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거머 ckgermer@gmail.com / 번역·정리 김재성 metta4u@empal.com

불교심리학은 현재 서양 심리치료에서 널리 수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챙김(sati, vipassana)과 연민(metta, karuna)입니다. 자기―연민은 강렬하거나 만성적인 정서적 고통을 경험할 때 필요합니다. 오늘 발표에서는 ‘마음챙기는 자기―연민’을 정서적인 치유의 토대로서 논의하고자 합니다.

나의 개인 경력

먼저 불교를 만난 나의 개인 경력에 대해 약간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동양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독일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동안, 9년간 인도에서 살았는데, 영국인에 의해 7년 동안 강제 수용되었습니다. 인도에 살고 있던 모든 독일인과 이태리인은 당시 인도를 통치하고 있던 영국인에 의해 감옥에 수용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강제수용소에서 하인리히 해러(Heinrich Harrer, 1912~2006)를 만났습니다. 그는 후에 감옥을 탈출해서 히말라야를 넘어 달라이 라마의 영어 교사가 된 사람입니다. 저는 인도의 멋진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1976년, 24세가 되었을 때, 저는 혼자서 인도의 문화와 영성을 탐험하기 위해서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스리랑카의 한 동굴에서 6주간 살면서 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그 해에 많은 힌두교의 성자와 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후 12~13 차례 다시 인도를 방문했습니다.

1978년, 제가 임상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그 당시에는 불교심리학은 여전히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종교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심리학을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연구할 수 없었습니다. 1990년 존 카밧진 박사가 8주간의 명상 훈련 프로그램인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BSR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에 대한 책 Full Catastrophe Living(《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 장현갑·김교헌 역, 학지사, 2005)을 출판했을 때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MBSR은 현재 가장 연구가 활발한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1984년에 대학을 졸업하였고 1985년에 심리치료와 불교 명상의 접목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심리학자들의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24년간 매달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Mindfulness and Psychotherapy(2005)(《마음챙김과 심리치료》 김재성 역, 무우수, 2009)라는 책을 우리 모임 구성원들이 저술하였습니다.

심리치료에서 ‘불교’라는 단어는 ‘마음챙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챙김(sati)’은 종교적인 단어는 아니지만, 불교 명상 수행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챙김은 오늘날 미국에서 심리치료의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의 하나입니다. 작년의 한 조사에서, 컬럼비아대학의 조앤 쿡(Joan Cook) 박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쪾 미국에서 인지행동치료를 하는 치료자들의 68.7%는 대부분 다른 치료법을 겸하고 있다.
쪾 48.9%는 결혼과 가족 체계와 관련된 치료를 한다. 적어도 일부 시간이라도.
쪾 세 번째로 좋아하는 치료 지향이 ‘마음챙김 치료’라고 하는 사람이41.4% 된다.
쪾 정신역동/분석심리학적 치료는 35.4%로 네 번째였다.

마음챙김 치료는 과학적으로 지지받는 치료의 제3의 물결입니다.

1. 행동치료 ― 자극과 반응; 강화의 수반.
2. 인지치료 ― 우리 사고의 내용이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를 결정.
3. 마음챙김과 수용에 근거한 치료―사고와 정서에 대한 우리의 관계방식이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를 결정.

핵심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리가 경험의 내용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부정적인 자기 단정에 대해 논쟁하지 않고, 더 좋게 느끼려고 애쓰지 않는 것― 대신에 경험에 대한 우리의 관계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경험에 대한 건강한 새로운 관계 방식은 ‘마음챙기며’와 ‘수용하는’ 것입니다.

한 공황 환자를 예를 들어봅시다. 그녀는 (1)이완 (2)자기에게 말하기 (3)노출하는 방법 등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추동(drive)을 두려워합니다. 왜일까요? 그녀는 불안과 새로운 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녀는 불안의 정서적인 불편함을 수용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미국에서 대부분의 임상심리 박사학위 과정에서 마음챙김과 수용에 근거한 치료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기술(skill)

‘마음챙김 명상’의 우산 아래에 실제로 서양에서 실천되고 있는 세 가지 기술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집중(사마타) ― 주의를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위한, 하나의 대상에 초점을 맞춘 알아차림.
기법: 호흡, 발바닥 또는 다른 감각 대상에 초점 맞추기.

2. 마음챙김(위빠사나) ― 평정과 통찰을 기르기 위한, 열린 장의 알아차림. 우리의 알아차림의 장에서 무엇이든지 두드러진 것에 순간순간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거나 정서에 명칭을 붙이는 것을 말함.

기법: ①정서에 명칭 붙이기, ②정서를 육체적 감각으로 위치 지우기, ③선택 없는 알아차림.

3. 연민(까루나:悲, 메따: 慈) ― 진정시킴, 안락 그리고 수용을 위해서 ‘좋은 마음가짐’ 훈련하기. 집중과 마음챙김에서 주의의 자질.

집중으로 우리는 정서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대부분의 주의를 반복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도록 다른 곳으로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외상적인 환각의 재현이나 일상의 반추와 같은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것을 영원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이 산만해지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챙김입니다.
론(Ronald Siegel)이 지난 달 말한 것처럼, 우리는 예민한 부분에 대한 관계 방식을 변환하는 방식으로 안전함을 향하고, 예민한 부분을 향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집중과 마음챙김을 할 때, 편안하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때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자애와 연민을 줄 때입니다. 자애와 연민이 있으면 우리는 집중과 마음챙김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심리치료에서 마음챙김은 주류가 되고 있고, 집중과 마음챙김을 강조해 왔습니다. 나는 최근에 상대적으로 무시된 구성 요소인 연민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애와 연민

달라이 라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민은 누군가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고, 자애는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연민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고통(pain)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애는 언제나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민은 자애의 일부분(subset)입니다. 연민과 자애는 모두 연결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관계적입니다.

자기―연민이란 무엇인가?
자기―연민은 자신의 괴로움(suffering)의 증인이 되어, 친절과 이해로 대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챙김과 자기―연민을 직접 경험해 보시기 원하십니까?

잠시 조용히 앉아 보십시오. 눈을 감고, 편안하게 숨을 몇 차례 고릅니다.

이제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되돌아 보십시오.― 육체적인 불편함이 될 수도 있고, 가족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고, 건강에 대한 관심, 여러분의 상사에 대한 문제, 여러분의 파트너와의 다툼 또는 파트너를 사귀고자 하는 바람일 수도 있겠지요. 너무 크지 않은 중간 정도의 문제를 선택해 보십시오. (잠시 멈춤) 여러분의 몸에 머물러 보세요. 여러분이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여러분 몸에서 어떻게 긴장이 되는지 알아차려 보세요. 여러분이 긴장을 하고 있는 몸의 장소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이것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입니다.[身念處]

이제 긴장을 하고 있는 여러분 몸의 부분을 부드럽게 해 주세요. 마치 뜨거운 습포를 대고 있는 것처럼. (잠시 멈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열기만이 근육을 부드럽게 해 줍니다. 육체적으로, 잠시 그냥 내려놓아 보세요.

이제 그 느낌이 그냥 그곳에 있는 것을 허락해 보세요. 비록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냥 그대로 두세요. 부드럽게 하고 허용하세요. 부드럽게 하고 허용하세요.

이제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대 보세요. 여러분 손의 온기를 느껴 보세요. 약간이라도 마음의 변화(shift)를 알아낼 수 있습니까?

이제 여러분 자신에게 말해보세요.

“내가 안전하기를, 내가 안전하기를. 내가 안전하기를. 내 몸이 안전하기를, 고독과 거부에서 안전하기를, 부적절함과 무가치한 느낌에서 안전하기를. 내가 안전하기를, 내가 안전하기를.”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이제 눈을 뜨십시오.

이 연습을 “부드럽게 하고, 허용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어떤 정서적인 고통을 느낄 때마다 실행할 수 있습니다.

자기연민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와 똑같이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성하지 않은 삼위일체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괴롭고, 실패하고 부적절하다고 느낄 때) 전형적으로 하는 일은 아닙니다.

1. 더 자주 우리는 자기―비판적이 됩니다.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 “왜 나는 대처할 수 없지?”

2. 또한 우리는 자신을 고립시킵니다. 아마도 수치심(shame) 때문일지 모릅니다. (실패나 부적절함은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아닙니다.)

3. 그리고 자기―몰입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어난 일에 대해서 반추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은 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지?”

해독제: 자기―연민

이러한 반응에 대한 해독제는 자기―연민입니다.

자기―연민의 영역에서 앞선 연구자인, 오스틴의 텍사스대학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연민 척도(www.self-compassion.com 참조)를 만들었습니다. 크리스틴은 자기―연민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쪾 자기―친절 : 우리가 고통스러울(pain) 때 자신이 받을 가치가 있는 친절을 자기에게 준다. 그녀의 척도에 있는 한 항목은 “나는 나 자신의 결함과 부족함을 관대하게 받아들인다.”이다.

쪾 공통적인 인간성 : 실패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낄 때 인간임에 대한 느낌 ― “나는 단지 인간일 뿐이야!”
쪾 마음챙김 : 열려 있는, 균형 잡힌 알아차림. 자신의 문제에 빠져든 상태가 아님.

우리는 행복해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깊고 깊은 열망 또는 의도를 개발하고(tapping) 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의 순응에서 생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무모한 관념을 가지고 멋진 집, 영원한 젊음 등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을 얻을 수 없을 때 공황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깊고 깊은 열망을 타진하는 일을 통해서, 경험에 저항하려는 본능적인 경향을 수용하고 내려놓게 됩니다. 그것이 ‘투쟁과 회피’ 이전의 상태입니다. 자기―연민은 단순히 원래적인 소망의 불꽃에 부채질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자기―연민에 대한 연구

자기―연민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24편 정도가 있는데, 대부분 크리스틴의 척도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1. 크리스틴과 동료들은 그녀의 척도에 의 측정된 자기―연민은, 지혜, 개인의 주도성(personal initiative), 행복, 낙관주의, 긍정적 정서, 대처에 대한 측정치에서, 마음챙김 척도의 점수보다 더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2. 또한 자기―연민이 있는 사람들은 높은 자기―존중감이 있지만, 그들의 자기―존중감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는 가와는 특별히 관련이 없다. 자기―존중감은 보통, 사회계층에서의 위치에 달려 있다. 자기―연민에서 생긴 자기―존중감은 우리가 평가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자기―연민은 성격 자질을 보다 안정되게 해주고, 우리 삶의 조건에 덜 의존적이게 해 준다.

3. 자기―보고 척도에서, 높은 자기―연민은 자아도취증(narcissism)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연민은 자아도취증과는 관련이 없다. 자기―연민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좋은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 머리를 짜낼 필요가 없다

4. 자기―연민적인 사람은 단지 자신들의 경험의 진실을 부드러움과 친절함을 가지고 접한다. (보통) 우리는 그 경험의 진실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린다.

쪾 자기―연민이 있는 사람이 학문적인 실패를 경험했을 때, 그들은 대부분 (1) 그 실패를 수용하고 (2) 그 실패를 향상을 위한 기회로 본다.

쪾 자기―연민이 있는 식이요법자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자신을 그다지 공격하지 않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원상태로 돌아간 후에 다시 식이요법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5. 영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폴 길버트는 자기―연민 훈련 프로그램인 연민 마음 훈련을 개발했다.

길버트의 프로그램을 적용한 무선(無選) 통제 연구는 아직 없지만,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한 예비 연구에서, 길버트는 우울증, 자기―존중감 그리고 수치심의 감소, 일반적인 정신병리에서 좋은 결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뇌 영상 연구(기능성 자기공명장치, fMRI)에서, 배측면(dorsolateral: 뇌 앞쪽 측면 윗부분) 전전두엽의 활동이 높은 수준의 자기―비판(자기―보고 방식으로 측정되었음)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길버트는 발견하였습니다. 높은 수준의 자기―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실수의 과정과 행동 금지가 있다고 합니다. 전측면(ventrolateral: 앞쪽 측면 아랫부분) 전전두엽의 활동은 강한 자기―확신과 강한 연관이 있었습니다.

길버트는 법적 시설에 입원해 있는 정신병 환자를 대상으로 10주간의 연민 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연구를 했습니다. 그것은 예비적, 사전―사후 연구였는데, 6주간의 추수검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에 의하면, 우울증이 크게 감소하였고 자기―존중감이 향상되었습니다. 측정 척도는 벡 우울척도 II와 로젠버그의 자기―존중감 척도였습니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자기―연민이 있는 환자는 고통스런 생각, 기억, 정서를 덜 피하게 되었고, 외상과 관련된 자극에 더 많이 자신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게 되었고 둔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9년에 영어로 발표된 심리학 연구 성과 가운데 자기―연민에 대한 논문은 거의 1,000개 정도가 되는 마음챙김에 대한 연구와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적다 하더라도, 자기―연민에 대한 연구 전망은 밝습니다.
자기―연민은 이슈가 되고 있는 새로운 연구 분야입니다. 현재 많은 학위논문이 작성 중입니다.

마음챙김은 자기―연민의 토대

마음챙김은 자기―연민의 토대입니다. 자기―연민을 경험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통을 지켜볼(bear witness) 필요가 있습니다. 지켜보는 것이 마음챙김입니다.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나는 명상지도자인 가이 암스트롱(Guy Armstrong)의 정의를 좋아합니다. 마음챙김이란 ‘여러분이 경험하는 동안에 자신이 경험하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입니다.

여러분 손가락을 흔들어 보세요. (여러분 손가락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것이 마음챙김입니다. ‘~~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고통이 있을 때, 우리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할 생각(‘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말했다’) 속에 너무나 휩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쿠” “이건 방해되는데!” “이것은 아프네!”라고 단순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여기의 경험에 대한 마음챙기는 알아차림― 투사하고 부정하거나 우리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조작함이 없는 알아차림―이 있을 때, 자기―연민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고통에 빠져 익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연민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 고통에 접촉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심리치료적 마음챙김

아마도 건강관리 분야에서 마음챙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존 카밧진은 마음챙김을 ‘순간순간의 비판단적인 알아차림’이라고 정의합니다. 마음챙김에 비판단 또는 수용이 추가되면 큰 고통을 다룰 때 (의료적인 돌봄과 정신적 건강 돌봄에서) 마음챙김은 ‘치료적’이 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향해서 혐오나 반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내적 또는 외적으로 눈을 감는 것이며 무엇이 진행되는지 알아차릴 수 없게 됩니다. 경험으로 보아,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마음챙김을 위한 수용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마음챙김과 똑같이, 수용은 현재 순간에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학대 관계에 있는 남성과 여성은 그들의 고통을 수용하고 파트너에게 변명하는 것을 그만둘 때, (학대 관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나는 발견했습니다. 수용이란 지금 여기에서 경험을 능동적, 비판단적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저항하는 것은 지속된다.

마음챙김의 입장에서 볼 때, 인생에서 그토록 많은 괴로움을 야기한 것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우리의 저항입니다. 저항하는 것은 지속됩니다. 모든 치료자는 정서적 저항의 파괴적인 측면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잠이 오지 않는 상태(sleeplessness)와 싸우면서, 우리는 불면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불안과 싸우면서, 공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슬픔과 싸우면서, 우울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요통과 싸우면서, 만성 통증 증후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치료자들에게 핵심 질문은 “환자가 저항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입니다.

여기 저항을 보여주는 〈송 한진의 파리(The Fly by Hanjin Song)〉1)라는 짧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본 것은 저항, 절망, 그리고 수용입니다. 여러분은 절망이 어떻게 수용으로 진행되었는지 알아차렸습니까?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 길에 도달합니다.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갱생 모임)에서 말합니다. 그들은 ‘절망의 선물’을 받았다고. 또는 스티븐 헤이즈(Steven Hayes)가 말했듯이, ‘창조적 절망감(creative hopelessness)’입니다.

마음챙김 세계에서, 인생에서 그토록 많은 괴로움을 야기시키는 것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우리의 저항입니다. 저항은 우리를 한곳에 꼼짝 못하게 묶어 놓거나 우리의 정서적 고통을 증폭시킵니다.
공식은 괴로움(suffering) = 고통 X 저항입니다.

고통―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질병, 경제적 어려움 ― 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피하려고 합니다. 근육의 긴장, 과도한 음주, 과식 또는 파트너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보통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우리는 괴로워합니다!

모토는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인생에서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것은 괴로움이지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치료자는 정서적 저항의 파괴적 측면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잠이 오지 않는 상태(sleeplessness)와 싸우면서, 우리는 불면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불안과 싸우면서, 공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슬픔과 싸우면서, 우울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요통과 싸우면서, 만성 통증 증후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상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혼란 상태(upset), 아드레날린, 더 혼란 상태, 반추 …… 악순환! 마음챙김과 수용은 저항의 반대입니다.

자기가 괴로울 때

우리 문제가 특히 강하고 혹독할 때, 우리는 멀고 외로운 길을 따라 내려가게 됩니다.

쪾 “나는 이 느낌이 싫어.”
쪾 “이 느낌이 없었으면 좋겠어.”
쪾 “나는 이 느낌을 가져서는 안 돼.”
쪾 “이런 느낌을 느끼는 나는 잘못되었어.”
쪾 “나는 나빠!”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나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쪾 “난 결함이 있어. “
쪾 “난 사랑받을 수 없어.”
쪾 “난 원래 혼자야.”
쪾 “난 구제불능이야.”
쪾 “난 적절하지 않아.”
쪾 “난 실패자야.”

그러면, 우리는 경험뿐만 아니라 경험자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가 자기―연민이 들어올 곳입니다.

‘이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통을 쫓아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친절과 이해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끄럽고 새로운 접근인 자기―연민 기법으로, 저항을 더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연민을 포함한 어떤 기법도 괴로움을 우회하기 위한 현명한 새 길로서 적용한다면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순간에 들어가서, 자신을 아주 친절하게(nicely) 대접하고 현재 일어나는 일을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명상 스승이신 페마 최드뢴 스님의 말씀에 “……몇 년이 지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닐(crazy) 수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소심하거나 질투하거나 마음 가득 무가치한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점은……우리 자신을 내던져 버리고 더 나은 상태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러한 우리 자신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없애려고 분투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것들과 친숙해져야 한다.” 즉 고치는 일을 그만두고, 돌보는 일을 시작합니다.

의료에서, 치료를 위한 다른 모든 선택지들이 고갈되었을 때, 돌봄과 안락을 위해서 임종간호(hospice)를 요청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정서적인 삶에서는 돌봄(care)이 치료(cure)입니다.

돌봄은 정확하게 정서적인 고통이 완화되기 위해 요구되는 비저항의 약입니다.

마음챙기는 자기―연민을 어떻게 훈련하는가

자 이제, 훈련으로 바로 들어가 봅시다. 일상생활에서 훈련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첫 번째 규칙은 해치지 않기(不傷害)이고, 두 번째 규칙은 음미하기입니다.
해치지 않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치료의 출발점입니다. 다음은 음미하기(savor)입니다. 음미하기란 ‘자신의 생활에서 긍정적인 경험에 (참여하고) 고마워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쪾 당신은 칭찬을 즐깁니까?
쪾 최근에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에 망설인 적이 있습니까?
쪾 당신은 신선한 가을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곤 합니까?
쪾 행복할 때 크게 소리 내어 웃습니까?
쪾 자신의 성취에 자긍심을 느껴는 것을 허락합니까?
쪾 멋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습니까?
쪾 정말로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친구가 있습니까?

자기―연민에 이르는 다섯 가지 통로

결국 정말로 귀착되는 것은 자신을 친절하게 다루려는 강한 의도입니다. 하지만 의도는 스트레스에 가득 찬 분투라기보다는 더욱 유기적인(organic) 분투입니다. 통로의 핵심은 매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의 한 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신 몸의 부드러운 동물이 사랑하는 것, 그것을 당신은 사랑해야만 한다.” 가장 좋은 접근은 여러분 자신에게 “당신을 보살피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관계적으로? 영적으로?”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첫째, 육체적인 통로 ― 몸을 부드럽게 하고, 경직되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근육을 딱딱한 방패로 만들면서 근육을 단단하게 합니다. 육체적으로 우리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따스한 목욕을 하면서 숨을 쉴 때, 복부를 부드럽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정신적인(mental) 통로 ― 이것은 우리 생각이 오고 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며, 투쟁하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생각 속에 빠지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한 예는 만트라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직) 모를 뿐”2)과 같은.

세 번째, 정서적인 통로― 자신의 느낌, 특히 불편한 느낌과과 친구 되기, 원망하는 일(resenting)을 그만두십시오.

쪾 자신에 대한 용서를 기를 때,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뭐라고 말할까?
네 번 째, 관계적인 통로―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고립되는 일을 멈추십시오. 자기―연민은 사람, 자연, 세계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적인 통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에 전념하는 것, 즉 우리 자신을 넘어서 있는 무엇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자애명상(metta)

이제 자애명상 또는 메따 명상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자애명상은 반복적으로 더 자기―연민적이 되기 위해서 마음을 훈련하는 한 방법입니다. 도널드 헙(Donald Hebb)이 말했듯이, “불처럼 동시에 타오르고, 철사처럼 함께 묶이는 뉴런!”입니다. 우리는 연민의 마음 상태라는 뇌의 습관을 기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그곳에 있게 합니다.

메따 명상은 20분 또는 더 오랫동안 공식적인 좌선을 하는 동안 할 수도 있고, 비공식적으로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할 수도 있습니다.

자, 제가 환자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이, 함께 10분 정도 메따를 실천해 봅시다.
편안한 자세로 앉습니다. 충분히 허리를 바르게 하되 이완되게 합니다. 눈을 완전히 감든지 반 정도 감습니다. 여러분의 몸에 그리고 현재 순간에 머물기 위해서 심호흡을 몇 번 하세요.

쪾 여러분을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해 주는 어떤 사람이나 다른 존재를 마음에 떠올립니다.

여러분 아이나 할머니, 여러분의 고양이나 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가슴에 자연스럽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상이면 누구라도 좋습니다.(만일 살아 있는 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면, 여러분이 행복하고 편하게 느꼈던 장소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 존재가 마치 현존하는 것처럼 느껴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좋은 동료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세요.

쪾 이제, 이 사랑스런 존재가 얼마나 상처 입기 쉬운가를 인정해 보세요. 마치 여러분 자신처럼, 병들고, 늙고, 죽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부드럽고 온화하게 다음의 문구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반복해 보세요.

당신이 안전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이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이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이 편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쪾 당신 마음이 헤맨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위의 문구와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사랑하는 존재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십시오. 천천히 돌아갑니다.

쪾 이제, 당신의 좋은 의도 속에 당신 자신도 포함시키십시오.

당신과 내가 안전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과 내가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당신과 내가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과 내가 편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쪾 이제 그 모습을 내려놓고, 자신의 몸속에서 단지 고요히 앉아 보세요. 당신 자신의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좋은 의지와 연민을 음미하면서.

쪾 천천히 눈을 뜨십시오.

자신을 위한 자애문구

결국 여러분은 자신을 향해 좋은 의지를 붙들 수 있는 당신 자신의 자애 문구를 만들기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나인 그대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를 (기원합니다.)
현재의 나인 그대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행복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인생을 수용하기를 (기원합니다.)

너무 세부적이 되지 않게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결과에 마음이 걸리게 됩니다.

자애문구는 긍정적 단언(Positive Affirmations)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조앤 우드(Joanne Wood)의 긍정적 단언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보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들이 긍정적 자기―주장(self―statements)을 하게 되면, 더 나쁘게 느끼게 되며, 반면에 자기―존중감이 높은 사람이 긍정적 단언을 하게 되면, 기분이 개선된다. 긍정적 자기―주장은 자기―지각과 갈등을 일으키며, 현재의 자기―지각을 강화시킨다.

좋은 느낌 이전에 좋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애명상을 할 때 주요 난점은 우리가 어떻게 느끼게 될지 기대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자애명상은 우선적으로 우리의 의도―좋은 의지―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지 느낌과 함께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좋은 느낌이 떠오르고, 어떤 때는 나쁜 느낌이 떠오르며, 어떤 때는 전혀 느낌이 없습니다. 좋은 느낌은 좋은 의지의 부작용(side-effect) 또는 부산물(by-product)입니다. ‘자연스러워져라.’ 또는 ‘행복해져라.’라는 명령처럼 직접적으로 좋은 느낌을 일으키려고 시도할 때, 그 느낌은 우리를 피해 가게 됩니다.

우리는 수련을 하면서 견뎌내기를 원합니다. 수련이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를 보여 주는 유대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물었다. “왜 토라는 ‘이 말씀을 가슴 위에 두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왜 이러한 성스런 말씀을 우리 가슴속에 두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랍비가 대답했다. “지금 우리 가슴은 닫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가슴속에 성스런 말씀을 둘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 가슴 꼭대기에 두는 것이다. 거기에 그 말씀이 머물고 있다가 언젠가는 가슴이 열리고 말씀들이 떨어져 들어가게 된다.”

자애명상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쪾 긍정적 정서(기쁨, 감사, 즐거움, 경외감)와 긍정적 원천(마음챙김, 음미, 육체적 건강, 삶의 만족)을 길러 준다.
쪾 사회적 연대감을 증가시켜 준다.
쪾 공감과 관대함과 관련 있는 뇌(의 부위)를 바꾼다.
쪾 자신과 남의 단점을 찾는 일에서 멀어진다.
쪾 요통을 줄여 준다.

메따(자애명상)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연구는 성격과 사회심리학 학회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금년 초에 발표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바브라 프레드릭슨과 동료들의 논문입니다.
Fredrickson, B. Cohn, M. Coffey, K. Pek, J. & Finkel, S. (2008). Open hearts build lives: Positive emotions, induced through loving-kindness meditation, build consequential personal resourc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95(5),1045-1062.

그들은 7주 동안 자애명상을 한 사람들과 대기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비교했습니다.

메따 명상은 마음챙김과 문제해결 능력, 미래를 음미하기, 환경에 숙달하기, 자기―수용, 인생의 목적, 사회적 지지기반, 다른 사람들과의 긍정적인 관계, 육체적 건강과 같은 개인적인 자원을 넓게 증가시키는 것은 물론 긍정적 정서(예를 들면, 사랑, 기쁨, 감사, 희망, 자긍심, 재미, 경외감)를 유의미하게 증가시킵니다.

쪾 낯선 사람에 대한 긍정적 느낌과 사회적 연대감을 증가시켜 준다.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자들은 단 7분간의 자애명상으로 긍정적 정서와 중립적인 사람들과의 연대감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쪾 메따는 뇌를 바꾼다.

위스콘신 대학의 리처드 데이비슨이 특별히 흥미 있는 연구를 했습니다. 리처드 데이비슨과 그의 동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2주일 동안 하루 30분씩 메따 명상을 하도록 훈련시켰습니다. 비교 그룹은 자신의 삶의 상황을 ‘인지적으로 재평가하는(cognitively reappraise)’ 방법을 배웠습니다.

2주 후, 메따 명상을 한 그룹에게서만 네프의 자기―연민 척도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습니다.

데이비슨은 눈에 종양이 있는 아이와 같이 괴로움이 있는 사람의 사진을 참가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뇌를 fMRI로 스캔했습니다. 메따 그룹은 (공감과 연관된) 우섬엽(insula)에서 활동이 증가하였습니다. 우섬엽에서 증가된 활동은 안녕감과 자기―연민의 자기 보고 척도에서 높은 점수와 긍정적 관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데이비슨은 보수로 받는 165달러를 자신들의 선택으로 기증할 기회를 참가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기증했는가를 우섬엽의 활동을 통해 예측했습니다!

치료 관계에서 마음챙김과 자기―연민의 역할은 무엇인가?

관계가 우선적인 치료 개입일 때, 말로 하는 치료가 어떻게 효과적인지 설명하는 방식은 많습니다. 다음은 내 의견입니다.

쪾 환자들은 자신의 정서적인 고통에 저항하면서 치료를 받으러 온다. 그 고통을 완화하거나 피하려고 애쓰면서.

쪾 우리는 열린 눈(마음챙김―우리는 증인이 되어 준다.)과 열린 가슴(연민)으로 그 고통을 받아들인다.

쪾 환자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 우리의 더 넓고 수용하는 자세를 “빌린다.(그들은 자기―연민을 배운다.) 

타라 브라흐(Tara Brach)는 자기―연민을 “모든 정서적 치유의 토대”라고 부릅니다. 치료 관계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그 방에서 괴로움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연민의 마음으로 돌본다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임상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몇 달 전, 나는 에단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아주 우울한 중년 남성이며, 치료를 1년간 쉰 후였습니다. 이혼을 겪고 있는 중이었는데, 당시 일시적으로 친구와 함께 볼품없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업은 경제 상황 때문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은 집은 매달 내야 할 돈을 내지 못하여 잃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식욕을 잃어 몸무게가 줄었으며, 항우울제 및 항불안제는 듣지 않았습니다.

에단은 (인생의) 가득 찬 재난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살하고자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계획은 없었습니다. 니체가 말했듯이 “자살에 대한 생각이 큰 위로가 된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힘든 밤을 견디게 된다.”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나는 에단을 안 지 거의 10년이 되었지만, 그가 이런 지경이 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보통의 (치료) 형식은 그의 경제적인 상황과 기타 인생 문제에 대해 함께 터놓고 얘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던지는 질문마다 그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문제 더미에 부딪치게 되어 나는 금방 짜증이 났습니다. 결국 에단이 내 말을 멈추게 하더니, 내가 그에게 지쳐 있는지 물어 왔습니다. 그는 호소하듯이 “우리가 거의 10년지기인 걸 알지만, 나를 더 이상 안 좋아하시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 나는 서두르는 것을 멈추고, 단지 에단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그를 치료하여, 일어날지 모르는 자살을 방지해 보겠다는 마음과 집이 차압당하는 문제에서 그가 눈을 뗄 수 있도록 또는 정서적으로 장애가 오지 않도록 하려고 서두르는 마음을 포기하였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아무리 고통스러울지언정 이 순간은 우리 삶에서 유일한 순간이다. 지금은 단지 에단과 나일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에단의 현실에 굴복하고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도록 두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내가 느끼는 것에 얼마나 압도되었는지, 내가 에단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에단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실제 문제들에 대한 도움을 바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단이 계속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어요. 난 중년인데 그에 걸맞게 보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내 인생 전체가 거대한 환상이었죠.”였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훨씬 간단해졌습니다.

에단: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거머: 나도 모르겠네요.

에단: 난 이제 정말 혼자에요, 아내도 직장도 없고 아무도 없어요.

거머: 정말 안 좋다는 사실 알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는 우리 둘 다 여기 있잖아요.

에단: 난 너무나 과로한 상태입니다. 공포 속에서 잠에서 깨어나요.

에단: 어떤 공포예요?

에단: 주로 돈 걱정이죠. 내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거죠.

거머: 당신 몸 어느 부위에서 공포를 느낍니까?

에단: 여기 배 속이요. 매일 일어날 때마다 내 위장이 꼬인 것 같아요.


그 순간에 나도 똑같은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에단이 배 속에서 공포를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직감을 확인하고 싶었고, 또 에단에게 마음챙기면서 자기 몸을 탐험해 볼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에단이 자기 경험을 말할 때, 나는 그가 그날 하루를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주제로 돌아올 준비가 되기 전에 내 몸이 이완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에단이 나를 이겼지요. 그는 스스로 ‘완전한 실패’라고 부르는 것을 멈추고, 병원을 벗어나 지내는 방법 즉 규칙적으로 식사하기, 더 자주 야외에 나가기, 뜬눈으로 깨어서 되씹는 생각(반추)을 하는 대신에, 피곤을 느낄 때 잠자리에 드는 것에 대해 상의하길 바랐습니다. 처음으로 당황이 되고 무기력한 나 자신의 경험을 연민의 태도로 탐험하기 위해 멈추었을 때, 우리 둘 다에게 새로운 통찰과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심리치료에서, 환자보다는 슬픔에 대한 치료자의 저항이 종종 치료의 진행을 늦춥니다! 마음챙김 지향 치료3)를 하기 위해서, 치료자는 스스로 자신의 생활 속에서 마음챙김과 자기―연민을 수련해야만 합니다.■ 

 

크리스토퍼 거머(Christopher K. Germer; PhD)
하버드대 의대 임상심리학 교수. 불교의 마음 챙김에 근거한 불안과 공황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심리학자. 1978년 이래 명상과 마음 챙김 원리를 심리치료에 통합시켜 왔으며, 다양한 명상과 요가를 탐구하기 위하여 열 번 이상 인도를 여행한 바 있음. 현재 명상심리치료연구소(Institute for Meditaition and Psychotherapy: IMP) 평생교육원장. 편저로 《Mindfulness and Psychotherapy》, 저서로 《The Mindful Path to Self-Compassion》 등.

김재성 /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 서울대 철학과 졸업. 동경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불교학연구》 편집위원장, 한국심리치료학회 운영위원,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선임연구원 등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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