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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불교’의 사상적 특성 / 허우성
[43호] 2010년 06월 25일 (금) 허우성 huh111@paran.com

1. 서론

   
무소유를 실천하며 아름다운 한글로 불교를 가르쳐 온 법정 스님(朴法頂, 1935∼2010, 이하 경칭 생략)은 올해 3월 11일 입적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보여 준 청빈함은 우리 마음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의 생애와 가르침은 근대불교 백년사와 우리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이 글의 목표는 법정 불교의 사상적 특성을 연구하는 일이다.

불교사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사라진 불교 경전을 발굴하여 한글로 번역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 까닭은 경전의 존재 이유가 그것을 체화한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에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물은 현재에는 자신의 모습을 포함하여 그가 관계한 세계, 곧 한국불교 전통과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미래에는 승속(僧俗) 모두에게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사는 복수의 인물로 구성된다. 한국근대불교 백년사를 보면 해방 전에는 송경허(1849∼1912), 백용성(1864∼1940), 박한영(1870∼1948), 한용운(1879∼1944), 송만공(1871∼1946), 방한암(1876∼1951), 이효봉(1888∼1966), 김경봉(1892∼1982) 등이, 해방 이후에는 이성철(1912∼1993), 선우도량(1990∼   ), 그리고 몇몇 재가불자 단체들이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한국근대불교 백년사를 기술할 때 흔히 근대 한국선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에서 시작한다. 경허가 활동한 시기는 조선 말과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시기와 겹쳐 있다. 당시 조선 말의 불교는 조선왕조 500년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심하게 위축되어 간신히 그 생명을 유지할 정도였으며 사회에 영향력도 거의 없었다.

사원은 모두 변두리 깊은 산속으로 쫓겨났고, 승려는 칠천(七賤)의 하나로 멸시와 수모를 받고, 서울 성내의 출입도 포교도 엄히 금지되었으며, 공적으로는 아무런 사회성도 조직도 가지지 못하였다. 불교는 주로 무교, 도교, 토속신앙 등과 습합(習合)되어 사적(私的)인 형태로 존재해 왔다. 근대불교가 위축된 주된 이유가 조선의 지속적인 불교 탄압이라는 것은 해방 전에도 오늘날에도 불교인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정설처럼 되어 있다.

심하게 위축된 무종산승(無宗山僧) 시대의 근대한국불교에 대해 일본불교가 침투해 온 것은 설상가상이었다. 조선의 유자(儒者)들이 가한 혹독한 불교 탄압의 결과와 일본불교의 한국불교에로의 치밀한 침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 학자들은 흔히 일인 승려에 의한 도성 출입금지 해제와 그 해제에 대해 일부 한국 승려가 열렬하게 환영했던 일을 예로 들고 있다.

일련종(日蓮宗)의 본불사(本佛寺) 주지 사노 젠레이(佐野前勵, 1859∼1912)는 조선불교가 이미 생기를 잃고 승려에게 종승(宗乘)이나 종지(宗旨)의 신조(信條)도 없다고 여기고, 조선 승려를 일련종으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사노가 착안한 것이 승려 도성 출입금지의 문제였다. 그는 1895년 총리대신 김홍집(1842∼1896)에게 〈승려 도성 출입금지 해제의 상서(僧侶都城出入禁止解除の上書)〉를 제출하고, 김홍집은 이것을 고종 임금께 올리고 고종은 이를 윤허했다고 한다.

수원 용주사의 상순(崔尙順)이라는 승려는 이에 감격하여, 조선 승려가 품고 있었던 ‘5백 년래의 원통함과 억울함(五百年來寃屈)’을 풀어 비로소 왕궁을 볼 수 있게 해 준 각하에게 축하의 절을 올린다고 했다. 1)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유가의 엄혹한 탄압과 그것에 대한 불교도의 한 맺힌 원통과 억울함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은 한국근대불교 백년사를 구성하는 여러 인물 가운데 특별히 만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시대 배경과 불교 사상에 있어서 만해는 법정과는 거의 정반대의 지점에 있으므로, 법정 불교의 사상적 특성은 만해 불교와의 대조를 통해서 비교적 쉽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비교 연구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만해 불교의 시대 배경과 몇몇 특성만을 간략히 언급하려고 한다.

생몰연대를 감안하면 법정은 만해에 비하여 대략 60여 년 정도 뒷사람이다. 그런데 60년의 이편에서 저편을 바라보면, 같은 나라의 역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다르다. 한마디로 만해의 불교는 상실과 궁핍, 부재로 가득한 식민지 시대에서 나왔다면, 법정의 불교는 자유와 풍요, 아니 과잉의 시대에서 나왔다.

만해에게는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desideratum)’이 많았다. 2)

 민족의 자유와 생명, 그리고 민적(民籍)의 권리가 없었고, 이것들을 지킬 수 있는 수호신인 세력이 없었다. 그래서 만해는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세력은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세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전략과 전술이 특출한 이순신과 을지문덕 장군을 내세우기도 했다. 만해의 승려 취처론(娶妻論)도 불교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력이 필요하다고 본 그의 자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만해는 세력의 원천이 현대의 물질문명에 있다고 여겨서, ‘강자와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시대에, 곧 우승열패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물질문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물질문명에 대한 만해의 우호적인 태도는 《조선불교유신론》에 잘 나타나 있다. 거기에서 만해는 사람과 물질은 서로 단서가 되어 서로 번성하고 서로 진보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했고, 그 번성과 진보에 따라 지혜로운 기교가 날로 증대하고 눈과 귀 등의 감각기관[육근]에 접촉되는 것이 자꾸 좋아진다고 했다.

 나아가 물질이 발전되고 욕망이 그 범위를 확장하여 무한^무궁하게 되면 진보 사상도 무한^무궁해진다고 했다. 만해는 진보가 산골이 아니라 대도시에서 더 잘 이루어진다고 했다. 불교 승려가 후진적인 이유는 도시 대신 산골을 처소로 삼아 물이 흐르고 꽃 피는 것을 보고 새소리를 듣기만 했지, 새로운 문물에 접할 수 없어서 진보 사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3)

만해는 같은 글에서 승려학생들은 불교학만이 아니라 보통학으로서, 다윈(1809∼1882)의 ‘생존경쟁의 이야기(진화론)’를 듣고 배워야 한다고 보았다. 4)

100년 전의 한반도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고 새도 울었겠지만, 만해는 현대문명을 비판할 수도 없었고 산방한담(山房閑談)에 빠질 수도 없었다.

만해는 강자들이 힘으로써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앗아 가기 전에 지키는 것은, 나중에 망국의 한을 품거나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것보다 백번 낫다고 보았다. 그래서 만해는 정치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다. 독립국 조선에 정치 무대가 펼쳐져 있었다면, 정치를 통해서 조선을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만해는 정치가 ‘누렇다’고 한 법정과는 아주 달랐다. 만해는 인간이 인간을 공격하는 야만적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영원한 현재가 주는 유희삼매보다는 가슴 아픈 기다림이 주는 ‘눈물의 삼매’를 선택하고, 선사(禪師)나 시인, 어린 왕자보다는 장군을 예찬했다.  5)

2. 본론: 법정의 불교-자유와 과잉 시대의 불교

만해에게는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 많았다면, 법정에게는 있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 법정은 1980년대에는 우리가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였다고 보기도 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는 “마을집이나 절집이나…… 모든 것이 지천으로 넘치”는 시대라고 했다. 6)

만해와 법정은 영원한 진리인 불교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그들의 시대 인식은 아주 달랐다.

법정의 시대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확대되어 간 시대이다. 누구든 정치권력의 제재나 간섭 없이 출가할 수 있고, 참선, 간경, 기도, 염불, 관법(비파사나) 수행, 심지어 구복 행위 중에서 하나 또는 둘 이상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불교라는 이름으로 신앙하고 포교할 수 있다.

이런 정치 상황은 조선과도 다르고 북한과도 다르다. 선군정치의 구호 아래에서 세습정치를 일삼는 북한에는 법정과 같은 인물을 낼만한 종교적·정치적 자유 공간은 없는 것 같다. 법정의 수상이 누렸던 인기는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서양식 교육 제도가 정착된 사실과도 크게 관련이 있다. 그의 수상에는 세속인조차 부러워할 만큼 풍부한 동서양의 교양 곧 세계문학, 음악, 미술에 대한 놀라운 감식력과 이해력이 보이기 때문이다.

1) 문화인 법정

법정은 고전이나 양서라고 할 만한 것을 읽어서 자신을 충실하게 하기도 하고 동류 정신을 찾기도 했다. 1992년 강원도의 오두막으로 옮겨 간 다음에도 책, 차, 음악은 끊지 않았다고 한다. 7)

법정에게 독서의 목적은 정보 수집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내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거나, 8) 개인의 일상을 변화시키거나 심화시키는 데에 있는데, 거기에 내·외전(內外典)의 구별은 없었다. 8) 

《내가 사랑한 책들》의 말미에 법정이 언급한 200여 권의 책들이 정리되어 있다. 9)

 여기에 《벽암록》 《선가귀감》 《숫타니파타》 《법구경》 《마하박가》와 《십송율》이 포함되어 있다.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따》 그리고 기독교의 성경도 읽었다고 한다.

서양의 책으로는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  , 엔데(1925∼1995)의 《모모》, 롤랑(1866∼1944)의 《베토벤의 생애》를 읽었다. 한국문학으로는 정철(1536∼1593)의 시조를 비롯하여, 윤선도(1587∼1671)의 〈산중신곡(山中新曲)〉, 서정주(1915∼2000)의 〈푸르른 날〉을 감상했다. 허균(1569∼1618)의 《한정록(閑情錄)》, 최인훈(1936∼  )의 《광장》, 중국의 고전인 육우(陸羽, 733∼804)의 《다경(茶經)》도 읽었다. 최초기의 ‘녹색 서적’에 속한다는 소로(1817∼1862)의 《월든》과 카슨(1907∼1964)의 《침묵의 봄》, 그리고 인간 중심의 경제를 다뤘다는 슈마허(1911∼1977)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도 정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사회학자 르페브르(1901∼1991)가 쓴 《현대세계의 일상성》이란 책을 읽어서 현대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려고도 했다.10)

법정은 좋은 영화도 감상했다. 그것도 주로 조조(早朝)에. 거기에는 〈검은 대륙〉 〈죽은 시인의 사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 감상 태도는 진지했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나서 한때는 입버릇처럼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로 시작하는 〈사철가〉를 불렀고 깊이 감동했다고 한다. 11)

카잘스(1876∼1973)의 연주로 〈새들의 노래〉를 몇 차례 들었다고 하고, 12) 강원도로 옮겨 간 다음에도 그의 연주로 바흐의 첼로 조곡을 들었다는 것을 보면, 법정은 첼로 곡을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13)  12)    13) 

 그런데 베토벤의 〈월광〉 〈열정과 고별〉 등의 피아노소나타도 즐겨 들었다고 한다. 14)

법정은 예술 감상을 통해서 작가들의 ‘감성과 자신의 감성의 일치’를 경험하고, 15)  일상과 범속(凡俗)을 넘어가 그들의 개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세속인과 소통하는 길을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15)

모차르트 음악은 ‘맑고 차다(淸冽)’고 한 법정의 촌평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귀와 그의 귀를 비교할 수도 있고, 잘하면 불교의 가르침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법정은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라는 서원을 중생들이 좋아하는 갖가지 대상을 활용하여 불교를 전하겠다는 서원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법정은 서양 문물 중에서 민주주의와 언론과 출판 등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환영했지만,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부문은 대체로 일상의 범속에 속하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성악(聲樂)을 즐겼다는 말은 없다. 성악 감상에는 거의 언제나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찬 공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가사가 남녀의 애정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아서 본래적인 자기를 찾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은 책

역사를 바꾼 책이라고 해도 법정이 읽지 않았던 책도 많았다.

홉스(1588∼1679)의 《리바이어던》, 다윈의 《종의 기원》, 프로이트(1856∼1939)의 《꿈의 해석》 등은 그의 독서 목록에 없다. 마르크스(1818∼1883)의 《자본론》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정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소로의 《월든》은 즐겨 읽었지만 자연을 인간이 이용할 대상으로 본, 미국 3대 대통령인 제퍼슨(1743∼1826)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푸른 영역을 시들게 하는 것이라고 하여 부정적으로만 기술하였지, 16)  그 말이 함축해 온 ‘자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6)  

 법정은 실존주의 철학자 중에서 사르트르(1905∼1980)는 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마르크시즘적 성향, 휴머니즘, 그리고 그것들에 기초한 정치적 행동 위주의 철학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켰을 것이다. 베버(1864∼1920)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었지만, 법정의 이해에는 일종의 창조적 오독(誤讀)이 보인다. 함석헌(1901∼1989)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읽었다고 하면서도, 만해를 읽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만해는 60년 세월의 저편에 있는 관심 밖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법정은 책, 소리, 색깔 등을 좋은 것(善, kusala)과 좋지 않은 것(不善, akusala)으로 분별한 다음, 좋은 것은 푸른색으로 좋지 않은 것은 누런색으로 칠했다. 푸른색은 인간의 개성과 창의성을 키워주고 본래적인 자아로 인도해 줄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색이지만, 누런색은 세속, 일상, 반복을 상징하는 색이다.
 
2) 본래성의 회복

《영혼의 모음》의 첫 글은 〈문제아〉(1969)이다. ‘문제아’란 보통 지능이나 심적 태도 혹은 행동이 보통 아이들과는 달라 특별한 취급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법정에 따르면, 문제아야말로 제대로 된 인간이다. 문제아라는 말은 획일성, 범속, 동질화, 표준이라는 사회적 측도를 중시하고, 인간의 개성, 창의성, 다양성, 인간의 내면세계, 곧 ‘개인의 푸른 영역’을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우리는 모방과 추종을 통해서 속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문화사상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대개가 문제아였다”고 한다. 17)  

법정의 글에는 본래적인 자기(자아), 실존, 존재, 단독자, 부조리 등의 용어가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키르케고르(1813∼1855)의 사상에 접했음을 알 수 있다. 18)

하이데거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카뮈(1913∼1960)의 《전락》, 기독교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베르자예프(1874∼1948)의 《현대에 있어서 인간의 운명》을 읽기도 했다. 19) 

법정이 개인의 실존과 자유를 강조한 것은 불교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불교란 생노병사에 대해 개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닌가.

출가: 본래적 자아로 돌아감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용어 중에서 법정은 ‘본래적인(authentic, eigentlich) 자기’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본래적인 인간의 특성은 개성과 창조에 있다. 불교는 본래적인 자기의 회복을 약속해 준다. 출가의 참된 의미는 비본래적인 자기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자기로 돌아가는 데에 있다. 부처는 ‘본래적인 자기’로 귀환한 사람이며, 불교는 ‘인간의 본래면목’이 어떤 것인가를 자각게 하는 문을 마련해 놓은 종교이다. 20)

본래적인 자기의 또 다른 특성은 사유의 태도이다. 사유의 특성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물에 대해 셈하지 않는 태도로, 무소유, 개방, 공감의 태도로 나타난다. 21)

법정은 불교 용어를 빌려 사량분별(思量分別, 비즈냐냐 vijñana)을 분별망상의 지식으로, 프라즈냐(prajña)를 무분별의 지혜로 각각 이해하면서 대조했다. 법정은 사람들 특히 지식인은 분별하고 사량하기를 좋아한다고 본다. 이렇게 외부적인 지식에만 의존할 때 자기 언어와 사유를 잃는다. 소외감도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3) 감성의 회복

본래성의 회복은 감성의 회복을 동반한다. 본래적인 자기를 회복하고 타인과 자연, 우주와의 연결이나 일치는 사량분별하는 머리로 되는 일이 아니라 감성으로 되기 때문이다. 22)

법정이 “인간의 정서를 이루는 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빛과 소리”라고 여겼듯이 23) , 감성의 회복은 주로 감각의 활용으로 가능해진다. 23)

법정에게 차 등의 기호품에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미각을 통해 정신적으로 기쁨을 느끼고 위로를 삼으려는 취향”은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24)

법정의 눈에 현대인은 감성이 너무도 팍팍하게 메말라 있다. 현대인은 머리와 입은 발달하고 가슴과 발은 퇴화되어 있어서 생명의 빛을 잃어 간다고 했다. 25)

생명의 중심은 가슴에 있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머리를 과신하는 대신 가슴과 손발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거기에 문명의 병이 있다.

감성 회복과 감각적 경험의 활용, 이는 법정이 한국의 현대불교사에 대한 큰 기여이기도 하고, 그의 글이 대중적 호소력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불교나 선 전통에도 소리와 빛에 대한 감상과 찬미가 없지는 않지만, 법정은 우리에게 친근한 빗소리나 예술 작품을 통해서 불교를 쉽게 전달하려고 했다. 초기 불경이 그러하듯, 의식을 눈, 귀, 코, 혀, 몸이라는 오근(五根)에서 분리시켜 청정하게 만들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새벽의 빗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⑴ 빛

법정은 탁월하고 개성적인 예술인이라면 그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면서 문화인의 소양을 닦아 나갔다.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그 대표적인 예술인이었다. 그의 광기 어린 창조성이 그려낸 빛과 스타일, 그리고 그의 ‘문제아’적인 생애 때문에 깊이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법정은 강원도에서 고흐의 〈별밤(Starry Night, 1889)〉을 연상하며 〈별밤이야기〉(1992)라는 수상을 쓴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생 레미의 하늘에 대한 반 고흐의 상상력은 소용돌이치는 성운, 달 같은 별들, 그리고 해 같은 달로 가득 차 있으며 꿈에서만 볼 수 있는 별밤 속으로 우리를 깊이 몰아간다…… 별밤을 가까이하라. 한낮에 닳아지고 상처받은 우리의 심성을 별밤은 부드러운 눈짓으로 다스려줄 것”이라고 적었다. 26)

이 그림은 고흐가 자살하기 1년 전쯤 남불 생 레미(Saint-Rémy)의 요양원 시절에 그린 것인데, 고흐의 예술적 완성의 정점을 보여 주는 것으로, 현대 문화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콘의 하나가 되었다.

고흐는 이 그림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실험하고, 고립과 심한 정서적 불안에 휩싸인 자신에게 위로와 카타르시스적인 만족감을 주고 싶었을 텐데27) , 법정은 여기에서 우리의 심성을 부드럽게 할 치유력을 찾으려 했다. 27)

그리고 법정은 3년 뒤 1995년 남불 생 레미로 날아갔다. 고흐가 보았다는 그 별밤을 보기 위해서. 28)

 법정의 예술 감상에는 이렇게 ‘마니아’적인 데가 있었다.

법정은 예술 작품에서 빛과 소리만이 아니라 그 의미를 찾기도 했다. 피카소(1881∼1973)가 그린 〈게르니카〉와 〈한국의 학살〉을 보고 감상을 적은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학살〉을 보고는 우리 겨레의 처지에서 그 학살에 대해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29)

⑵ 소리

법정은 눈보다 귀가 더 예민하고 섬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갖가지 자연의 소리도 듣고, 음악도 듣고, 침묵도 듣는다고 하고, 볼 수 있는 것을 때때로 귀로 듣는다고도 하니까, 우리 시대 최고의 천이통(天耳通)이 아닐까? 법정은 산에서 꾀꼬리, 비둘기 소리 등을 잘 분간해서 들었다. 그런데 때때로 특정한 소리에서 생명의 일치를 느끼면서 이를 모음(母音)이나 원음(原音)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득한 모음(母音)〉이라는 글에서는, 뻐꾸기 소리가 영혼의 모음이고 아득한 모음이었다. 저 아득한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면 마음은 분별이 없어지고 그저 무심이 된다고 했다. 뻐꾸기 우는 소리에서 법정은 이슬이 밴 5월 아침과 맑은 햇살이며 풀꽃 냄새 그리고 지난밤의 별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뻐꾸기 울음을 “우주의 하아머니”라고 했고, “그 아득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 존재에 대해 새삼스레 연대감(連帶感)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30)

이십여 년 뒤에는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우주의 호흡이 내 자신의 숨결과 서로 이어지고 있음을 감지한다.”고 적고 있으니, 이제는 빗소리가 모음이 되었다. 31)

나의 숨결이 우주의 호흡에 연결된다는 관념은 인도 철학의 브라만과 아뜨만이 하나[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사상을 상기시킨다.

뻐꾸기 소리에서 만물의 연대감을 느끼고 범아일여와 같은 것을 경험하는 것은 본래적인 자기로 가는 통로, 아니 본래적인 자기의 성취일 것이다. 여기에서 에머슨과 소로가 주장했던 초절주의(超絶主義, transcendentalism―곧 다양한 구체적인 사물[多] 배후에 하나의 영적인 원리[一]가 있다는 철학적 원리)의 구체적인 사례, 그것도 청각적인 사례를 보는 것 같다. 32)

⑶ 자연 사랑

법정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충분히 교감했으니 자연인이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그의 표현은 아름다워 선입견 없이 수상을 읽노라면, 독자는 자연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게 되고, 잘하면 자연과의 합일을 이룰 수도 있다. 법정은 물미역을 먹을 때 해안선에 밀려드는 물결소리와 갈매기 울음을 함께 들을 수 있었으며, 제초제로 죽어 가는 장미를 보고는 ‘내 출혈 같은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해 질 녘에 피는 달맞이꽃을 ‘애들’이라고 부를 만큼 친근감을 가지며, 철이 지난 뜰에서 져버린 꽃들의 넋을 그리워할 수도 있었다.

이런 교감력은 동물에까지 확장된다. 모기와 금붕어를 가족처럼 느낄 수 있으며, 쥐에게 설법했는데 그 쥐가 알아들은 것 같다는 경험도 말하고 있다. 나아가 반드시 유정(有情)의 존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끼 돋은 돌을 방에다 들여놓고 서로 듣고 눈길을 주고받으며 한겨울을 났다는 얘기도 있다. 법정에게 자연은 이용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 감사와 환희의 존재이고, 거룩함과 신성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법정에게 인간의 소음(騷音)은 영혼의 모음과 내심의 소리를 훼방하기 때문에 나쁜 소리였다. 이것을 현대문명의 어두운 벽이라고 불렀다. 33)

법정은 주간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 현대의 매체를 비판했다. 34)

이것들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소리는 대개 과잉과 포식을 낳으며, 사유를 앗아간다고 했다. 여기에 현대 도시문화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 있다.

4) 영원한 현재와 유희삼매

본래적인 인간은 ‘바로 지금’ 곧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시간관을 “영원한 현재 속에 사는 것이 해탈이고 자유”라는 법정의 말을 따라서 35) , ‘영원한 현재’의 시간관이라고 불러보자. 35)

법정은 중국의 임제를 포함하여 많은 선사들이 이런 시간과 자유에 대한 이념에 따라서 살아갔다고 본다. 36) 

 영원한 현재와 자유의 관계는 아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이 오두막에 와 살면서 내 자신을 만나고 되찾게 된 것을 무엇보다도 고맙게 여긴다. 지나온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짐을 벗어버리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속에 사는 홀가분한 자유를 찾은 것이다. 이 순간 속에서 있는 그대로 사는 사람한테는…… 기억의 사슬도 없고 욕망의 사슬도 없다. 시냇물이 흐르듯 그저 담담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 진정한 자유는 정신적인 데에 있을 것 같다.  37)

그런데 법정은 기억과 욕망의 사슬을 끊고 정신적인 자유를 누리는 데에는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능숙하다고 보았다. 법정은 《화엄경》에서 보살이 중생을 가르치는 것을 ‘유희삼매(遊戱三昧)’라고 부르고 있음을 언급하며, 아이들은 “그 [소꼽장난] 자체가 즐거워서 몰입합니다. 이것이 유희삼매입니다. 세상을 살 때도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입니다.”라고 38)  했다.38)   

그런데 현대의 어른들은 과거와 미래에 붙들려 살고 있어서 유희삼매를 모른다. 영원한 현재를 도둑맞은 것이다. 아니 스스로 잃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그 시간을 인지하고 되돌려주는 방법을 찾으려다 법정은 《어린 왕자》와 《모모》를 만났을 것이다.

영원한 현재는 일종의 불교적 시간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소로의 《월든》에서도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간관은 본래성을 추구하는 모든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선호하는 시간관도 아니고, 만해, 함석헌, 사르트르의 시간관과도 상당히 다르다.

5) 출가와 계율 준수, 수행론

법정은 불교인이었다. 1954년 전통적 선사라고 할 수 있는 이효봉을 은사로 입산 출가하고, 1956년 같은 선사에게서 사미계를 수계했다. 출가와 계행이 없었다면 법정은 불교 승려가 아닌 것이고 ‘무소유’라는 글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대중에게 엘리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글이나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행(行)에 있”다고 하고 39) , 수행자의 자발적인 가난과 검소함을 거듭 강조하며, 이를 잘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39)  

경허 선사에 대한 언급은 한 차례 정도에 불과하다. 40) 

‘민중’의 불교를 폈다는 점에서 법정은 만해에게서 상당한 정도의 동지의식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가 없었다. 두 경우 다 계율 준수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수행론: 관법과 돈오점수론

법정 수행론의 핵심은 〈화두선(話頭禪)과 관법〉(1991)에 잘 나타나 있다. 41)

이 글에서 법정은 화두란 옛 선사들의 말씀이나 문답에서 이루어진 기연(機緣)으로 학인들이 끊임없이 참구(參究)해야 할 선의 과제이고, 화두는 중국의 임제선 전통에서 성행된 참선 수행법으로 한국 불교도 이를 답습하고 있다고 했다.

법정은 이어서 “관법은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진 수행법으로 지금도 동남아 상좌부 불교권에서 널리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42)

화두선은 최상승선(最上乘禪)이고 관법은 소승선이라고 말하는 데에 대해 법정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방법의 수행을 하건 간에 최상승의 심지를 계발(啓發), 지혜와 자비가 충만해서 부처나 조사들의 혜명(慧命)을 잇고 있다면 우리는 최상승선을 성취하게 된다. 법정은 오늘날에는 화두선보다는 관법이 더 적합하다며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예전 사람들은 단순하고 순박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선사들의 말씀이나 문답이 그야말로 참구의 극치인 화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소란스럽고 거칠디거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몰입하는 수행법이 보다 적합할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몰입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이 요긴합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마음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살피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 따르지 않고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염처경(念處經)》에서 부처님이 친히 설한 바입니다. 43)

법정은 이어서 선법을 처음으로 중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진 달마 그의 가르침은 화두선이 아니라 관법을 몸소 닦고 그걸 가르쳤다고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달마의 《관심론(觀心論)》에서 “마음을 살피는 이 한 가지 일이 삶 전체를 이끌게 된다(觀心一法總攝諸行)”는 구절을 인용했다. 법정은 10여 년 뒤 한 법문에서 이 구절을 다시 인용하면서 불교라는 종교가 바로 관법이라는 취지로 말하고 있다. 44)

법정은 〈화두선과 관법〉에서 우리가 정진하는 것은 새삼스레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래의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라 하고, 이를 본래성불과 본증묘수(本證妙修)라는 말로 옹호하고 있다. 45)

특히 본증묘수는 수증일여(修證一如)라는 말과 함께 일본 조동종의 개조인 도겐(道元, 1200∼1253)이 지은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첫 장 〈변도화(辨道話)〉에 나오는데, 도겐 교학의 근본적인 입장을 보이는 말이다.

도겐은 닦음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것, 닦음 이외에 따로 깨달음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미 닦음에 깨달음이 있으므로 깨달음에는 끝이 없고, 깨달음에는 닦음이 있으므로 닦음에는 시작이 없다고도 했다. 46)

법정은 다른 글에서도 본증묘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47)

 법정이 조주의 입장을 선오후수(先悟後修)의 입장으로 이해한 곳이 있긴 하지만 48), 대체로 본증묘수의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48)

참선이나 명상을 아예 화두선이 아니라 관법으로 이해하고 있는 곳도 있다. 49)

 그렇다면 좋은 빛을 보고 좋은 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은 모두 일종의 관법이었던 셈이다.

법정은 돈오(頓悟) 이후의 점수(漸修)를 이타적 보살행으로 해석하면서 돈오돈수에 반대한다. 돈오점수는 불교의 두 날개인 지혜와 자비의 길이다. 법정의 입장에서 보면, 돈오돈수는 부처나 지눌도 용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부처의 경우 보리수 아래의 깨달음은 돈오이고 45년간의 교화 활동으로 무수한 중생을 제도한 일은 점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50)

지눌도 《절요사기》에서 불성을 바로 깨달은 다음 이때 비원을 발하지 않으면 적정에 갇힐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돈오돈수가 만일 보살도 실천의 현장인 ‘오늘의 세계와 사회 곧 중생계’를 내버린다면, 그것은 대승불교가 아니라 소승선이다. 법정에게는 부처, 티베트불교, 선을 전한 달마, 일본의 도겐은 모두 깨달음을 기다려서 행위하겠다는 가르침을 비판한 인물들이다.

법정은 고흐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불교 전통과 계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앞서 인용한 구절에 의하면, 고흐가 그림을 그린 것은 마음의 흐름을 따라간 결과이지 그 흐름을 ‘살핀’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흐가 마음을 살피기만 했다면 〈별밤〉을 그리지도 못했을 것이지만.

6) 현대문명 비판, 소로의 초절주의, 심층생태학

법정에게는 본래적인 자기를 각성시키는 것, 갖가지 현대문명의 해악에서 인간을 풀어 주는 것이 종교의 기능이다. 생명의 질서가 없는 “문명의 소리는 우리 마음을 자꾸 흩트려 놓으면서 어지럽히지만, 자연의 소리는 그 자체가 완벽한 생명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듣는 마음을 정결하게 맑혀 주고 편하게 가라앉혀 준다.”고 했다. 51)

법정이 현대문명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적도 있다. 〈너무 일찍 나왔군〉(1969)에서 서울시의 발전과 문명의 혜택이 골라야 한다고 말할 때가 그런 때이다. 52)

〈쉴 줄도 알아야 한다〉(1982)에서 법정은 물질적인 충족을 일정 부분 옹호하기도 했다. 53)

 1992년 법정은 전기도 없는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오두막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지구 온난화, 기상이변, 생태계 이상 현상에 대해 더욱 실감 나게 경험하게 되었다. 54)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생태계 위기에 대한 그의 확신은 굳어져 갔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문명, 도시화, 공업화, 산업화, 거대한 물량, 인간 부재에 대한 비판은 이미 1970년대 초에 쓴 글에 나온다.  55)

법정에게 현대문명 사회는 “과잉소비 사회”이고 “포식사회”로 “인간을 멍들게 하고 우리 시대를 얼룩지게 만든다.” 56)

현대인은 “기계문명의 자손들”이며, “이른바 신흥종교인 텔레비전교의 신자들이요 영상의 노예들”이며 57)  소리에 중독된 자들이다. 57)

현대인이 하는 일, 텔레비전과 라디오, 인간의 특권인 직립보행을 앗아가는 자동차, 이것들 모두가 사유를 앗아 간다. 그 결과 시정인은 범속한 동질화에 빠져서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 법정은 사람을 ‘소비자’로 규정하는 것을 비판했다. 저들 소비자는 “그 소비를 통해서 직접, 간접으로 물과 공기를 더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58)

2003년에는 출가란 문명에서 나가 자연으로 다가가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출가는 문명의 도구들을 뒤로하고 자연으로 다가갑니다. 인위적인 문명의 감옥에서 나와, 인간이 기댈 유일한 품인 자연 속으로 들어갑니다. 부처님은 숲 속에서 수행했고 숲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숲 속에서 가르침을 폈습니다. 파괴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안에서만 인간은 본래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59)

이제 누구라도 출가하여 불교 수행자가 되었다면 문명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가서 간소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온난화 현상, 생태계 위기에 대해 우려하면서 현대문명과 인간의 소비를 비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법정은 소로의 《월든》을 즐겨 읽었고, 소로가 《월든》에서 다루었던 소제목, 곧 숲의 소리, 독서, 고독, 동물, 봄 등에 대해 자주 썼다. 소로는 《월든》에서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essential facts)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라고 했고60),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Simplicity, simplicity, simplicity!)” 살라고도 했다. 61)  60)    61)

여기에서 말하는 본질적인 사실에 직면하는 것 그리고 간소하게 살기 이외에도, 소로는 자연과의 하나 됨, 별과 어린이를 예찬하고, 자연을 은둔과 재생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리고 소로는 ‘지금 여기’의 시간관에 대해서도 성찰했다. 앞서 뻐꾸기 소리에 대한 법정의 수상에 초절주의의 정신이 풍부히 녹아 있다고 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가까이해야 삶에 활기가 솟는다. 식물에서 삶의 신비를 배우고 기운을 받아들이라.”는 법정의 말 62) 역시 초절주의의 좋은 사례이다. 62)  

법정은 얼굴 생김새조차 꽤 닮은 독신자 소로에게서 코쟁이 불교 수행자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법정은 최신 학문 분야인 심층생태학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이란 용어는 노르웨이의 철학자인 네스(Arne Naess, 1912∼2009)가 1972년에 만들었는데, 그 핵심 원리는 살아 있는 환경 전체는 인간처럼 살아가고 번성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데에 있다. 이것을 ‘심층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생물학의 한 분야로서의 일반 생태학을 넘어가고, 인간의 목적에 의해서 인간의 목적을 위해서 환경 보호에만 주목하는 인간중심적(anthropocentric) 환경주의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법정은 네스가 제시한 심층생태학 8조목에 대해 이의 없이 찬성했을 것이다. 63)

아래 구절은 심층생태학의 정신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세상에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살고 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그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 표준으로만 생각하고, 둘레의 사물을 인간 중심의 종속적인 관계로 여기기 때문에 지금 지구촌에 온갖 이변이 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잡초만 해도 그렇다. 논밭에 자라난 잡초는 곡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뽑아내지만, 잡초 그 자체는 결코 ‘잡초’가 아니라 그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커다란 생명의 잔치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64)

법정이 ‘잡초’를 비롯한 모든 생명에는 존재 이유가 있다고 하고, 인간중심주의를 부정한 데에 심층생태학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런 인간 중심의 태도가 유용성을 가질지는 몰라도 생명의 잔치를 방해하고 지구촌의 온갖 이변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7) 누런 정치

법정은 오랫동안 구도와 사회적인 행위에 대한 관심을 가져 왔고, ‘자연/내심의 소리’와 ‘우리 시대 세상의 소리’ 이 두 가지의 소리를 들어 왔다고 했다. 법정에 따르면, 인간의 기본적인 구조는 세상에 있음이요, 세상에 있음은 함께 있다는 뜻이니, 세상을 떠난 개인의 삶은 그 의미가 없다. 오늘의 한국불교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이타적인 비(悲)의 실천보다는 개인의 무사안일에 탐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질책도 아끼지 않았다. 65)

법정은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 반독재 민주회복 투쟁의 선봉에 섰던 월간지 《씨의 소리》의 편집위원이 된 적도 있었고, 당시의 대표적 반정부 인사였던 함석헌(1901∼1989)과 장준하(1918∼1975)를 가까이하면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철폐 개헌서명 운동에 참여했지만, 인혁당 사건으로 관련자 8인이 처형되자 충격을 받아 1975년 산으로 귀향했다.

당시 내심의 소리와 세상 소리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결국 내심의 소리를 선택하게 된 경위는 그가 산으로 귀향한 직후에 쓴 글 〈숲에서 배운다〉(1976)에 잘 나타나 있다. 66)

산을 떠나 6, 7년 시정(市井)의 절간에서 사는 동안 얻은 것은 이 어지러운 시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면서 세상 물정을 몸소 보고 느끼는 점이었고, 잃은 것은 그의 안에 지녔던 청정한 빛이라 했다. 그가 수행자로서 시정에서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것은 사유와 행동을 가능하게 하던 그늘을 주는 ‘기댈 만한 숲’이었다. 법정은 자신을 새삼스레 ‘산승’으로 규정하고, 산승의 본거지를 ‘숲이 있는 적정처’로 불렀다.

법정은 광장보다는 뜰을 선호했다. 광장에는 군중의 집회만 있지, 사색이나 사유가 불가능하고 “누런 정치의 냄새”만 풍기고, 뜰이야말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생활의 푸른 여백”이고 67), 생명의 숨통이 트이는 곳이며 본래적인 자아의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67)

자연의 소리와 본래적인 자아의 소리가 시정의 소음에 가려 들리지 않을 때, 법정은 일단 전자를 택했다.

8) 둘 이상의 본래적인 삶:

    영원한 현재 vs 과거, 현재, 미래의 탈자적 통일

본래적인 삶이 실현되는 데에는 사회적인 맥락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삶은 상당히 주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골롬은 여러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본래성이라는 개념을 비교 연구한 책의 결론에서, “본래성(authenticity)을 이루는 유일무이한 길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하고, 본래성을 “주관적인 파토스(subjective pathos)”라고 부르고 있다.68)

 이런 주장이 옳다면, 특정한 본래적인 삶을 객관적인 윤리로 정립하거나 사회에 제도화하여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개성과 창조성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성을 실현하는 길은 둘 이상이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본래성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본래성으로의 회심이 이뤄지지 않는 한, 비본래적인 상태는) 나의 ‘함께 있는 존재’를, 독자적인 인격과, 다른 똑같이 독자적인 수많은 인격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어떤 항을 어떻게 바꿔 넣어도 상관 없는 하나의 전면적인 교환 가능성으로서 나에게 나타내 보인다…… 본래성과 개별성은 획득되어야 한다. 내가 양심의 부름에 따라 움직이며, 결의를 가지고 나의 가장 본래적인 가능성으로서의 죽음을 향해 앞서서 달려갈 때만, 나는 나 자신의 본래성으로 있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비로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본래성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 또 나와 함께 타인들까지 본래적인 것을 향해 높이 올리게 된다. 69)

위의 인용문에서 사르트르가 독자적인 인격, 개별성, 양심의 부름, 결의, 죽음, 타인들의 본래성에 대한 관심을 모두 본래성의 특성이라고 한 점에 대해서는 법정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즉자적(卽自的) 존재인 사물이 아니라 의식적 존재 곧 대자적(對自的) 존재이고 대자가 갖는 미규정성 때문에, 본래성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매번 선택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지속적인 본래성(sustained authenticity)은 달성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실존적 이념이었다. 70)

사르트르는 자신의 책에서 본래성보다는 오히려 자기기만(bad faith)을 더 많이 논의했고, 결국 본래성의 추구에서 직접적인 정치 행위로 나가게 된다. 71)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시간을 자유로운 인간 행동과 관련지어 논했다. 그에게 자유는 대자적 존재인 인간에게 양도할 수 없는 특성이다. “나는 자유롭게 있도록 운명 지어진 것이다. 요컨대 나의 자유에 관하여, 우리는 자유 그 자신 이외에 어떤 한계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72)

창조주도 객관적인 윤리법칙도 없는 이 세상에 던져진 ‘나’는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존재의 기본적인 카테고리의 하나인 ‘함(doing)’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세 계기가 하나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행동한다는 것은 세계의 ‘모습’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 행동은 필연적으로 그 조건으로서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desideratum)’에 대한 인지를 담는다. 다시 말해, 행동은 대상적인 결여(objective lack)에 대한 인지 또는 부정성(négatité)에 대한 인지를 담고 있다. 73)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에 필적할 만한 도시를 비잔티움에 건설하는 행동이든, 노동자들의 혁명적 행동이든 행동에는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 곧 대상적인 결여와 부정성에 대한 인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목적, 즉 내 미래의 시간화(temporalization of my future)는 하나의 동기(또는 동인)를 담는다. 다시 말해, 내 미래의 시간화는 과거 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현재는 행위의 나타남.” 74)이라고도 했다. 74)

행동의 나타남이 현재이고 그 행동의 목적은 시간의 미래화이다. 그런데 그 목적에는 동기가 있고, 동기는 과거의 어떤 부재를 가리키므로 목적에는 이미 과거가 들어와 있다.

 따라서 현재는 현재에서 벗어나 미래와 과거 안에, 미래는 미래에서 벗어나 현재와 과거 안에, 과거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와 미래 안에 있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는 각자 자신을 벗어나 있다. 이를 가리켜 사르트르는 자유로운 행동에는 “3개의 시간적인 탈자적(脫自的) 통일(the unity of the three temporal ekstases)”이 있다고 했다. 75)

 이와 같은 3개의 시간적인 탈자적 통일에는 영원한 현재라는 경험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대자적 존재는 그 자체가 아닌 무엇이므로 절대로 현재에 머물 수 없다.

법정은 〈묵은 편지 속에서〉(1992)에서 함석헌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일부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산으로 갔으면 하는 생각이 갈수록 간절하나, 하던 일의 한 구절이 끝나지도 않았고 동지 여럿이 옥중에 있는데 두고 가기도 그렇고, 이런 생각이 미진한 망념이지 하고 자책도 하면서도, 또 하나님의 발끝에 채이는 스스로의 분을 가만히 받아들이는 생각을 하면서 앉아 있기도 합니다…… 1977. 6. 7. 바보새  76)

옥중의 동지를 두고 산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한 함석헌은, 이런 생각을 망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발끝에 차이는 자신의 분[수]’으로 보았다. 옥중 동지는 세계를 바꿀 목적으로 정치적 행위를 하다가 투옥되었을 것이다. 산으로 가지 않은 것은 함석헌의 결단이고, 결단에는 3개의 시간적인 탈자적 통일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분수라고 하면, 하나님은 주인이 되고 함석헌은 종(從)이 된다. 그때 영원한 현재나 유희삼매 같은 경험도 가능할지 모른다. 만해가 ‘님의 침묵’에서도 현존하는 님을 경험했듯이.

법정은 수없이 많은 수상이나 법문을 통해서 중생들에게 유희삼매를 가르치고자 했다. 이런 행동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본래성)에 대한 인지에서 출발하고 진행되는 것이므로, 이 행동에는 3개의 시간적인 탈자적 통일이 있다. 하지만 충만한 현재에 대한 애호는 가슴 아픈 기다림이 수반되는 정치적 행위 같은 것을 기피하게 한 것일까?

3. 결론

법정이 1970년대 정치적 행위를 중단하고 산으로 귀향한 것은 그가 실천해 온 본래적인 삶이 선택한 결과이다. 만해는 민족의 자유와 생명을 훼손하는 세력과 치열하게 투쟁했다. 법정에게는 반민주 세력을 악마로 규정하고 싸울 만한 집요한 투쟁 의식은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간디(1869∼1948)와 함석헌은 ‘누런’ 정치와 사적인 ‘푸른’ 여백을 반드시 둘로 나눈 것 같지도 않고, 자연 사랑이나 영원한 현재를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법정이 1993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시작한 것과, 산에 살면서도 때때로 글을 쓰고 법문을 한 것을 보면, 그에게 구도자의 동기와 사회 구원의 동기가 갈마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정이 세운 공로의 하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야만적인 공격을 실감 나게 보여 주었다는 데에 있다. 그 공격의 중심에는 소비가 있었다. ‘보이지 않은 손’이 누렇다고 했을 때, 법정은 자유시장경제가 약속하는 자유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그런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허용되면서 소비의 자유는 제한되는 그러한 정치·경제적 구조가 가능할까?

법정은 〈무소유〉에서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77)

 이 말대로라면, 역사의 일부로서의 불교사도 소유의 역사가 된다. 그리고 인류가 아직도 다툼, 폭력, 살인, 전쟁으로 이어지는 소유사를 살고 있다면, 우리는 어린 왕자에게만 아니라 해군 제독에게도 본래적인 삶의 길을 예비해 주어야 할 것이다. 법정이 입적하고 보름 뒤 서해에서 터진 천안함 침몰 사건과 46용사의 ‘전사(戰死)’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공격이 엄존함을 일깨워 준다.

자연에 대한 공격이든 인간에 대한 공격이든, 그 공격성의 뿌리는 탐욕, 분노, 무지 가운데 하나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삼독이 맹렬해지면 동족도 죽이게 된다.

낮은 수준에서 필요를 제한한다는 의미의 무소유는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무소유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켕(Émile Durkheim, 1858∼1917)의 말을 빌리면, 법정의 인기는 그의 삶이 ‘종교의 기초적인 모습’을 잘 구현했기 때문이리라. 뒤르켕은 “대중이 이상을 너무 낮은 데 두지 않도록 하려면 엘리트는 그것을 아주 높게 잡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게 하려면 몇몇은 과장해야 한다.”고 했다. 78)

현대 한국불교사의 입장에서, 법정이 세운 최대의 공로는 불교를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이 있다면 뻐꾸기 소리와 새벽의 빗소리에도,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고흐의 〈별밤〉에도 도(道)의 절반은 있다고 하니까.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주어진 역사적 환경을 충분히 활용했다. 미국의 한 사학자는 티베트의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 대해 언급하며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불교적인 방법은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오래간다(not satisfactory but durable)’고 했다. 79)

평화는 ‘차가운 계산’도 요구한다고 보아서, 이 말을 법정에게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떤 사상가가 모든 문제에 대해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정치에서는 정의감과 권력욕이 혼재하고, 일상에서는 탐욕이 종종 필요로 둔갑하는 우리 사회에서 법정은 영원히 빛날 아바타(avatar, 化現)가 되었다. ■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미국 하와이대학교 철학박사. 현재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소장, 《철학과현실》 편집위원,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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