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승리라 말하는가? 견뎌냄이 전부인 것을.
―릴케



들어가며

박찬일 시인

니체의 불교에 대한 호의적 입장은 그의 《반그리스도론》(1888)에서 나타난다. 간단히 요약하면 불교가 기독교처럼 이항대립적 형이상학적 건축물을 세우려 들지 않았고, 인간 실존에 보다 객관적으로 다가서려 했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불교가 인간 실존에 대해 현상학적 접근을 시도했다고 본 것이다. 다음은 포이어바흐의 말이다.

기독교, 특히 영원한 삶을 약속해서 현세적 삶을 포기하게 하고, 하느님의 도움에 대한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게 했으며, 천국에서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지상에서의 보다 개선된 삶에 대한 믿음과 이러한 삶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희생시켰다.1)

기독교가 인간 실존에 대한 객관적 입장, 혹은 현상학적 접근과 거리가 먼 종교라는 것을 분명히 각인시키고 있다. 니체에게 불교는―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간들에게 ‘바늘구멍’이라는 ‘좁은 문’[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제시한 기독교와 달리 ―‘고통’(혹은 삶의 잔혹함)에 훨씬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2)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1888)에서도 객관적·실증적 종교로서의 불교를 두둔하며 불교가―바로 그 이유로 해서―기독교보다 더 ‘위생적(衛生的) 체계’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반그리스도론》에서 불교를 ‘평화롭고 명랑한’ 종교라고 한 것도 주목된다. 기독교에서 명랑에의 도달은 노예도덕(Skalvenmoral)으로 분류되고, 불교에서 명랑에의 도달은 군주도덕(Herrenmoral)으로 분류된다. 니체는 정신이 붕괴되기 바로 전 《우상의 황혼》(1889)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아, 그리스인들! 그들이 삶을 능란하게 다룬다. 과감하게 표면에, 주름에, 피부에 정지해 있는 것이, 가상을 숭배하는 것이, 형태들·음색들·말들을, 가상의 그 모든 올림푸스 산을, 믿을 것을 요청한다! 그리스인들은 표피적이었다. 심원에서 발원한 표피성 말이다.

그리스인들과 불교가 등가의 관계에 있다. “심원에서 발원한 표피성!” 여기에서 니체 철학의 핵심이 발현한다. 다름 아닌 소극적 니힐리즘의 구체화로서의 노예도덕과 적극적 니힐리즘의 구체화로서의 군주도덕이다. 표피의 전면적 긍정, 즉 대지의 전면적 긍정이 적극적 니힐리즘의 주요 항목이다.

니체의 불교에 대한 불만은 붓다의 가르침에서 “수동적 허무주의와 유약함”(《힘에의 의지》, 1888)을 보았다고 한 데서 우선 드러난다. 니체철학의 중요한 화두인 위버멘쉬를 부인하는 “체념과 자기부정”(《즐거운 학문》, 1882)의 종교라고 한 것도 주목된다.

니체의 불교에 대한 호의적 입장과 비호의적 입장의 모순은 불교 그 자체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불교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을 강조하면서, 또한 공즉시색(空卽是色)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교종과 선종의 변증,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변증,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변증의 역사를 불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공시적 고찰에서도 적용된다. 교종과 선종의 공존,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공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공존 또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의 방식

죽음 앞에서의 방식? 불교에서는 우선 연기론이다. 혹은 순환론적 생명 인식이다. 순환론적 생명 인식은 ‘존재론’의 범주에 있다. 순환론적 생명 인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연목구어적(緣木求魚的) 생명 인식’이다. 나무가 변해서 물고기가 된다, 물고기가 변해서 나무가 된다. 외르트겐(E. Oertgen)의 다음 시를 순환론적 생명 인식으로 보아도 될까.

종신토록 동안 우리는/ 대지의 손님이지요./ 대지는 우리를 부양하고/ 데리고 가다가/ 우리의 주검을 품습니다./ 먼지가 되는 저 위대한 변신.
―〈대지〉(1980) 부분

‘우리’를 ‘대지의 손님’이라고 했으므로 간단히 주체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론적 세계 인식에서 주체를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지의 손님이다가 ‘주검’에 의한 대지의 ‘먼지’로의 변화! 우리→먼지(→우리)로의 변화가 순환론적 생명 인식이다. 순환론적 생명 인식의 절정을 보여준 것으로 김지하의 시 〈되먹임〉(2002)이 있다. 물론 그 전에 만해의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알 수 없어요〉, 1926)를 상기해야겠지만.

내 목숨은/ 아득타/ 별로부터 오셨으니

내 목숨은/ 가까이/ 흙으로부터 풀 나무 벌레와 새들 물고기들/ 내 이웃들로부터 오셨으니

죽고 싶어도/ 죽기 어려운 것

우주가 날 이끌고 있어/ 튕기고 이끌고 또 튕기고

살고 또 살아/ 갚아야 하리니/ 이 은혜를 갚아야

쪼그려 앉아 흙 위에 돌팍으로 쓴다/ 가슴팍에 깊이깊이 새기며 쓴다

‘되먹임!’

―〈되먹임〉 전문

순환론적 생명 인식과 연기론이 동전의 표리 관계에 있다는 것을 여여하게 보여 주고 있다. 분열의 부재를 얘기하므로 목가(牧歌, Idylle)다. 존재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순환론적 생명 인식의 전제는 ‘화엄경적 생명 인식[전일적인 생명 인식]’, 혹은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인식이다. 다시 인간중심주의 부정을 강조하면, 주체 부정을 강조하면, ‘세계’는 인간이 대상화시킴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적으로 존재한다.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 신비적인 것은 세계가 어떻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의 방식? 니체가 마야의 베일을 벗겼다. 공중이 비어 있었다. 하늘이 “텅 비어”(브레히트) 있었다. 플라톤 형이상학 이래의 이원론적, 이항대립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보다 분명히 말하면 기독교적 ‘내세주의/현세주의’라는 이원론적 이항대립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3)

현상보다 우위에 있는 본질이 존재하지 않았다. 현세보다 우위에 있는 내세가 존재하지 않았다. 신에 대한 사망선고였다. 신에 대한 사망선고는 인간에 대한 사망선고로 이어진다. 인간의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되었다. 요컨대 신의 죽음은 내세의 죽음이므로 인간의 영원한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불안과 절망은 ‘죽음 앞에서의 불안과 절망’이었다. 불안과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종교적 단계’를 통해 죽음과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신이 부재하다면 죽음 앞에서의 불안과 절망을 극복할 수 없다. 키르케고르의 죽음 앞에서의 불안과 공포의 문제는 니체에 의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니힐리즘의 출발이 여기부터다. 절대적 니힐리즘에 빠진 존재, 죽음 앞에서의 불안과 절망에 빠진 존재의 다음 수순은 미리 얘기하면 수용·긍정의 철학이다. 적극적 니힐리즘의 철학이다.

차라투스트라 철학이 적극적 니힐리즘의 철학이다. 죽음 앞에서의 불안과 절망을 견딜 수 있는 자, 그가 차라투스트라가 설교하는 위버멘쉬다. 만질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핥을 수 있는 것, 볼 수 있는 것, 이것들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자문하는 자가 위버멘쉬다.

죽음 앞에서의 불안을 견딜 수 있는 자, 아니 죽음 앞에서의 불안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 즐겁게 몰락해 주려는 자가 위버멘쉬다. ‘즐겁게 몰락해 주자’ 말고 대안이 있는가. 이것 말고 대안이 없다는 것을 뚜렷이 인식하는 자가 위버멘쉬다. 망망대해 속의 일엽편주, 이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자가 위버멘쉬다. 몰락이여, “한 번 더”(니체)라고 외칠 수 있는 자가 위버멘쉬다.

영겁회귀 사상은 니힐리즘의 극단에 도달한 자의 사상이다. 위버멘쉬는 모든 것이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아는 자이다. 그러므로 ‘한 번뿐’에 자기 자신의 전부와 결부시키려는 자이다. 매 순간이 그에게는 끝이요, 시작이다. 위버멘쉬는 그리고 그 ‘한 번’이 영원히 되풀이한다고 인식한 자이다.

‘한 번’을 살아낸 그 순간이 영원히 반복해서 회귀하게 된다면 한 번을 살아내는 그때그때마다의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초례청을 치르는 데 실패한 대가로 그후 또 초례청을 치르는 데 실패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영원히 반복해서 되풀이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영겁회귀’의 핵심은 그러므로 똑같은 것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데에 있지 않다. 똑같은 것이 그 후 영원히 다시 되풀이되므로 순간순간을 최대한도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에 영겁의 무게를 느끼고 살아가는 삶이다.4)

식사 때가 되자 붓다는 가사를 입고, 발우(밥그릇)를 들고, 탁발을 하고자 사위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성안에서 차례로 걸식한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했다. 그런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았다.

《금강경》 첫 대목에 나오는 부분이다. 시간의 진행에 삶을 맡기는 모습을 여여하게 보여준다. 내일 공양에 대한, 내일 일에 대한 불안이 없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없다. 시간의 진행이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시간이 정지한 듯 보인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없다는 점에서 니체의 운명애(vati amor)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요컨대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멈칫거리지 않는 점에서 니체와 붓다의 ‘행위’는 만난다.5)

자발적 죽음에 대해

니체는 그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에서 ‘자발적 죽음(freiwilliger Tod)’을 예찬한 바 있다. 먼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1876)에서 자발적 죽음과 비자발적 죽음에 대해 언급했었다.

자연적 죽음[비자발적 죽음]은 이성에서 독립한 죽음으로 비이성적 죽음이다. 이것은 불쌍한 껍질이 핵심의 존재 기간을 정하는 주인 역을 하는 것과 같다. 병들고 비뚤어진, 바보 같은 간수가 고결한 죄수의 죽음 시점을 정하는 주인 역을 하는 것과 같다.

자발적 죽음에 대한 간접적 권유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이성적 능력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죽으라고 한 것이다. 노예적으로 죽지 말고 주인적으로 죽으라고 한 것이다. 붓다의 죽음 열반을 자발적 죽음 열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붓다가 열반한 원인은 대장장이 아들 쭌다가 공양한 썩은 음식 때문이었다. 붓다는 그러나 썩은 음식을 공양한 쭌다의 자책을 예견하며 쭌다에게 “쭌다여, 붓다가 당신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열반에 드신 것은 당신의 공덕이며 행운입니다.”라고 말하게 했다. 붓다는 쿠시나라에서 결국 열반에 들게 된다. 붓다가 열반한 근인(近因)으로 쿠시나라에서 악마 마라가 불법이 이미 융성하므로 열반을 권유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붓다의 마지막 말은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여라.”였다. 붓다는 그 이전, 그러니까 ‘깨달음’ 후, 바로 죽음 열반하려고 하였으나 중생구제의 뜻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6)

붓다가 열반한 원인, 붓다가 열반한 근인, 붓다의 유언, 그 이전의 열반할 기회 등 이 모두가 말하는 것은 ‘생에 대한 맹목적 의지’에 대한 반목(反目)이다.

생에 대한 맹목적 의지? 쇼펜하우어는 노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판(1844)에서 불교의 열반 개념에 주목하였고, 불교의 열반 개념이 자신의 인생 목표인 ‘생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로부터의 해방’과 ‘행복하게’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에서 자발적 죽음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나는 너희에게 내 방식의 죽음을 권하노라. 내가 원하여 찾아오는 그 자유로운 죽음 말이다.

이에 대한 불교적 답변은? 아트만과 브라만의 변증? 자아가 소멸되어도 세계가 순환한다, 이것을 받아들이라, 죽음을 받으라! 박찬일: 또 하나 신비스러운 것은 내가 던져지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것이 없었을 거라는 것이다. 죽음을 몰랐을 것이라는 것, 불안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이다.

혹은 내가 없었더라도 이 세상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니체: 죽음을 현명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죽음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길은 지금 도대체 이해할 수 없고, 아마도 비도덕적으로 들리는, 미래의 도덕에 속할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제때에 죽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런데 전혀 제때에 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제때에 죽을 수 있겠는가? [……]”

역시 니체가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에서 한 말이다. “제때에 죽”는 자유스러운·자발적 죽음은 “제때에” 사는 능력을 전제한다. 제때에 사는 능력은 피안 없는 삶에 동의하는 능력, 다름 아닌 위버멘쉬의 능력을 지시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적멸(寂滅)의 능력이다. 윤회의 덫에서 빠져나가는 능력이다.

니체, 그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뒤에 후설과 흄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 괴테가 있었다. 후설은 가시적 세계를 진정한 실체로 받아들였다. 선입관·도덕적 유추·선험 등이 주어진 순간에 있는 주어진 사실들보다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았다.

흄에게는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과학적 법칙도 회의 대상이었다. 본질성·선험성을 강조하는 형이상학을 부인하였고, 나아가 보편성·영원성을 주장하는 과학 법칙들을 부인하였다. 형이상학의 선험성 또한 독단으로 간주되었다. 흄에게 중요한 것은 ‘상식적’ 지식이었다. “흄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에서 시작된 세속적 경향의 극단을 보이고 있다.”고 한 조중걸의 말은 설득력 있다.7)

나는 현상의 찬연한 힘 앞에 굴복한다.

괴테가 베르테르를 통해 한 말이다. 대지 예찬; 자연 예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가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1774)를 읽었을까. 궁금한 대목이다.

니체가 희로애락을 긍정하고 선과 악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할 때, 이를테면 이기심, 지배욕, 정욕들을 긍정할 때, 니체와 스피노자가 만난다.8)

다른 것은 결정론적 입장[수동적 입장]과 능동적 입장이다. 후자가 니체의 입장이고, 전자가 스피노자의 입장이다. 스피노자의 사상을 결정론적 범신론으로 요약할 때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괴테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불교와 스피노자가 만나는 점은 불성과 범신론이다. 불교는 모든 생명체에 불성이 있다고 보고 불살생을 중요한 계(戒)로 간주한다. 물론 스피노자가 불살생을 주장하지 않는다.

불교를 아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상식적’ 불교사상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이항대립 체계에 대한 ‘오래된 해체(alte Dekonstruktion)’였다.

첫째, 이것이 아니고 저것이 아니라고 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뒤에 무한히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변증이 있되, 지양된 합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이것이 아니고 저것이 아닌 무한한 반복[무한한 순환]을 말하고 있다면 공(空)에 무게를 얹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복·순환은 가시적·고정적 실체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베르테르의 말을 빌면 “영원히 집어삼키고 영원히 반추하는 괴물”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색즉시공 공즉시색 자체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앞에 두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을 뒤에 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가상의 세계’이지만 가상의 세계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색(色)에 무게를 얹은 것이라는 점에서 대승불교적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색에 무게를 얹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니체식 파토스가 반영된 말로 바꾸면, 색에 대한 전면적 긍정, 생(生)에 대한 전면적 긍정, 대지(大地)에 대한 전면적 긍정이다. 괴테적 질풍노도가 반영된 말로 바꾸면, 앞에서 인용했던 ‘현상의 찬연한 힘 앞에 굴복’이다.

실체가 없는 가상현실의 세계가 찬연한 빛을 내뿜는다. 다시 강조하면, 니힐리즘이 세계에 대한 전면적 긍정을 초래하였다. 피안 부재·내세 부재에 대한 확인은 가공할 만한 압박이었다. 니체의 적극적 몰락의지는 ‘실체 부재·신의 부재’ 확인에 직면한 인간의 당위적 인식 수순이었다.

인간의 영원한 죽음에 직면한 니체의 당위적 인식 수순이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인식의 절정에 도달하였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비극적 상황(예를 들어 무신론적 상황)이 인간적 상황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비극적 상황·잔혹한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유일한 본질인 ‘현재 삶’ 자체에 취해 버리는 태도다.

언젠가 다리 위에 서 있었네.
갈색의 밤이었네.
멀리서 노랫소리 들려오고
떨고 있는 수면 위로
황금빛 물방울들이 솟아올라 사라지네.
곤돌라, 불빛, 음악 ―
취한 듯 어스름 속을 헤엄쳐 사라지네……

나의 영혼, 하나의 현악 연주,
노래하였네, 보이지 않게 감전되어.
슬며시 곤돌라의 노래로 이어지고,
오색(五色) 축복에 몸을 떨었네.

― 누가 그 영혼의 노래를 들었을까?……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에 있는 시 〈베네치아〉 전문이다. 첫째 연이 ‘외부’와 관계하고, 둘째 연이 첫째 연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서 ‘내부’와 관계한다. 이 시의 분위기는 제목에 이미 나타나 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서 남쪽, 따뜻함, 태양, 행복들을 연상시킨다. 삶의 환희를 연상시킨다.

이 시는 삶의 환희를 노래한 시이다. 핵심 구절은 둘째 연의 “오색 축복에 몸을 떨었네”이다. 축복은 천상으로부터의 축복이 아니라, 지상으로부터의 축복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오색 축복이라고 하고 그 축복에 몸이 떨릴 정도라는 것이다.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황금빛 물방울들”이 “사라졌”으므로, “곤돌라, 불빛, 음악”이 “사라졌”으므로, 삶은 소멸(혹은 죽음)을 포함한 삶이다.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은 ‘소멸을 포함한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니체 철학의 핵심이 ‘소멸을 포함한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첫째 연에서 “수면”이 “떨”었다면 둘째 연에서는 “영혼”이 “떨”었다. 수면의 떨림이 영혼의 떨림을 예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니체가 실스 마리아의 ‘자연’에서 영겁회귀를 느낀 것처럼. 떨리는 것을 보는 것은 삶의 중심을 보는 것이다. 떨리는 삶을 사는 것은 삶의 중심을 사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노래”가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매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래가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구체화’라는 점이다. 시적 주체는 환희의 노래를 듣고(첫째 연)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둘째 연). 음악 매체는 인간 감정의 미(微)하고 세(細)한 부분까지 드러내 준다. ‘떨리는 부분’을 드러내준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신성(神性)의 매개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게 감전되어”, 혹은 “누가 그 영혼의 노래를 들었을까?”라는 표현은 삶에 신성이 개입했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누가 그 영혼의 노래를 들었을까”라고 한 것은 아깝기 때문이다. 환희의 노래를 혼자 부르는 것이 아깝기 때문이다. 같이 부르지는 못하더라도 들어 주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曠野)〉(1946) 전문

너희들 자신은 아닐 것이니라, 내 형제들아! 그러나 그대들은 그대들을 위버멘쉬의 아버지나 선조들로 개조할 수는 있으리라: 그리고 이것이 너희들에게는 최선의 창조 행위니라!

아래쪽 인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에 있는 말이다. 니체는 현재의 인간을 위버멘쉬로 가는 중간 단계로 보고 있다. 장래에 “백마 타고” 올 위버멘쉬가 적극적 몰락 의지를 보여 줄 것이다. 삶의 잔혹함을 극복해 줄 것이다.

나가며

니체가 자신에게 겸손을, 타인에게 사랑과 용서를 요구하는 기독교를 극복하려고 했을 때, 이것은 또한 불교를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자비, 혹은 불살생(不殺生)이 불교의 금과옥조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에서 혼돈과 과감함을 잃어버리고, 만족과 행복을 느끼며 사는 ‘마지막 인간’을 경멸하였다.

기독교를 ‘죽음의 설교자’라고 불렀다. 기독교인들은 삶(예를 들어, 혼돈과 과감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들에게 정욕이 죄였고, 인생이 고통이었다. 세상이 비탄의 골짜기였다. 피안이 그들에게 만족과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런 기독교의 ‘동정’을 경멸하였다.

니체와 불교가 만나는 지점은 ‘마른 지식’에 대한 거부다. 마른 지식은 불교 용어이지만, 소승불교에 대한 대승불교의 비판적 용어이지만, 니체 철학을 얘기하는 데도 유용한 말이다. 그는 ‘신의 죽음’ ‘인간의 영원한 죽음’이라는, 마른 지식이 아닌, ‘절실한 지식’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대응 방식을 매우 현실적으로 풀어냈다.

‘나는 기꺼이 몰락해 주리라’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핵심 명제였다. ‘나는 기꺼이 몰락해주리라’는 ‘신의 죽음·인간의 영원한 죽음을 인식한 자’의 필연적 인식 수순이었다. 니체는 남의 사상을 되풀이하는 철학노동자가 아닌,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적·기독교적 이항대립적 사유를 파괴하고, 자신의 사유를 현실적으로 ‘보시’한 주체적 철학자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을 부정적 업장(業障)과 긍정적 직업으로 구분할 때 니체적 철학에 의한 보시와 불교에서 얘기하는 직업에 의한 보시가 다르지 않다. 니체는 원효와 마찬가지로 저잣거리 사상가였다.

동양의 불교와 서양의 니체 철학이 대승적으로 만나는 부분이 소멸에 대한 인식이다. 소승적으로 만나는 부분이 ‘집착’에 대한 인식이다. 니체는 집착 또한 격정으로서, 혹은 악덕으로서, 삶의 한 부분으로서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삶에 대한 전면적 긍정의 태도가 니체 철학의 특장이다. 붓다가 자비를 강조한 것 또한 삶에 대한 인정·긍정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자비가 집착을 포월(包越)한다. ■

 

박찬일 / 시인·문학평론가. 1993년 《현대시사상》에 〈무거움〉 〈갈릴레오〉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평론집으로 《해석은 발명이다》 《사랑, 혹은 에로티즘》 《근대: 이항대립체계의 실제》, 연구서로 《독일 대도시시 연구》 《시를 말하다》 《브레히트 시의 이해》 등이 있음. 박인환문학상, 시와시학상젊은시인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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