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스님이 걸었던 부처님 제자의 길

이병두
본지 편집위원
이 땅의 진정한 스승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이어, 법정 스님이 입적하였다. 그래서 “영웅들이 사라진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막강한 세속 권력을 누렸던 이들에게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야 이 말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은 한 시대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가려고 온 힘을 기울였던 진정한 영웅이었다.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나라의 영토를 넓히는 일을 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류 역사의 비열함을 드러내는 말일 뿐이다. 자신의 주장과 사상을 다른 존재에게 강요하지 않는 바른 길을 살았던 분, 공업(共業) 중생들이 이 바른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이끌어 준 분이 진짜 영웅이다.

지난해 김 추기경의 선종에도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분이 가시는 길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종교에 따라 그 색깔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였을 때에도 불자들뿐 아니라 이웃 종교 신도들도 함께 눈물을 글썽거렸다. ‘종교는 죄악’이라고까지 믿고 있는 사람들도 흔한 ‘수의와 관’조차 없이 떠나가는 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왜 그랬을까? 법정 스님이 걸었던 삶의 길이 바른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자신들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30대 초반이었던 1964년에 이미 ‘스님 같아 보이는데 실은 스님이 아닌’ 사이비 승려들을 단호하게 배격하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동료 승려들에 대해 “그렇게 살려고 머리 깎고 회색 승복을 입었느냐?”고 일갈하였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서까지 괴팍하다는 말을 듣고 ‘괴각(乖角)’이라는 평을 받았다. “너 혼자 잘 났다!”는 심한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엄청난 사람들이 스님의 말씀을 듣고, 스님의 글을 읽었다. 그래서 단 1천 권도 팔리기 어려운 이 땅의 출판시장에서 스님의 이름 ‘법정’이 들어간 책은 수만 내지 수십만 권이 팔리는 베스트^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말로는 ‘닭 벼슬보다 못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속사회의 그 어느 벼슬자리보다도 더 욕심을 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육박전까지 펼치는 ‘중 벼슬’을 맡아본 적이 없지만, 스님은 늘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거나 불교계에 사건^사고가 터지질 때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은 스님이 뭐라 할까 궁금해 하였다. 세속과 종단 법으로 아무 구속력도 없는 스님의 말씀이 대통령이나 종정보다 더 큰 위력을 지녔다. 왜? 그들은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스님은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말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무소유》) 가진 것이 없고, 그래서 얽힌 곳도 없는 스님은 그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을 가졌다. 이 역설이 가진 힘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세상에 맑고 향기로운 기운을 퍼뜨리는 샘물이 되었고 세상 사람들을 지혜로 이끄는 등불이 되었다.

무소유의 삶을 살고자 애썼던 스님이지만 항상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 ^ 염소젖 한 깡통 ^ 허름한 담요 여섯 장과 수건’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던 마하트마 간디를 부러워하며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고 부끄러워하였다. 아마 ‘법정’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고, 명성이 뒤따르는 것이 버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훌훌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다시 떠났을 것이다.

스님의 입적 뒤에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무소유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하였고, 첫 산문집인 《무소유》는 수백만 원에 거래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애독하고, 글 속의 스님에게 감동하여 스님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뵙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는 재산과 권력과 명예를 한없이 소유하려 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릴 줄 모른다.

“인간의 역사는 곧 자연 훼손과 개발의 역사이다. 자연은 무한한 복원력이 있어서 인간이 어떤 식으로 개발을 해도 다 해결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지금 이 땅에서 더 큰 힘을 내고 있다. 가능하면 더 높고 더 빠르게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의 무자비에 대한 자연의 저항이 커지고, 그 저항이 과학 기술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스님은 일찍이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라며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를 드러냈다.(《산방한담》).

스님은 살충제 남용으로 숲에서 풀벌레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고발하여 심지어 ‘좌파’라는 낙인이 찍히기까지 했던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을 소개해서 일찍부터 이 땅에 환경과 생태 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법정 스님이 직접 나서서 환경 운동을 하고 정부 시책을 반대한 적이 있느냐?”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스님이 《침묵의 봄》을 소개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태계의 신비와 보전’에 관심을 갖게 한 그 한 가지만으로도 엄청난 역할을 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세계 곳곳에서 양극화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모든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과거의 ‘20대 80’ 법칙이 깨지고 ‘10대 90’, 심지어 ‘5대 95’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 잘못된 흐름을 깨뜨려야 할 종교계까지 여기에 편승하여 갈등과 분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다.

‘더 높고 더 크게!’를 존재 이유로 삼는 절과 교회가 곳곳에 들어서고 천억 원 이상을 들인 종교 시설이 세워지는가 하면, 이 흐름에 동승하지 못한 곳은 초라하게 사라져 간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어두운 권력의 향락 장소’였던 요정을 보시받아 길상사를 개원하면서 스님은 이 점을 가장 염려하였다. 그래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1997년 길상사 창건 법문)

공교롭게도 스님의 입적과 함께 한때 스님께서 주석하며 젊은 대학생 불자들을 지도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말로 옮기는 역경에 온 정성을 쏟았던 서울 강남 봉은사를 둘러싼 불교계의 불협화음이 커졌다. 《무소유》를 태어나게 한 주인공인 난초가 있었고 스님의 향기로운 사상이 싹트고 자라났으며 아름다운 글이 태어났던 다래헌(茶來軒)에 세상의 눈길이 쏠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더 이상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해 주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오해와 증오 비방만 넘쳐났다. 불화의 당사자들은 모두 스님의 가르침을 들먹이며 자신이 옳다고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말 단 한 마디에서도 스님의 자취가 보이지 않았고 어느 곳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없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봄여름가을겨울》).

스스로 ‘부처님 제자’라고 하려면, 스님 말씀대로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비방과 욕설이 아니라 사랑의 말을 하고, 따뜻한 손길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

사이비^급조 승려의 양산과 교육답지 못한 승려 교육을 질타했던 스님의 목소리가 울린 지 46년, 이제 조계종에서는 ‘승가 교육을 개혁하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제발 이번의 개혁만큼은 구호에 머물지 말고 열매를 거두어, 진짜 부처님 제자를 키워내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이것이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남겨 주고 간 ‘숙제’이다. 이것은 아주 쉬울 수 있지만, 구성원들이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

2010년 6월
 이병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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