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와 자연과학, 하나의 세계를 보는 두 개의 시선

1. 들어가는 말

최로덴
동국대 경주캠퍼스 강사
일반적으로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이라 하면, 자연현상 그 자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그에 대한 원리적 이해와 응용을 위해 이른바 검증 가능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한 탐구체계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와 같은 종교는 처음부터 자연과학적 범주의 정의 안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실험적 증명을 전제로 한 과학적 방법론에 한정된 객관성이 아닌, 인간과 그 주변을 둘러싼 환경 전체를 대상으로 존재에 대한 모든 의문에 답을 구하는 차원이라면 불교 역시 그에 대한 심오한 해결책을 줄 수 있는 경험적 자연과학의 한 체계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적 통찰은 인간을 단순히 하나의 기계적인 요소로 바라보지 않는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외적 현상인 주변 환경과 인간의 내적인 구성 요소가 서로 연동하여 역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로병사의 모든 문제를 단순한 개체의 문제로만 보지는 않는 것이다.

즉 이전에 쌓은 업과 번뇌가 현재의 존재성을 구성하며 그에 따른 노병사의 문제는 끊임없이 변해 가는 외적 현상과 내적 구성 요소의 무상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이다. 따라서 어느 한 순간도 영원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에 나와 나의 것이라고 믿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무아적 실체에 대한 왜곡된 믿음일 뿐이다. 이러한 왜곡된 믿음이 생병로사에 대한 집착으로 이끌고 그에 따른 탐진치의 독이 쌓여서 결국 외계와 내계의 임시적 조화로 이루어진 균형을 잃고 존재의 병고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불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인간의 완전한 건강은 있을 수 없다. 존재 자체가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건강이 그대로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현재적 시점에서의 균형을 찾는 노력만이 건강 유지의 비결인 것이다.

인간은 존재(生)와 동시에 병로사가 시작된다. 다만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잘 병들고 잘 늙고 잘 죽어갈 수 있는 임시적 균형과 조화의 건강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존재의 무상과 무아를 바르게 깨우칠 때 존재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모순을 수행으로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건강하게 죽어서 다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존재는 항구적이고 근원적인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조건의 결합으로 인한 끊임없는 연기적 변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병이고 노사의 원인이며 그것은 인과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건강을 유지하거나 병을 치유한다는 것은 인과의 모순을 인식하고 제거해 나가며 건강한 인과를 끊임없이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와 의학은 이와 같은 인간 존재의 병고와 건강에 대한 진단과 치유체계의 만남이다. 마치 불교의 사성제가 인간고의 원인을 밝히고 그에 대응한 치유의 수행체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불법승 삼보를 의사와 약과 병원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불교와 의학의 만남이 실제로 구체화되어 있는 티베트의 의학체계를 하나의 예로서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티베트의 의학체계를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불교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불교와 의학의 적극적인 만남을 통한 불교의학의 가능성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불교와 의학의 만남

병의 진단과 치료로 대변되는 의학적 행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자연적 경험의학에서 출발하여 각각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의학체계로 발전한 것이다.1) 이른바 서양의학, 동양의학, 인도의학 등으로 불리는 의학체계들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오늘날의 의학은 주로 라틴어 ‘medicus(치료하는~)’에서 유래한 ‘medicine’, 즉 약물과 외과적 수술 치료를 기반으로 한 서양의 기계론적 의학체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인류의 발달사와 함께 해 온 의학이 이러한 관점에서만 발전해 온 것은 아니다.

 중의학(中醫學)으로 대변되는 동양의학이나 아유르베다로 불리는 인도의학 등은 각각 주역의 음양이론이나 베다의 창조―유지―파괴의 개념 등의 전인적이고 유기적인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의학체계를 발전시켰다. 그동안 서구 세계가 주도하는 문화적 위계질서로 인해 서양의학의 진단과 치료가 좀 더 신뢰받는 의학체계로서 확산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의학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동양이나 인도적 정서 안에서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이미 많은 부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은 대안적 의학체계들이 성립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불교와 의학의 만남 역시 이와 같은 일련의 대안적 의학체계를 모색하기 위한 과정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2)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필자는 불교와 의학의 만남을 대승적 보리심을 전제로 한 중도적 전환(transformation)의 수행체계와 찰나적 깨어 있음(憶念)을 통한 중도적 균형(balance) 회복의 치유체계가 만나는 장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한다.

① 병인론(病因論)― 자신의 속박된 세계관에 의한 업의 축적으로 인해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이 쌓이고 그에 따라 심신의 균형을 잃어서 발병하게 된다.

② 치유론(治癒論)― 단계적인 심신의 정화와 균형 회복의 과정을 거쳐 건강을 회복한다.
⇒ 1단계: 신정화(身淨化)―병인에 대한 대증적 처치(경험의학을 통한 약물과 음식의 조절―한의학을 포함한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의 포괄)를 함=고(苦)의 현실 인식
⇒ 2단계: 심정화(心淨化)―병의 원인이 되는 삼독을 정화하기 위해 마음의 치유에 필요한 대치법의 수행을 수행함=집(集)의 원인 제거
⇒ 3단계: 심신의 정화를 통해 균형을 회복하고 건강을 회복함=멸(滅)의 균형 회복
⇒ 4단계: 심신의 건강을 회복한 후에 자신의 건강만으로는 언제든 또 균형이 무너질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의 균형까지 회복하도록 애씀으로써 중도적 균형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정진=도(道)의 중도 실천

③ 보유론(補遺論)― 위의 네 가지 단계의 치유과정을 거쳐 심신의 균형을 회복하고자 신과 세상 모두가 삼독의 업력에 의해 병들게 되는 것을 자각하여 언제나 건강과 행복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회향의 보리심을 실천하여 불교의 본래 목적에 계합한다.

이상의 내용을 사법인(四法印)의 구조에서 다시 살펴보면,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진리(印)는 존재의 균형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있음을 밝혀주는 진리로서 병인(病因)에 해당하며,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존재의 실체에 대한 자각과 깨달음의 상태를 밝혀주는 진리로서 인간 존재는 심신의 끊임없는 찰나적 균형 회복을 통해서만 건강한 삶(涅槃寂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치유(治癒)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3. 티베트의 전통적인 의학체계3)

티베트 사회에서 건강과 질병은 전반적으로 ‘소와―릭바(gSo-ba Rig-pa, 치유의 과학)’ 혹은 ‘체이―릭제(Tshe-yi rig-byed, 생명학)’으로 알려진 치유체계로서 설명되어 왔다. 이 체계 본래의 가르침은 약사여래(Sangs-rgyas sMan-bla)로 화현하여 이 전통의 근본 가르침을 전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유래하며, 가르침의 핵심은 티베트의학의 근본 경전인 사부의전(四部醫典, rGyud-bzhi)4)에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5)

사부의전에 대한 범어 원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몇몇 의서들은 4세기경에 저술된 것들로서 카슈미르 출신의 학자인 바이로짜나(Vairocana)와 짠드라난다(Candr켥nanda)가 티베트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사부의전은 티송데챈(Khri srong lDe’u btsan, 755~797)과 전대(Senior)의 궁중 의사였던 유톡 욘땐 곤뽀(gYuthog Yonten mGon-po, 708~833)에게 전해졌다.

사부의전의 내용은 대부분 티베트 최초의 불교사원인 삼예(bSam-yes)에서 국제의학학회가 개최된 다음에 취합된 것으로서 그중에서도 최고의 의학 지식들을 종합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학 경전은 최종적으로 후대(Junior)의 유톡 욘땐 곤뽀(gYuthog Yonten mGon-po, 1126~1202)에 의해 편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는 사부의전에 대한 18권의 해설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사부의전은 약사여래의 화신들로 알려진 스승인 릭베 예셰(Rig-pa’i Ye-ses)와 제자인 일래 께(Yid-las-sKyes)의 문답 형식으로 쓰여 있다. 4권의 독립된 저술로 나누어진 이 문헌은 총 156장 5,900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①발생학(embryology), 해부학(anatomy), 생리학(physiology), 병리학(pathology), 약리학(pharmacology) 등을 다루는 신체과(Lus), ②소아학(Pediatrics)을 다루는 소아과(Byis pa), ③부인학(Gynaecology)을 다루는 부인과(Mo-nad), ④악령(좋지 않은 운기)에 의한 질병을 다루는 악령과(gDon), ⑤무기에 맞아서 생긴 질병을 다루는 무기과(mTshon), ⑥독물학(Toxicology)을 다루는 독물과(Dug), ⑦회춘(Rejuvenation)을 다루는 노인과(rGas) ⑧최음(Aphrodisiac)을 다루는 성애과(Ro-Tsa)의 8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4,900개의 삽화를 80폭에 담은 탕카로 조성되기도 하였다.6)

1) 병인학(病因學, Aetiology)

서양의학의 사상적 기반을 대변하는 데카르트학파(Cartesian)의 견해가 인간을 기계적으로 바라보는 데 비해, 불교는 인간을 몸과 마음과 정신으로 구성된 하나의 전체적 유기체로서 바라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불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티베트의 치유 의학은 건강을 돌보는 데 있어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는 불교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티베트의학이 처음부터 불교의학으로 성립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모든 의학체계와 마찬가지로 티베트의학은 티베트고원의 고유한 풍토에서 자란 약초와 광물들을 상처에 활용했던 티베트 원주민의 자연적 경험의학에서 출발한다. 원주민들은 새와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티베트고원에서 자라나는 약초나 광물을 통해 자연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응용하여 점차적으로 치료의 경험을 축적해 왔다.

티베트의학에서 질병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다른 차원의 원인이 되는 정신적 물리적 요소들의 평형상태가 역동적으로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삼환인성(三患因性, Nyes-pa gSum)의 병인학(病因學, aetiology)은 삼독(三毒, Dug-gSum)의 정신적 이론(三毒論)과 오대(五大, ‘Byung-ba lNga)의 물리적 이론(五大論)으로 설명된다. 한편, 더 즉자적인 차원에서의 질병은 부적절한 식습관, 잘못된 행동 양식, 절기상의 문제와 환경적 요소들에 기인한다.

(1) 삼독론(三毒論, Dug-gSum)

부처님은 모든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을 무상과 무아의 진리에 몽매한 어리석음(痴, gTi-mug)이 집착의 형태로 표출되는 아집(我執, bDag-’dzin)의 개념에서 찾았다. 이것은 다시 집착(貪, ’Dod-chags)과 분노(瞋, Zhe-sdang)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불과 함께 하는 세 가지 독으로 비유되는 이것은 인간을 영원히 불태우기 때문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것은 어리석음으로 불타고 집착으로 불타며 분노로 불탄다. 이것은 생로사(生老死)로 불타고 비통, 비탄, 아픔, 슬픔, 절망으로 불탄다.”

탐, 진, 치의 삼독은 각각 룽(rLung, 風氣), 티빠(mKhris-pa, 膽火), 배깬(Bad-kan, 痰[土]水)으로 불리는 삼환인성(三患因性, Nyes-pa gSum)의 이상 장애를 일으킨다. 이와 같은 원리의 삼독에 대한 깊은 탐구는 불교철학과 불교심리학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 오대론(五大論, ’Byung-ba lnga)

오대론은 거시세계에서나 미시세계에서 모든 현상이 지(地, Sa), 수(水, Chu), 화(火, Me), 풍(風, rLung), 공(空, Nam-mkha)의 다섯 가지 물리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몸도 역시 부분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이들 다섯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심신의 이상 장애 또한 이들 요소의 평형이 무너진 것을 수반한다.

오대 요소들은 단순히 정적이고 정신―화학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생체의 기운을 작동시키는 역동적인 힘이다. 예를 들면 물은 단순히 H2O의 물 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거움, 유연함, 차가움의 속성을 작동시키는 본질적인 생체적 기운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7)

즉 오대 요소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거시적인 천체 요소이자 미시적인 인체 내부 혹은 입자 내의 오대 요소이다.8)

자연적인 죽음이 발생할 때 이들 요소는 자신의 본질적인 힘을 잃고 점차 사라져 간다. 지대가 먼저 수대로 융해되고 시력이 흐려지며, 그런 다음 수대가 화대로 융해되고 몸의 구멍들이 순차적으로 말라간다. 점차적으로 화대는 풍대로 융해되고 몸의 열기를 잃게 되며, 마지막으로 풍대는 공대로 융해되어 미세한 호흡마저 멈추게 된다. 이와 같이 오대의 해체는 곧 존재성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3) 삼환인성(三患因性, Nyes-pa gsum)의 정신―물리학적 기능

실질적인 병의 원인을 살피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를 점검해야 하는데, 먼저 세 가지 근본적인 질환의 원인(患因)인 룽, 티빠, 배껜의 기능을 세분한 열다섯 가지 요소를 살펴야 하며,9) 두 번째는 신체의 7대 구성 요소(身體成分, Lus-zungs bDun)들을 살펴보아야 한다.10)

신체의 7대 구성 요소는 룽, 티빠, 배껜과 오대 요소들이 결합된 열다섯 가지 세부 요소들의 적절한 기능을 통해 형성된다. 섭취된 음식물의 정수는 영양소를 형성하고 그 영양소(Dwangs-ma)는 피를 형성하며 피의 정수는 근육 등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신체의 7대 구성 요소가 모두 각각의 소비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에 따른 각각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배변, 배뇨, 발한(發汗)의 세 가지 배설(Dri-ma gSum) 기능이 있다.

치유의 모든 기술은 위의 세 가지 범주의 근본적인 차원을 역동적인 평형상태로 적절히 유지하고 조절(aligning)하는 데 적용한다. 이렇게 해서 평형상태를 이루게 되면 신체는 건강한 상태이거나 정신―물리학적 이상 장애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질환의 세 가지 근본 원인(三患因性, Nyes-pa gSum)과 일곱 가지 몸의 구성 요소 그리고 세 가지 배설행위의 평형상태가 무너진다는 것은, 곧 심신이 건강을 잃게 되거나 병든 상태로 재구성되었다는 의미이다.

(4) 즉자적 차원의 질병에 대한 병인론

건강한 몸은 미묘하고 역동적인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데, 잘못된 식습관, 부적절한 생활양식, 계절 변화, 악령들의 영향은 이러한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의 원리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이들 네 가지 요소는 즉자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질병의 주된 원인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심신의 건강이 악화되지 않도록 다양한 대치법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하여 건강 문제의 대부분은 모두 부적절한 식습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티베트의학은 환자의 질병 소인(素因, predisposition)이 되는 환자의 음식에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비만(obesity), 알코올중독(alcoholism), 고혈압(hypertension), 동맥경화(arteriosclero-sis), 류머티즘(rheumatism) 등은 음식의 요소들과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요인으로 연결된 질병들이다. 또한 콜레라(cholera)와 같은 급성 전염질환의 대부분이 비위생적인 식습관에 기인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음식과 함께 부적절한 생활양식 역시 세 가지 몸의 원리가 조화를 잃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생활양식이 일상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러한 무관심으로 인해 정말 우연처럼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심혈관(cardio-vascular) 질환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긴장에 극도로 영향을 받으면서 앉아서 일하는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흡연과 마약중독은 심각한 폐질환이나 면역학적 이상 장애의 원인이 된다.

기후나 계절 변화와 이상 장애 사이의 관계가 성립하는가에 대해서는 ‘쇠까(Sos-ka, 春夏)’로 알려진 티베트력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달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오대 요소들의 속성이 가볍고 거칠어진 상태가 지배적일 때이다.

 주위 환경이 이러한 속성으로 왕성해질 때 몸에는 룽(rLung, 風氣)이 축적된다. 이렇게 축적된 룽(rLung)은 폭우나 돌풍으로 인한 하절기에 나타나고 악화되며, 또한 너무 강한 차를 마시거나 과도한 단식과 같은 생활방식에 빠져서 가볍고 거친 음식을 섭취하는 경우에도 나타나고 악화된다. 따라서 늦은 봄 자신의 음식과 생활양식을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사람은 여름에 룽(rLung) 질환으로 고생하게 될 것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티빠(mKhris-pa)와 배껜(Bad-kan)은 여름과 늦겨울에 축적될 수 있으며 다음 가을과 이른 봄에 각각 그 징후가 나타난다.11)

더불어 좋지 않은 기운(惡靈)들도 역시 미묘하고 역동적인 평형상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악령의 영향은 특히 환자가 바른 진단과 처치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형태의 처치도 먹히지 않는 경우에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2)진단학(診斷學, Diagnosis)

티베트의학의 진단법에는 시진(視診), 촉진(觸診), 문진(問診)의 세 가지가 있다.

(1) 시진(視診, Visual)

시진법(視診法)은 피부의 외관 상태나 색깔과 혈액의 기조(基調, texture), 손톱, 타액, 배설물 등 다른 일반적인 조건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특히 환자의 혀12)와 소변의 상태13)를 점검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소변검사의 경우, 환자와 의사 모두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예진(豫診)하기 위해 그날의 실제 소변을 검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검사 전날 밤에는 소변의 색깔이 변할 수 있는 술이나 우유, 차 등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을 삼가야 한다. 더불어 환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성교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을 삼가는 것이 좋다.

소변검사는 따뜻하다가 미지근해지고 점점 차가워지는 세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갓 받은 소변으로 의사는 먼저 색과 수증기, 냄새, 거품을 관찰한다. 침전물과 표면 찌끼는 소변이 미지근해졌을 때 관찰된다. 마지막으로 소변이 차가워졌을 때는 변형의 시간과 과정 그리고 변형 후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

(2) 촉진(觸診, Touch)

촉진법(觸診法)은 의사의 손으로 환자 몸의 다양한 부분들을 촉감으로 검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촉진을 통해 몸의 온도를 측정하거나 신체 외부의 이상 징후(abnormality) 혹은 낭종(囊腫, cyst)이 자라나는 것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몸에 있는 특정한 지점(氣脈血点)의 민감성(sensitivity)은 이 기맥 혈점과 관련한 크고 작은 다른 문제들을 푸는 좋은 실마리가 된다. 촉진을 위해 티베트의학에서 채용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진맥법(診脈法)이다. 진맥법을 깊이 공부하는 것은 티베트의학을 연구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진맥(診脈, Pulse reading)할 때도 소변검사와 마찬가지로 환자와 의사 모두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예진(豫診)하기 위해 사전에 삼가야 할 음식과 생활 태도를 숙지하고 그날의 실제 맥박 상태를 검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물리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피하고 실제 맥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또 환자와 의사 모두 전날 밤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가능한 실제 질병의 상태를 왜곡할 수 있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요구된 사항이 관찰되고 적절한 시간이 되었을 때 의사는 진단을 진행한다. 의사가 진맥할 때는 환자의 손목의 첫 번째 주름으로부터 엄지의 원위지골(遠位指骨, distal phalanx)의 길이를 대강 헤아린 후에 동맥의 맥박을 감지하기 위해 검지와 중지와 약지를 갖다 댄다.14)

의사의 손가락은 일반적인 몸의 체온과 같아야 하며 너무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아야 한다. 각 손가락의 누르는 힘은 검지는 가볍게, 중지는 적당하게, 약지는 좀 더 세게 누르도록 한다. 예비 검진을 먼저 거친 후에 환자의 체질상의 맥동(脈動)을 진맥한다.

누구나 각자가 자신만의 질병 소인이나 개성을 결정하는 음식이나 색깔, 의복 등의 고유한 선택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누구나 ①두껍고 부푼 남성적 맥동이나 ②얇고 팽팽한 맥동을 가진 여성적 맥동, 혹은 ③부드럽고 유연한 중성적 맥동 중의 하나인 선천적 맥동을 가지고 태어난다. 만약 문제가 있어서 의사가 선천적 맥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면, 남성적 맥동의 오진으로 룽(rLung) 질환을 잘못 판단할 수 있고, 여성적 맥동의 오진으로 티빠(mKhri-pa), 중성적 맥동의 오진으로 배껜(Bad-kan)과 관련한 질환을 잘못 판단할 수 있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환자에게 주의 깊게 문진해야 한다. 일단 선천적 맥동이 바르게 결정되고 나면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열병과 냉병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15)

 일반적으로 열병은 티빠(mKhris-pa)와 관련이 있으며 냉병은 배껜(Bad-kan)과 관련이 있다. 룽(rLung)은 중성적이기 때문에 냉병의 속성도 열병의 속성도 지니지 않는다.16)

맥동에 미치는 천체―오대 요소들의 영향은 주변 환경에 미치는 태양과 달에 의한 계절적 변화를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난다. 이와 같은 영향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 요소들에 대한 관계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성은 ‘어머니(母)―아들(子)’과 ‘친구(友)―적(敵)’의 주기로 나타낸다. 그리고 진맥을 할 때는 해(太陽, Solar)와 달(太陰, Lunar)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인체 내에는 로마(Roma, 右脈), 結마(rKyang-ma, 左脈), 우마(dBu-ma, 中脈)의 세 가지 맥관이 있는데, 結마는 달(地大와 水大)의 영향을 받고, 로마는 해(火大)의 영향을 받으며, 우마는 중성적 기운(空大)에 영향을 받는다. 밤에는 달의 영향이 강하기 때문에 맥박이 평상시보다 느리고 약하다. 반면에 낮 동안에는 해의 영향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맥박이 빠르고 강하다. 따라서 맥박을 재는 적절한 시간은 이들 맥관이 역동적 평형상태가 되는 때가 좋은데, 주로 자신의 손바닥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신새벽녘이 좋다.

더불어 계절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티베트력에 따르면 일 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360일로 나뉜다. 각 계절은 3달에 해당하고 각 달은 30일에 해당한다. 맥진은 각 계절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적용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의 첫 72일은 각각 목, 화, 금, 수의 요소들이 지배적이며, 각 계절의 나머지 18일은 지대(地大)가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17)

이렇게 계절의 영향으로 잡힌 맥박은 계절맥(季節脈)이라고 할 수 있다.

봄의 첫 72일은 목(木) 기운이 지배적일 때로 간과 담낭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나머지 18일은 지(地)의 기운이 비장과 위장의 맥박에 특별한 영향을 미칠 때이다. 마찬가지로 심장과 대장의 맥박은 여름 첫 72일 동안 지배적이고, 폐와 대장의 맥박은 가을의 첫 72일 동안 지배적이며, 신장과 방광과 생식기의 맥박은 겨울의 첫 72일 동안 지배적이다. 그리고 나머지 각 계절은 18일은 지대의 맥박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의사는 반드시 중요한 진맥을 하기 전에 정확한 계절을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봄에 강하게 나타나는 맥박의 관계성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간장과 담낭의 맥박이 강하게 뛰는 것을 보고 병증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부의전(rGyud-bzhi)에서는 의사가 별자리나 새와 나무 등의 관찰을 통해 어떻게 계절을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한편, 티베트의 진맥술은 질병이나 가족, 사회 문제들을 예측하는 특별한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방법을 깊이 탐구하게 되면 주변 환경과 자신을 둘러싼 고도의 기운을 읽고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의사는 외부 기운과 내부 기운의 상호 관련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예측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①선천적 맥동 ② ‘어머니―아들’과 ‘친구―적’ ③대체 맥동(substitutional pulse)을 통한 예측의 역학 관계이다.

먼저 선천적 맥동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남성, 여성, 중성의 맥동으로 나뉘는데, 맥동의 유형과 소유자에 따른 예측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즉 남성적 맥동을 가진 여자는 딸보다 아들을 가질 가능성이 높고 여성적 맥동을 가진 남자는 장수할 가능성이 높으며, 남성적 맥동을 가지 부부는 후손이 아들일 가능성이 높고 여성적인 맥동을 가진 부부는 후손이 딸일 가능성이 높다. 또 중성적인 맥동을 가진 부부는 병들 확률이 적고 장수할 가능성이 높으나 상근기들인 경우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하근기들일 경우는 지속적으로 서로를 해롭게 할 것이다. 그리고 친척들이 적이 되거나 가계의 맥이 끊어질 확률이 높다.

두 번째, ‘어머니―아들’과 ‘친구―적’의 관계에 해당하는 맥동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18)

어떤 사람에게 어머니 맥과 계절맥이 잡히면 최고의 것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며, 아들 맥이 잡히면 아주 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또 친구 맥이 잡히면 아주 부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며, 적의 맥이 잡히면 적을 만나거나 말기 질환의 위험에 직면한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세 번째, 대체 맥동(substitutional pulse)의 방법은 의사를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사람인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환자의 가까운 친구나 친척들이 주로 할 수 있는 검사 방법으로 티베트의학에서 발전한 독특한 진맥법이다. 예를 들면 의사는 쉽게 찾아올 수 없는 아버지의 병을 진단하기 위해 아들을 진맥할 수 있다. 의사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환자를 도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다.19)

(3) 문진(問診, Interrogation)

문진법(問診法)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하고 확실한 진단법이다. 일반적으로 문진법의 세 가지 주요한 측면은 ①원인적 요소의 발견 ②병의 부위 ③증상과 징후이다.

원인적 요소에 해당하는 질문은 a) 어떤 종류의 음식이나 음료를 섭취하는가? b)어떤 유형의 물리적 정신적 행위를 경험했는가? 등과 같은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광범위한 질문은 의사가 진료의 내용을 판단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면 가볍고 거친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거나 강한 차와 같은 음료를 섭취하거나 돼지고기 섭취 혹은 과도한 금식이나 정신적인 노동의 경우는 룽(rLung)의 이상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뜨겁고 얼얼한 음식이나 음료를 과도하게 섭취하거나 향신료, 양고기, 술이나 과도한 물리적 활동은 티빠(mKhris-pa)의 악화로 인한 이상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또 무겁고 기름진 음식이나 생과일, 단것, 기름진 종류를 섭취하거나 젖고 축축한 곳에 머문 경우는 배껜(Bad-kan)의 이상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고통의 부위나 다른 이상 부위에 관한 질문은 질병의 주요 부위를 확정할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타난 증상과 징후의 특징에 대한 질문을 통해 질병의 부위와 원인의 연관성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문진에 의한 진단은 전반적인 진단 방식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진료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3) 치료학(治療學, Therapeutics)

티베트의학은 부드럽고 점진적인 치료법을 특히 강조한다. 오대의 요소들이 역동적인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식습관, 불건전한 생활양식, 악조건의 기후, 악령의 부정적인 힘들로 인한 부차적인 문제들이 개입되면 전체적인 항상성의 메커니즘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실제로 티베트의학에서는 건강을 돌보는 가장 첫 번째 요인으로 선한 방식의 삶을 살면서 적절한 음식을 섭취하여 병을 미연에 방지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럼에도 병이 들게 되었을 경우는 최종적으로 약물이나 외과적 수술을 처방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동양의학에서 의사의 단계를 심의(心醫), 식의(食醫), 약의(藥醫)로 나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약물은 달이거나 분말, 환, 시럽(syrup)으로 만드는 다양한 제조법이 있다. 티베트 의사들은 보통 효능이 약한 약물로 시작해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점차 효능을 높여 간다. 그 밖에도 치료법은 부드럽거나 급격한 제거 요법을 포함하여 최후의 수단으로서 외과수술이 포함된다.

(1)식이요법
음식과 관련한 식이요법은 사부의전 세 개의 장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일 뿐만 아니라 사부의전 전반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는 너무나 중요한 치료법이다. 이들 세 개의 장은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한 다양한 종류와 분류, 그리고 그들의 용법, 예방, 섭취할 음식의 정량(定量)적 원리 등을 다루고 있다.20)

(2)생활요법
생활양식에 대해서 사부의전은 생활요법을 일상과 계절, 임시로 분류하고 있다. 일상의 행동은 보통 자신의 신구의(身口意)를 적절히 사용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 직업과 환경이 정서적으로 너무 방해받거나 위험하게 되면 일상생활 역시 강하게 영향받는다. 규칙적인 행동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은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장수와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해준다. 정신적인 삶을 강조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은 이 생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붓다의 경지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3)계절요법
계절적인 행동 양식과 관련하여 한 개인은 그의 몸을 지배하는 기운의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 주변 환경의 변화와 함께 자신의 행동 양식을 적절히 조화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초겨울 두 달 동안 외부의 차가운 환경은 몸의 구멍들을 모두 수축하게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몸에 화대(火大)의 기운이 증가하게 된다. 풍대(風大)의 기운은 이를 더욱 자극하기 때문에 달고 시고 짠맛의 음식들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몸의 구성 요소가 점점 약해질 것이다.

초겨울은 또 밤이 길고 항상 공복감을 느끼는 시기이다. 긴 밤을 지새우는데 음식을 너무 조금 섭취하게 되면 신체의 7대 구성 요소(身體成分, Lus-zungs bDun)가 약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몸의 균형을 잃게 되면 자신의 몸을 참기름으로 마사지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과 음료를 섭취해야 한다. 나머지 계절에 대해서도 계절 변화의 특성에 따른 적절한 행동양식을 취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4)임시 요법과 약리요법
임시적 행동 양식은 배고픔이나 갈증, 그리고 하품, 재채기, 배변, 콧물 등의 자연스러운 배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모든 배출은 억누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티베트의학의 약리학에 대한 기본 교설은 근본적으로 오대(五大, ’Byung-ba lNga)이론 혹은 다섯 가지 천체―물리적 요소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21)

4. 맺는 말

하나의 의학체계를 논한다는 것은 단순히 환자의 질병과 의사의 치료에 대한 이론적 정의나 경험적 적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물리적 장애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와 천체―환경적인 장애를 함께 겪는다. 인간 자체에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인간 존재 자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따라 질병의 원인과 치료의 방법론적 체계가 달라질 수 있다.

 이 외에도 천체의 외적 환경이나 그와 관련한 존재의 다양한 역동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학은 건강한 존재성을 회복하기 위한 종합적 이해 체계이자 실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티베트의 전통적인 의학체계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그것은 의학에 대한 총체적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시적―미시적 요소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함께, 존재 자체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기반으로 한 ‘삼독이론’ ‘오대이론’ ‘환인성(患因性)’의 이론들은 모두 불교심리학과 우주론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리고 티베트의학의 진단법, 특히 진맥법과 비뇨학(泌尿學, urology) 등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체의 여러 가지 독특한 특성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식이요법이나 적절한 정신적 물리적 행동 양식을 위주로 처방하는 부드러운 접근 방식의 치료법과 최선의 약물치료인 자연적 약물요법, 그리고 환자를 위한 무조건적이고 자비로운 보살핌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용한 티베트의학의 특징이다. 나아가 티베트의학의 근본 경전인 사부의전 자체가 불교적 사상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사부의전에 담긴 불교적 배경과 내용 등을 이해함으로써 장차 서양의학, 동양의학, 인도의학은 물론 한의학(韓醫學) 등과의 만남을 통한 통합적 불교의학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의 의학체계와 불교 수행의 핵심은 대승불교 정신 그대로 자신의 심신과 주변 환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출리심과 정견을 갖추고, 나와 둘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돌보고 깨우치게 하는 보리심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교의학은 인간과 주변 환경 모두의 건강한 균형과 조화를 모색하고 그 해답을 탐구하는 종합적 치유체계로서 이해되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의 정신이 불교의 정신과 위배되지 않는 한은 불교와 의학은 단순히 자연과학과의 동지적 차원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주제가 아니라, 인류가 지향해야 할 균형 잡힌 건강과 존재의 해방을 위해 함께 걸어가는 좋은 도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로덴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강사.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졸업. 인도국립박물관연구소에서 <티벳불교 무상요가 깔라짜끄라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인도 바라나시 티벳불교고등연구소(CITHS)를 거쳐, 티베장경연구소 전문연구원 활동 중. 역저서로 《티벳어본, 입보리행론역주》 《티벳불교의 향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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