 당파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부 전락하여 깨달음의 지향이라는 본래 목적의식을 잃어버리고 조문 자체에 얽매이는 한계점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하고, 만약 그런 점에서라면 당연히 상좌불교의 계율은 극복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 극복의 역사적 과정은 이미 만해의 관점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화엄과 선의 지향이라는 북방불교의 전통 속에서 구현된 바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승가공동체를 수행의 공동체로 유지시킬 수 있는 이 시대의 계율을 새로 모색할 필요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이 시대의 계율은 승가공동체와 재가공동체,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가 쉽게 경계선이 그어지지 않는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었을 경우 거꾸로 시장에서 세계화 시대의 가정과 개인 삶의 영역, 재가공동체, 승가공동체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우리가 분명히 공유해야 하는 지점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 인간 삶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내포하는 이 시대의 걸림 없는 도덕담론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과 동의(同意)이다.

이러한 자각과 동의가 뒷받침될 수 있다면 상좌불교 승가공동체를 전제로 하여 성립된 《사분율》과 같은 계율은 물론 《범망경》으로 상징되는 대승계율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재구성이 시도될 필요가 있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광의의 깨달음이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면, 아니 그러한 여지를 마련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과정 자체 속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그러한 깨달음의 과정에 바치고자 했던 스님과 재가자들의 모형을 전제로 하면서 우리 시대 수행자의 모습을 불교 계율을 전제로 하여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지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또는 철학에 기대는 노력들도 충분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포용성도 필요하고, 우리 시대 삶의 과학기술적 전제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유의하는 전향적인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좌불교 승가공동체의 계율은 우리 시대의 도덕담론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한계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승가공동체와 재가공동체 사이의 거리가 한편으로는 더없이 좁혀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내면서 우리는 그 재가공동체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고 있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엄숙주의와 냉소주의라는 두 극단을 동시에 넘어서야만 한다. ■

 

박병기 /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 윤리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박사.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 수료. 전주교대 교수 역임. 현재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전문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 저서로 《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 등이 있음.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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