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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불교문화유산 훼손 / 도윤수
[43호] 2010년 06월 25일 (금) 도윤수 doyounsoo@gmail.com

1.들어가는 말

올해 201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60이라는 숫자가 과거에는 한 갑자(甲子)가 돌았다는 의미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에는 반세기가 넘는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정도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나서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의 현실은 아직까지도 그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임과 동시에 그 전쟁 당시에 발생한 무수한 역사적 사실들과 그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영향 관계에 대한 평가가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본 글은 이러한 한국전쟁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당시 일어난 불교문화유산의 피해를 총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전쟁과 문화유산

전쟁으로 인한 사회의 피해는 인명과 재산 손실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에 대한 피해 역시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문화유산은 한번 파괴되면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기에 후대에 복구된다 할지라도 이미 그 진정성은 상실된 모조품일 뿐이다. 따라서 전쟁으로 인한 다량의 문화유산 파괴는 한 국가 또는 그 문화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 협약〉(1954년)이나 〈문화유산의 고의적 파괴에 관한 유네스코 선언〉(2003년)과 같은 국제조약과 선언들이 분쟁 또는 전쟁에 의한 문화재 파괴를 막기 위해 제정되고 이에 대한 실천 방안이 지속적으로 논의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위와 같은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의 파괴를 막기 위한 국제협약과 선언들은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의 사례로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발발한 이라크전을 꼽을 수 있다.

이라크군은 이라크전 당시 연합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세계문화유산을 방패 삼아 그 주변에 부대를 배치하였으나, 이를 무시한 연합군의 포격은 결국 이라크군뿐만 아니라 천년 고도인 바그다드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이라크 박물관과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산들이 전쟁의 혼란 속에 약탈되어 아직까지도 상당수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과거 숱한 외세의 침략과 전쟁이 있었던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문화유산의 수난을 경험하였다. 특히 불교문화적 배경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전쟁으로 인한 문화유산의 수난은 불교문화유산의 수난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재 수난은 아마도 고려 대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 황룡사 9층목탑(고려 고종 25년, 1238년 소실)과 부인사 초조대장경(고려 고종 19년, 1232년 소실)일 것이다. 이후 조선 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의해 전국적으로 승군 사찰이 파괴되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사찰 건축물들이 대부분 17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인 이유가 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전국의 유수한 사찰들이 전소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통도사, 금산사, 송광사, 화엄사, 선암사 등이며, 현재 폐사로 전해지고 있는 남원 만복사 역시 이때 전소되어 복구되지 못한 사찰이다.

3.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유산의 훼손

불교문화유산의 수난은 근대 이전에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때도 수많은 불교문화유산이 멸실되었다. 특히 현대의 고성능 무기 체계는 그 파괴력만큼이나 광범위하고 치명적으로 문화재에 손상을 입혔다. 한국전쟁 당시 불교문화재의 피해 상황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에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간행한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재》(총 5권)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본 장에서는 위의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재》의 내용과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31본말사 재산목록〉을 바탕으로 강원도, 서울·경기, 전라남도, 전라북도, 제주도 지역의 전쟁 이전의 사찰 현황과 전쟁 이후 현존 사찰의 상황을 비교하여 한국전쟁 당시 불교문화재의 피해 상황을 살펴보도록 한다.

 북한 지역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 조사된 자료가 없기는 하지만, 31본산의 목록과 북한에서 발간된 《우리절 안내》라는 책자에 소개된 북한의 사찰목록을 비교하여 피해의 추이를 추정하였다.

1) 강원도 지역의 피해 상황

강원도 지역은 현재 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와 제4교구 월정사 관할이지만 31본산체제 당시에는 27교구 건봉사, 28교구 유점사, 29교구 월정사를 본사로 하여 관리되었다.

강원도 지역의 사찰들 중 한국전쟁 당시에 피해를 입은 사찰은 25곳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그 피해 내용은 앞의 〈표 1〉과 같다. 위 내용을 보면 피해 사찰 25곳이 전소되거나 폐허로 변하였으며, 그중 일부는 복구되어 현재와 같이 유지되고 있으나, 14곳은 복구되지 못하고 폐사로 남아 있다.

이들 사찰들의 피해 중 상당수는 가해자가 누군지 불분명하지만 건봉사, 신흥사, 낙산사, 명주사, 백담사, 월정사, 상원사 등 상당수의 사찰은 미군과 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찰들이다. 특히 월정사와 상원사의 경우 전투 중에 소실된 것이 아니라 공비퇴치를 이유로 국군에 의해 전소된 사례이다.

이러한 사찰의 전소는 단순히 건축물의 소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문화재와 그 안에 봉안되어 있던 수많은 성보문화재의 소실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 국보 제25호였던 청평사 극락전이 전쟁 와중에 소실되었고, 신라 애장왕 5년(804)에 만들어져 경주 성덕대왕신종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동종으로 꼽히던 선림원지 동종은 월정사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국군의 월정사 소각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2) 서울·경기 지역의 피해 상황

서울·경기 지역은 현재 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와 제2교구 용주사, 제25교구 봉선사 관할이지만 31본산 체제 당시에는 총본산 태고사, 1교구 봉은사, 2교구 용주사, 3교구 봉선사, 4교구 전등사로 관리되었다. 서울·경기 지역의 사찰들 중 한국전쟁 당시에 피해를 입은 사찰은 57곳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그 피해 내용은 다음 페이지의  〈표 2〉와 같다.

이 내용을 보면 피해 사찰 57곳 중 39곳이 전소되거나 폐허로 변하였으며, 파주시 봉암사와 용인시 금수암 등 6개 사찰은 복구되지 못하고 폐사로 남아 있다. 서울 경기 지역의 피해 사찰들은 대부분 치열한 전투 중에 소실된 곳 들이다. 서울·경기 지역 사찰들의 피해는 시기적으로 1951년 1.4후퇴 때와 중공군의 4월 공세 당시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전투가 치열했던 상황 탓도 있겠지만 강원도 지역의 피해 양상과 마찬가지로 소위 초토화작전으로 불리는 미군의 소각 후 후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31본산 시기에 작성된 사찰 목록과 비교하면 전체 93개 사찰 중 36개 사찰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되어 전체 사찰의 28% 정도가 한국전쟁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불교문화유산의 훼손은 전투나 잔당 소탕 작전과 같은 전투 행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연천 심원사의 경우 보개산 전투로 일부 훼손이 된 상태에서 국군이 주둔하면서 부대원들에 의해 전각들이 해체되어 화목으로 사용되고, 일부 성보 및 기와 등은 후방으로 방출되면서 급격히 훼손 되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3) 전라북도 지역의 피해 상황

전라북도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직접적인 전투에 의한 피해보다는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에 근거지를 둔 빨치산들과 이를 토벌하려는 한국 군대와 한국 경찰들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 빨치산의 활동 범위가 산악 지역인 만큼 그 지역 산사들의 피해는 당시로서는 너무나 당연시되었다. 이 지역의 피해는 41개 사찰에 이르고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 페이지의 〈표 3〉과 같다.

피해 사찰 41개 중 가해주체가 확인된 곳은 28개 사찰로 이 중 내장사를 비롯한 26개 사찰은 한국군 및 경찰에 의하여 전소 또는 일부 소실되었고, 완주 운문사는 유엔군의 폭격에 의해 전소 후 폐사되었으며, 임실 도통암은 빨치산에 의하여 전소되었다.

전라북도 지역은 강원도 및 서울·경기 지역에 비하여 전소 비율이 높이 나타나는데 이는 빨치산의 근거지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한국 군경에 의하여 소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피해를 입은 사찰들 중 8개 사찰은 전후 복구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폐사로 남아 있다.

4) 광주·전라남도 지역의 피해 상황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은 전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당시 직접적인 전투에 의한 피해보다는 무등산과 지리산 등지에서 진행된 한국 군경의 빨치산 소탕 작전에 의한 피해가 컸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이전인 1948년 여순사건과 이때 조직된 광양 백운산 빨치산에 대한 토벌 과정에서 상백운암 등 7개 사찰이 전소되었다. 당시 훼손된 사찰은 다음 〈표 4〉와 같다.

전남 지역의 피해 사찰 41개 중 증심사, 수인사, 상백운암, 중백운암, 하백운암, 송천사, 용흥사, 대원사, 일림사 등 9개 사찰은 전쟁 발발 이전에 여순사건과 같은 시국사건이나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 전쟁 발발 이후 피해를 입은 28개 사찰 중 도갑사 등 4개 사찰을 제외한 24개 사찰이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찰이다. 가해 주체가 확인된 27개 사찰 중 빨치산에 의한 피해는 금곡사와 정수사 등 2개 사찰이고 나머지 25개 사찰은 한국 군경에 의하여 작전상 소각되었다. 당시 피해를 입은 사찰들 중 장성 석수암 등 6개 사찰은 복구되지 못하고 폐사되었다.

전소로 인한 문화재 피해 외에 전쟁이라는 혼돈 속에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가 행방불명이 되는 일도 발생하였다. 광주 증심사의 국보 제211호 금동석가여래입상과 제212호 금동보살입상은 전쟁 발발 이전 빨치산에 의한 피해를 염려하여 광주경찰서 금고로 이운하여 보관하였으나, 한국전쟁 발발 후 경찰은 이를 방치하고 퇴각해 유실되었다.

4)제주도 지역의 피해 상황

제주도 지역 사찰의 피해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인 1948년 11월경부터 1949년 2월에 걸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제주 4·3사건의 진행과 일치하는 것으로 전남의 여수, 순천, 광양 일대의 사찰들이 여순사건의 여파로 피해를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1947년 4·3사건 발발 이후 1948년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된 중산간 초토화작전 과정에서 사찰 방화가 저질러졌다.

제주 지역의 피해 사찰은 35개소로 모두 군경 토벌대에 의한 방화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증언되고 있다. 그중 10개 사찰은 복구되지 못하고 폐사로 남아 있다. 당시 훼손된 사찰은 앞 페이지의 〈표 5〉와 같다.

5) 북한 지역의 피해 상황

북한 지역 사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관계로 한국전쟁 당시의 피해는 물론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목록의 사찰들이 현존하는지조차 확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약하나마 현재 북한의 사찰 현황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로는 《조선의 절 안내》라는 책자가 있다. 이 책자는 일종의 문화유산 홍보자료로 북한의 문화재 관련 서적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조선문화보존사’라는 기관에서 2003년도에 발행한 것이다.

《조선의 절 안내》는 국내에 정식으로 출판되지 못했지만, 장용철선생(진각복지재단 사무처장)이 통일부에 북한 물품 반입 승인을 받고, ‘조선문화보존사’의 중국 대리회사인 ‘길성창유한공사’로부터 판권을 수입하여 《오늘의 북한불교》(장용철 편저, 진각종해인행, 2009년)라는 제목으로 편집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에는 암자를 포함하여 64개 사찰을 소개하고 있어 현재 북한 지역에 남아 있는 사찰은 최소한 64개 이상은 현존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총독부에서 조사하여 관보에 고시한 북한 지역의 사찰은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을 제외하고도 205개에 이르고 있어 전체의 70%에 해당하는 141개 사찰이 현재는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폐사 경위에 대한 자료가 없어 141개의 사찰이 모두 한국전쟁으로 폐사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남쪽의 사찰만큼이나 북쪽의 사찰들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4.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유산의 교훈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불교문화유산의 훼손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막대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내용이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살펴보지는 못하였고, 관련 자료 또한 공개되지 않고 있어 상당 부분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야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해 주체가 한국 군경인 사례가 상당하다는 점 또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불교문화유산을 지켜낸 미담 또한 많이 있다. 해인사에 대한 폭격을 거부하여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 빨치산 소탕 작전 과정에서 소각될 뻔한 화엄사를 구해 낸 차일혁 총경의 이야기는 단순한 일화나 미담이 아니라 그들이 지켜낸 문화유산과 함께 후대에 길이 전해져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이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전시 상황에서 일상을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엔 평화유지군에는 우리나라 장병들이 파견되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문화유산의 파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문화유산을 지켜낸 이들은 단순히 용기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유산에 대한 식견과 신념이 있기에 그와 같이 확고히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난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는 책임 소재가 아닌 객관적이고 정확한 기록, 그리고 그에 대한 겸허한 수용일 것이다. 이러한 정확한 사실과 그에 대한 수용만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한 사태를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 ■

 

도윤수 
불교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팀 선임연구원.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 졸업(건축역사 전공, 석사·박사 과정 수료). 2004년~2006년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문화재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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