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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논단] 어느 불교적 기독교인이 본 불교 / 이찬수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
[0호] 2010년 06월 25일 (금)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

1. 화자의 자리 

   

이찬수 원장
종교문화연구원

나는 천주교학교에서 불교학과 신학(가톨릭)을 공부한 뒤 목사(개신교)가 되었다. 학생 신분으로 15년 이상 그런 공부를 하며 지냈고, 대학에서 관련 강의를 한지 십 수 년이 훌쩍 지났다. 그런 내게 이들 세 종단 사이에 벽이 거의 없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개신교 안에서 자란 터라 개신교 문화에 가장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으나, 내가 보건대 이들 종단 간에는 그저 외형적 혹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할 뿐, 교리나 사상, 더 나아가 종교 체험의 정도에는 별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나를 일반적인 의미의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런 내가 말하는 불교도 여느 이웃종교인이 보는 불교와 다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의 불교관, 내가 바라는 불교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는 대학원생 시절 불교로 인해 사상적 전환을 경험했다. 나로 하여금 비교적 뒤늦게 목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도 돌이켜보면 불교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내게 불교 공부는 그저 알음알이의 과정도, 단순한 정보 축적의 과정도 아니었다. 불교적 지혜가 내 안에 들어올수록 기존의 나를 새롭게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겨났다. 불교는 내 세계관을 바꾼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붓다의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 반추해보면서 나는 그리스도교적 신앙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이렇게 불교는 나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단순히 타파하기보다는 더 그리스도교답게 해주었다. 내게는 그것이 불교의 진정한 힘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으로 불교를 다시 보니 불교도 더 잘 보였다. 불교를 옳게 보았느냐 잘못 보았느냐를 떠나서, 내 안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내 안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는 학문적 작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은 그런 내 눈에 비친 불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칠게, 정말 거칠게 적어본 것이다.

   

2. 불교와 한국의 관계

언젠가 한국과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대해 정리하면서 그리스도교인에게 ‘한국’은 지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측면이 크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떤가? 불교는 한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먼저 ‘한국’이라는 구체적 지평의 의미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게 ‘한국’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은 불교를 불교로 살아가게 해주는 장소다. 그곳에 있음으로써 불교적 피와 살을 얻는다.

인도에는 인도불교, 중국에는 중국불교가 있듯이, 당연히 한국에서는 한국불교이고, 일본에서는 일본불교다. 이들에게 독특성을 부여해주는 장소가 인도이고, 중국이고, 한국이며, 일본이다. 불교 자체란 없다. 저마다 독특한 지역(local)의 불교가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다. 유럽 또는 미국 그리스도교, 한국 그리스도교가 있을 뿐이다. 불교든 그리스도교든 특정 지역 안에서, ‘한국적 지평 안’에서만 피와 살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한국에서 피와 살을 얻은 불교는 지난 1,500여 년 동안 한국을 위한 가르침, 말하자면 호국불교로 자처해왔다. 적어도 고려시대까지는 한국과 불교가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는 국가와 밀착해왔다. 조선조 이래 정치적 차원에서 받은 억압의 반작용으로 불교는 호국 성향을 견지했고, 일제 치하에서 살아오고 독립한 이후 ‘불교의 한국적 측면’을 강조하는 연구논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근대 한국불교를 논하는 자료들은 ‘호국’, 오늘날 언어로 ‘애국’ 내지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물론 크게 보면 그리스도교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개된 이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독립을 위해 기도하기도 했고, 한국의 회복을 신학 안에 담기도 했다. 일제 이후 우리 학문은 정신적 독립을 위해서라도 민족주의적 시각을 견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만난다면 이러한 ‘민족주의’가 주요한 접점이 될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개신교회사가인 민경배의 입장을 “민족교회사관”으로 정리하는 것도 한 보기다.

1960년대 이후 토착화신학이 생겨나고 1970년대 후반 민중신학, 민중불교 등이 등장하였으며 민주주의 구현과 분단 극복을 위해 실천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공동의 일을 도모하게 된 정신적 배경도 ‘한국’이라는 자리를 떠나서는 ‘종교’도 불가능하다는 암묵적 타협이 기초에 있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한국’을 매개로 그리스도교에 대해 연구하고 만나려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불교는 정말 한국과 스스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불교는 전통적인 까닭에 참 한국적이라는 막연한 전제를 견지하기만 하지 않는가 싶다. 이것은 일면에서는 옳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것의 상황이 복잡해지고 급변해왔다. 엄청난 변화 속에서 불교의 위치는 무엇인가. 이것은 근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3. 근대성 문제 - 일본과 비교하며

일본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일본의 경우 메이지(明治) 시대에 이르러 신도를 중심으로 하고 메이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이른바 ‘국체’(國體)가 확립되었다. 이 시기를 겪으면서 대다수 일본인은 신도(神道)가 가장 일본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막연하나마, 일본적인 것에는 역사와 질서가 있는데 비해, 외래의 것은 새롭지만 무질서하다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근대’라는 것에 관한 한, 한국과는 반대 생각을 가지고 반대 방향을 걸어온 것이다.

즉,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는 오래된 전근대가 ‘질서적인’ 것이었다면 다양한 외래사상들이 뒤섞인 근대는 ‘무질서한’ 것이라는 이해가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무질서’하게 밀려온 비전통적 사상들이 천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전통적 ‘질서’와 대비되면서, 천황제 중심의 질서 잡힌 ‘전근대’가 외래 사상 내지 비전통 사상의 ‘근대’를 그대로 흡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질문명 차원에서는 서양적 근대성을 추구했지만, 정신문명 차원에서는 전근대, 즉 전통을 고수하고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서양화와 동일시되지 않는 근대화를 이룬 대표적인 나라가 된 것이다. 기술은 서양에서 빌리지만 정신은 일본의 것을 지킨다는,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메이지 시대의 표어가 이것을 잘 설명해준다. 이 때 불교는 메이지 시대에 정책적인 차원에서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이미지에까지 손상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반대였다. 한국에서는 타의에 의해 국가적 멸망을 겪고 원치 않게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것 보다는 새로운 것에서 희망의 근거를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20세기 한국인에게 ‘전근대적인 것’은 극복의 대상이고 서양식 ‘근대’는 추구의 대상이었다.

이 때 불교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는 대체로 전근대 쪽에 가까웠다. 전근대가 전통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전통적인 것이 옳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전통을 바르게 볼 줄 아는 때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제도나 의례 등등과 관련해 전통과 근대의 관계를 적절히 풀어가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불교는 숙제가 많다.

   

4. 개신교 배타성에 대한 불교권의 대응 양상

주지하다시피, 개신교 일각에서는 불교에 배타적 이미지를 강력하기 지니고 있다. 온갖 훼불 사건도 비일비재했고, 그리스도교가 권력화하면서 은근한 배타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거나 강화되고 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다른 문제는 불교의 자세에도 있다.

그리스도교권의 공격적 자세에 대한 불자들의 염려는 작지 않다. 불교계 신문은 한동안 사태의 심각성을 폭로했고, 여전히 예의 주시 중이다.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겪으면서 불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이렇게 보게 되었다.

한국의 불자들은 내심으론 기독교에 잔뜩 긴장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불교가 기독교를 바라보는 태도를 묘사하는 말은 냉전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한국불교는 철저하게 냉담한 시선으로 기독교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불교에게 기독교는 전혀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 상대다. 한국의 불자들은 기독교를 무조건 외면하고 기피한다.

양식 있는 불자들의 심정을 적절히 반영해주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태의 일차적 원인제공자인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권의 진지한 자기반성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라는 우리 주제와 관련하여 보건대, 특히 불교의 대화 자세와 관련해 보건대 정작 문제는 불자들이 수구적 방어태세를 취하는 데만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불교권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해 보이고 있는 반응은 무관심으로 포장된 경계와 우려 속에서 주시하면서 그리스도교의 훼불사건에 대한 보고와 대응책을 내놓는 정도에 그친다. 개신교의 양적 성장과 가톨릭의 조직적 교회운영에 ‘선망’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특히 승단 차원에서는 그리스도교와 같이 ‘유치하고 황당한’ 종교를 배우고 그와 대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유치한’ 행동처럼 비춰지는 분위기가 오늘날까지도 지배적이다. 물론 이때의 그리스도교란 주로 개신교에 해당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리스도교에 부족한 것이 불교 안에 다 있다는 자기중심적이거나 포괄주의적 자세와, 한편에선 경계심도 늦추지 않는 복합적 감정이 뒤섞여 있다.

불교학자 김용표가 “현대 한국 불교도의 타종교에 대한 태도를” “교단적으로는 배타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교리적으로는 포괄주의적 해석을 하고 있으며, 종교 체험적으로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 그 보기다.

체험으로는 다원주의이고, 교리로는 포괄주의인 불교가 교단 차원에서는 왜 배타적일까? 김종명에 의하면, “근본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불교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는” 보수적 개신교도들에 대한 방어기제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대화도 “개신교 측의 훼불사태(와 같은 공격적 자세)가 종식된 후라야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불자들의 심정을 잘 반영해준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고 행정적 차원의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적극적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경영학자이자 새시대불교포럼 대표인 박승원은 이렇게 자기비판한다.

상당수 불교인은 불교만이 제일이며, 남의 종교는 공부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경우 종립대학에서 타종교에 대한 접근은 제도적으로 차단되어 있다.…기독교국가인 미국의 경우, 신학대학에서조차 교과과정 중에 불교과목이 상당히 많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종교 성직자 가운데 불경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참선을 생활화하는 경우는 있지만, 불교인의 타종교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기독교를 매우 천박한 종교로 매도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독히 자폐적인 시스템이다.

윤영해는 이렇게 지적한다.

종교간 긴장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노정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다종교사회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상호이해는 필수적이다. 한국사회에서 기독교 측이 저지르는 불교훼손을 궁극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정확하게 불교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그 책임은 틀림없이 불교학도들에게 있다. 한국 같은 다종교사회에서 불교의 타종교 연구가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5. 그리스도교 연구해야

이것은 불자로서 그리스도교를 연구하는 사람이 생거나고 많아져야 한다는 요청으로 이어진다. 물론 불자로서 그리스도교, 도교, 무속 등 한국의 다양한 종교들을 연구했던 이능화(1869~1943) 같은 이가 없지는 않았다. 주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그는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힌두교, 대종교, 천도교 등을 불교와 비교하며 논한 일종의 종교대론서『백교회통(百敎會通)』(1912)을 쓰면서 저술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모든 종교의 강령을 열람하고 대조하여 서로 견주어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가리고, 필요에 따라 원문을 인용하여 증거를 하면서 회통케 하였다. 또 털끝만큼이라도 뜻이 바뀔까 조심하면서 성인들의 가르침을 높이 존중하여 옛 문장을 알기 쉽게 풀어 두루 보게 하였으니 각 종교의 이치와 행이 손바닥을 보듯이 훤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를 믿는 사람이 보면 유도(儒道)라 할 것이요, 불교인이 보면 불도(佛道)라 할 것이며, 다른 종교인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니, 마음을 말하고 성(性)을 말할 때 남의 것과 자기 것을 함께 잘 비교하여 옳은 결택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

가능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종교연구 자세, 자신은 불자이지만 자신이 쓴 타종교 소개가 타종교인에게도 부족함이 없는 가르침이 되도록 정리하려는 자세는 오늘 다시 보아도 적잖은 귀감이 된다. 무엇보다 그가 천주교 측 자료들에 조선측의 관변 기록 등을 참조해서 쓴『조선기독교급외교사(朝鮮基督敎及外交史)』(1928)는 당시 호교론적 관점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교 관련 대다수 저술들에 비하여, 한국인의 시각을 견지하고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쓴 최초의 한국 그리스도교사라는 의의를 지닌다.

더욱이 불자로서 한국 그리스도교사를 정리했다는 사실은 후학 불자들의 그리스도교 연구를 더욱 독려하는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그리스도교 연구가 단순한 자료 나열 수준에 머문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가능한 한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하려는 학문적 방법론의 하나로 생각함이 좋을 듯싶다. 정작 문제는 이능화 사후 50년이 지나도록 그리스도교 및 타종교를 연구한 불자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중후반 서구사상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고민한 이가 이기영(1922~1996)도 있다. 본래 천주교인이었다가 불자가 된 그는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균형감 있게 정리할 수 있었을 학자였지만 아쉽게도 이 분야의 본격적 연구에까지 이르지 못한 채 작고하고 말았다. 그렇더라도 석가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 양쪽을 오가며 쓴 에세이를 남기기도 했던 만큼, 그는 종종 현대 서구문명과의 관계, 좁게는 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서 글을 쓰곤 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힌다.

그리스도교에서 제시한 몇몇 문제와 불교가 제시한 진리는 내 안에서 하나로 겹치고 있지만, 그것을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불교인에게 똑같이 알아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제각기 알 사람만이 알면 족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기영이 느끼는 그 “하나로 겹치는” 부분을 좀 더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론과 실천면에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더욱 요청되는 때다. 이미 그러한 논문을 쓴 바 있는 윤영해나 종교연합(U. R.)운동을 주도하는 진월 등에게서 그런 작업을 기대해 볼 만하다. 아울러 신학적 소양을 갖춘 뒤 한국 조계종단으로 출가한 현각(폴 뮌젠)도 어떤 형식으로든 불교 안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이해 폭을 넓힐 수 있을 적절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이와 함께 불교학 연구방법론의 다양화 역시 병행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응용불교’라는 불교학 용어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불자를 자처하면서도 전형적인 불교 교의학적 시각과 다른 차원에서, 그리고 불교 제도권 밖에서 서구 불교학의 동향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이민용이나 안양규, 그리고 해외 불교 현황을 소개하는 진우기 등도 불교학의 연구주제나 방법론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탈종파적, 비교의적 차원에서 그리스도교 문화권에 속한 지역의 불교학을 소개하는 일이 더 확대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만날 수 있는 여지와 상황이 넓어지고 개선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 21세기의 불교유신론

20세기 초반, 이능화가 비불교권 종교들에 대한 이론 연구에 매진할 때 만해와 용성, 권상로, 박한영 등은 포교와 교육, 제도개혁과 사원유지 등을 골자로 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펼친 바 있다. 원불교의 개조인 박중빈의 “조선불교혁신론” 역시 못지 않게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여전히 긴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엇보다 21세기 불교의 ‘유신’은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상생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토인비가 20세기 최대 역사적 사건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지목한 바 있듯이, 불교의 그리스도교 연구야말로 불교를 더욱 충실한 불교로 변모시켜줄 것으로 생각된다. 이웃종교를 배우고 포섭하는 행위는 종단의 제도 개혁 이후에 취해야 할 느긋한 과제가 아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행위 자체가 바로 오늘날의 불교개혁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상적으로는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관계가 호전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2007년 여름 아프가니스탄 선교사 대량 피랍사태를 겪으면서 국민 사이에 개신교 우월적 태도에 대한 반대여론이 심화되었고, 2008년 여름에는 고위 공직자들의 개신교 중심 종교 편향적 분위기 때문에 상처받아오던 불교계의 반감이 급기야 ‘범불교도대회’라는 반정부적 결집대회를 통해 폭발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외형적이고 미시적으로는 분명히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범불교도대회’는 적어도 불교계 안에 그동안 무관심해왔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해왔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의 폭을 확대시킬 것이고, 그에 따라 대화의 분위기도 진작될 것이다. 여기에다가 불교를 대하는 그리스도교인의 시각에도 진정성이 더해지면서, 양 종교간 대화 내지 상호이해의 분위기도 확대되는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범불교도 대회의 불교사적 의미는 지대하다고 생각된다. 이 기회에 변혁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불교계 안에도 21세기 유신이 일어나야 할 시점에 와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고승인 원효의 일심(一心)사상과 여래장사상, 의상의 화엄일승(一乘)사상 등 최고 스승들의 뛰어난 사상들은 한결같이 일체의 차별적인 것들을 하나로 포섭해내려 한 시도였다는 사실에서도 오늘날 불교유신의 이유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화쟁(和諍)을 자기 사유방식의 큰 틀로 삼았던 원효가 21세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도 그리스도교를 화쟁 대상으로 삼았으리라.

의상이 오늘날 태어났다면 ‘일승’이라는 우주적 구원의 진리 안에 그리스도교를 자연스럽게 포섭했으리라. 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불교적으로 보건대 외적 차별이라는 것은 무지[無明] 내지는 분별심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극복의 대상이다. 이 마당에 그리스도교를 차별의 대상으로 남겨두지 않고 적극 포섭하는 자세는 불교적으로 보더라도 필연적, 자연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불교를 억압하거나 배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면서도 그리스도교 안에 수용해내는 자세 역시 더 말할 필요없는 요청이다. 이런 것이 21세기 한국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를 대하는 자세여야 하리라.

7. 30% 이상의 10%

언젠가 나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의 깊이와 넓이를 수치화해 표현해본 적이 있다. 요지인즉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불교가 90%쯤 완성된 종교이고, 그리스도교, 그 가운데 가톨릭이 80% 쯤 완성된 종교라면, 그리스도교 가운데 개신교는 70%쯤 완성된 종교라는 것이었다. 교리적인 완성도에서 보면 불교는 그리스도교를 포용하고도 남을 깊이와 넓이를 가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한 수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수치상으로만 그럴 뿐이다. 실제로 그만큼 깊고 넓으냐는 교리상의 문제와 다른 차원에 있다. 내가 보기에 불교는 스스로에 대해 깊고 넓은 종교라는 자긍심만을 가졌을 뿐, 정작 다른 종교나 사상을 실제로 포용할 만큼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서구에서 불교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드디어 세계는 불교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며 쉽사리 받아들이고, 과학적 세계관이 불교적 세계관과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결국 서구 과학도 불교로 오게 되어 있다는, 다소 안일한 반응을 보이고 만다. 서구의 사상 조류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서구에서 발전시킨 과학적 세계관, 그 사상적 근거를 꿰뚫어보지도 못한 채 쉽사리 안일한 포용주의에 머무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심 불교는 그리스도교보다 한 수, 아니 여러 수 위라는 심리적 위안감만 가질 뿐,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런지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자세는 별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어떤 때는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직접 대하기, 한 자리에서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리스도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저 자신의 우물에만 안주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종교적 의무 관심충실하지 못한 태도로 이어지게 된다.

불교가 정말로 깊고 넓다면 ‘밖’의 것을 소화해 받아들핼 태도로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불교적 자세의 핵심에 속해 없다기보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받아들핼 태도로으려면 무엇보다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공부해야 이해가 되고, 그래야 받아들핼 태도로게 된다. 모른 채 받아들인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불교 안에는 ‘다른 것’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어 보인다. 가령 서양철학이나 그리스도교 신학을, 특히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 그리스도교 신학자가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론을 전개하는 불자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다. 불교를 공부하는 그리스도교인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형편이다. 그리스도교는 그 완성도가 70% 정도라고 해서, 언제까지 70%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남은 30%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제법 된다. 교리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 답답한 만큼 그것을 깨치려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답답한 그리스도교가 그나마 살아서 역사를 움직여오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공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불교는 나머지 10%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도 30%를 채우려는 그리스도교인의 노력 이상으로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에만 그리스도교가, 서양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을 제대로 보아야만 불교가 미래 사회에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수 천 년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거나 만만하지 않다. 도리어 거의 모든 불교 고전을 영역해놓았을 만큼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도리어 동양에 그 결과를 역수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양 세계의 치열함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치열함의 정도에서 불교는 서양에, 좁게 말하면 그리스도교에 미치지 못한다고 나는 본다. 종교성 자체가 그러한 치열함을 넘어서고자 한다지만,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태도 자체에 치열함이 없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세계에 매일만큼 그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치열한 매임과 속박의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불교 본래의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일테니까. 상대를 알고 받아들이려는 적극적인 자세 없이는 언제까지고 자신의 ‘우물’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두를 내 지혜의 ‘바다’로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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