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나섰다.

아니, 스님만이 아니다. 천주교 신부들, 개신교의 목사들, 그리고 원불교의 교무들이 모두 나섰다. 바로 생명을 위해서다. 온 나라와 뭇 생명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온 나라와 뭇 생명을 죽이고 있는 주범은 대통령이고, 정부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공동정범 또는 종범이다. 이른바 ‘4대강 정비사업’은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는 반생명·반생태적인 사업이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신륵사에 서울 화계사의 수경 스님이 여강선원을 세워 하루도 빠짐없이 오체투지와 3보1배를 하고 있다.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공주 마곡사는 금강 자락에 금강선원을 세웠다. 지율 스님은 신도들과 함께 낙동강을 순례하고 있다. 조계종단은 4월 17일에 스님 1,000여명과 신도 1만여 명이 함께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를 봉행했다.

천주교 사제, 신도들은 5월 1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대규모 시국미사를 열었다. 명동성당 본당에서 시국미사가 열린 것은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처음이다. 23년 전의 명동성당 시국미사가 억눌리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것이었다면, 23년 만에 열린 시국미사는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이다. 천주교는 4대강 현장에서 권역별 기도회와 단식투쟁, 침묵미사 등을 벌이고 있다.

개신교 목사들은 4대강 파괴 현장에서 생명을 향한 금식기도를 드렸고, 이들의 종교적 양심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움직였고, 마침내 국내 최대 교단 조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4월 24일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원불교 교무들도 4대강 사업 반대에 동참했다. 신륵사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4대 종단 종교인 기도회’도 열린다.

4대강 사업은 유사 이래 최대의 국토 파괴를 자행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과 국민이 걱정하고, 그리고 종교인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정부는 홍보부족으로 인한 오해에서 일부 종교인들이 움직이는 것이라며 애써 모르쇠 하고 있지만 4대 종단이 종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은 드문 일이다.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제 와서 아무리 반대한들 대통령이 뜻을 바꿀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왜 이렇게 무리하게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을까. 온 나라를 뒤집어엎는 초대형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이 차분한 검토 없이 불도저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거쳐 국민의 동의를 받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문화재, 환경, 치수 등 치밀한 사전조사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대통령의 뜻이라는 이유로 문제투성이의 4대강 사업을 합리적 절차와 법 규정을 무시하면서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도저히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는 비유 그대로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해도 22조 6천억 원이나 된다. 불과 1년 전에 4대강 사업구상을 발표할 때 예산 규모는 13조 9천억 원이었다. 그 뒤 정부 발표 예산안은 점점 늘어났고, 30조 원이 넘을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속도전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회피하는 것도 문제이다. 몇 년에 걸쳐 수십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대형국책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 등이 없이 강행되는 것은 국가재정법은 물론 헌법까지 어긴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사업을 하는데 왜 예비타당성 조사에 1~2년을 허비해야 하느냐”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다”면서 국가재정법에 명시돼있는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했다. 법률에 따른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4대강 사업을 무조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짓고, 자손 대대로 피해를 끼치는 악업을 쌓는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삽질사업’으로 전락할 거라며 환경 대재앙을 우려하고 있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을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강바닥에 막대한 돈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토목 전문가와 하천 전문가의 주장도 무시하면 안 된다.

정부가 ‘생명의 가치보다는 개발의 가치, 자본의 가치에 기울어있’고, ‘죽어가는 강과 그 강에 기대 사는 단양쑥부쟁이·수달·재두루미·꾸구리·남생이·얼룩새코미꾸리 같은 자연형제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막고 있’음을 지적한 종교인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귀 기울여야 한다. 지리산댐 문제, 천성산 터널 문제, 동강댐 문제 등 1990년대에 종교계가 벌였던 환경운동의 성과를 기억해야 한다. 


종교계는 4대강 반대운동을 하면서 6·2 지방선거와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강의 생명’을 약속하는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투표를 통해 4대강 사업에 대해 분명히 심판하겠다는 것은 환경과 종교 교리를 근거로 한 낙선운동인 셈이다. 법회, 예배, 미사 등 일상적인 종교 행사에서 설법, 강론 등을 통해 4대강 사업의 실상을 알리고, 이것을 6·2 지방선거에서 표심으로 반영하자고 하면 그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정부가 더 큰 위반을 저질렀지 않은가. 

대통령은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이라며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이 토목 사업이 아니라 친환경 사업이자 물 확보, 홍수 예방, 수질 개선, 친수공간 확보, 지역경제 활성화 등 1석5조의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라며 문화사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4대강 사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 현장에 나가 보라. 불교 경전에 우주는 부처님의 몸이고 나의 몸이라 했는데, 4대강 ‘삽질’은 우주를, 부처님의 몸을, 내 살을, 내 피를 마구 죽이고 있는 끔찍한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종교계가 4대강 사업을 공개적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생명을 보전하고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 여기는 성직자로서 강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고 나아가 생명까지 죽이는 잘못된 정책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종교적 양심 때문이다. 나라가 아프니 스님들도 아프다. 강이 아프니 스님들도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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