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적 발전을 위한 원칙과 4대강 사업

1. 심포지엄의 배경과 풍경

이도흠 교수
한양대 국문학과
불교환경연대와 사단법인 에코붓다를 중심으로 한 스님, 학자, 시민활동가들, 언론인 등 4백여 명이 모여 지난 3월 4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4대강 개발, 다른 대안은 없는가―생태적 발전을 위한 원칙과 4대강 사업〉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

새만금과 4대강 개발을 반대하고 이 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오체투지, 4대강 순례 등 온몸을 던져 싸워 온 수경 스님의 발원으로 지난 2009년 11월 5일 뉴서울호텔에서 수경 스님, 최연 불교사회연구원 원장, 유정길 에코붓다 대표,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 정우식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이봉규 불교환경연대 간사 등이 모여 정부의 마구잡이식 4대강 개발의 대안을 모색하는 심포지엄을 열기로 하고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현각 스님, 법응 스님, 김응철 교수, 유정길 대표, 최연 원장, 박경준 동국대 교수 등 기획위원은 스님, 학자, 시민활동가, 언론인을 망라하여 불교, 환경·생태, 사회·문화, 정치·경제 분과로 나누어 4개 분과로 심포지엄 연구단을 조직하였다. 박경준 교수를 좌장, 유정길 대표를 운영위원장으로 하여 각 분과마다 분과위원장(1분과 서재영, 2분과 오충현, 3분과 이도흠, 4분과 권영근)을 선정하고 스님, 학자, 시민활동가, 언론인 등 8명에서 10명을 배정하였다.

불교환경연대와 에코붓다는 4대강 문제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비난하지만 말고 시민단체의 주장과 정부의 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진지한 대안을 모색하며, 정책 권고도 하자는 취지로 각 분과에 소속된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수십 차례 회의와 토론을 했고, 낙동강도 실제 답사를 하면서 연구한 끝에 그 결과물을 3월 4일 프레스센터 19층 국제회의실에서 발표하였다.

그날 19층 국제회의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좌석이 꽉 찼고 서서 발표를 듣다가 돌아간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신경림 시인,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보선 스님, 조계종 사회부장 혜경 스님, 지율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과 천주교 수원교구 전교구장 최덕기 주교 등 이웃 종교인과 시민사회활동가 등이 참석하여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수경 스님은 인사말에서 ‘사회가 개발이라는 돈에 집착하는 사회로 전락하는 걸 보며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4대강 사업 등 현 정부의 무모한 개발 정책을 부처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가만히 방관해서는 안 될 문제다. 불교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중노릇이 40년을 넘었다는 이 숫자가 부끄럽고, 지금의 중노릇은 하나의 직업으로 전락했다. 불교조차 경제 논리에 함몰됐다.’고 사자후를 토하였다.

심포지엄에서는 불교를 비롯해 환경·생태, 문화·사회, 정치·경제 등 4개 분야 전문가 32명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분야별로 지적하고 4대강을 제대로 살리기 위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어, 많은 대중이 발표와 토론을 시청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연일 거의 전면을 할애하여 4대강 사업을 다루고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도 연이어 집중적으로 보도하였으며, 야당도 이에 호응하였다. 이날 심포지엄을 계기로 4대강 사업이 다시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6·2 지자체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였다는 것이 중평이다. 지면 관계상 정치경제, 환경·생태, 사회문화 등 3분과를 한 장으로 종합하여 축약하고 불교 분야와 대안만 따로 장을 설정하여 기술한다.

2. 정치경제적, 환경·생태적, 사회문화적 관점

1) 4대강 사업의 논란

정부의 주장과 이를 비판하는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4대강을 개발하여 홍수를 막는다.
진정 홍수를 막으려면 지류 개발로 전환하여야 한다. 국토해양부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더라도 2009년 7월에 지류에서 99.5%, 4대강에서 0.5%의 홍수가 발생하였다. 최근 10년간 통계를 보더라도 홍수는 지류에서 95~99%가 발생하였기에 MB정권이 진정으로 홍수를 막으려면 본류보다 지류 살리기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자르강에서 보듯 콘크리트 보를 쌓을 경우 유속이 빨라지고 완충지대가 없어져 홍수가 더 크게 난다. 선진국은 홍수의 대안으로 제방을 쌓는 대신에 강의 유역을 넓히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강바닥을 파고 제방을 높이면 수면이 주변 농경지나 마을보다 높아져 홍수와 침수 피해가 늘어난다. 더구나 수리모형 실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사업을 강행한 바람에 비가 많이 올 경우 보를 쌓은 주변에 대홍수의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② 용수가 부족하여 4대강 사업으로 13억 톤의 용수를 확보한다.
물은 현재 4대강 전 지역에서 남으며, 13억 톤은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보를 쌓고 바닥을 준설한 후 생기는 용적을 계산한 것일 뿐이다. 현재 낙동강의 경우 1,100억 톤의 물이 남으며, 4대강 모든 지역에서 용수는 남는다. 정부 측 보고서는 1인당 1일 생활용수 수요량을 453리터로 계상하여 물이 모자란다고 하였는데, 이 수치는 일본인 평균인 350리터보다 100리터나 과다하게 계상하여 추정한 것이다.

식수가 부족한 지역은 4대강과 전혀 관련이 없는 해안, 산골, 섬 지역이다. 정부 책임자(4대강살리기 마스터플랜 연구책임자 김창완) 스스로 ‘보를 막고 준설하니까 10억 톤의 용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계산이 나오더라.’라고 하여 이 사업 자체가 용수 확보에 있지 않고 운하 건설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수치를 맞춘 것임을 드러냈다.

③ 34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일자리를 외려 줄이고 있으며, 지역경제를 중앙에 더 종속시킬 것이다. 모든 것을 중장비에 의존하기에 취업 증대 효과는 최대로 잡아도 2만 명 미만이며(지금 현재 각 댐당 투입된 인원은 200명이 넘지 않음), 오히려 현재 2만 2천 명의 농부가 삶의 터전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였으며, 이 예산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기술개발에 투자할 경우 수백 배의 취업 효과를 유발할 것이다.

더구나 사업을 추진하는 세력은 현대건설, SK건설 등 중앙의 건설사이기에 지역경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지역경제를 중앙에 종속시키고 있다. 국가 주도 수질개선 사업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지방정부 주도의 수질개선 사업에 비해 3배 이상 작게 나타난다.

④ 5, 6급수 상태의 4대강의 강물을 맑게 한다.
4대강은 지금 현재 대부분 지역에서 1, 2급수에 달한다. 보를 쌓고 물을 가두어 관리한다는데, 물은 흐름이 막히는 순간 자연정화가 일어나지 않아 썩기 시작함은 상식이다. MB정권은 기폭 시설 등 각종 첨단기기와 시설로 물을 정화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들 스스로 강물이 오염될 것을 전제한 것이며 저절로 맑게 흐르는 물을 오염시켜 놓고 기기를 동원해 이를 강제로 정화하여 해마다 수천억 원의 정화 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울산의 태화강도 보를 허문 이후 맑아져 새와 물고기가 돌아왔으며, 선진국은 보와 댐을 해체하고 원래의 강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도 매년 50개에서 150개의 보를 해체하고 있었으며, 고양시 곡릉천 곡릉2보의 경우 보 철거 전 3.4∼6.1ppm이었던 BOD(생화학적 산소 요구량)는 철거한 지 1년 후 1.6∼2.1ppm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⑤ 4대강 사업은 대운하와 엄연히 다르며 강을 살리는 사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하자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그 약속 이후 진행한 4대강 사업은 이름만 바꾼, 실질적인 대운하 사업이다. 실제로 모든 사업 현장에서 보를 세워 강을 호수로 만들고 5미터 이상의 깊이로 강바닥을 준설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운하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4대강 사업’ 예산의 25퍼센트가 들어가는 준설은 5.6억 톤에 달하며 그중 4.5억 톤은 낙동강에서 파낼 예정이다.

 유역 종합 치수와 정비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만큼의 모래와 자갈을 파낼 합리적 근거 없이 홍수 방어 목적을 둘러대지만, 이미 낙동강에서 토석을 준설한 물량이 2억여 톤에 이르고 하상이 최대 9.4미터나 낮아져 홍수 방어 능력이 커졌다. 4.5억 톤이면 안동댐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200미터가 넘는 폭으로 6미터를 쌓아야 하는데, 준설토 야적 장소, 선별 기준, 처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다.

현재 계획된 보에 갑문을 나중에 설치하면 쉽게 운하로 변경될 수 있다. 강바닥을 일정 깊이로 파서 수심을 유지하려는 보 계획은 갑문이 없어도 ‘구간운하’로 볼 수 있으며, 향후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예산을 매몰 처리한다면 운하 전환은 순조로울 수 있다. 갑문만 추가하므로 나중에 운하가 경제성이 있다고 우길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가 아니고서는 목적이 없는 사업이다.

2) 4대강 사업으로 예상되는 결과

강에 관한 사회문화 및 예술적 관점의 분석은 ‘흐르면서 쌓고 나누면서 하나로 아우르고 죽이면서 살리는’ 강의 세 가지 역설에 관한 이야기다.

강은 흐르면서 쌓는다. 강은 상류에서부터 하구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고 흐른다. 때로는 여울을 안고 졸졸 흐르지만 때로는 넘쳐서 도도하게 흐르고, 때로는 제소리를 감춘 채 장중하게 흐른다. 강은 흐르면서 퇴적물을 쌓고 그 퇴적물에 풀과 나무씨가 뿌리를 내려 숲을 이루고 숲에는 벌레와 짐승이 깃들며, 사람들은 그 풀과 나무, 동물들을 따라 마을을 만들고 문명을 이루고 이 위에 시간이 다시 흐르고 쌓이며 역사를 형성한다.

수십억 년 동안 퇴적물이 쌓이고 그 위로 숲이 생기고 온 생명이 깃들며 이루어진 우리네 강가에는 구석기 시대 때부터 일본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년 동안 조상이 터전을 이루며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다.

강은 나뉘어 흐르면서 온도와 습기와 흙과 어우러짐을 달리하고 이에 맞추어 물고기와 벌레들과 풀과 나무가 종을 달리하고 그를 사냥하고 채집하고 경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다르게 하여, 이 강과 저 강을 사이로 경작하는 작물과 의례와 사투리까지 차이를 보인다. 우리네 강에는 각 지류와 유역마다 다양한 종들의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강을 낀 마을마다 다양한 문화가 있다. 그러면서 강은 어느새 합쳐져 물고기와 새와 풀과 나무, 사람들이 강을 중심으로 서로 소통하며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

강은 죽이면서 살린다. 강의 미생물을 물고기가 먹고, 물고기를 새가 먹으며 새가 죽으면 미생물이 분해한다. 한 마리의 물고기만 보면 죽은 것이지만, 그 물고기를 다른 물고기가 먹고 알을 낳고, 남은 살과 뼈에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깃들여 산다. 강의 전체 시스템에서 보면 물고기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물고기와 미생물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강이 흐를 때 파괴는 창조가 되고 죽음은 삶이 된다.

4대강 사업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흐르면서 쌓고, 무수한 차이를 빚어내면서 하나로 통하고 어우러지게 하고, 죽이면서 살리는 강의 이런 역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사업은 역사 유물을 훼손하고 다양한 종의 생명을 죽이고 그 강과 더불어 살던 지역공동체를 파괴하고 생명과 사람이 소통하는 물길을 막는 파괴 행위다.

현 정권이 추구하는 대로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예상된다.

① 국토가 철저히 파괴되고 이 땅과 강과 바다가 오염되어 수많은 생명이 죽고 국민의 건강도 해칠 것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2009년 환경부에 제출한 〈기능을 상실한 보 철거를 통한 하천생태통로 및 수질개선효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고양시 곡릉천 곡릉2보의 경우 보 철거 전 3.4~6.1ppm이었던 BOD(생화학적 산소 요구량)는 철거한 지 1년 후 1.6~2.1ppm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이는 댐을 설치하면 그 반대로 수질이 악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6개의 댐 설치로 물은 상당한 정도로 오염될 것이며, 하천 바닥의 오니(汚泥)를 준설하고 중장비로 강변과 습지를 밀어 버리고 제방을 쌓고 자전거도로를 건설하는 바람에 쑥부쟁이를 비롯한 한국 고유종의 식물과 물고기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죽거나 종이 멸종될 것이며, 수많은 생명이 깃들었던 강변의 습지가 사라질 것이다. 국민들도 오염된 물을 먹고 건강을 해칠 것이다.

2010년 1월 27일과 28일, 가물막이 공사가 밤낮없이 진행되는 낙동강 유역에서 오니에 포함된 독극물인 비소가 미국의 기준치보다 높게 나타났다. 준설 때문으로 1,300만 시민의 식수원을 위협하는 사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오니에 포함된 중금속과 독극물이 준설로 밖으로 나와 강물에 녹을 경우 상수원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수 있다. 6가크롬도 한강과 낙동강에서 미국의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었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담당자는 강바닥의 표층만 조사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② 홍수나 침수 등 재앙이 곳곳에서 발생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토목공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홍수나 침수 등 대재앙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 정권은 4대강 수리모형 실험 등을 제대로 하지 않고 댐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박창근 교수는 “의무 사항인 수리모형 실험 결과가 나온 뒤 실시설계를 완료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설계를 끝낸 뒤 실험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것은 중대한 절차 위반”이라며 “수리모형 실험 결과에 따라 보의 규모나 형태, 심지어 위치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도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결국 실험 결과를 설계에 반영할 뜻이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마지못해 실시한 수리모형 실험에서도 가장 취약한 부분인 댐과 이어진 둑 사이의 실험은 하지 않았다. 2009년에는 박재현 교수가 대한하천학회 세미나에서 “관리수위를 해발 7.5m로 할 경우 함안·창녕·의령군의 40.0㎢가 침수 위험 지역”이라고 밝히자, 한국수자원공사와 경남도 관계자들은 이를 부정하였다가 나중에 인정하여 댐의 높이를 낮추겠다고 하였다.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전국적으로 1,000∼1,800㎜이며, 국토가 좁고 7월에 집중적으로 내리기에 홍수 가능성이 크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예상된다. 바닥을 준설하여 하상이 낮아질 경우 지하수위도 낮아져 토양의 수분이 말라 숲과 식물이 쉽게 말라 죽을 수 있으며 마을의 샘물이나 우물이 마를 수 있다.

③ 243점의 귀중한 문화재와 1,400곳의 문화재 분포 지역이 침수되거나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한국인은 좁은 한반도에서 많은 인구가 집약적으로 문명을 건설하고 살았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꽃피웠다. 서양인들은 일본문화를 높게 평가하지만, 고대에서 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불교철학과 같은 높은 형이상학과 불상, 불화 등 예술문화, 벼의 경작 등 생활문화 대부분의 문화와 지식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한국의 강변 대부분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는 역사 유적지요 문화 보존지역이다.

4대강의 유역은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문명을 꽃피운 터전이다. 예를 들어 상주댐이 건설되어 침수가 될 지역인 상주시의 마애습지는 좁은 지역에 구석기부터, 신석기, 청동기 시대부터 고대와 중세 시대의 유물이 모두 발견되는 곳이다. 계획대로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 243점의 귀중한 문화재와 1,400곳의 문화재 분포지역이 침수되거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법으로 보장된 문화재 조사도 제대로 행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④ 마을의 지역공동체가 해체될 것이다.

강은 퇴적층을 쌓고 그 퇴적층엔 수많은 생물이 깃들고 그를 경작하고 사냥하며 사람들은 마을을 형성하였다. 강으로 나뉜 마을은 다른 언어와 관습, 의례, 놀이를 행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특히 한국은 21세기 오늘에도 공동 경작인 두레와 교환 노동인 품앗이를 행하고 마을 공동으로 의례와 놀이와 축제를 행할 정도로 공동체의 유산이 강하다. 안동하회별신굿의 고장인 하회마을은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다른 강변의 마을도 한 시민단체에서 유네스코 등재 세계복합문화유산으로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형성하고 있는 역동적인 유산이다.

4대강 사업으로 마을에서 삶을 영위하던 2만 2천 명의 농민이 직업과 농토를 잃고 이주민으로 방랑하고 있고, 남은 농민들도 4대강 개발로 서로 갈등하고, 물신의 지배를 받으면서 인간적인 연대는 깨지고 공동체는 붕괴되고 있다.

⑤ 토건 카르텔은 장기집권을 달성하고 지역의 민주화는 종언을 고하고 부패 구조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 사업에서 토건 카르텔은 수조 원을 챙겨, 일본의 자민당 체제가 그랬던 것처럼 장기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할 것이다. 이 경우 이 땅의 민주주의 또한 사망하고 부패는 구조화한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하여 건설사, 현 정권의 관련 당사자, 지방 토호, 이들에 기생하는 언론인과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토건 카르텔은 대략 수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이익을 챙길 것이며, 이들은 이를 기반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이 유착에 의한 부패 구조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지방 토호들과 검찰 등, 지방 정치인과 언론인으로 엮인 카르텔의 이익과 권력 구현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런데 22조 원에 이르는 토건 사업이 진행되고 그로 말미암아 수조 원에 이르는 돈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 토건 카르텔의 장기집권을 달성하고 이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⑥ 개발 지향형 인간을 양산할 것이다.

인간의 몸은 생명의 힘을 나르고 유지하게 하는 혈관이 없거나 막히면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한다. 우리 사람들이나 다른 동식물 등의 생명체가 서로서로 일부분이 되어 전체를 이루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에서 뭇 생명체가 진화해 가듯이 땅도 진화하고 강도 진화한다. 강에서 놀며 크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성장의 자리는 더 나아가 강 주변의 수많은 생물의 놀이터이자 성장 장소이기에 모든 생명의 삶의 공간이며, 이것이야말로 강과 어우러진 생태적 삶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4대강 사업은 이 땅의 강만이 아니라 내 안에, 내 심성 안에 흐르는 강을 막아 오직 경쟁과 생산성의 효율만을 향해 달리게 하며 너와 나,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멈출 줄 모르고 달려드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강은 어릴 때는 강과 더불어 헤엄을 치고 물고기를 잡고 놀던 경험을 주고, 커서는 늘 강가에 서면 그를 추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도시생활에 지친 자들이 자연을 보고 가슴에 담으면서,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을 보며 생태적인 상상력과 감수성이 솟아나게 하는 원천이다. 4대강 사업은 그런 강을 파괴하여 생태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상상력과 감수성의 원천이 사라지게 한다.

강에서 노동을 하고 놀이를 하고 공동체를 이루던 사람들은 이를 예술로 형상화하고, 우리는 그 작품을 통해 강가의 노동과 놀이, 공동체 사람들의 공동의 상상력을 복원하고 강이 흐르면서 축적한 집단의 기억을 공유한다. 4대강 사업이 계획대로 행해지면, 유역의 작물과 생물이 바뀌고 이를 기르고 잡으면서 행하던 노동과 놀이가 사라지고,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며, 그 노동과 생활과 유대를 바탕으로 전승되던 집단 공통의 기억이 사라진다.

한국의 아파트가 ‘아파트형 인간’을 만드는 것에서 보듯,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인간을 만든다. 유역을 메우고 지은 공장과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달집 태우기 등의 놀이와 추수한 뒤의 마을굿에서 느낄 수 있는 환희와 행복을 헤아릴 수 없다. 이 공간에서 자란 아이들은 강이 품고 있는 자연으로부터, 그 자연을 노래한 예술로부터, 그 예술로 형성하게 되는 세계와 기억과 그 의미로부터 소외된다. 결국 이들은 유역을 메우고 지은 공장을 닮은 개발지향형의 인간으로 자랄 것이다.


3. 불교적 관점에서 본 개발과 4대강 사업
     ―지속가능한 삶과 생명평화를 위한 불교의 세계관

1) 4대강 사업과 녹색성장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며, 세계의 주인도 아니다. 지구는 인간이 잠시 머물다가 가는 곳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지구는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것이며, 공간적으로 보면 무수한 생명과 존재들로 구성된 생태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곳이 지구이다. 따라서 현 인류는 아주 짧은 순간 지구를 빌려 쓰고 있을 따름이다. 현재 인류의 이익에 초점을 두고 자연을 파괴하거나 생명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공간적으로는 지상의 모든 생태계, 시간적으로는 미래 세대와 무수한 생명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업을 짓는 것이다.

2) 중생의 아픔과 녹색불교(Green Buddhism)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다’고 했다. 보살의 삶을 지향하는 불자들은 뭇 생명의 절박한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 그것은 곧 나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파괴로 인해 중생이 고통받고 있다면, 불교는 환경을 지키는 불교가 되어야 하며, 생명평화를 실천하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 개체 생명의 불살생과 행복도 중요하지만, 모든 생명은 인드라망처럼 서로 조건이 되고 서로 깊은 영향 관계를 맺고 있기에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수억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다.

따라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생명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대승적인 실천이다. 이에 생태위기 시대의 불교는 개체 생명의 행위윤리와 안심을 위한 불교에서 모든 생명의 평화, 모든 존재의 공존과 공영을 위해 실천하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 4대강 사업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불교가 우려를 표명하고 저지에 나선 것은 이와 같은 시대 인식에 근거한다.

불교에는 생태위기를 해결하는 데 ‘자원’이 될 다음과 같은 전통과 가르침을 담고 있다.

첫째, 불교는 나와 타인의 관계 그리고 나와 대상 세계의 유기적 관계성을 강조하는 연기적(緣起的)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둘째, 불교는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불살생을 근본 교리로 하는 자비의 생명윤리를 제일의 행위윤리로 삼고 있다.

셋째,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물론 산^강^나무^풀[山川草木]과 같은 자연에도 불성(佛性)이 내재하여 있다는 자연관을 지니고 있다.

넷째, 업설(業說)과 윤회설에 기초하여 행위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도덕관을 지니고 있다.

다섯째, 욕망을 추구하는 삶보다 욕망의 해체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지향하는 인생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교 사상의 특징과 전통은 어디까지나 가능태이지 현실태는 아니다. 이에 불자들은 모든 존재들이 직면한 생태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는 녹색불교(Green Buddhism)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녹색불교는 인식의 전환을 전제로 한 사상운동이자 의식개혁이며, 참다운 삶을 위한 각성운동이며, 생태적 삶을 위한 생활문화운동이자 사회변화 운동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녹색불교는 단순히 남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데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 또한 욕망의 구조를 유지시키는 부품의 구실을 해 왔으며, 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배포하고 누려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녹색불교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참회와 성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와 같은 참회의 에너지를 원력으로 승화시켜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3) 존재의 상호관계성을 통찰하는 연기론적 세계관

불교 사상의 핵심은 모든 존재는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 의존해 있다는 연기론(緣起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존재의 상호의존관계는 인간 간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나와 남, 나와 사회, 나와 동물, 나와 강, 나와 자연 등으로 무한히 확장된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서로 의지하고 돕는 의존관계 속에 존재하고 변화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온 우주와 의존관계 속에 있으며, 역으로 나 역시 온 우주를 책임지고 있는 위대한 존재가 된다. 연기론은 내가 곧 우주이며, 우주가 곧 나라는 자기 확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라는 울타리를 해체함으로써 나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전 우주와 소통하고, 우주적 대아(大我)가 되는 것이 연기설이다.

결국 연기법은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 의존해 있는 원인과 조건이 무너지면 개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존재론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모든 존재는 서로 의존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며, 연기적 관계성으로부터 독립된 개체적 실체는 없음을 의미한다. 모든 개체는 연기적 관계로부터 단절되는 순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개체적 존재의 공(空)이라 하며 개체적 자아의 무아(無我)라고 한다. 따라서 연기를 이해할 때 나는 ‘나’라는 작은 울타리를 넘어 광활한 대지와 하나가 되며,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 현재, 미래로 확장된다.

연기설에 따르면 자연은 뭇 생명의 의지처이고, 뭇 생명은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의 존재이다. 자연은 생명과 둘이 아니며, 나와 둘이 아니다. 나의 확장이 곧 자연이며, 나는 전체 자연과의 연기적 관계성에 의해 태어나고 숨 쉬고 있다. 따라서 자연은 소유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과 배려의 대상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인간과 자연을 둘로 보는 이분법적 가치관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은 우월적 위치에서 자연을 개발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희생할 수 있다는 가치관에 근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은 무자비한 개발로 자연적 존재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고리를 파괴하고 있다. 나아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자연과 연결된 나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 강이 파괴되면 생명들의 서식지가 파괴되며, 서식지가 파괴되면 생명이 파괴되고, 생명이 파괴되면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연기설이기 때문이다.

4) 불살생을 제일의 행위윤리로 삼는 자비의 생명관

불교 사상은 모든 존재의 상호관계성에 대한 통찰을 핵심으로 한다. 삼라만상은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화엄의 법계연기론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자각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동체대비(同體大悲)라는 사상적 지평이 확립된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한 몸으로 보는 큰 자비를 실천하고, 인연 없는 중생까지 자비심으로 교화하는 분’으로 이해되는 것도 이런 자각의 표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생명은 나와 동등한 무게를 지닌 존재들이며, 부처님과 같은 불성을 지닌 존엄한 존재들이다. 따라서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불살생은 불교의 가장 중요한 실천윤리가 된다.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 할지라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중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역시 부처님과 같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까지 존중해야 한다면 눈에 보이는 다른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불자의 실천윤리는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이지만 좀 더 적극적인 실천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방생(放生)으로 확장된다. 생태계 파괴로 생명이 멸종위기에 처하고, 4대강 사업으로 생명들이 대량으로 죽어간다면 그와 같은 파괴적 사업을 저지하는 것이 불살생의 윤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길이다.

5) 불성을 지닌 자연과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자연관

대승경전인 《열반경》에서는 ‘일체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고 설하고 있다. 모든 존재에게 부처님과 같은 존엄성이 내재해 있으며, 불성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모든 존재는 ‘동일한 법의 성품을 공유하는 존재[同一法性]’가 된다. 불성론은 인간의 평등을 확립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동물, 식물, 자연적 사물로까지 확장되어, 강이나 산과 같은 무정물(無情物)조차도 부처님과 같이 존중해야 할 대상이 되는데 이를 ‘무정불성(無情佛性)’이라고 한다.

불교의 불성론은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해체하는 철학적 근간이 되며, 여기서 인간과 동물^식물^자연을 존중해야 하는 윤리적 지평이 열리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4대강에 의지해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에게도 불성이 있으며, 나아가 4대강 자체는 물론 강변의 바위와 나무들에게도 불성이 부여된다. 따라서 그들도 인간과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들도 생존하고 번영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여야 한다. 불행히도 4대강 사업은 인간중심의 개발이며,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중지해야 한다.

자연에 대한 불교의 또 다른 관점은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이다. 법계연기설은 마치 ‘생태계(ecosystem)’의 개념처럼 모든 사물은 독립적이거나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바라본다. 이런 맥락에서 《화엄경》에서는 ‘생명과 그 생명을 둘러싼 환경은 한 뿌리(同根)이며 둘이 아니다’라고 설한다. 인간은 개체와 환경의 경계선을 긋고 독립된 개체를 고집하지만 사실 그 둘은 한 몸이라는 것이 법계연기의 통찰이다.

그래서 승조(僧肇) 스님은 “천지는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이라고 했다. 이처럼 나와 자연이 나와 둘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눈앞에 놓인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할 어떤 명분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곧바로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분명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연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의정불이(依正不二) 사상에 입각해 보면 생태계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며, 생태계의 번영은 곧 나의 행복이다. 따라서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도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6) 업설(業說)과 불교의 도덕관

업설에 따르면 중생의 행위는 두 종류의 과보를 발생시킨다. 첫째는 정보(正報)로서 행위자 자신인 중생을 발생시키고, 둘째는 의보(依報)로서 행위자가 의지해 살아가는 국토, 즉 환경을 발생시킨다. 결국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니므로 인간의 행위와 활동에 의해 그들이 살아가는 자연과 환경도 달라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마경》에서는 정보(正報)에 해당하는 인간의 마음이 맑아짐에 따라서 그들이 살아가는 국토와 환경도 깨끗해진다고 설하고 있다.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위가 올발라야 하며, 행위를 결정짓는 것은 가치관과 세계관이므로 근본적으로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르게 변화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념에 입각해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해 각종 환경파괴적인 개발은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질 때 비로소 저지할 수 있거나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은 한반도의 자연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킬 것이므로 강과 강둑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결과는 언젠가 인간이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인과업보의 엄중한 법칙이다.

7) 욕망을 줄이고 맑은 가난을 지향하는 인생관

환경문제의 근원은 과학기술이나 산업화와 같은 표피적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와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로마클럽 보고서는 20세기 중반에 이미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21세기 이후 급격한 ‘성장의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작금의 인류는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해야 할 만큼 심각한 환경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물론이며 물질적 소비를 통해 욕망을 분출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왜곡된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마땅히 수정해야 한다. 이제는 저소비 사회, 자연적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소박한 삶, 지구를 가볍게 밝는 삶의 양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삶이 이런 방향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삶과 행복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관이 변화해야 한다. 불교는 욕망의 확장과 물질적 소비를 통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설한다. 부처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물질을 포기하고 평생 무소유로 일관하며 숲에서 생활했다. 달마 대사는 ‘구함이 있으면 모든 것이 고통이지만 구함이 없으면 이 자리가 곧 극락’이라고 말하며 무소구행(無所求行)의 실천을 제시했다. 나아가 육조혜능 역시 욕망을 줄이고 소박한 삶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욕지족(小欲知足)을 설파했다.

《법구경》에는 “꽃의 아름다움과 색깔, 그리고 향기를 전혀 해치지 않은 채 꽃가루만 따가는 벌처럼 잠에서 깨어난 이는 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되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소박하고 겸손하게 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4대강 사업을 계기로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의 삶이 나의 이웃과 자연을 파괴하지 않도록 맑은 가난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4. 생태적 발전을 위한 원칙과 4대강 사업의 대안

1) 생태적 삶을 위한 패러다임의 혁신

홍수를 막는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댐을 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이 흐르는 대로 물길을 터주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성을 추구한 엘리트들의 기저엔 이항대립의 패러다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적 사유에는 하나가 다른 것보다도 우위를 차지하고 지배하는 폭력적 계층 질서가 존재한다.”(Jacques Derrida)라는 지적처럼, 이 패러다임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양자 가운데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우월한 권력을 부여한다.

서양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추구한 엘리트들은 이에 따라 댐을 쌓듯 인간 주체가 자연에 도전하여 자연을 인간의 의도대로 개발하고 착취하는 것을 근대화로 간주하였고, 이것으로 그들은 17세기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댐은 물의 흐름을 방해하여 물을 썩게 하고 결국 거기에 깃들여 사는 수많은 생물을 죽이고 심지어는 주변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대로, 원효(617~686)가 펼친 화쟁 철학의 불일불이론(不一不二論)에 따르면, 씨는 스스로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으나 열매와의 ‘차이’를 통하여 의미를 갖는다. 씨와 열매는 별개의 사물이므로 하나가 아니다[不一]. 사과 씨에서는 사과를 맺고 배 씨에서는 배가 나오듯, 씨의 유전자가 열매의 거의 모든 성질을 결정하고 열매는 또 자신의 유전자를 씨에 남기니 양자가 둘도 아니다[不二]. 씨는 열매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공(空)하고 열매 또한 씨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이 또한 공하다.

그러나 씨가 죽어 싹이 돋고 줄기가 나고 가지가 자라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열매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씨를 낸다. 씨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면 씨는 썩어 없어지지만 씨가 자신을 공하다고 하여 자신을 흙에 던지면 그것은 싹과 잎과 열매로 변한다. 공(空)이 생멸변화(生滅變化)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세계는 홀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을 공하다고 하여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생태 문제에 적용한 실례가 있다. 진성여왕(887년~896년) 때 함양군의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은 그곳을 흐르는 위천이 해마다 홍수를 일으키는 문제와 마주쳤다. 화쟁 사상을 추구한 최치원은 홍수를 막기 위하여 댐을 쌓는 대신 물길을 트고 너른 숲을 조성하고 숲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게 하는 대안을 택하였다. 지금도 지리산 자락의 함양에 가면 폭 2~3백 미터에 길이가 2킬로미터에 달하는 활엽수만으로 이루어진 상림(上林)이란 무성한 숲이 있다.

1920년대 전까지만 해도 그 두 배 규모의 숲에 여러 개의 실개천이 흘렀다 한다. 씨와 열매의 관계처럼, 물은 나무의 양분이 되고 나무는 물을 품어 주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위천은 천여 년 동안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을 맑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패러다임으로 18세기에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면 환경파괴가 없는 산업화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지속 가능한 발전의 패러다임이다.

2) 생태화 전략에 기초한 물이용의 원칙

첫째, 물은 다른 주체의 목적에 복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합목적성을 가지기 때문에 자신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며 흘러가고 지구적 차원에서 계속 순환되어야 한다.

둘째, 물은 모든 생명체―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존에 필수적이고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이 없기 때문에 생명체의 기본적 권리로 취급해야 한다.

셋째, 인간에게 국한시켰을 경우, 물은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식수를 일정하게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3) 토건적 관점에서 생태복지적 관점으로

우리는 이제 파괴적인 토건국가를 개혁하고 생태적인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총체적 관점이다. 강은 단순히 많은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강은 강바닥과 강변과 강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세 요소를 모두 올바로 인식하고 보호해야 한다.

둘째, 생태적 관점이다. 강은 다양한 지질구조에 근거한 극히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강은 미생물, 수초, 풀, 나무, 벌레, 물고기, 조개, 거북, 수달, 새 등 수천 종류의 수천만 개체가 너무나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는 생태계이다.

셋째, 인문적 관점이다. 강은 단순히 우리의 생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4) 녹색사회의 자연이용에 대한 자세와 원칙
①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② 인간은 생명과 자연의 지속성에 책임을 갖는다. 
③ 순환성과 지속가능성의 원칙 
④ 정의와 민주주의의 원칙 
⑤ 최소 이용의 원칙
⑥ 지역공동체 주체의 원칙

5) 정부에 대한 권고

이제 우리는 물이 햇빛에 반짝이며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고 갈대가 속삭이면서 우리에게 늘 생명의 경이로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는 이 심성의 자리인 강변에 와서 함께 느끼며 강에 대한 무수한 기억들을 재현하고, 이 강과 생명을 지키는 실천을 행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때이다. 정부에 대해서는 다음을 권고한다.

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과 합의와 동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② 하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③ 본류가 아니라 지천 살리기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
④ 충분하고 다양한 조사 이후 진행하여야 한다.
⑤ 서두르지 말고 속도를 조절하며 실시하여야 한다.
⑥ 시범지역을 선정하여 실시하고 이를 분석하고 검토한 후에 전국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양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의상·만해연구원 연학실장, 한국학연구소 소장, 《문학과 경계》 주간 등 역임. 현재 실상사 화엄학림 외래강사, 조계종 포교원 통일법요집 편찬 연구위원.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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