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본지 편집위원)

한 스님이 몸을 불살랐다. 남 보란 듯한 시위가 아니었다. 재가 될 때까지 홀로 있었다. 혼자 앉아 성도하신 부처님처럼, 자문자답(自問自答)의 시현이었다. 뭇 생명들의 삶터가 무너지고 있는 낙동강. 그 지류인 위천의 둑방 위였다. 반듯하게 접어 놓은 승복과 주머니 속 수첩에 유언이 적혀 있었다.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우리 사회의 최고통치권자를 향해 외친 객혈 묻은 질타였다. “원범, 각운 스님 죄송합니다. 후일을 기약합시다.” 구도의 길에서 ‘전부’라는 도반 스님의 저미듯 아플 가슴을 보듬는 일 역시 잊지 않았다.

유서 아래 이름을 남겼다. ‘문수(文殊)’라는 법명 옆에 ‘윤국환’이라는 속명 석 자를 함께 써넣었다. 속(俗)의 굴레를 벗고 승(僧)이 되었지만, 뭇 생명의 고통을 보다 못한 스님은 구도의 길조차 다음 생으로 미루었다. 보살도에서 지향하는 ‘나의 고통을 감수하며 남의 행복을 염원하는 분’이었다. 스님은 대학 시절에는 학생회장 소임을 맡아서 도반 스님들을 뒷바라지하였고, 졸업 후에는 선방(禪房)을 순회하면서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였다. 소신(燒身) 전까지는 무문관에서 견성(見性)을 지향하면서 수행하던 수좌였다. 견성을 …….

견성. 견불성(見佛性)의 준말이다. 문자 그대로 ‘불성을 본다.’는 뜻이다. 불성은 ‘불이중도(不二中道)’라고 풀이된다. ‘이분법에서 벗어난 중도’를 의미한다. 요샛말로 표현하여 ‘탈이분법(脫二分法)’에 다름 아니다. 《열반경》에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고 하듯이 ‘모든 생명의 본질’이다. 간화선에서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의 화두를 들 때, ‘없다’는 의미의 무(無)라고 생각해도 안 되고, ‘있다’는 의미의 유(有)라고 생각해도 안 되고, 유무(有無)라고 생각해도 안 되고,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생각해도 안 된다. 간화선 수행자는 이러한 사구(四句) 또는 흑백논리의 이변(二邊)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생각을 중도로 몰고 간다. 중도의 궁지에서 생각이 터지고 감성이 터지면서 불성을 자각한다.

 생각과 감성에서 이분법의 사슬이 끊어진다. ‘삶과 죽음이 다르다.’는 분별에서 벗어났기에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나와 네가 다르다.’는 감성의 벽이 무너졌기에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수수방관하지 않는다. 동체대비의 마음이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가 극심해질 때, 사회적 이분법을 타파하는 일에 앞장선다. 불이중도의 정의감이다. 중도불성을 철견(徹見)한 자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생명의 고통에 무심하지 않으며, 사회적 차별을 방관하지 않는다. 문수 스님이었다.

경북 군위의 지보사(持寶寺)에 무문관을 차리고 3년간 일종식(一種食)을 지키면서 견성 수행을 하던 수좌, 문수(文殊)는 우리 사회가 생명의 본질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음을 보았다. 육척단신의 몸뚱이를 움직여서 이를 회복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급박했다. 인간의 탐욕으로 신음하는 생명들은 타자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 모습이었다. 인공구조물로 황폐화될 현장으로 달려갔다. 장삼과 수첩에 이 시대, 이 사회를 향한 준엄한 질책을 적었다.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러곤 방광(放光)삼매에 들었다.

부처님 당시에 승단은 사회참여에 소극적이었다. 승단은 사회와 분리되어 운영되었고 승단의 규범인 율(律: Vinaya)은 사회법과 달랐다. 앙굴리말라와 같은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승가의 일원이 되면 처벌하지 않았다. 반면에, 유리왕이 석가족을 말살한 예에서 보듯이 사회에서 참혹한 일이 일어나도 이에 대해 승단은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승가가 사회현실에 적극 참여하여 정치권력과 반목할 경우, 말살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승가를 사회와 완전히 분리시킨 것은, 동물적 인치(人治)의 시대에, 잔혹한 정치권력에서 승가를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한 부처님의 묘안이었다. 서구의 경우도 종교 조직은 일반 사회와 분리되어 있었다. 그 기원과 취지는 불교와 달랐지만 기독교의 성당이나 교회 역시 성역(Sanctuary)이라는 이름의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법치(法治)가 시작되면서 종교에 대한 정치권력의 횡포가 잦아들었다. 성역은 폐기하였지만, 특정 종교를 말살할 수도 없었다.

 근대화가 곧 서구화를 의미했던 우리나라였기에 이러한 종교중립적인 법치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부처님 당시와 달리, 승가 역시 사회법의 제약 아래 있다. 승가가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적극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심성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과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七情)으로 구분하는데, 사단은 탈이분법의 마음으로 중도불성에 다름 아니다. 맹자는 인(仁)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풀이하였는데, 이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자비심에 다름 아니다. 또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풀이한 의(義)는 사회적 차별을 타파하는 정의감과 악을 멀리하는 지계(持戒)의 마음이다. 겸양지심(謙讓之心)인 예(禮)는 남을 배려하는 하심(下心)이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인 지(智)는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반야지혜(般若智慧)에 비견된다. 모두 탈이분법의 발현이다. 현실정치에 적극 관여했던 맹자의 가르침 가운데 우리 불교인에게 교훈이 되는 내용은 수오지심과 시비지심이다.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구분할 때, 과거 불교의 승단은 개인윤리인 지계의 수오지심에는 철저했지만, 사회윤리인 정의의 수오지심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승가 역시 사회법의 제약을 받는 현대사회이기에, ‘탈이분법의 불성’을 추구하는 불교인이라면 사회적 차별을 타파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또 맹자가 지(智)의 발현을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마음[시비지심]’이라고 했듯이, 불이중도의 반야지혜를 체득한 수행자는 ‘분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상황에 맞는 ‘절묘한 분별’을 내면서 살아간다. 유식학에서 말하는 묘관찰지(妙觀察智)의 분별이다.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다시 돌아가자. 현 정권 출범 이후 북한에 대한 압박이 계속되었다. 남북 간의 교류 대부분이 끊어졌다. 금강산 관광 역시 중단되었다. 개성공단의 앞날 역시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쥐도 궁하면 고양이를 문다(窮鼠囓猫).”고 했던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천안함 침몰이었다. 지난 7월 말 동해상에서는 ‘불굴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었다.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서는 일본 자위대 장교들이 참관하고 있었다. 북한에 대해 한미 군사동맹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자신들에 대한 무력시위로 착각한 중국이 발끈하였다.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4대 강국의 이해타산에 맞추어서 한반도의 운명이 요리되었던 과거의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동아시아에서 힘의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선택하였다. 그러고는 북에서는 소련과 중국이 양팔을 잡아끌었고, 남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양다리를 잡아당겼다. 네 대의 마차에 사지를 묶어 달리게 하는 거열형(車裂刑)과 같았다. 허리가 끊어졌다. 분단이었다. 해방과 함께 느닷없이 우리 민족에게 가해진 이분법의 형벌이었다. 남과 북은 서로 총을 겨누면서 4대 강국에게서 부여받은 완충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동서 냉전이 끝나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인데도, 이곳 한반도에는 이데올로기의 관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천 년간 언어와 피를 공유해 온 북쪽의 혈육들을 우리의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민족의 정언명령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후 65년이 지났다. 기나긴 분단의 세월이었다. 남과 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부둥켜안고 해방의 기쁨을 환호했던 그날을 기억하는 세대가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한반도의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병이 드는데, 다른 쪽에서는 너무 못 먹어서 죽어가고 있다. 그들의 굶주림을 내 혈육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세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제 우리의 눈높이를 한 단계 올릴 시기가 되었다. 거시적 조망하에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분단의 이분법’을 타파하는 일.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민족적 실천이다. 묘관찰의 분별지를 가진 불교인들이 앞장서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


 2010년 9월
 김성철(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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