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뇌과학과 불교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으로 시작된다. 대학 생활 중에 이 경에 대한 특강을 들으면서 신비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오리무중에 빠지던 기억이 난다.

10여 년간의 외국 생활 끝에 포항공대로 돌아와서 뇌과학 연구를 하며 이 경을 다시 읽게 되면서, 이 경이 결국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로 불교에 더 접하면서, 불교 자체가 뇌과학이 추구하는 바와 동일한 주제, 즉 마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반야심경》에서는 뇌 기능을 두 가지 축으로 갈라서 다루고 있다. 뇌에 정보가 생성되는 경로로서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과 이 정보로 인하여 나타나는 뇌의 반응으로서의 ‘수상행식(受想行識)’이 그 두 가지이다. 따라서 6가지 감각 정보 각각에 따라서, 오온(五蘊)이 형성된다. 예를 들면, 색(色)의 정보에 의하여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형성되는 식이다. 즉 육입(六入)과 오온은 뇌 기능의 매트릭스(matrix)를 구성하는 세로−가로의 요소이다.

이는 뇌/마음의 작동 상태를 보는 대단히 탁월한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뇌의 근본 기능이 생명체가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정하여 이를 몸으로 하여금 실행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뇌가 개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이유이다.

여기에서, 언뜻 생각하기에 석연치 않을 수도 있는 점이 있다. 뇌 밖의 환경으로부터 뇌 안으로 들어오는 정보로부터 비롯되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에 의존하는 전5식(前五識)과 뇌 내부에서 축적된 정보로부터 생성되는 제6 의식(意識)을 함께 6식(六識)이라는 한 그룹에 속하는 요소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는 뇌과학적으로 볼 때에 매우 뛰어난 통찰이다. 왜냐하면, 정보는 그것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건, 내부에서 생성된 것이건 구분 없이 뇌에서 비슷한 반응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매실을 생애 처음 입에 넣고 씹어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을 느끼고 입안에 침이 돌게 된다.

그 다음에는 매실을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돈다. 더 나아가서, 매실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돌게 된다. 즉 매실을 씹을 때의 자극 정보[香, 味, 觸]가 매실을 보거나[色] 매실을 상상하는[法] 것만으로도 뇌에 생성된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생성되었건 간에 이 정보에 대하여 뇌는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는 가상현실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2. 모든 존재 행위에는 뇌의 작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존재 행위는 우리에게 뇌가 있어서 가능하다. ‘마음’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뇌가 기능을 멈추면 이러한 모든 존재 행위도 끝이 난다. 따라서 뇌를 연구하는 것은 곧 우리의 마음을 연구하는 한 방법이 된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는 10년간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10년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심리학적 증거에 의하면 전문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예: 김연아 선수). 전문가가 되었다고 할 때에, 우리 몸의 어느 부분이 전문가가 되었을까?

손가락 하나를 사고로 인하여 잃어버린 후에도 재즈피아니스트 버드 파웰(Bud Powell)은 계속 훌륭한 연주를 했던 반면에, 첼로 연주자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와 같이 뇌질환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마감하게 된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즉, 뇌가 바로 ‘전문가’가 되는 부분의 핵심이다.

뇌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와 몸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뇌와 몸의 관계를 인간의 경우에서 살펴보면 뇌가 몸의 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 다양한 동물을 진화적 관점에서 비교해 보는 관찰 방법이 유효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아메바나 짚신벌레와 같은 단세포 동물에는 뇌는 고사하고 신경도 없다.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단세포의 개체로서 환경의 정보를 세포 표면에서 받아들이고 이 정보가 세포 내에 전달되어 그에 따른 생화학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그 반응은 세포생물학적 반응으로 연결되어 단세포인 개체의 행동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먹이가 탐지되면 먹이 쪽으로 가고, 해로운 독이 감지되면 반대쪽으로 도망가게 된다. 단세포에서 이러한 정보의 전달은 쉽게 이루어지지만, 다세포동물로 진화되면서 개체를 이루는 여러 개의 세포들이 이와 같은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기 위해서는 신경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경의 존재는 활동성이 있는 동물의 특성이다. 바닷속 바닥에 붙어서 사는 해면동물은 1m가 넘는 크기로 자랄 수도 있는 다세포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운데가 텅 비어 관처럼 생긴 몸의 중간 중간에 물이 스며들어 가는 구멍이 있다. 이곳으로 물이 들어와서 가운데의 관을 통해서 위쪽 출구로 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물에 휩쓸려 운반되는 먹이를 걸리는 대로 잡아먹고 산다. 식물이 신경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식물이 공기 중의 햇볕과 탄소를 받아서 사는 것처럼 수동적인 생존 방식이다. 신경이 필요 없는 이유이다.

좀 더 적극적인 먹이 사냥을 하는 동물에서 처음으로 신경이 나타나는데, 해파리, 말미잘 등의 원통형으로 생긴 동물들이다. 이들은 펼쳐 늘어뜨리고 있던 촉수의 하나에 먹이가 접촉하면 그 정보를 온몸의 세포에 전달하여, 촉수들이 함께 움직여서 먹이를 확보한다. 하지만 여기까지에서도 뇌가 발달되지는 않았다. 받은 정보를 복잡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 없이, 몸 전체로 빨리 전파하기 위한 신경그물만으로 충분하다.

뇌를 필요로 하는 것은 편형동물처럼 움직이며 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몸에 좌우의 구분이 생긴 때부터이다. 환경의 정보를 분석하여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를 결정할 필요가 생기면서 ‘뇌’가 생겼다. 이 결정이 생존에 긴요한 것이고, 이 정도의 분석에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듯하다.

아직은 뇌라기보다는 신경세포들이 여러 개가 한 덩어리로 모여 있는 ‘신경절’에 불과하지만, 이 신경절이 하는 역할은 더 발달한 동물에서 뇌가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미니 뇌는 편형동물로 하여금 학습, 기억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뇌와 이동성의 관계는 멍게에서 잘 드러난다. 멍게는 어린 유충 시기에는 물고기처럼 생겨서 헤엄쳐 다니다가 때가 되면 바위에 내려앉아 고착되어 멍게로 분화하여 자란다. 헤엄쳐 다니는 시기에는 뇌가 있다가, 고착되어 멍게로 자라면서 없어져 버린다.

좌우 구분하면서 헤엄칠 때에는 뇌가 필요했으나 고착 생활하면서 더 이상 뇌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후 다세포 동물의 진화는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수많은 동물로 발달하기에 이른다. 동물의 구조, 기능이 복잡화 할수록 뇌신경계는 따라서 복잡해져서, 결국 인간의 뇌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뇌는 분명 운동성 다세포 동물이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환경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여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수행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하여 생긴 것 같다. 즉, 몸의 필요에 따라서 뇌가 발달/진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뇌는 몸의 주인인가 아니면 몸의 수단인가? 간단한 답이 있을 수 없다. 둘은 함께 더불어 발달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포들이 모이고 나서 필요에 입각하여 뇌를 만들어 낸 것도, 뇌가 자기의 존재를 실현하기 위하여 세포들을 모아 몸을 만든 것도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할 때, 뇌가, 따라서 마음이 몸의 주인이라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움은 인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3. 신경회로의 전기적 작동으로서의 뇌 기능

오온개공(五蘊皆空)은 오온, 색수상행식이 모두 공이라고 한다. 항상하는 실체가 없으나, 또한 완전히 텅 빈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서술은 바로 뇌 기능에도 해당된다. ‘전기적인 회로의 작동’이 뇌 기능의 존재 방식이다. 활동할 때에는 전기적인 회로의 작동으로 존재하는 뇌 기능이지만, 회로가 쉬고 있을 때에는 존재하고 있는지를 찾기 어렵다. 물 위로 번져 가는 파도와도 같다. 파도가 존재하는 것인가?

파도를 비디오로 기록할 수 있고, 말로 서술할 수 있지만, 파도는 사과, 하늘, 강아지처럼 늘 손으로 가리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물과 바람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가 합치어 작용하여 생성되는 현상이다. 물론 사과, 하늘, 강아지마저도 항상하는 존재는 아님으로, 결국 모든 것이 항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파도는 없다고 말한다면 깊은 산속에서만 살았거나 머리가 돈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뇌기능도 마찬가지이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다. 다른 관찰 방법이 필요할 뿐이다.

색수상행식은 곧 뇌가 환경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나타내는 반응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다. 자극 정보에 접하여 감각이 일어나고[受], 그를 인식하고[識], 그로 인하여 느낌이 생기고[想], 그에 관하여 어떤 의도/의욕을 일으키게[行] 된다. 이것이 모두 전기적 신경회로의 작동에 의존하는 현상이다.

사람의 뇌에는 약 천억(100×109)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다양하고 복잡한 회로를 이루고 있다. 신경과 신경의 연결점은 시냅스라고 부르는 특수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사람의 뇌에는 약 백조(100×1012) 개의 시냅스가 있다고 추정한다. 즉, 뇌는 거대한 신경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복잡성에서 우주에 비견하는 이유이다.

뇌 기능은 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의 전기적인 활동에 의한 신경회로의 작동을 기본 바탕으로 한다. 이에 대한 연구, 특정 뇌 기능을 만들어 내는 신경회로의 구조와 작용 원리를 밝히는 것이 뇌 과학의 주요 주제이다.

예를 들어서 뇌는 외부 자극을 어떻게 인식하나? 오감[色, 聲, 香, 味, 觸]의 자극은 해당 감각기관에 존재하는 수용체 세포를 흥분시킨다. 각 기관의 수용체는 해당 자극에 전문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수화된 안테나에 비유된다. 수용체의 흥분은, 신경세포의 전기적 신호로 바뀌고, 이 전기신호는 신경 회로를 따라서 뇌의 상응하는 부위로 전달되어 그곳에 있는 신경세포들을 흥분시킨다.

즉, 외부의 신호는 뇌의 특정한 부위에 있는 신경세포의 전기적인 흥분으로 통역이 되어서 인식된다. 각종 감각에 상응하는 감각 피질의 지도가 밝혀져 있다.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을 통하여 인간의 여러 가지 뇌 기능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알려지게 되었다. 동물 실험에서는 더욱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여 분자/세포/회로 수준에 달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우리가 흔히 인간이 나타내는 고등 기능이라고 생각하던 뇌 기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존에 필요한 기능임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인간에게만 있는 기능이 아니고, 생쥐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다른 포유류에서도 발견되는 기능임을 알게 되었다. 감각뿐 아니라, 기억, 언어, 정서, 동작, 판단, 상상, 계획 등의 작용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뇌의 부위가 큰 구도로 밝혀져 있다. 이러한 다양한 뇌 기능의 세밀한 뇌 회로와 그 작용 원리를 밝히는 것이 현대 뇌과학의 주요 과제이다.

4. 오온(五蘊)의 뇌 회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각각의 과정을 담당하는 뇌 회로의 존재에 대하여 살펴보자.

예를 들어서, 통증이 있을 때에 그 통증이 몸의 어느 부위에 있고, 어떤 종류의 자극이고, 얼마나 강한 자극인지, 등을 감지하고 아는 것과, 그 통증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것은 뇌에서 구별되어 있을까? 직접 당하는 통증으로 괴로워할 때에, 뇌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한편, 사랑하는 이가 당하는 통증을 옆에서 보면서 진심으로 고통을 함께 하는 경우에, 뇌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즉, 통증고통과 공감고통 (共感苦痛, Empathy Pain), 두 경우에 뇌기능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특정 마음 작용이나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개체에서 자기공명영상기술을 이용하여 뇌의 상태를 분석함으로써, 그 마음 작용이나 행동을 일으키는 뇌의 작용 부위를 알아낼 수 있다. 이 실험을 통증고통/공감고통에 대하여 수행한 결과에서 보면, 공감고통 시에는 통증을 겪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들이 역시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단, 체 감각 피질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즉, 실제의 통증 감각에 상응하는 부분인 체 감각 피질은 활성화됨이 없이, 그 이후 단계(괴로워하는 데에 관여하는)의 뇌 부분들이 활성화됨으로써 공감고통을 겪게 된다. 통증을 느끼기(受)와 통증으로 괴로워하기(想)의 두 기능에 관여하는 뇌 회로가 구분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타인의 고통, 감정, 의도, 등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사회생활, 즉,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흔히 정신분열증, 자폐증, 사이코패스 등의 정신질환자에서 공감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임을 알 수 있다.

또 한 예로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디오 감시 시스템과 파수꾼은 둘 다 수상한 침입자의 출현 유무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파수꾼이 침입자를 발견하는 것은 침입자의 모습에서 반사된 빛의 특정한 패턴이 파수꾼의 눈동자를 통하여 망막에 도달하면서 시작된다. 침입자의 정보를 지니고 있는 이 빛 신호는 망막에 분포되어 있는 빛 수용체(photoreceptor)들을 흥분시킴으로써 특정한 패턴의 전기신호로 바뀐다. 이렇게 하여 생성된 전기신호에 들어있는 침입자 정보는 시신경을 통하여 뇌로 들어가고, 적절한 회로를 거쳐서 시각피질에 도달하여 그 곳의 신경세포들을 특정한 패턴으로 흥분시킨다. 이는 시각 인식을 유도하게 된다. 즉, 파수꾼이 침입자의 출현을 인식하게 된다.

감시 비디오 시스템에서도 이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침입자 정보를 지니고 있는 빛 신호가 카메라의 렌즈를 거쳐 감광판에서 전기적 신호로 바뀌고, 이 전기 신호는 전선을 통하여 모니터로 전달되고, 여기에서 다시 빛의 패턴으로 전환되어 투사된다. 여기 까지는 사람 뇌의 시각피질에 전달된 신경 흥분과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비디오시스템이 침입자를 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니터에 떠오른 영상을 보고서 침입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경비원이 필요하다.

비디오시스템에 갖추어져 있지 않은, 그러나 파수꾼은 갖추고 있는 이 기능, ‘본다’는 기능은 불교에서 안식(眼識)이라고 부른다. 이 기능의 뇌과학적 원리는 무엇일까? 시각중추에 생겨난 신경세포의 전기적 흥분 패턴을 ‘보고’서 이를 해석하는 어떤 존재가 뇌 속에 있는 것인가?

마치 감시 비디오 모니터에 떠오른 영상을 보고 해석하는 경비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꼬마 경비원‘이 뇌 속에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게 되면 이 꼬마 경비원의 뇌 속에는 또 다른, 더 작은 꼬마 경비원이 있어야 되고, 이 과정은 무한한 사슬처럼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명백한 오류이다. 물체를 보고 인식할 때에 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보이는 대상이 도둑이라고 판단하는 뇌 기전은 무엇인가? 이는 뇌 과학의 근본 질문이다. 물체를 보는 놈, 이놈이 뭣고?

5. 주체와 객체는 구분될 수 있나?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는 말은 불교에서 흔히 듣는 표현이다. 또 한,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고, 너로 인하여 내가 있다는 연기론(緣起論)적인 논의도 불교의 핵심적인 견해이다. 내 앞에 2m 떨어져서 네가 앉아있는데,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을 뇌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흥미 있는 점을 보게 된다.

앞에서 말한, 파수꾼과 침입자의 예에서 살펴보자. 파수꾼이 침입자를 본다고 할 때에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파수꾼이 주체이고 침입자가 객체가 된다. 그러나 ‘본다’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가려 보자. 침입자의 몸에서 특정 패턴으로 반사된 빛의 신호는 파수꾼의 눈동자를 거쳐서 망막의 빛 수용체에서 특정한 패턴의 전기신호로 전환되고, 이 전기신호는 시신경→시교차(optic chiasma)→시삭(optic tract)→외측슬상체(lateral geniculate body)→시방선(optic radiation)을 거쳐서 시각피질(visual cortex)에 도달한다.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지닌 빛의 신호는 그나마 객체의 변형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빛의 신호가 망막에서 전환되어 생겨난 전기신호가 시신경을 따라서 이동할 때에 이는 객체일까? 만일 이 전기신호를 객체라고 부르면, 내 뇌 안에 있는 시신경의 전기적 활동이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다. 시신경이 주체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인식의 주체에 대한 지나치게 단순한 이해일 것이다. 불교적인 표현으로 안근(眼根)에 가까운 것일 뿐이다. 위에서 이미, 시각피질에 신경세포의 흥분이라는 형태로 도달한 침입자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시각 인식으로  연결 되는가, 즉, 시각 인식의 주체가 뇌과학적으로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뇌과학의 근본 질문이라고 언급하였다.

이곳에 도달한 전기신호에 대해서도 주체/객체 논의는 무의미하다.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다. 주체와 객체는 본래 구분이 되지 않는 것, 둘이 아닌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논의를 한 발자국 더 밀고 나아가면 연기론(緣起論)의 주제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서 대상이 없으면, 즉 색(色)이 없으면 안식(眼識)은 생겨나지도 않고, 거꾸로 안식이 없을 때에 색은 이미 정보가 되지 못한다. 이 둘은 떼어내어 각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상호 의존하는 연기의 관계를 맺고 있다.

6. 뇌의 구조와 기능은 유전과 환경의 공동 작품

유전자는, 우리 몸의 기본 구조와 대체적인 기능을 지정한다는 점에서, 건축 설계 도면에 비유할 수 있다. 뇌의 구조와 기능도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본 설계 위에 환경이 작용하면서 다양성이 생긴다. 태어날 때에 겨우 400g 정도이던 신생아의 뇌가 성장하면서 약 1400g의 성인의 뇌로 자라난다. 그동안에 일어나는 많은 변화에 환경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이며, 전 생애 동안 계속되는 변화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작동하고 있는 뇌는 유전과 환경의 합작품이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뇌가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에 대응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환경이란 기후나 음식처럼 물리화학적인 것뿐 아니라, 경험, 학습 등 유전자 이외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육식(六識)을 통하여 도입, 생성된 모든 정보를 포함한다.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기도 한다. 외부에서 입력된 정보를 분석·처리하여 적절한 결론을 내리고 이를 출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비슷함은 여기에서 끝난다.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컴퓨터에는 소프트웨어(Software)와 하드웨어(Hardware)가 구분되어 있어서, 필요에 따라서는 사용하던 소프트웨어를 몽땅 새것이나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또는 한 컴퓨터에 있던 소프트웨어, 콘텐츠(Contents)를 뽑아서 다른 컴퓨터에 옮길 수도 있다. 반면에, 뇌에는 이 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경험의 결과로 뇌의 특정 회로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기게 되고, 이 변화로 인하여 회로의 작동 양식에 변화가 생긴다. 즉, 학습의 결과는 특정 뇌 회로의 기능 강화라는 형태로 저장되고, 이 회로는 다음에 동일한 정보가 들어왔을 때에 정보 처리를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변화가 계속 유지되면 기억이 된다. 우울증 환자의 뇌를 검사해 보면, 해마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연구도 있다. 임신한 동물이 심한 스트레스를 계속 받게 되면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주어, 태어난 새끼가 성장 후에 행동 장애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에 통합(Integration)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뇌가 겪어 온 과거의 경험이 뇌의 구조를 바꾸어 현재의 뇌의 작동 방법을 변화시킨다.’ 컴퓨터와 매우 다른 점이다.

7. 뇌과학으로 본 업(業), 업보(業報), 업장(業障)

위에서 설명한, 컴퓨터와 다른 뇌의 특성과 연관하여 불교에서의 중요한 개념인 업(業), 업보(業報), 업장(業障)의 문제를 뇌과학에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업-업보가 만사의 연기적인 인과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때에, 뇌가 유전과 환경의 합작품이라는 말은 곧, 한 개인의 독특한 뇌는 그 뇌가 태아에서 만들어질 때부터 끊임없이 작용한 유전과 환경이라는 업을 통하여 이루어진 업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태어난 후의 경험, 학습도 뇌에 업보로서 녹아들어 있고, 그 업보가 현재의 뇌 작동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개성이란 곧, 이 모든 것의 총화로서의 업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문제는 특정 회로의 변화가 때로는 이 회로의 작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때이다.

이는 곧 업으로 인한 장애, 업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 동일한 정보에 대하여 보는 이(정보에 접하는 뇌)에 따라서 다른 반응(다른 정보처리 방식)을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물 반 컵을 보고,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흐뭇해할 수도 있고, 겨우 반밖에 안 남았다고 비관적인 상태에 빠져서 괴로워할 수도 있다. 전쟁에서의 극도로 괴로운 경험으로 인하여 발병된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환자 경우에서처럼, 더 이상 위험이 없는 후방의 환경에 돌아와서도 없어지지 않는 불안, 초조, 우울 증상으로 고통받을 수도 있다.

생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하여, 이러한 뇌과학적 업보, 업장이 어떻게 하여 생기는지를 생각해 보자. 생쥐에게서 ‘공포 조건화 반응(fear conditioning)’이라는 학습 실험의 수행이 가능하다. 이 실험을 하기 위한 조건화 반응 상자의 바닥에는 전기 충격을 줄 수 있는 철망이 깔려 있고, 상자의 위쪽에는 일정한 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가 있다. 공포 학습은 생쥐를 이 상자에 넣어 두고 스피커에서 연속적 단음(monotone)을 30초 정도 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전기 충격을 주면서 소리와 전기 충격을 함께 멈추는 것으로 구성된다.

생쥐는 물론 전기 충격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생쥐는 나중에 다른 환경에서 공포 조건화 때 들은 것과 똑같은 음의 소리를 듣게 되면 ‘이 소리가 나면 잠시 후에 전기 충격이 올 것’이라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곧 닥칠 전기 충격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동작이 얼어붙어 버린다(freezing response). 또는, 소리 자극은 없이 조건화 실험을 하던 상자에 다시 넣어 주기만 해도 상자의 환경과 전기 충격의 연계에 대한 기억으로 인하여 마찬가지의 공포 반응을 나타낸다.

이러한 공포 조건화 반응은 매우 효과적인 학습으로서, 그 기억이 강력하게 형성되고 오래 유지된다. 이러한 학습을 경험한 생쥐의 뇌 회로를 검사해 보니 공포, 불안 등의 정서를 관장한다고 알려진 편도핵의 신경회로 기능이 매우 강화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뚜렷하고 강한 업보가 형성된 것이다.

조건화 학습을 한 생쥐가 공포 반응을 나타내게 되는 상황에서 주의 깊게 볼 점은, 이제 더 이상 전기 충격은 없는데도, 학습 시에 제시된 조건화 자극(소리, 또는 상자의 환경)만 있는 것으로도 학습된 공포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속담에, 자라에게 혼난 놈 소댕 보고 놀란다는 말과 비슷한 경우이다. 그런데 이 생쥐에 전기 충격 없이 소리 자극을 주는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이 생쥐의 공포 기억 반응 정도는 점차 줄어들어, 결국에는 같은 소리 자극에 대하여 더 이상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이 현상을 ‘공포 기억 소거(消去)’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공포 기억 소거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이다. 이 소거에 관여하는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경우이다. 생쥐의 경우에, 공포 기억 소거에 장애를 보이는 유전자 변이들이 알려지고 있다. 이 유전자 변이 생쥐는 반복적인 소거 실험(전기 충격 없이 주는 소리 자극)에도 불구하고 같은 소리 자극이 주어질 때마다 공포 반응을 나타낸다.

소거가 어떠한 뇌 회로에 의하여 수행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현재 뇌과학의 활발한 연구 주제이다. ‘소리와 전기 충격의 밀접한 관계’에 대하여 편도핵의 공포 기억 회로에 새겨진 구조적인 변화가 소거를 통하여 사라져서 원상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소리와 전기 충격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그 둘이 반드시 함께 오는 것은 아니다.’는 해석이 학습되어 새로운 회로에 기억되고, 이 새로운 기억이 기존의 기억의 작동을 억제하는 것인가? 이 경우, 뇌 회로 간의 경쟁인 셈이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주제이다.

너무나 강력한 부정적인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경험 하나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절망에 빠지거나 등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위에서 예를 든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도 그 한 예일 뿐이다. 이러한 장애는 경험(업)의 결과로 뇌에 생긴 변화(업보)가 뇌의 작동 방법을 부정적인 방향(업장)으로 이끈 예가 될 것이다.

8. 이러한 지식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현대의 뇌과학 연구는 종래의 ‘마음’에 대한 개념을 많이 바꾸어 놓고 있다.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마음’에 대한 해석을 할 수밖에 없던 종래의 전통적인 심리학의 입장으로부터 나아가 뇌 기능에 대한 실험적 관찰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마음 작용에 뇌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에서 적용하는 자기공명영상 기술, 뇌자도(MEG, magnetoencephalography) 등의 기술은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행동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동물에서는 훨씬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여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잡아내고 있다. 특정한 행위, 감정, 등에 어떤 뇌 부위의 어느 신경세포가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를 짚어 낼 수 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를 통하여 모든 존재 행위에 뇌의 작용이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을 아는 것이 나에게 무슨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종교처럼 안식을 줄 수도 있을까? 이에 대하여 두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내 몸이 접하는 모든 것은 내 뇌에 들어가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음식이건, 오감을 통한 정보이건 내 뇌는 환경과 소통을 한다. 운동을 하건, 술을 마시건, 이 모든 것은 뇌에 입력된다. 무엇을 나의 뇌에 들어가게 허락하고 무엇을 금지시킬 것인가는 나의 결정에 달린 일이다.

그 다음에는 뇌는 스스로의 작동 방법을 조정할 수 있음을 안다. 이는 제6식을 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교를 포함하여 다양한 심신 수행 방법은 바로 이 현상에 의지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모든 것이 마음이 지어내는 것[一切唯心造]이라는 말의 근거가 된다. 어느 회로를 작동하도록 선택할 것인가? 회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때로는 심장과 숨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회로를 쉬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것을 선택하는 주체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뇌과학적인 답은 아직 없다. 뇌과학 연구가 이러한 선(禪)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지는 두고 보아야겠다. ■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 책임연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 대학원 졸업.미 코넬의대 박사(유전학). 슬로안−케터링 연구소 선임연구원, Whitehead 연구소 책임연구원,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 한국생명공학연구협의회회장 등 역임.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KAST) 종신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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