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 수필가

눈 내리는 겨울밤. 한 사람의 생애를 생각한다. 영하 20도가 넘는 이와테 산속 오두막에 홀로 정좌한 노인. 절대 고독. 궁벽한 산간에 스스로를 유배시킨 그 사람의 이름은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1883~1956)이다.

조각계의 대부이자 황실기예원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며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로댕에게 배웠다. 부자는 예술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고타로는 서양화가 지망생이던 지에코를 만나 장남의 상속권도 포기한 채 오직 창작에만 전념했다. 지에코도 유화에 뜻을 두었으나 가난과 예술에 대한 갈등, 잦은 병치레와 친정의 파산 등으로 정신이상 징후를 보였다. 7년을 힘들게 투병하다가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슬하엔 자식이 없었다.

고타로는 허전함을 잊기 위해 방대한 양의 시를 써서 어린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일본이 패망하자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인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참회의 눈물로 시집 《전형(典型)》을 엮었다. 그 뒤 종전(終戰)과 함께 그는 이 오오타 산간 마을에 들어와 독거생활을 시작했다. 아내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어린 생명들을 전쟁터로 몰아세운 일을 속죄하면서 63세의 노인은 손수 집을 짓고 물을 기르며 채마밭을 가꿔 끼니를 연명했다. 최소한의 자급자족이었다. 천식과 폐병으로 호흡곤란을 겪으며 작품을 조각하고 때로는 시를 쓰며 그림을 그렸다.

내가 이 오두막을 찾은 것은 2004년 5월 27일이었다. 지에코를 잃고 그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권유로 그의 고향인 이와테 현의 이곳, 하나마키(일본의 동북 지방)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를 아끼는 어느 의사가 오두막의 원형 보존을 위해 집 전체를 유리벽으로 둘러쳐 놓았다.

유리를 통해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세 평 남짓한 허름한 목조건물―이 오두막이 그의 거실이자 창작 공간이었다. 선반에는 주인의 손때가 묻은 몇 점의 화구와 책들. 화덕에는 주전자가 놓이고 그 위에 램프가 매달려 있었다. 빈 방에 그를 앉혀놓고 화덕 앞에서 그가 쓴 시를 뇌어 본다.

지에코는 죽어서 다시 회생하여 내 육체 안에 살면서 이런 산천초목에 둘러싸여 기뻐한다. (중략)
두어 칸 오두막 화롯가에 앉은 나는 이곳을 지상(地上)의 메트로폴리스라 생각한다’

―〈메트로폴리스〉에서

공초 오상순 선생이 늘 말씀하시던 대로 앉은 그 자리가 꽃자리다. 메트로폴리스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글귀도 함께 떠올랐다. 그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이곳에서 많은 시를 썼다.

죽은 아내가 담가놓은 매실주는
10년의 무게로 가라앉아 광채를 띠고
이제 호박빛 구슬처럼 엉겨 붙는다.
홀로 맞는 이른 봄.
밤기운 쌀쌀할 때면 드시도록 하세요.
자기 죽은 후에 홀로 남겨질 사람을 걱정하던 당신. (중략)
……7년의 광증은 죽어서야 끝났다.
부엌에서 찾아낸 매실주의 향미를
고요히 음미한다.
미쳐 날뛰는 세상의 외침도
이 순간을 넘보지 못한다.
가련한 한 생명을 정시할 때.
세계는 단지 그를 멀리서 둘러쌀 뿐이다.
밤바람도 고요하다.

―〈매실주>에서

이와테 산의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그 어떤 외침도 넘볼 수 없는 ‘이 순간’을 하던 그의 깨어 있는 정신과 가부좌를 튼 모습을 상상해보며 밖으로 나왔다. 채 가시지 않은 여운으로 건물 둘레를 두어 바퀴 돌고 있을 때였다.

 ‘다카무라  고타로 옛집의 보존 ’이란 표지판 위에 ‘무득전(無得殿)’이란 현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무득전이라니 혹시? 하며 현판 앞으로 다가갔다. 좌측 하단에 ‘반야심경 이무소득고’라는 잔 글씨가 보였다.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지혜[깨달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니 본래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반야심경》의 ‘무득(無得)’에서 따온 것임이 분명했다. 일체(一切)가 없는 고로 얻을 바가 없다는 공(空)의 도리(道里)를 그는 진작부터 알았던 것일까? 별안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어떤 면목(面目)을 보는 듯해서 반가웠다. 그리고 그의 심중의 일단이 헤아려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집― 무득전(無得殿)에서 고타로는 69세까지 살았다. 그리고 동경에서 73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내가 그곳을 다녀온 지도 어언 6년이 지났다. 이제야 그 뜻이 몸으로 체감된다. 나는 우주에다 그 현판을  내다 걸고 싶었다, 무득전이라는.

눈을 감으면 이와테 산의 밤바람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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