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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출판의 모순 / 이성운
[43호] 2010년 06월 25일 (금) 이성운 정우서적 대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낸 책이 불교 책이었다는 사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안다. 

불교 책이 최초의 금속활자로 출판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시대적 정황이 있겠지만 목판과 필사의 한계를 극복해 더 나은 불서를 만들기 위한 불제자들의 의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활자로 나온 책과 달리 필사본이나 목판본은 그 나름의 예술적 멋과 필사하고 판각한 이들의 혼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많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오류와 수정의 어려움, 서체의 통일 등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활자로 책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론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은 불서를 만들고자 했던 선조들의 정신에서 오늘의 우리, 불교출판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상업적 출판의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 불교 책은, 주체가 나라든 사원이든 그 기금을 모아 필요한 책을 내는 인행불사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불교출판은 이념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일차 이익이 되지 않는 책은 나올 수 없다. 이 과정에 상업성은 없지만 그 비용을 필자가 부담하는 자비출판이 적지 않게 출현한다. 이것은 불교출판에 한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자비출판은 엄밀히 말해 출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교출판은 무엇인가. 물론 불교출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책의 내용이 불교와 불교에 대한 신념에 상충되지 않아야 한다. 겉으로는 불교를 표방하지만 비불교적 요소가 적지 않다면 이는 불교가 아니라 불교를 잘못 말하는 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불교와 비불교를 판정하는 기준에 대한 논의가 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보적인 기점의 하나로 삼법인, 사성제, 무아와 같은 교학에 어긋나지 않는가를 비교해 보는 것이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논평되고 심사되는 논문과 같은 글이 아니고는 이와 같은 검증이 없이 출판된 책이 적지 않다.

불교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불교와 먼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불교 책으로 출판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불교출판자와 편집자들이, 출판하려고 하는 책의 내용이 불교 교학에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데까지 일일이 검증할 수는 없다.

또 전문학자일지라도 사상과 입장에 따라 검증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출판자와 편집자들의 불교학에 대한 열정과 신념, 교학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축적이 전제될 수 있으면 참 좋지 않을까. 또 하나 아직은 조금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일반출판사에서 행해진다고 보이는 편집자문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는 출판의 목적이 불교와 불교에 대한 신념을 가진 필자에 의해 쓰인 책이라야 불교출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불교를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불교를 비방하거나 폄훼하고자 하는 목적이 저변에 깔려 있다면 이는 불교출판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타 종교인에 의해 쓰인 수준 높은 불교 책이 적지 않은 현실에 지나치게 국수적이거나 종학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비불자에 의해 쓰인 책은 불교 관련 책이지 불교출판은 못 될 것이다.  

셋째는 두 가지 요건이 갖추어진 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보급하는 이들이 단순히 상업적 목적만이 아닌 그 신념에 동조하는 이들에 의해 보급되는 책이라야 불교출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 대한 신념에 찬 이에 의해, 또 불교의 가치에 적합하게 쓰인 책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단지 상업성 목적으로만 출판된다면, 일정 부분은 불교출판물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불교출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상업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출판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불교 책이 초판 이후 수정판이나 재판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비록 이윤은 적을지라도 인행되었으면 하는 책이 적지 않다. 운영의 묘를 살려 소량 출판이 가능하게 되면, 필자와 출판사의 동의 아래 적지 않게 행해지는 복제를 줄일 수 있다고 보이는데 아쉬울 때가 적지 않다. 잘 알려진 어느 출판사는 소량 출판으로 꾸준히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지심체요절’을 만든 이들이나 그것을 만들고 유통한 이들이 모두 불자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주체와 작자는, 오늘날과 같은 불교출판인이 아니라 불교 수행자였음은 분명할 것이다. 올곧은 수행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을 때는 적어도 오늘의 불교출판과는 상황이 다르므로 적어도 위에서 말한 문제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 책이 상업성을 전제로 한 비수행자, 또는 비전문가들에 의해서 제작 보급되는 현실에는 적지 않은 모순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자신의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를 설립하거나 내 책을 내 줄 출판사가 없다면 아무리 제작비를 지원해 주는 후원자가 있어도 출판하지 않는다’는 어느 교수이자 적지 않은 저서를 가진 선생님의 자기 기준은, 적어도 위 세 요건을 어느 정도 충족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쓰일 필요가 있고 출판해도 되는가.’ 하는 소용성과 가용성은 여전히 나의 화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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